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대이변'이었다.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였던 그리핀이 2연패를 당했다. 그것도 최하위권이던 젠지 e스포츠와 아프리카 프릭스에게 말이다. 샌드박스 게이밍, SKT T1도 해내지 못한 걸 그들이 해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이변의 중심에는 숱한 패배 속에서도 팀의 에이스 자리를 공고히 지키던 '슈퍼플레이어'가 있었다. 젠지 e스포츠의 '룰러' 박재혁과 아프리카 프릭스의 '기인' 김기인이 그 주인공이다. 모두가 잘해서 만든 승리지만, 시원한 앞구르기를 선보인 '룰러'와 시종일관 라인전을 압도한 '기인'은 특히 빛났다.


재혁이 형, 구른다! - '룰러' 박재혁
앞구르기에 장사 없다

'룰러' 박재혁은 언제나 젠지 e스포츠의 최후의 보루였다. 팀이 잘할 때든 못할 때든, 화력의 대부분을 책임지며 승리를 마무리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올 시즌 들어 상체가 극도로 약해지자 '룰러'에게 주어진 짐이 더욱 무거워졌다. 라인전 승리, 플레이메이킹, 완벽한 한타 포지션, 폭발적인 딜링 등 숙제가 너무 많았다.


당연히 모든 경기에서 모든 과제를 해낼 수는 없었고, 여기에 무리한 플레이나 안일한 대처가 겹치면서 자연스레 '룰러'의 전반적인 폼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그리핀과의 경기에서 그 아쉬움을 제대로 씻었다. 베인으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여전한 캐리력을 뽐냈다.

특히 빛났던 것은 1세트였다. 미드 억제기 타워 대치 과정에서 아군 리산드라가 허무하게 먼저 잘린 상황. 그리핀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매섭게 달려들었다. 이때, 퇴각 모션을 취하던 젠지 e스포츠가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 다시 공세를 취해 완벽한 포커싱으로 그리핀의 최전방 라인을 무너뜨렸다.

여기서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룰러'의 킬각은 완벽했다. 상대 주요 딜러인 코르키가 체력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앞구르기에 이은 앞점멸로 추가 킬을 얻었다. 이때부터는 베인을 막을 수 없었다. '룰러'는 일방적으로 때릴 때 더 강해지는 베인의 무서움을 여실히 드러내며 쿼드라 킬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 승리를 향한 '룰러'의 구르기 (출처 : 젠지 e스포츠 공식 유튜브)


이번에도 71인분 - '기인' 김기인
칼의 시대에 더 빛난 국대 탑솔러

이번 시즌, 아프리카 프릭스는 하위권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그 와중에도 '기인' 김기인은 언제나 최고의 탑 라이너로 평가받았다. 아프리카 프릭스도 '기인'에 많이 의지하는 듯한 밴픽 패턴이나 인게임 전략을 보여왔다. 베인이나 루시안을 쥐어주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프리카 프릭스가 승리하는 그림은 대부분 '기인'의 탑 주도권이나 슈퍼플레이에서 시작됐다. 특히, 최근에 탑에 단단하고 우직한 챔피언보다 공격성을 앞세우는 챔피언이 각광을 받으면서 '기인'의 존재는 더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리핀전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기인'은 시종일관 '소드' 최성원을 압도했고, 덕분에 아프리카 프릭스는 하체에서 무너질 뻔한 균형을 맞춰갈 수 있었다. 월등한 성장세로 한타와 운영에 힘을 보탠 '기인'과 이에 응답하듯 폼 오른 네 선수들의 시너지는 그리핀의 무릎을 꿇게 했다.

이날도 '기인'은 명장면을 여럿 탄생시켰다. 1세트, 아트록스로 부쉬에 매복해 상대 리븐을 솔로 킬 낸 것은 단연 백미고, 대치 상황에서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후방의 적을 끊임없이 견제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패배하긴 했지만, 2세트서 1대 2 싸움에서 킬을 만들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은 그의 강력함을 몸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흐름을 바꾸는 솔로 킬 (출처 : LCK 공식 유튜브)


젠지 e스포츠와 아프리카 프릭스는 정규 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정말 꿀맛 같은 승리를 챙겼다. 더 긍정적인 점은 무적처럼 보이던 그리핀을 상대로 승리했고, 팀의 전체적인 경기력이 올라온 모습이라 추가 승리 또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승리로 가장 큰 비상이 걸린 건 2연패에 빠진 그리핀이 아닌 kt 롤스터다. 승강전 한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두 팀이 1승 씩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날, kt 롤스터는 SKT T1과 샌드박스 게이밍에게 패했다. 3승 11패 9위. 순식간에 승강전 확률이 가장 높은 팀이 됐다.

안타깝게도 kt 롤스터에게는 '룰러'나 '기인' 같은 확실한 에이스가 없다. 올 시즌 내내 다섯 라인 모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물론 이변을 만들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다소 낮다.

특급 에이스를 중심으로 늦게나마라도 재정비에 성공한 젠지 e스포츠와 아프리카 프릭스. 이 기세를 이어가 몇 남지 않은 경기 동안 승리도 추가하고, 승강전의 위협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지. 두 팀이 써내려갈 LCK 스프링의 엔딩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