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퀴 더'를 외치게 하는 새로운 악마의 게임


누군가 개발자로 덱 빌딩 게임이나 로그라이트 장르의 게임을 만들라고 했다면 아마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정말 머리통이 터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장르의 게임이 너무나 많이 쏟아지다 보니 웬만한 아이디어는 이미 누군가 한 번쯤 시도했을 터. 그러니 게임의 특징을 살릴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쪽 장르 게임의 기획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물론 남들 다하는, 별것 없는 스토리와 시스템으로 게임을 내도 되고 이것도 당연히 성공할 수 있다. 다만, 그 성공의 원동력이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잘 팔릴 것들을 여기저기서 훌륭히 빌려 쓴 짜깁기에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고민으로 창작한 게임과 짜깁기로 창작한 게임. 이 둘 사이에서 한쪽을 고르라면 '루프 히어로(Loop Hero)'는 확실히 고민을 많이 한 쪽에 가깝다. 아니, 굳이 어느 쪽인지 고르지 않아도 게임에 들인 고민은 태가 난다. 이 게임에 그 다름을 더하는 것.

이 세계는 순환, 곧 루프(Loop)다.


게임명: 루프 히어로(Loop Hero)
장르: 덱빌딩 로그라이트
출시일 : 2021. 3. 5.
개발 / : 포 쿼터스
배급 : 디볼버 디지털
플랫폼: PC(Steam)



끝없이 루프하는 세계

'이곳은 기억이 없는 세계. 죽은 자들은 산 자들의 기억 속에서마저도 잊히며 없었던 존재가 된다. 주인공 역시 그렇게 이름 없이 사라졌던 존재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저 한 길로 이어져 반복되는 길을 빙글빙글 돌며 계속 걷다 길 한가운데를 막아선 슬라임을 맞는다. 이 녀석은 뭐든 소화시켜버리는 골칫거리.

잠깐. 그렇게 슬라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 전투가 기억을 되찾아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길을 마저 걷는다.'


기본적인 개념으로만 따지면 '루프 히어로'는 굉장히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게임이다. 야영지를 중심으로 하나로 이어진 길. 야영지를 떠나 외길을 걸어 다시 야영지까지 돌아오는 걸 반복하는 게 기본이다. 그리고 이 한 바퀴를 게임에서는 루프라고 칭하는데 루프를 통해 성장과 기억의 복구가 이루어진다.

이 간단한 틀에 전투는 방치형 게임의 특징을 따르고 덱 빌딩 게임과 유사한 방식의 카드 배치가 전장을 새로 만든다. 그리고 사망하면 획득한 장비들을 모두 잃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로그라이트의 특징을 갖췄다.

'루프 히어로'는 이 세 가지 장르에서 딱히 어디라고 짚어 말하기 어중간한 중간 점에 발을 두고 있다.

▲ 야영지에서 다음 야영지까지 걸어가는 영웅(가운데 흰색). 기본 자체는 간단하다

▲ 적과 만나면 자동 전투

이것저것 다 섞으면 뭔 맛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섞어찌개가 됐을 일이지만 '루프 히어로'는 이 장르들의 특징을 맛이 살아있는 선에서 하나로 잘 묶어냈다. 여기에 앞서 설명한 루프. 즉, 게임의 설정을 썼다.

주인공이 알아서 이 길을 걸으며 루프를 반복하는 건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는 것이고, 플레이어는 그의 전진을 돕는 외부자적 존재로 그려진다. 이 세계에 영웅이 그러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거다. 마이웨이 오로지 앞으로만 가는 영웅의 움직임을 직접 컨트롤할 수는 없지만, 카드를 통해 마을을 설치하기도 하고 묘지나 숲을 만들어 더 많은 적을 불러오기도 한다.

사망 후 플레이어가 되살아나는 데는 '죽음 후 모든 것이 잊혀 버리는 종말적인 세상에서도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 순환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덧댔다. 어딘가 라이트 노벨의 뭐뭐 전쟁, 뭐뭐 한 내가 이세계에서는~ 류의 설정과 유사한 것 같지만, 어쨌든 자세한 이야기는 게임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야 더 직접 와닿는 편일테니 당장 긴 말은 아끼도록 하겠다.

▲ 영웅처럼 뭐가 뭔지 모르는 단계의 플레이어에게는 아직 헛소리 해골일 뿐

중요한 건 루프가 게임의 기본적 진행 개념임과 동시에 이야기에 핍진성을 부여하는 한 차원 높은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택의 루프

주인공의 루프 자체는 정말 별것 없다. 말한 대로 그저 길을 걷는 것만으로 끝난다. 이벤트라고 해봐야 길을 걷다 적을 만나 전투를 펼치고 가끔 전투 전 이벤트 대화가 이루어지는 게 전부인데 자동으로 진행되니 전투 자체에서 플레이어가 할 건 그다지 많지 않다. 온힘을 다해 죽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어떤 장비가 더 나은지 선택해 맞춰주는 정도다.

다만, 플레이어가 그저 한 회차의 플레이에서 마냥 넋 놓고 있다는 건 아니다. 아니, 의외로 수시로 시간을 멈췄다 풀었다 해야 할 정도로 할 게 많은 편이다. 여기서 플레이어의 역할은 앞서 짧게 설명한 장비 착용과 카드 배치다.

▲ 장비들을 비교해보고 뭐가 나은지 실시간으로 비교, 정비해야 한다

몬스터를 없애면 간혹 카드와 장비를 얻는데 이것들이 이번 루프가 어떻게 풀려나갈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내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길 위에 설치한 묘지는 지나갈 때마다 약간의 자원을 주지만, 주기적으로 해골 병사를 소환한다. 전투라는 행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들도 있는데 지형물을 설치 이동 속도를 올려주거나 영웅의 최대 체력을 높여주는 카드도 있다.

얼핏 생각하면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지형 카드만 사용하고 적이 등장하는 카드는 버리면 쉽게 풀릴 것 같기도 한데 루프의 끝인 보스전이 카드 배치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 카드한도를 모두 채우자 야영지에 등장한 보스

한 회차의 끝은 야영지에 등장하는 보스와의 전투로 끝난다. 이들 보스는 각 회차에서 일정 수의 지형물을 설치하면 등장하게 되는데 별다른 파밍 없이는 몇 대 투닥투닥하면 사망씬을 볼 정도. 단순히 스탯 상승용 지형물만 설치해서는 잡을 수 없으니 적과 많이 싸워 장비 파밍과 레벨업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단순히 보스를 불러오는 데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적을 많이 등장시키는 지형물을 설치하고 강해질 시간을 벌어야 한다. 여기다 전투 중에는 장비를 갈아 끼우는 것만 가능하니 비전투 시, 영웅이 적이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재빨리 카드를 배치해야 한다. 맵 곳곳에 카드가 배치되고 적이 많아지면 한 걸음 한 걸음 땔 때마다 전투가 이어진다. 설치할 카드는 많고 비교할 장비의 드랍률이 올라가는 후반에는 수시로 게임을 멈춰 세워야 할 정도다.

물론 마냥 적을 늘린다고 강해지는 건 아니다. 한 번의 루프(한 바퀴)가 끝날 때마다 드랍하는 장비의 레벨이 높아지지만, 적들의 레벨도 덩달아 높아진다. 보스가 등장하기 전에 쓰러진다면 모든 장비를 잃고 사망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며 보스 등장까지 어떻게든 버텨도 체력이나 장비가 부실하다면 결국 사망 화면을 보는 시간을 조금 늦춘 게 전부일 뿐이다.

▲ 한 틱 남은 체력바, 이제 믿음의 단계다. 기도와 신앙만이 살 길

아무것도 없는 길 위에 지금, 그리고 앞으로 주어진 장비와 카드를 가지고 상황을 어떻게 예측하며 풀어낼지에 대한 선택. 그것이 반복되는 게 바로 '루프 히어로'다.



자원의 루프

죽음과 함께 다른 이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야 하는 세계. 사람으로서 이름은 남기지 못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여정을 기억할 무언가를 남긴다.

게임의 사망은 장비와 레벨을 모두 잃는 상실을 가져오지만, 그 과정에서 획득한 자원은 일부 가진 채 마을에서 깨어난다. 죽음을 반복하며 특수한 자원으로 게임의 이점을 풀어나가는 로그라이트의 특징을 여기서는 이런 전리품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했다.

▲ 내 죽음이 마을 성장에 가취있기를

전리품은 꽤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마을에 건물을 설치하는 것부터 보급품을 제작하는 데에도 쓰이는데 이런 마을 건설은 여타 로그라이트 게임의 강화나 환생 개념의 요소들을 다양하게 묶어내고 있다.

약초꾼의 오두막을 열면 포션이 생겨 위험 순간마다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물론 이것도 전투 중 마시는 거지 자동이다). 또 묘지를 지으면 직업 네크로맨서가 해금되기도 하고 추가적인 직업 오픈, 추가적인 카드 개방, 편의 시설 증가 등 성장 방향이 건물로 완전히 갈리게 된다.

물론 건물 하나를 먼저 지었다고 해서 '이건 못 지어'라고 제한하는 일은 없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자원을 생각하면 뭘 먼저 올려야 할지 나름 고민해야 하는 요소다. 여기다 건물 강화 없이는 점점 강해지는 적들을 상대하는 데 장비 드랍이라는 운적 요소에만 모든 걸 맡겨야 한다.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재료를 어떤 건물에 먼저 투자할지 또 한번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 그냥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이거 마을임

재료의 디자인도 일반적인 로그라이크 게임의 형태와는 좀 다르다. 여러 재료는 종류만 다를 뿐 대게 건설이라는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만, 건물은 전혀 다른 효과를 내는, 상위의 목적을 위해 짓는다.

여기서 얻는 재료는 캐릭터 성장에 쓰이고, 저기서 얻는 재료는 장비 강화에 쓰여 획득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여타 게임들과는 다르다는 거다. '루프 히어로'는 재료의 사용처를 통일하되 어디부터 어떻게 사용할지를 고르는 변화구로 꽂아 넣었다.


그래도 건물마다 필요한 자원이 다르고 건물도 새로운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사전 건물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당장 모자란 자원을 먼저 모으는 작업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자원 역시 게임의 전부이자 플러스인 루프를 통해 수급된다.

카드를 어느 카드와 엮어,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자원 수급량이 달라지고 길 위에 설치한 특수 타일을 지날 때도 자원을 얻는데 이때 얻는 재료의 종류도 전부 다르다. 때로는 아이템이나 카드를 한계치까지 모아두면 새 습득물이 있을 때 기존 것을 재료로 교환하기도 한다.

이제 플레이어에게 남은건 선택이다. 특정 재료를 얻기 위해 카드를 내지 않고 루프를 반복해 더 어려운 보스를 상대할지. 아니면 많은 적을 불러내는 지형물만을 만들어 특별한 재료를 얻을지. 모든 것은 성장을 목표로 하는 재료 수집의 다각화. 그게 바로 '루프 히어로'다.



학습의 루프

게임에 대한 경험이 아예 없지 않다면, 작은 것까지 하나하나 알려주는 튜토리얼이나 게임 소개는 꽤 귀찮은 일이다. 게임 디자인도 떠다니는 요정이 이거 눌러나 저거 눌러라 하는 방향에서 게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튜토리얼을 유도하는 추세기도 하고.

그런데 '루프 히어로'는 불친절하다면 참 불친절한 게임이다. 튜토리얼쯤 되는 설명은 사실 플레이어인 나를 위한 안내가 반, 게임 속의 영웅 그 자신이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가기 위한 게 반이다. 그마저도 그다지 많은 편도 아니다. 적은 양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여기서 누락된 정보들이 게임을 풀어나가는 데 꽤 중요한 요소들이란 점이다.

산이라는 카드는 기본적으로 주변 산이나 바위 근처에 설치하면 5의 추가 체력을 얻는다. 여기까지는 카드 설명에 나온 정보다. 하지만, 이 카드를 연이어 9장 설치하면 하나의 거대한 산으로 바뀌고 적이 길 위로 날아드는 하피 둥지를 만든다. 또 퀘스트 제공과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마을 위에 흡혈귀 저택을 설치하면 마을은 좀비들이 득실대는 묘지로 바뀐다.

▲ 그냥 지으면 오른쪽 위처럼 산들의 연속이지만, 특정 방식대로 지으면 오른쪽 아래처럼 거대한 산이 된다

거대한 산은 더 큰 체력 증가를 가져오니 산 카드 9장을 쓸데없이 날리는 것보단 만드는 게 낫다. 반대로 체력 회복을 위해 마을을 설치했는데 좀비 떼가 득실거린다면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거다.

이런 요소들은 게임에서 굳이 설명해주지 않는 요소들이지만, 효율을 생각하거나 여러 상황 속에서 의도치 않게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럭저럭 합리적인 발생 상황 속에서 나름의 이벤트를 마련해 둔 건데 한 번 해당 조합을 겪었다면 다음에는 이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즉, 다양한 상황에 대한 가능성을 만들어두고 이를 설명이 아닌 경험으로 깨닫도록 했다.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는 루프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이를 학습해 적용케 한 것이다.

▲ 어떤 카드를 가져갈지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는 법을 아는지도 중요

사실 플레이어에게 적용시킨 이런 학습은 게임 내에 살아가는 영웅이 추구하는 삶이기도 하다. 영웅은 루프를 돌며 세계를 인식하고 기억을 되찾는다. 찾은 기억은 자신의 머릿속에 새겨두고 새로운 루프. 즉 새로운 기억을 찾아 나가는 데 활용하고 있다.

개발진이 '루프 히어로'에 전혀 다른 세 장르를 섞어내는 데 루프라는 개념을 게임 내외에 이용했듯, 적은 설명으로 게임 세계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데에도 플레이어의 루프 개념을 녹여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학습이 반복되는 세계가 바로 '루프 히어로'다.



루프를 위한 루프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영웅은 성장하고 플레이어의 지식도 늘어간다. 보는 눈이 달라지니 게임의 플레이도 당연히 달라지겠지. 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같은 영웅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해도 아이템과 카드가 본격적으로 드랍되는 3, 4 루프(바퀴)쯤에 가서는 분기를 일으킬 다양한 요소를 손에 넣게 된다.

▲ 나름 빡빡하게 채워진 중반

바꿔 말하면 아무리 캐릭터를 다양한 방식으로 육성해서 별다를 이벤트가 없는 게임 초반은 '가장 약한 적인 슬라임을, 기본 무기로 느릿느릿 처치'하는 단계를 거쳐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거다. 그렇다고 액션성이 있는 게임도 아니고 이미 들고 있는 카드도 없거니와 그 카드들이 각 전투에 극적인 영향력을 내는 것도 아니다.

숨겨진 콘텐츠의 깊이, 그리고 반복-루프라는 개념에 대한 고민은 이래저래 잔뜩 들어가 있으면서 이를 반복하는 플레이어의 지루함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은 듯한 아쉬움을 낸다.

그나마 게임 속도를 2배속으로 늘리는 기능이 있긴 한데 기본 속도가 워낙 느려 2배속이 거의 기본 속도인 것처럼 돼버린다. 4배속 쯤이 만들어지지 않고서야 저마다 개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게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창모드로 3루프 정도까지는 시간이 없어 평소 보지 못한 TV 시리즈를 스트리밍으로 챙겨보며 버텼다.

▲ 슬라임만 있는 이 때는 진짜 너무너무 할 게 없다

게임을 자칫 지루하게 만들 수 있는 또 하나는 스토리다. 아까는 흥미로운 스토리라고 봤다면 틀린 게 아니다. 별다른 설정 없이 전투의 반복만을 그린 류의 게임은 전혀 아니다. 문제는 그 스토리 전개를 충분히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스토리가 진행되려면 특정 지역의 돌파나 건물 강화를 통한 성장이 필요한데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건물 강화를 위해 더 많은 재료를 손에 넣어야 한다. 그런데 재료 수급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그마저도 보스전에서 승리해야 모은 전리품을 겨우 가져올 수 있다. 루프 중 퇴각하면 60%, 사망하면 고작 30%만 가지고 마을로 복귀한다.

재료를 모으기 위해서는 다시 루프를 돌아야 하는데 그다지 몰입되지 않는 초반 구간을 다시 이어 해야 한단 뜻이다. 스토리를 깨닫게 할 구간과 구간. 그 사이를 메꿀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굳이 게임이 가진 거대한 스토리라인이 아니라도 해결할 방법은 충분히 있어 아쉬운 편이다.

이쪽 장르로는 꽤 획기적인 스토리 전개로 인디 게임 그 이상의 평사를 받았던 하데스와 비교하면, 스토리가 전개되기 전 한동안은 이야기가 거의 멈춰 있다는 느낌마저 들지 모르겠다.

▲ 스토리를 알아가는 단계가 너무 지루한 편

아쉽지만, 한발 나아가기 위해 반복하고 제자리에서 또 반복해야 하는 게임이 '루프 히어로'다.




옛스러운 느낌의 그래픽에 버튼 하나와 건물이 떠 있는 화면 하나가 전부인 'Please, Don't Touch Anything'. '루프 히어로'의 개발사 포 쿼터스의 전작은 정말 볼품없는 게임이었다. 다만 이미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 겉에 보이는 게 그렇다뿐이지 플레이어를 골탕먹이는 방법부터 뒤통수를 얼얼하게 하는 갖가지 엔딩은 의외의 깊이와 함께 재미있는 게임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설명했다.


'루프 히어로'도 비슷했다. 포 쿼터스가 출시 전 일찌감치 베타 테스트에 전용 플래시 게임까지 공개하며 공들였던 데 반해 큰 인상을 심진 못했다. 당대 유행하는 아기자기한 픽셀 아트와는 거리가 먼 8비트 풍의 색감과 그래픽은 게임이 가진 재미를 느껴보기도 전에 색안경을 씌우는 요소로 보였다.

하지만 정식 출시된 '루프 히어로'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200메가도 채 하지 않는 깜찍한 용량에 담긴 깊이는 파고 들수록 깊다. 그리고 반복을 통해 체험하는 깊이는 충분히 플레이한 후에도 아직 바닥에 닿지 않았다. 마치 문명이나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을 하며 '한 턴 더'를 외쳤듯, '한 바퀴 더'를 외치며 루프를 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다. 사실 리뷰 같은 거 쓸 시간에 그냥 루프나 돌았으면.



'한 바퀴 더'를 외치게 하는 새로운 악마의 게임


누군가 개발자로 덱 빌딩 게임이나 로그라이트 장르의 게임을 만들라고 했다면 아마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정말 머리통이 터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장르의 게임이 너무나 많이 쏟아지다 보니 웬만한 아이디어는 이미 누군가 한 번쯤 시도했을 터. 그러니 게임의 특징을 살릴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쪽 장르 게임의 기획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물론 남들 다하는, 별것 없는 스토리와 시스템으로 게임을 내도 되고 이것도 당연히 성공할 수 있다. 다만, 그 성공의 원동력이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잘 팔릴 것들을 여기저기서 훌륭히 빌려 쓴 짜깁기에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고민으로 창작한 게임과 짜깁기로 창작한 게임. 이 둘 사이에서 한쪽을 고르라면 '루프 히어로(Loop Hero)'는 확실히 고민을 많이 한 쪽에 가깝다. 아니, 굳이 어느 쪽인지 고르지 않아도 게임에 들인 고민은 태가 난다. 이 게임에 그 다름을 더하는 것.

이 이야기 했던가? 이 세계는 순환, 곧 루프(Loop)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