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1부 리그에 발을 디딘 MVP는 데뷔한 그 시즌에 리그 6위에 올랐다. 함께 승격한 ESC 에버가 프로의 벽에 부딪혀 최하위권에 머물며 다시 한 번 승강전으로 향했던 것에 비하면 굉장히 좋은 성적을 거둔 거라 할 수 있었다. 엄청난 대격변이 있었던 2016 스토브 리그에는 일찌감치 기존 멤버 그대로의 로스터를 발표하며 타 팀보다 한발 빠르게 팀워크를 다지기 시작했다.
2017 스프링 시즌, MVP가 보여준 팀워크는 예상했던 대로 팀 최대의 장점이었다. 좋은 팀워크는 전투 구도에서 특히 빛을 발했고, 덕분에 불리한 상황을 전투로 뒤집어 버리는 역전승을 자주 연출할 수 있었다. 서포터 '맥스' 정종빈의 뛰어난 변수 창출 능력도 한몫 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상위권에 안착한 MVP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게 됐다.
하지만, 앞서 언급됐다시피 이번 포스트 시즌의 벽은 굉장히 높은 게 현실이다. 객관적인 전력 지표상 MVP는 다섯 팀 중 최약체로 꼽힐 수밖에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마지막 경기였던 단판 순위결정전에서 아프리카 프릭스에게 완패를 당하면서 MVP의 도약은 와일드카드전에서 마무리되리라 예측하는 의견이 상당수가 됐다. 이런 현실적인 지표들을 딛고 다음 라운드 진출을 노리기 위해서 이제 MVP는 그들의 강점을 최대로 드러내야할 때를 맞이했다.
MVP는 어떻게 상위권 반열에 올랐나
먼저, MVP가 어떻게 해서 쟁쟁한 팀을 누르고 포스트 시즌 진출 티켓을 따내게 됐는지부터 자세히 들여다보자. 정규 시즌 동안 MVP를 지탱한 가장 큰 주춧돌은 '변수'였다. 챔피언 풀에서부터 밴픽 구도, 전투에서 발휘되는 깜짝 팀워크까지, 상대가 감히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은 MVP만의 무기가 됐다. 그 시작은 '애드' 강건모의 사이온이었고, '맥스' 정종빈이 시즌 내내 다양한 비주류 서폿 챔피언을 선보이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 남다른 챔피언 폭을 활용한 밴픽 전략
시즌 초반, 프로 경기에서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사이온은 강건모만의 카드였다. 강건모는 압도적인 챔피언 이해도와 운전 실력을 보여주며 여러 차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결국 MVP를 상대하는 팀들은 밴 카드 하나를 사이온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MVP 입장에서는 비주류 챔피언으로 이끌어 낸 최고의 결과였다.
정종빈은 올 시즌 LCK 서포터 중 가장 넓은 챔피언 폭을 자랑한다. 그가 사용한 챔피언 개수는 무려 15개. 개인 기량 면에서 상위권으로 꼽히는 타 서포터들과 비교해 봤을 때('울프' 이재완 - 7개, '코어장전' - 조용인 8개, '마타' 조세형 - 9개, '고릴라' 강범현 - 10개)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카밀, 브랜드 등 꽤나 다양한 챔피언을 선보였던 아프리카의 서포터 '투신' 박종익도 11개에 그쳤다.
정종빈의 다양한 챔피언 활용이 갖는 이점 중 하나는 밴픽에서의 변수였다. MVP가 빠르게 엘리스나 신드라, 노틸러스를 가져갔을 당시 상대 팀들은 그 챔피언들이 서포터로 활용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이를 통해 MVP는 다른 라인에서 원하는 픽을 가져올 수 있는 확률을 높혔다. 밴픽에서부터 유리하게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MVP는 이런 밴픽 전략을 서포터 뿐만 아니라 탑-정글 구도에서도 보여주기도 했다. 롱주 게이밍과의 2라운드 경기 2세트, MVP가 정글 1티어로 꼽히는 그레이브즈 대신 렝가를 선픽했다. 당연히 MVP가 이미 정글러를 뽑았다고 판단한 롱주 게이밍은 그레이브즈를 남겨두고 강한 봇 조합인 케이틀린-룰루를 먼저 가져갔다. MVP는 이를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이 다음 턴에 바로 그레이브즈를 가져오고 렝가를 탑으로 돌리며 원하는 조합을 완성했다.
■ 플레이 메이커가 주도하는 한타
정종빈의 무서움은 챔피언 선택 폭이 높다는 단순한 수치보다 그 색다른 서포터로 게임을 캐리하는 역할을 해낸다는 데에 있다. 그 증거로 팀 내에서 가장 높은 MVP 포인트(800점)를 보유한 점을 들 수 있다. 타 팀 서포터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치다. 경기 승률로 따져보면, 깜짝 카드로 뽑아든 엘리스, 사이온, 브랜드, 벨코즈, 신드라 중 신드라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다. 탐 켄치나 쓰레쉬, 노틸러스 등 변수 메이킹 능력이 뛰어난 챔피언들로도 높은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브랜드와 사이온은 강팀 kt 롤스터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1등 공신이었다. 2월 14일 1라운드 매치 2세트, 아군 4명이 AD 챔피언인 상황에서 브랜드를 선택한 정종빈은 팀 내 딜량 1위을 기록하며 부족한 AP 대미지의 공백을 제대로 메웠다. 3월 22일 열린 리매치에서 일발 역전을 만들어낸 사이온의 4인 에어본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했고, 이번 시즌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최대 단점은 '약한 라인전'
MVP의 이런 장점이 더욱 부각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단점에 있었다. 바로 라인전 능력이 타 팀들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것. 실제로 MVP가 합류 싸움이나 정글 개입 없이 순수 라인전에서 승리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MVP가 역전승을 가장 많이 만들어낸 팀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MVP가 패한 경기에서 가장 먼저 패인으로 떠오르는 라인은 미드다. 라인전, 특히 허리 라인인 미드-정글이 정말 중요해진 최근 메타에서 '이안' 안준형의 폼이 이전 시즌만 못하다는 것은 팀에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좁은 챔피언 폭도 문제가 됐다. 가장 많이 활용한 신드라와 오리아나를 제외하고는 승률이 매우 낮은 편이고, 사실 오리아나도 라인전 단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다. 때문에 이미 많은 팀이 이를 인지하고 MVP전에서 신드라를 빼앗아 오거나 잘라 버리는 전략으로 안준형에게 더 많은 압박을 가하곤 했다.
팀의 에이스 '맥스' 정종빈도 '마하' 오현식과 함께 하는 라인전에서만큼은 빛을 발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상대의 봇 조합을 보고 카운터 치는 브랜드, 벨코즈 등 전략적인 픽이 아닌 정석적인 서포터 룰루, 카르마, 자이라, 나미 등을 꺼냈을 때는 대부분 라인전 단계에서 CS나 포탑 선취점, 드래곤 등 많은 것들을 내줘야 했다. 사이온이나 탐 켄치, 노틸러스 같이 라인전이 약한 근접 챔피언을 가져갔을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 잃어버린 라인 주도권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하는 정글러
아군의 라인전이 크게 밀리면서 정글러 김규석의 힘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아군 정글이 활발히 뛰어다닐 수 있도록 라이너들이 판을 짜줘야하는 게 요즘 메타다 보니 당연히 초래되는 현상이었다. 정글러 움직임의 초석이 되는 시야 장악은 물론 오브젝트 컨트롤, 카운터 정글 싸움, 갱킹 등 모든 면에서 상대 정글러보다 악조건에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초반 단계의 김규석은 아군 라인전이 무너지지 않도록 뒷받침해주는 정도의 역할밖에 할 수 없는 경우가 다수였다.
김규석이 개인 기량에서만큼은 여느 상위권 정글러와 버금가기에 이런 상황이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사실 김규석은 정규 시즌 동안 정종빈보다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그 못지않게 팀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전승으로 이어졌던 여러 번의 오브젝트 스틸과 급박한 전투 구도에서 보여준 피지컬과 침착함은 호평을 받기도 했다.
침착함이 가장 크게 빛났던 경기는 2라운드 kt 롤스터전 2세트였다. 카운터 정글을 들어온 '스코어' 고동빈의 렝가가 김규석의 그레이브즈를 기습했다. 먼저 얻어맞고 시작하자 제 아무리 강력한 그레이브즈도 체력이 크게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상대 미드라이너의 지원이 더 빠른 상황. 당황할 만도 했지만 김규석은 침착하게 연막탄으로 렝가의 딜로스를 만들고 도주기를 끝까지 아끼며 타워 안쪽으로 유인했다. 결국 렝가를 먼저 잡아낸 김규석은 탈리야와 러브샷까지 유도하며 초반 단계에서 크게 유리함을 가져왔다.
■ 상성 우위의 픽으로 최소 반반 싸움을 만들자
얼마 남지 않은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당장 라인전 능력을 상위권만큼 끌어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MVP 입장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해결책은 밴픽 구도에서 김규석을 믿고 상대보다 라인전이 더 강력한 챔피언을 가져오는 것이다. 상성 우위의 픽으로 라인에서 최소 반반 싸움만 가준다면, 김규석은 이전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이며 아군 라인에 도움을 주거나 시야와 오브젝트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점들은 자연스럽게 MVP의 강점인 전투를 빠르게 이끌어 낼 수 있는 환경으로 연결될 수 있다. 라인전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던 안준형과 오현식도 팀 시너지가 발동되는 한타 구도에서만큼은 언제나 제 역할을 톡톡히 해줬기 때문에 오브젝트를 중심으로 한 초중반 교전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본다면, MVP도 충분히 더 좋은 승리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더 안정적으로 완성되기 위해서 MVP에서 가장 강한 라인으로도 꼽히는 탑 '애드' 강건모의 챔피언 선택이 특히 중요해졌다. 상대 탑 라이너인 '마린' 장경환이 최근 세체급 기량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순위결정전에서 레넥톤을 선택한 강건모는 장경환의 노틸러스에게 상성 우위에도 불구하고 솔로 킬을 내줄 뻔한 위험천만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더 강한 라인전을 가져가기 위해 그에 걸맞는 챔피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눈에 띄는 건 최근 상위 티어로 떠오른 피즈다. 도주기가 풍부한 피즈는 점멸 대신 점화를 장착해 더욱 강력한 라인전 능력을 자랑하며, 핵심 특성 착취의 손아귀도 딜 교환 우위와 라인 유지력에 힘을 보탠다. 강력한 라인전이 필요하고 난전에 능한 MVP에게 잘 어울리는 챔피언이다. 비록 SKT전에서 한 차례 사용해 패하긴 했지만 초반 인베이드 단계에서 이미 크게 경기가 기운 상태였고, 그런데도 라인전에서 '후니' 허승훈의 럼블을 체력 1까지 떨어트리며 솔로 킬 낼 뻔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MVP가 승리를 거둔 모든 경기의 밑거름이 됐던 밴픽 구도에서의 변수를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다. MVP만의 챔피언으로 인식이 박힌 사이온, 탑과 정글을 오가는 렝가, 탑과 서폿을 오가는 노틸러스, 그리고 정종빈의 말도 안되는 챔피언 풀 등 그간 MVP가 보여준 다양한 밴픽 전략만으로도 아프리카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인식하고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만약 MVP가 여기서 더 나아가 지금껏 보여주지 않은 또 다른 전략적인 변수 픽이나 라인 스왑 픽을 꺼내든다면, 충분히 아프리카를 뒤흔드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위에 언급된 피즈의 경우도 미드와 탑에서 모두 사용 가능하며, 강건모가 3전 전승을 기록하고 있는 케넨도 서폿으로 돌려 활용할 수 있다. 또, 아직 보여주지 않은 정종빈의 새로운 조커 카드에 대한 기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변수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지나치게 좋지 못한 픽을 가져가 자승자박의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만 주의하고, 좋은 전략을 준비한다면 MVP는 허를 찌르는 밴픽으로 훨씬 기분 좋게 경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년 만화의 제 2막을 맞이한 주인공 MVP. 그들이 써내려갈 첫 번째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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