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머드 게임 열풍이 굉장히 뜨거웠던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도 초반까지. 이 시절 리니지를 즐기기 위해서는 '주사위 노가다'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캐릭터를 생성할 때 주사위를 굴려 스탯을 배분하는 것이 1차 관문이었던 것. 보다 뛰어난 스탯을 위해 열심히 주사위를 굴려야 했다.

시작이 출발의 반이라는 말처럼, 주사위에 몇날 며칠을 쏟아붓는 이들도 많았다. 몇 번 시도하지도 않았음에도 최고의 스탯을 뽑는 이른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이들은 피시방에서 인기가 좋았다. 같은 피시방을 다니던 형, 누나들은 "내 주사위 함 굴리도."라는 말과 함께 소시지빵을 사주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공짜로 소시지빵을 먹는 모습이 왜 그렇게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당시 기자가 살던 부산의 일부 피시방에서는 별도의 추가 요금을 받고 종일 주사위를 굴려주는 곳도 있었다. 일부 사장은 PC 요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일부러 스탯이 안뽑혔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리고는 "마 계정 자체가 저주 받은 기다. 3일 계정 다시 만들어라."고 말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던 기억도 있다. 그만큼 주사위로 최고의 스탯을 뽑는 작업은 매우 중요했다.

기계적으로 주사위를 굴리다가 최상의 스탯을 미처 못보고 주사위를 한 번 더 굴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때 그 시절에 리니지를 했던 유저라면 이러한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 주사위를 굴리던 시절, 도둑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직도 미궁속에...


주사위를 굴리는 횟수와 시간은 운도 운이지만 클래스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그나마 기사의 스탯을 뽑기가 좀 수월했는데, 추가로 배분할 스탯이 4개밖에 안되어 가장 중요한 힘과 콘 중, 한 곳에 '몰빵'만 잘되면 됐다. 힘 20이나 콘 18 같은 완벽한 주사위는 바라지도 않았다.

가장 인기 있는 스탯은 힘 19, 콘 15의 힘 기사였다. 힘기사는 추가 타격치가 주어져 +6검을 들어도 +8검 대미지를 기대할 수 있었기에 인기가 많았다. HP가 낮은 것이 단점이지만, 6검 4셋에 호렙까지만 키우면 어디서 맞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판타지 세계관에 심취한 일부 유저들은 힘 19, 콘 15 세팅이 기사도를 걷는 자들의 표본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콘 17에 남은 스탯 1개가 위즈에 가기만 해도 성공적이었다. 이 스탯은 윈다우드 업데이트와 함께 마법의 투구가 등장하면서 조명됐다. 이 스탯의 조합은 레벨업 시 오르는 최대 MP가 0~1에서 1~2가 되기에 더 많은 MP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 30레벨(체렙)만 되어도 신속의 투구로 '헤이스트'를 쓸 수 있었다. 물론, 효율은 별로였지만 말이다. 부족한 힘은 붉은 기사의 검이나 파워 글러브로 메꿨다.

반면, 장비가 좋은 이들은 HP가 더 높은 콘 기사를 선호했다. 40레벨(호렙)에 HP 500, 48레벨에 HP 600까지 기대할 수 있었는데, 힘기사와 비교하면 HP가 100 이상이나 높았다. 장비와 맷집이 좋은 기사가 아군일 땐 매우 듬직하고, 적군일 땐 공포의 대상이었다.

▲ 콘 기사는 장비가 뒷받침될 때 더 강했다


요정도 기사처럼 덱스 요정과 콘 요정으로 나뉘어 콘셉 자체는 비슷했다. 다만, 분배해야 할 스탯이 더 많아 덱스 18이나 콘 18처럼 하나의 스탯에 올인 된 캐릭터는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주력 스탯인 덱스나 콘이 17로 뽑히면 남은 스탯이 어디에 배분되는지를 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곤 했다. 가장 이상적인 스탯은 덱스 17이나 콘 17에 남은 스탯이 덱스나 콘, 위즈에 배분되는 형태였다. 2% 부족한 스탯이지만 이렇게만 뽑혀도 감지덕지했다.

당시 기사보다는 요정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벌이가 쏠쏠한 덱스 요정이 인기였다. +6 크로스 보우만 들어도 가지 못할 사냥터가 없었는데, 심지어 방어구는 뼈 세트 정도로 가볍게 때우면 됐었다. 몬스터가 근처로 오기 전에 처치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높은 덱스 수치는 AC를 더 떨어트리는 효과와 함께 원거리 타격치, 명중률도 크게 증가시켰다. 그래서 HP는 높지만 명중이 낮은 콘 요정은 명중 특화의 크로스 보우를 들고, 기본 명중이 높은 덱스 요정은 타격치에 특화된 장궁을 선호했다.

요즘 리니지는 스탯에 따른 추가 효과가 다양해지고 색깔 역시 뚜렷해져 위즈 요정, 인트 요정, 힘 요정 등 다양한 스타일로 플레이 할 수 있다. 아마 주사위를 굴리던 시절에 요정을 했던 유저들은 달라진 최근 모습의 요정이 충격일 수도 있겠다.

▲ 덱스 요정의 진가는 공성전에서 발휘됐다


99년 막바지에 등장한 마법사는 주사위로 스탯을 완벽하게 맞추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 불가능했다. 요정보다 더 많은 스탯을 주사위로 배분해야 했기에 비율 좋은 캐릭터가 뽑힐 확률은 정말 극악이었다. 무엇보다 마법사는 콘셉트를 확실하게 잡고, 어느 스탯에 집중 투자할 것인지를 정해야 했기에 초보자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

요즘은 인트 수치에 따른 마법 대미지 상승 등의 효과가 잘 정립됐지만, 초기에는 마법 대미지나 크리티컬 개념 자체가 모호했기에 HP와 MP 높은 캐릭터가 최고였다. 그래서 가장 중요시했던 스탯이 콘과 위즈였고, 인트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이들이 드물었다. 그중에서도 콘과 위즈가 모두 18인 캐릭터는 매우 희귀했다.

서먼 몬스터가 조명되면서 카리스마 18 마법사를 뽑으려는 이들도 있었다. 버그베어를 8마리나 끌고 다니는 '조폭 마법사' 콘셉트로 아데나를 벌거나 버그피(PK)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시 서먼 몬스터의 가격이 200만 아데나를 웃돌았기에 일반 유저들은 카리 법사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서먼 몬스터 1개 가격이 +6 마나 지팡이에 +4 마법사의 세트를 포함한 4셋을 맞추는 데 필요한 비용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 PK를 즐기는 유저들은 인트위즈 18을 선호했다


군주는 사실 선택지가 없었다. 카리스마 수치가 높아야 자신의 혈맹에 더 많은 혈맹원을 모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핵심 콘텐츠였던 '혈전'은 숫자 싸움이었다. 기본적으로 혈맹원이 많아야 혈전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고, 군주들 사이에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시절 군주 대부분은 혈맹을 위해 공격, 방어 스탯을 포기하고 카리스마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스탯이 빈약하기에 군주 자체 전투력은 볼품 없었다. 그러나 위엄 하나 만큼은 정말 대단했다. 글루딘 마을 중앙 광장에서 32767 만로우풀의 군주 캐릭터가 팔짱을 끼며 정자세로 서있는 모습을 기억해보라. 카리스마가 넘쳐보이는(심지어 스탯도 카리스마 올인) '군주 특유의 간지'는 당시 리니지를 해본 유저들만 알 수 있다. 실상은 '단검에 가죽재킷을 입은 1회용 3일 계정 군주'여도 쉽게 대할 수 없었던 무언가가 있었다.

재밌는 점은 당시 유저들 대부분이 군주 캐릭터를 '존중'했다는 점이다. 혈맹에 가입하려면 군주에게 칼질을 해선 안 되고, 무장을 해제한 채 맨손으로 군주 정면에 서야 하며,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이야기를 해야 했다. 또 적대 혈맹이라 서로 비방을 주고받아도 '군주'에게만큼은 예의를 갖춰야 했다.



주사위를 통한 스탯 분배 방식은 2001년이 돼서야 '자율 분배 방식'으로 바뀌게 됐다. 일부 클래스는 초기에 배분된 스탯이 재조정되고, 추가로 배분해야 할 스탯 수가 늘어나게 되면서 보다 다양한 형태의 스탯 세팅이 가능해졌다.

주사위 시스템이 사라진 배경에는 2010년 11월, 가드리아 서버에서 최초로 50레벨을 달성한 '구문룡'의 역할이 매우 컸다. 당시 리니지가 상용화되고 나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1명도 나오지 않았던 최고 레벨이 신규 서버에서 등장해 화제였다. 모든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던 시기에 그는 주사위 시스템의 문제점과 레벨 제한, 레벨업 보너스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유저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로 인해 최고 레벨의 제한이 해제됐고, 51레벨부터 레벨업 보너스로 원하는 스탯을 1개씩 추가로 배분할 수 있게 됐다. 더 나아가 캐릭터의 근간이 되는 베이스 스탯을 직접 고를 수 있게 패치됐다. 주사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사라질 시스템이었지만, 한계를 직접 달성하고 유저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구문룡의 소신 발언이 패치를 앞당겼다는 점은 분명하다.

▲ 구문룡도 힘 19, 콘 15 세팅이었다는 사실


※ 이미지 출처 : 리니지 공식 홈페이지(play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