지난 3주 동안, 우리는 견문록 시리즈를 통해 중국 e스포츠의 현황을 돌아봤다. EDG 아론 코치와 만나 선수관리 및 육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고, L.ACE의 라이언 주석과는 중국의 e스포츠협회(혹은 연맹)가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확인했다. 원석중, 위영광 PD와는 e스포츠 전파의 주요 매개체인 방송에 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사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대체로 중국 e스포츠 시장의 규모에 대해 놀랐고, 한국 시장의 한계점을 역으로 확인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무엇보다 e스포츠를 향한 부정적 인식에 대해 큰 아쉬움을 표현했다. e스포츠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의 e스포츠는 도태되고, 중국에 그 자리를 내줄 것이라며 불안해했다.

정말 그럴까? 한국 e스포츠는 국외 자본의 힘에 흔들려, 종주국이라는 자부심 외에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까? 한국은 네덜란드의 에레디비시처럼 선수를 수출하는 셀링리그가 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그렇지 않다고 확신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약 십 수년간 한국에 내린 e스포츠의 뿌리는 굳건하다고 믿는다. 자본의 힘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을 포함한 해외 e스포츠와 비교해도 한국이 갖는 강점은 많다.

이제 한국 e스포츠를 바라볼 차례다. 중국 및 해외 e스포츠와 비교할 때, 한국의 장점은 무엇일까?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자.


한국은 e스포츠 레전드의 요람이다. e스포츠의 가능성을 열고 그 자체로 상징이 된 SLayerS_'BoxeR' 임요환, 중국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에 참여한 한국인 프로게이머 Spirit_Moon 장재호, 현재 진행형 전설 '페이커' 이상혁. 축구 이야기에 호날두-메시가 빠질 수 없듯, e스포츠를 말할 때 한국인과 한국 선수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한국은 지난 십수 년 간 e스포츠의 중심임을 선수로 증명해왔다.

한국 e스포츠 선수 풀은 깊이 만큼 폭도 넓다. 글로벌 e스포츠에 가장 가까운 LoL 종목에서는, 해외 각 지역 리그에 많은 한국 선수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종목에서는 한국이 아닌 다른 국적의 우승자가 배출되는 것만으로도 큰 이슈가 된다. 피파온라인 종목에서는 정재영에 이어 장동훈까지 중국 메이저 대회 우승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유일의 도타2 프로게임단 MVP는 리그도 열리지 않는 나라에 속하고도 TI에 초청팀 자격으로 출전한다.

한국은 앞으로도 계속 많은 e스포츠 선수를 배출해낼 것이다. 그만한 깊이가 있다. 많은 학생이 여가시간을 이용해 친구들과 게임을 즐긴다. 주거지에서 최대 10분 거리에는 항상 PC방이 있다. 누구든 상관없이 최상의 환경에서 저렴한 금액으로 e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임요환, 장재호, 이상혁이 처음부터 레전드였을까? 이들 모두 PC방을 거쳤다. 지금도 PC방에는 미래의 '페이커'가 게임을 즐기고 있다.

해외 국가 상황과 비교해보면, 한국의 강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유럽의 어느 나라도, 미국의 어느 지역도, 인구 13억이 넘는다는 중국도 한국만큼 인구 대비 많은 PC방과 빠른 인터넷망을 갖추고 있지 않다. 한국은 e스포츠를 즐기기에 다른 어떤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브라질 어디나 공만 있으면 축구를 하듯, 한국은 어디서나 e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축구, 야구, 농구, 실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스포츠는 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할 수 있다. 그러나 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e스포츠는 방송 중계를 통하지 않고는 관람을 할 수 없다. e스포츠에 있어 방송이라는 매커니즘은 그만큼 중요한 요소다.

한국은 e스포츠 방송 분야에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와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선수가 멋있어 보이는지, 어떻게 하면 관전자가 경기를 박진감 넘치게 볼 수 있는지, 한국만큼 잘 아는 나라가 있을까? 멋들어진 경기 오프닝, 선수 간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연출, 화려한 결승전 무대까지. 우리는 매일 세계 최고 품질의 e스포츠 방송 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LCK 리그의 분할 중계가 결정되면서 국내 방송사 간의 본격적인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각 방송사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시청자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시청자들은 분할 중계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지만, 방송 품질의 향상에 대해서는 대체로 수긍하고 있다. 독점으로 인해 도태될수도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 경쟁을 통한 발전 가능성을 키운 것이다.

한국의 e스포츠 연출은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이 있다. 발렌시아 CF가 e스포츠에 뛰어들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프나틱과 e스포츠팀 인수를 위해 경쟁을 할수록, 전 세계의 e스포츠 방송 중계에 대한 노하우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원석중, 위영광 PD의 경우처럼 노하우는 계속 전수되겠지만, 10여 년의 격차가 단숨에 따라잡히진 않는다. 분할 중계는 한국이 선두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과거의 한국e스포츠협회(이하 KeSPA)가 모든 일을 잘해왔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특히 중계권 분쟁과 같은 이슈는, e스포츠가 문화에서 산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벌어진 필연적인 진통이라 하더라도 업계에 끼친 악영향이 매우 컸다. 이런 과거에도 불구하고 전병헌 명예회장의 등장 이후 지금의 KeSPA는, e스포츠 산업화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첫 번째,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e스포츠 산업화를 위해 국가 정부와 협력하는 e스포츠협회(혹은 연맹)은 존재하지 않는다. KeSPA만이 유일하게 국가 정부와 협력하여 e스포츠 진흥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다. KeSPA는 서울특별시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가족 e스포츠 페스티벌을 매해 개최하고 대한체육회 주최 전국체육대회에 참가를 유도하는 등 e스포츠를 주류 문화에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두 번째, KeSPA는 아마추어 e스포츠 리그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마추어 부분에서 대학생 대회, 대통령배 전국아마추어 e스포츠대회(KeG), 여성 및 직장인 대회 등을 지원하고 있다. e스포츠의 저변 확대라는 대의적 차원에서의 지원은 이익을 추구하는 게임사들이 홀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이런 일들은 KeSPA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국제e스포츠연맹이 한국에 있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국제e스포츠연맹은 국제 정식체육종목화를 목표로 하여 46개 회원국이 가입한 중형급 단체로 거듭났다. 전병헌 국제e스포츠연맹 명예회장의 목표인 e스포츠의 올림픽 공식 종목화가 정말로 이뤄진다면, e스포츠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한국의 입지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먼 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계속 보임으로써 정식 스포츠화에 대한 e스포츠 업계의 마음을 얻을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 e스포츠가 가진 장점을 돌아봤다. 이번에는 중국 e스포츠 시장이 한국에 끼친 긍정적 영향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중국 e스포츠 시장의 부상이 한국 e스포츠에 악영향만을 주었을까? 위기론에 가려져 있었을 뿐, 긍정적인 영향도 많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돈이다. 중국 e스포츠 시장의 자본 유입은 한국 선수들의 처우에 대해 되돌아보고 개선하게 하였다. 최저연봉제 도입이 이때 나온 이야기다. KeSPA는 프로무대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최저한의 처우는 보장받아야 한다는 판단으로, ‘최저 연봉제 2천만 원’을 리그 참가팀이 준수해야 할 규정으로 명시했다.

중국 e스포츠의 성장은 선수뿐만 아니라 한국 게임단 수입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지난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SKT T1을 보자. SKT T1 유니폼에 새겨진 한자는 모두 중국 후원사들의 로고다. 롱주TV를 비롯해 온라인 쇼핑몰인 쟈이미, 모바일 게임사 EGLS가 SK텔레콤과 스폰서십을 체결했다. 이들의 후원은 '페이커' 이상혁을 지켜내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게임단의 수입이 다시 선수에게 돌아가면서 e스포츠업계의 억대 연봉자가 다시 등장하게 됐다.

SKT T1뿐만이 아니다. 롱주 게이밍은 지난 스프링 시즌 IM 시절과는 규모가 다른 투자로 이적시장의 큰손 역할을 했다. 락스 타이거즈도 과거 중국 자본의 힘으로 팀을 결성할 수 있었다. 피파온라인 종목에서는 '딩 차이롱' 정재영의 성공 이후, 많은 한국 선수들이 중국게임단의 러브콜을 받으며 좋은 계약을 따냈다. 중국 e스포츠는 한국의 약점인 규모 문제의 해결 방안이 될 수도 있다는 근거를 제시한 셈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 이 시간이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황금기일수도 있다. 선수단, 방송사, 각종 매체, 협회 및 단체, 기업 등 e스포츠와 관련된 모든 종사자가 중국 및 해외시장에 대한 적극적 진출을 모색해야 할 때다.

런닝맨, 복면가왕 등 예능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중국에 수출한 방송사, 중국 관광객의 급속한 증가와 이를 위해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준비한 기업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연예인 등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한 예시는 매우 많다. e스포츠에 불어온 중국 바람도 충분히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누군가의 위기는 준비된 이에게 기회다. 한국 e스포츠는 지난 시간 동안 겪은 많은 일로 충분히 준비를 끝냈다. 겁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을 기회다. 두려워하지 말고 두드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