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제템'


이 단어는 메이플 유저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흔히 여제템이라 불리는 140레벨 장비는 현재 메이플스토리 내에서 최고수준의 장비로,
지금까지는 최종보스라고 불리고 있는 시그너스 여제 레이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기에
그 위력에 걸맞는 희소가치와 높은 거래가격을 자랑했다.



그러던 5월 3일, 1.2.158 패치를 통해, 일반 몬스터에서 드랍되는 9주년 이벤트 상자를 통해
140레벨제 여제장비를 얻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는 패치노트의 내용.


☞ 클라이언트 1.2.158 릴리즈 패치노트 [클릭]




[ 단 한 줄의 패치가 불러온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





게임을 할 시간이 모자라서, 내지는 넥슨 캐시에 투자할 돈이 모자라 최상급 컨텐츠를 즐길 수 없었던,
그래서 '여제템'을 바라만 보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 소식에 환호했다.




하지만, "모든 서버의 여제원정대가 해산 중이다"라는 짧지만 강렬한 소식이 들려왔다.


현재 메이플스토리의 고레벨 유저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컨텐츠인 시그너스 여제 원정대 레이드.
여제 원정대가 모두 해산된다는 이야기는 곧, 시그너스 여제 컨텐츠의 사망 소식과 다를 바 없기 때문.


부랴부랴 수소문을 해
칼루나서버의 기획팀, 마르디아 서버의 시안루이스 두 명을 칼루나 서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우선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여제 원정대의 해산의 상황과 그 이유.
인사가 끝나기 바쁘게 물어본 기자의 질문에 국내 최초 여제공략을 성공시킨
칼루나 원정대장 기획팀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 여제 공략 최초, 칼루나 기획팀 원정대 인터뷰 [클릭]




[ 당시 북적거렸던 여제원정대 인터뷰 현장 ]




기획팀:
"여제 원정대 해산 소식은 사실입니다. 거의 모든 서버의 원정대가 이미 해산되었으며,
나머지 원정대들도 동향을 주시 중인 것으로 압니다. 원정대가 해산되는 이유를 꼽자면 아무래도,
시그너스 여제를 공략해야만 얻을 수 있는 보상들을 이벤트를 통해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겠죠.

격파 조건이 까다로워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시그너스 원정대와는 달리,
9주년 이벤트 상자나 신규 캐시템 티포트를 통해 너무 쉽게 여제템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여제 원정을 계속 해야할 아무런 메리트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르디아 서버 최초로 여제를 격파한 원정대 소속인 시안루이스 또한
마르디아 서버의 상황 역시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알려왔다.



아르센씨안:
"마르디아 서버의 시안루이스입니다. 마르디아 서버에는 7인으로 구성된 1개의 격파팀과
2인으로 구성된 3~4개의 격파팀이 있었습니다만, 오늘 패치를 기준으로 모든 팀이 전원 해산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함께 파트너로 여제 공략을 해온 괴도얌은 마르디아 최강화력의 괴도팬텀 유저인데,
여제공략을 그만두면서 모든 장비를 처분하고 저랑 같이 메이플스토리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뭐, 채팅하러는 종종 들어오겠지만요."





[ 원정대의 해산과 함께, 게임을 그만두려 한다고. ]




시안루이스라고 하면, 임군과 함께 마르디아 서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저.
오랜 시간동안 메이플스토리를 해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사람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을 버리고 게임을 떠난다는 말에 인터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게임을 접는다 - 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 점을 고려해본다면
단순히, 패치가 마음에 들고/들지 않고 수준의 사소한 문제가 아닐 터.
그 자세한 속마음을 물어보았다.




아르센씨안:
"음 심정을 말로 자세하게 설명하긴 어려운데, 메이플에 더이상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겠구나랄까요.
여제공략을 위해 들였던 제 시간, 캐시 모두를 넥슨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20대, 130대 장비를 풀어도 그것을 어렵게 구한 사람들에게는 큰 반발을 사기 마련인데,
현존하는 최강의 장비를 이벤트로, 캐시템으로 뿌려준다는 것은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해요."





기획팀:
"현재 시그너스 여제가 최상위 컨텐츠인 상황에서 그 보상을 풀었기 때문에
고레벨 유저들은 이제 할 것도, 할 이유도 없어졌다는 점이 더욱 큰 문제입니다.

투자한 시간, 투자한 노력, 그것을 가지고서 도전해서 목표를 달성해내는 성취감.
이런 것들 하나 없이 '여제템'이라는 결과물만 덜렁 던져주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할까요?"





아르센씨안:
"제 얘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사실 여제공략이 불가능했던 지난 1월쯔음에는
되풀이해서 사냥만 하는 기사단장 레이드가 지겨워 메이플을 잠시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여제 격파 소식을 들은 이후 돌아와 18인 원정대 풀레이드를 참가했는데
세상에, 이전까지 전 메이플스토리가 이렇게 재밌는 게임인지 몰랐습니다.
시그너스 여제를 쓰러트렸을 때의 느낌이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해요.

그런 어렵고 고된 과정이 있었기에 비로소 여제템이 가치를 가지는 것인데
지금의 패치는 저를 비롯한 여제원정대들의 추억까지도 싸구려로 만드는 것 같아요."





[ 메이플이 이렇게 재밌는 게임이었는지 이전까지 몰랐다고 말하는 시안루이스님 ]




소위 '무자본'이라 불리는 다수의 일반유저들이 이번 패치에 대해 대부분 반가워하는 것을 보면
이번 패치가 어느 정도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도 보이는데,

고레벨 유저들은 왜 이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기획팀:
"이번 패치의 방향은 잘못되었습니다.

사실, 온라인 게임들이 종종 이런 식으로 상위 컨텐츠/아이템들을 푸는 경우는 있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경우만 해도, 불타는 성전 마지막 패치를 통해 최종 컨텐츠를 풀었죠.
메이플로 치면 시그너스 여제에 해당하는 최종 레이드인 검은 사원급의 아이템을 풀고
일일퀘스트 등을 통해서 휘장(=코인)으로 살 수 있게 만들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메이플과 달랐던 점은, 아이템이 풀린 컨텐츠가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는 겁니다.
난이도/제한을 낮춰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만들고, 더 높은 레이드 목표를 새로 만들어줬어요.
라이트 유저들은 그전까지 바라만 봐야했던 컨텐츠를 원하는만큼 참가하면서 즐겼고,
헤비 유저들은 더 높은 새 레이드 던전을 향해서 도전을 계속했었어요. 이게 정상적인 루트에요.

메이플스토리는 어떤가요? 여제의 주당 공략 3회 제한은 그대로고, 난이도도 그대롭니다.
컨텐츠를 푸는 게 아니라 그 보상을 풀어버리면서, 여제 컨텐츠를 죽여버렸어요."





아르센씨안:
"지금 무엇보다도 필요한 건, 다음 최상위 컨텐츠가 빠르게 나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미 이렇게 여제템이 풀려버린 이상, 목표를 잃은 고레벨 유저들은 게임을 떠나기 마련이에요.

이벤트 상자에서 여제템을 얻었다고 치죠. 기분 좋겠죠. 근데 그 다음에는 뭘 하실 건가요?
지금의 메이플은 그 다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그 다음을 준비해둔 것 같지도 않구요."





[ 패치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기획팀님 ]





[ 보상만 풀고 제한을 그대로 두면서 컨텐츠를 죽였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 ]





너도나도 여제템을 얻을 수 있다는 소식에 흥분해 있는 중에
모든 서버의 여제원정대의 해산에 대한 소식을 바쁘게 전해온 원정대장들은
게임사에게, 메이플 유저들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을까.




기획팀:
"이번 패치로 인해 여제무기의 거래가가 폭락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자리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돈벌이가 안되서 힘들다!'가 아니에요.
저희를 포함한 대부분의 원정대가 해산하고 시그너스 여제 원정을 포기하는 것은
유일하게 즐기는 최상위 컨텐츠를 한 순간에 버려버리는 넥슨의 의도에 실망했다는 겁니다. "





아르센씨안:
"어떤 게임이든, 그걸 즐기는 유저들은 그만큼 그 게임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의 애착을 가지고 있기에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남아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사에 바라는 점은,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서라거나 투표를 통해서라도
그런 유저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유저들과 게임사의 소통이 잘 될수록
유저들이 바라는 방향과 게임이 나아가는 방향이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 유저들이 바라는 방향과 게임의 방향이 같아질 수 있도록... ]





물론, 이렇게 만난 이들이 모든 서버의 원정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 최초의 여제 공략에 성공한 원정대장을 포함해,
각 서버의 내로라하는 원정대가 여제의 공략을 포기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패치는 이미 적용되었고, 누구나 여제템을 얻을 수 있다.


최상위 콘텐츠였던 여제 그 이후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든 메이플 유저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Inven Helka
(Helka@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