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긴 협의 끝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출전이 확정됐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출전 여부를 알 수 없었던 답답한 상황에서 묵은 체증을 해소한 것만 같았습니다. 출전이 확정된 직후, 일사천리로 국가대표팀의 인선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롤드컵 2회 연속 결승 진출 및 1회 우승에 빛나는 최우범 감독이 국가대표에 가장 먼저 승선했습니다. 이어서 '기인' 김기인(아프리카 프릭스), '피넛' 한왕호(킹존 드래곤X), '스코어' 고동빈(kt 롤스터), '페이커' 이상혁(SKT T1), '룰러' 박재혁-'코어장전' 조용인(이상 젠지 e스포츠)이 태극마크를 달게 됐습니다.

서머 스플릿을 준비하던 최우범 감독은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고민이 깊었습니다. 리그를 대표하는 게 아닌, 한국을 대표해 팀을 이끌게 됐으니 부담이 클 법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보상이 없기 때문에 부담을 가질 필요가 있겠냐고 말했지만, 최우범 감독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명예가 곧 대가라고 말이죠.

하지만 최우범 감독은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최고라는 생각은 버리고, 초심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러면서도 힘든 도전을 하고 싶다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노력과 열정만으로 세계 챔피언에 올랐던 최우범 감독, 그가 만들 '원 팀'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 먼저 축하드립니다. e스포츠 국가대표 감독이 되셨어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처음에 얘기를 듣고, 기쁘다기보다는 부담이 컸어요. 아무래도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이다 보니 당황스러운 게 컸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명예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상을 떠나서 의미가 큰 국제적 행사라 생각해서 수락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기쁨보다는 부담감이 조금 더 크네요.


Q. 처음 선임됐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당황하셨나 봐요.

저번 롤드컵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후보에 있을 만은 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후 성적이 나빠서 될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죠. 나중에 연락을 받고 꽤 당황스러웠어요. 기술위원회가 정한 거로 알고 있는데, 인정받았다는 거 자체는 기분이 좋아요. 부담감 같은 경우는 국가대표 감독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거고요.

워낙 조심스러워서 주변에는 이야기하지 않고, 와이프에게만 말했거든요. 처음에는 엄청 싫어하더라고요. 국제적인 행사라 혹시 결과가 좋지 않아서 비난을 받을까 걱정했던 거죠.


Q.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을 한 것 같아요. 젠지 e스포츠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더욱 힘들겠네요.

시간이 촉박하긴 해요. 서머 스플릿 준비랑 겹치니까 두 곳을 전부 신경 써야 하잖아요. 그래도 회사에서는 꽤 긍정적이었고, 저도 나라를 위해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두 곳에서 모두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습니다.



Q. LoL 올스타전이랑은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팀원들을 하나로 뭉치는 데 꽤 난항이 예상되는데요.

그게 가장 힘든 부분이겠죠. 우리 팀 선수들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지만, 다른 팀 선수들은 어떤 성격인지 전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컨트롤 하는 방법부터 피드백 방식까지 아직 감이 안 잡혀요. 그래도 분명한 점은 이 팀에 트러블은 없을 거예요. 5:5 팀 게임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고, 맞춰가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강조하려고요. 당연히 그런 부분을 인지하고 있는 선수들이기도 하고요.


Q. 평소 스타일이 '열정과 노력'이잖아요. 본인의 철학과 색깔을 대표팀에도 입힐 생각인지 궁금해요. 또 그게 단기간에 가능할지도 기대되고요.

당장은 제 성향이 중요하지 않아요. 막연하게 연습과 노력을 요구하기보다는 선수들이 합을 맞추는 게 급선무죠. 서로 서먹한 분위기를 풀고, 선수들끼리 친해지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어요.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스코어' 고동빈 선수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잘 해줄 것 같고, '코어장전' 조용인도 친화력이 좋은 선수라 두 선수를 최대한 잘 활용하려고요.


Q. 아시안게임 역시 식스맨 체제로 로스터가 구성됐어요. 베스트 멤버는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요?

직접 경기에 뛰는 건 다섯 명이지만, 저는 전원이 주전이라 생각해요. 명색이 국가대표인데, 주전과 비주전을 정할 필요가 없어요. 최선의 방식을 찾아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야죠.


Q. 우려되는 부분도 많아요. 서머 스플릿과 겹치기 때문에 전력 노출을 꺼리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우선 저부터 그런 벽을 치우려고요. 저와 우리 팀이 보유한 정보를 예선 때부터 전부 공유할 생각이에요. 한 팀이잖아요. 다른 국제 대회도 모두 중요하지만, 태극기 마크가 가지고 있는 무게는 다르거든요.


Q. '기인' 김기인-'피넛' 한왕호-'스코어' 고동빈-'페이커' 이상혁 전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요.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 대표팀을 운용할 계획인가요.

우선 두 정글러 체제인데, '스코어'와 '피넛'은 전혀 다른 스타일이에요. 각자의 장점이 뚜렷하니 그 부분을 적절히 활용하면 될 것 같아요. '기인'은 신인임에도 어떤 챔피언이든 다 잘하니까 걱정이 없고요. 다만, 본선에서는 패치로 인해 봇 라인에 변화가 있을 예정이라 가면 살짝 걱정이긴 해요. 우선은 지금 버전에 맞춰 준비해야겠죠.


Q. 그 선수들의 강점을 자세히 더 듣고 싶어요.

'기인'을 보면 마치 경력이 꽤 된 선수처럼 플레이해요. 긴장을 안 하는 것으로 보이고요. 챔프 폭도 넓은 편이죠. '피넛'은 MSI에서 잘 못 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충분히 잘한 선수잖아요. 단기간 대회만 보고 평가 절하할 이유가 없어요. 충분히 믿음이 가고, 현재 LCK에서 최고의 정글러잖아요. '스코어'는 플레이도 워낙 노련하고, 선수들을 지탱해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페이커'도 최근 성적이 4위일 뿐, 언제든지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고요.



Q. 젠지 e스포츠와 밴픽도 다를 테고, 선수들의 요구사항도 있을 거예요. 사소하게는 챔피언 픽과 관련된 부분이 그렇겠죠.

그럴까 봐 걱정이네요(웃음). 그래도 선수들이 당연히 팀에 맞춰야 하지 않을까요. 국가대표팀은 누구 한 명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요.


Q. 당장 큰 고민인 부분은 연습문제겠네요.

팀 내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다 소화하고 쉬는 날 모일 예정이에요. 라이엇 게임즈에서 여러 부분에 많이 지원해줄 것 같고, 각 팀에서도 선뜻 도움을 준다고 하니 그 부분은 한시름 놓고 있습니다.


Q. 이미 국제 대회를 경험해보셨지만, 아시안 게임 역시 단기 대회잖아요. 이런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요.

무조건 팀원과의 조화죠. 위기가 찾아올 때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팬들은 경기에서 누가 못했다고 꼬집으려고 하잖아요. 이해는 되지만, 저는 감독으로서 다르게 생각해요. 누가 못한 것보다 모두가 잘못했으니 지는 거고, 개인이 아닌 팀이 패배하는 거예요. 그래서 선수들끼리 서로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믿음이 없으면 절대 우승할 수 없거든요.


Q. 라이엇 게임즈 주관 대회 중 국가대항전 개념인 MSI가 있는데, 중국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팬들은 걱정하는 분위기에요.

지금은 냉정해져야 해요. 중국과 대만 그리고 한국 다 비슷한 수준이에요. 2016년 말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던 건데. 이제 진짜 차이가 없다고 봐요. 어쩌면 이제는 한국이 쫓아가는 입장이 될 수도 있어요. 무조건 한국이 최고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한 끗 차이 정도라고 보는 게 맞겠네요. 해외 팀과 스크림을 해보면 딱 느낌이 오거든요.


Q. 당연하겠지만, 팬들은 예선전부터 경기력과 결과 모두를 바랄 거예요.

분명 쉽지는 않을 거예요. 본선 무대 진출에 대한 자신감은 있지만, 아직 손발을 맞춰보질 않아서 경기력까지 잡겠다는 욕심은 못 부리겠어요. 만약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 제가 선수들에게 감사해야 하죠.



Q.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승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요.

섣불리 판단을 못 내리겠어요. 만약 다른 팀이 단일 팀으로 출전한다면 정말 많이 힘들 거예요. 저희는 호흡부터 맞춰야 하는 단계지만, 그들은 이미 호흡 문제는 없는 거니까요. 개인적으로 엄청난 도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Q. 벌써 상당히 익숙한 선수들이 떠오르네요. 당연히 중국과 대만이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겠죠?

당연히 중국과 대만이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들이에요. 중국은 '우지'라는 거물이 있고, 대만은 '카사'가 위협적이고요.


Q. 정글러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유독 한국 정글러의 평가가 박해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세요.

현실적으로 정글러 뿐만 아니라 모든 라인이 강해졌어요. '우지'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죠. LoL이 워낙 인기가 많고, 투자가 이루어지다 보니까 점차 갭이 좁혀지고 있어요. 한국 코치들도 중국팀에 가서 한국의 연습 시스템을 심으면서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 중이고요.

정글러에 대한 평가가 박한 건 아쉽죠. 아무래도 MSI 경기를 보고 판단하는 분이 많으실 텐데, 그 경기들만 가지고 선수의 모든 걸 평가할 수 없어요. 과연 해외 팀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LCK에 오면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죠.


Q. 요즘 가장 핫한 '우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많이 만나 본 감독 중 한 명이잖아요. 공략법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사실 만나서 거의 지긴 했어요(웃음). '우지'의 약점이라면 라인이 밀려서 CS를 받아먹는 상황이에요. 그럼 그 친구의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거든요. '우지'야 말할 것도 없이 최상위 원거리 딜러인데, '밍'도 진짜 대단한 서포터에요. 선수들 대부분이 인정할 정도의 수준이거든요. 그럼에도 지금 '룰러' 박재혁과 '코어장전' 조용인의 폼이 지난해 롤드컵 수준이라 라인전 자체는 자신 있어요.



Q. 과거에 '빨간 팬티' 징크스가 있다고 들었어요. 승리를 위한 좋은 징크스인데, 많이 준비하셔야겠어요.

챙겨가야죠. 아주 많이요(웃음). 사실 깨진 지 좀 된 징크스고, 가장 최근 징크스는 롤드컵 때 지역 이동을 할 때마다 뭘 두고 왔어요. 정말 일부러도 아니고, 깜박한 거죠. 그런데 그럴 때마다 꼭 이기더라고요. 그래서 해외에 갔을 때, 뭘 잃어버려도 기분이 좋아요. 물론, 고가의 물건은 아니고요.


Q. 점차 코칭스태프들의 팀 관리와 전략 등이 주목받고 있어요. 국가대표팀 감독들 간의 두뇌 싸움도 치열하겠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챔피언 폭이 중요해요. 밴픽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려면 챔피언 풀이 넓어야 해요. '기인'과 '페이커'는 당연히 다양한 챔피언 활용이 가능하고, 두 명의 정글러도 스타일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든 정글 챔피언을 사용하잖아요. 봇 듀오도 최근까지 여러 챔피언을 능숙하게 다뤄서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요. 다전제에서 승리하려면 저격 밴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해요.


Q. 그럼 다른 팀들의 전력 분석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요?

코치 두 명과 전력분석관 한 명을 논의 중이에요. 아직 확정된 게 없는 상황인데, LCK 팀들한테 미안하죠. 서머 스플릿 준비로 한창 바쁠 시기니까 고마우면서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Q. 자고로 국가대표 대결은 팬들의 응원싸움이기도 해요. 한일전에 대한 기대도 크고요.

사실 맹목적인 응원만을 바라지는 않아요. 좋은 경기력과 결과가 받침이 돼야죠. 패배하면 어떤 반응일지 정말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비난을 하실 일이 생긴다면 차라리 저를 욕해주세요. 프로이지만, 아직 마음 여린 선수들이에요. 저는 애초에 욕먹을 각오부터 하고 수락했거든요. 이 선수들은 군 면제나 연금 같은 포상을 바라지도 않고, 출전을 결심했어요. 그냥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순수하게 국가대표라는 마음만 지니고 있어요. 그럼에도 경기력이 형편없다면 그 비난 제가 받겠습니다. 물론, 일본과 만난다면 무조건 승리하도록 할게요.



Q. 이제 정말 e스포츠의 규모가 거대해졌음을 실감하시겠어요. 약 17년을 e스포츠에 올인하셨는데, 느낌은 어떤가요?

정말 꿈만 같아요. 과거에는 아예 생각조차 못 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프로게이머였던 제가 어디 상상이나 해봤겠어요. 여전히 신기하고, e스포츠에 올인한 내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Q. e스포츠기 아시안게임에서 첫선을 보이면서 이제 정말 연령층을 허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커요.

이미 이전부터 연령층이 허물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저희 장인, 장모님도 시청하기 시작해서 이제는 재미있어서 보시거든요. 그리고 이번 아시안게임으로 더 대중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긴 해요. e스포츠는 지금보다 더 발전하고, 성공할 거라 믿어요.


Q. 이번을 계기로 계속 국가대표 감독에 대한 욕심을 가지실 것 같아요.

성적이 잘 나온다면 욕심을 부려도 되겠죠(웃음).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잠을 못 잘 정도로 부담이 따라요. 계속 머리도 아프고요. 국가대표팀을 맡은 순간, 우리 팀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리그와 국가대표 성적 모두 잡아야 하기 때문에 힘든 게 사실이지만, 저는 정말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을 거예요.

뭐가 됐든 국가대표 감독으로 뽑아주셔서 감사하고, 무엇보다 명예로운 일이잖아요. 선수들도 그렇겠지만, 저 역시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아요. 굳이 보상이라면 국가대표라는 명예를 얻었다는 거죠.


Q. 이제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각오 등 부탁드릴게요.

이런 인터뷰를 하게 된 것도 되게 놀라워요. 인터뷰조차 부담스러울 정도였어요. 정확히는 두렵다는 표현이 알맞겠네요.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에요. 이 인터뷰를 보실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은 국가대표 구성원 모두가 정말 최선을 다할 거예요. 쉽지 않은 일, 저희가 꼭 해내도록 할 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마지막으로 잘하는 선수들이 리스크가 있음에도 출전하겠다고 했는데, 각 팀에서 허락해줬어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마찬가지로 라이엇 게임즈, 한국e스포츠협회, 각 팀 사무국에서도 정말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