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마지말 날인 12월 31일은 말 그대로 '그리핀데이'이었다. '2018 LoL KeSPA컵'에서 젠지 e스포츠를 꺾고 승격 후 첫번째 우승을 달성한 것이다. 평범한 우승이 아니었다. 그리핀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한다는 그리핀의 김대호 감독도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경기력을 선보였고, 전승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이번 KeSPA컵 내내 그리핀은 '잘할 거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이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최고 강점이었던 한타력은 여전했고, 선수 개개인의 기량까지도 물오른 모습이었다. 결승 3세트에서 만들어낸 '전 라인 솔로 킬'은 프로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사실 이런 그리핀의 행보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처음 이름을 알린 2017 KeSPA컵에서 아프리카 프릭스를 2:0으로 완파하고, SKT T1을 상대로 명승부를 만들어냈다. 1부 리그로 입성한 '2018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서머 스플릿에서는 정규 시즌 2위, 최종 준우승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우승 트로피만을 남겨둔 상황이었고, 이번 KeSPA컵에서 그것을 완성했다.


그리핀, 역사의 시작
김대호 감독의 합류, 그리고 멤버 보강

I Gaming Star의 시드를 이어받아 탄생한 그리핀은 '2017 LoL 챌린저스 코리아(이하 챌린저스 코리아)' 스프링부터 참가했다. 아직 지금의 멤버가 갖춰지기 전으로, 당시에는 챌린저스 승강전까지 다녀올 정도로 약팀에 속해있었다. 그리핀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건 김대호 감독의 합류 이후였다.


서머 2라운드부터 팀과 호흡을 맞춘 김대호 감독은 합류하자마자 곧바로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렸다. 아쉽게 패하긴 했지만, 김대호 감독의 지도력과 선수들의 잠재력이 이때부터 서서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그리핀은 '바이퍼' 박도현과 '리헨즈' 손시우를 영입해 약점으로 꼽혔던 봇의 전력을 강화하며 2017 KeSPA컵을 맞이했다.

이 2017 KeSPA컵이 바로 그리핀의 이름을 세간에 알린 대회였다. APK 프린스에게 이전 플레이오프에서의 복수를 제대로 하고 올라온 1라운드 8강. 상대는 아프리카 프릭스였는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메타에 대한 분석 능력이나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 있어 호평을 받았다. 이후 SKT T1과의 2라운드 대결에서도 풀세트 명승부를 만들어내며 눈도장을 단단히 찍었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 당연하다는 듯 LCK에 입성한 그리핀은 '돌풍'을 일으켰다. 돌풍이라는 표현은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주는 팀을 수식할 때 주로 활용되는데, 그렇게 따지면 그리핀은 그야말로 '대형 돌풍'이었다. 내로라하는 LCK 선배들을 꺾고 정규 시즌 2위, 준우승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갓 승격한 팀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경기력과 성적이었다.


더 강력한 우승 후보로
변함없는 로스터, 긴 준비기간

2018년 이적시장은 그 어느때보다 불탔다. 대부분의 팀들이 만족할만한 성적표를 받지 못했고, 당연히 로스터 변경을 통해 전력을 보강하고자 했다. LCK 섬머 우승팀 kt 롤스터는 물론이고, 상위권이었던 킹존 드래곤X, 젠지 e스포츠, 아프리카 프릭스 모두 대격변을 맞이했다. 7위까지 떨어졌던 SKT T1도 이를 갈고 '드림팀' 로스터를 완성했다.

상위 다섯개 팀 중 유일하게 그리핀만이 '래더' 신형섭을 플래시 울브즈에 임대하고, 서포터 '캐비' 정상현을 영입하는 선에서 그쳤다. 주전 멤버의 변경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이로 인해 그리핀은 더 강력해진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영입을 위한 시간을 소비하거나 새롭게 팀워크를 다질 필요없이 하던대로 다음 시즌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2018 시즌의 마무리이자, 미리보는 2019 시즌이었던 2018 KeSPA컵에서 그 저력이 제대로 드러났다. 팀워크 면에서 그리핀을 따라올 팀이 없었고, 덕분에 그리핀의 강점인 한타 시너지가 몇배는 불어난 듯 했다. 게다가 솔로 랭크 최상위권 선수를 여럿 보유한만큼 개인 기량도 다들 뛰어났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 괴물같은 팀이 되어버린 것이다.


첫 우승, 2019년도 밝을 예정
무결점 우승이었기에 2019년이 더 밝다

8강과 4강에서는 '타잔' 이승용의 활약이 눈부셨다. 승격할 때부터 이미 한체정 후보로 지목받던 '타잔'은 본래 가지고 있던 공격성에 노련미까지 두르고 등장했다. 특히, 4강 담원게이밍과의 경기에서는 상대 정글러 '캐니언' 김건부의 모든 동선을 예측한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캐니언'이 가는 곳마다 '타잔'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게 아닐 때에는 다른 쪽에서 더 큰 이득을 만들어냈다. 신예인 '캐니언'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멘붕'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상대하는 팀의 입장에서는 '타잔'이 활용하는 챔피언 풀도 문제였다. 카밀, 카직스, 리신 등 주류 픽 뿐만 아니라 아트록스나 세주아니로 경기를 캐리하는 '타잔' 때문에 밴픽 단계에서부터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8강, 4강을 거치면서 '타잔'은 이번 KeSPA컵에서 모든 라인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캐리력을 선보인 선수로 거듭났다.


결승에서는 '타잔'의 캐리력에 다소 가려져있던 나머지 멤버들이 불을 뿜었다. 상체 중심 운영으로 안정성을 더 중요시했던 봇 듀오는 밴픽에서 비원딜 챔피언을 필두로 한 센 조합을 쥐어주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강력함을 뽐냈다. 엄청난 폼을 보여주던 '룰러' 박재혁을 라인전 단계에서부터 제압해 승리 공식의 첫 줄을 써내렸다.

'타잔'과 함께 캐리의 중심 역할을 하던 '쵸비' 정지훈은 높은 밴률을 자랑하던 이렐리아가 풀리자마자 가져와 이렐리아 그 자체의 플레이를 보여줬다. 2세트에서 타워 다이브로 더블킬을 획득하고 살아나오는 장면은 마치 솔로 랭크 하이라이트 영상과도 같았다.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던 '소드' 최성원은 3세트에서 우르곳으로 '큐베' 이성진을 솔로 킬 내고, 사이드 운영 내내 압도하며 승리에 크게 공헌했다.

모든 라인이 라인전 단계부터 강하다. 한타를 정말 그림같이 잘한다. 스노우볼도 잘 굴린다. 그리핀이 가진 강점과 플레이스타일을 보면 엄청난 커리어를 쌓아올렸던 전성기 시절의 SKT T1과 비슷하다. 이 팀을 꺾을 빈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LoL판에 새로운 왕좌를 써내려가는 주인공은 그리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핀은 경기력을 통해 2019년에는 우승을 싹쓸이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 2019 시즌 시작까지는 약 이주간의 시간이 남았고, 그리핀의 압도적인 포스를 느꼈던 팀들은 이를 갈고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핀이 방심하지 않고 이번 KeSPA컵에서 보여준 경기력을 유지하는 한, 웬만한 무기로는 그리핀이라는 단단한 철옹성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