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T1이 1년 만의 재도전 끝에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으며 마무리된 2016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하 MSI). 한국의 우승과 중국의 위엄 회복, 북미의 반전, 유럽의 몰락, 동남아의 선전, 와일드카드의 매력이 동시에 빛나며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돋보였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서포터 메타의 변화다. 약 반년 동안 서포터 자리에는 알리스타와 브라움, 트런들만 보였다. 이번 MSI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탱커 서포터 메타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가끔 CLG의 '아프로무'만이 소라카를 활용했을 뿐.

하지만 MSI 4강과 결승을 지켜본 팬들은 과거 시즌 3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을 것이다. 탱커 챔피언만 살아남았던 서포터 자리에 원거리 챔피언 서포터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소라카와 소나, 나미가 협곡에 등장해 팀 승리를 이끌었다.


■ 그나마 소라카 정도?

MSI 이전부터 '서포터 자리에는 탱커'라는 인식이 강했다. 강력한 이니시에이팅과 쓰러지지 않는 단단함, 탁월한 아군 보호 등 탱커 서포터가 가진 이점은 많았다. 그럴수록 원래 서포터 자리를 지배했던 원거리 서포터가 자취를 감췄다. 그들은 탱커 서포터보다 이니시에이팅이 강력하지도 않고, '당연히' 탱커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그나마 유저들 사이에 유명했던 것이 소라카 정도였다. 사실 소라카는 솔로랭크 '숨은 꿀 챔피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소라카는 Q스킬 '별부름'을 통한 자가 회복과 딜 교환이 가능하고, E스킬 '별의 균형'으로 상대 챔피언을 잠깐 벙어리로 만들 수 있다. W스킬 '은하의 마력'과 궁극기 '기원'을 통한 아군 지원은 소라카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본인의 색깔이 분명한 소라카는 솔로랭크에서 곧잘 기용됐다.

원거리 서포터의 또 다른 축을 담당했던 소나와 나미는 유저들에게도 외면받았다. 가끔 커뮤니티에 두 챔피언에 대한 긍정적 평가 글이 게시되기도 했지만, 이내 유저들의 빈축을 사곤 했다. 뭐, 그래도 소나와 나미를 활용하는 사람은 계속 활용했다. 전체 티어에서의 승률은 꽤 낮았지만.

그러던 중에 소라카가 대회에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리워크 이전에 잠시 떠올랐던 탑 소라카나 미드 소라카가 아닌, 서포터 자리에 소라카가 등장했다. 그리고 소라카는 대회에서도 준수한 라인전과 아군 보호 능력, '별의 균형'이 만들어내는 한타 변수 등으로 꽤 좋은 성적을 냈다. 특히, CLG의 '아프로무'가 소라카를 잘 다뤘다.

그동안 보여줬던 준수한 활약 덕분에(?) 줄곧 저격 밴을 당하던 '아프로무'의 소라카가 MSI에서도 활약하기 시작했다. NA LCS에서의 기량 그대로였다. 소라카가 국제무대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른 팀 서포터들 역시 소라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SKT T1의 '울프' 이재완이 적극적으로 소라카를 활용해 팀의 결승 진출을 도왔다.

▲ 상대의 빠른 대처를 막는 '울프' 이재완의 소라카(출처 : OGN 방송 화면)


■ 소나에 나미까지?!

이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다. 각 지역 1위 팀이 모두 출전한 MSI에서 소라카가 등장했을 때부터. 여기서 원거리 서포터 장인인 '아프로무'는 또 하나의 깜짝 카드를 선보였다. 4강 플래쉬 울브즈전에서 그는 잊고 있었던 챔피언인 소나를 과감하게 꺼냈다.

▲ 뜨헉! (출처 : OGN 방송 화면)

OGN 중계진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클템' 이현우 해설위원은 "'점멸-크레센도'가 없는 소나는 미니언보다 조금 강한 존재"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아프로무'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는 완벽한 플레이로 '소나도 충분히 좋은 챔피언'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렸다. 정확한 '크레센도' 활용 뿐만 아니라 한타 내내 살아남으며 적절한 스킬 활용으로 팀원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

평소 '아프로무'의 플레이를 많이 보고 배운다고 밝혔던 '울프' 이재완이 그 뒤를 따랐다. 소나와 함께 잊고 있었던 또 하나의 챔피언, 나미를 선보였다. 그것도 우승이 걸린 결승전에서. 그리고 이재완의 나미는 매 순간 완벽한 스킬 적중률로 팀의 MSI 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평소 '형님'으로 모신다던 '아프로무'의 소라카를 상대로 3연속 나미를 꺼낸 이재완이 서포터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 정확한 CC 연계 (출처 : OGN 방송 화면)


■ 안 좋은 챔피언은 없다, 인식의 차이만 존재할 뿐

원거리 서포터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많이 붙긴 한다. MSI에서도 마찬가지였다. CLG와 SKT T1 모두 알리스타가 밴 된 경기에서 원거리 서포터 카드를 꺼냈다. 확실히 원거리 서포터 입장에서 상대 알리스타는 껄끄러운 존재다. 시야를 장악하기 위해 움직이다가 갑자기 알리스타가 뛰어들면, 곧장 회색 화면을 보기 딱 좋다. 또한, 원거리 서포터는 알리스타의 이니시에이팅과 탱킹, 아군 보호 능력을 따라하기 힘들다.

▲ 원거리 서포터는 알리스타 밴을 동반한다

이번 MSI는 연구가 모두 완료되어 사골까지 우려낼 수 있었던 6.8 버전으로 진행됐다. 당연히 라인별 최고의 챔피언과 메타가 완성된 시점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다른 라인에는 모두 '최고'로 평가받는 챔피언이 돌아가며 등장했다.

그렇기에 이번 MSI에서 변화한 서포터 메타는 큰 의미를 보인다. 굳어진 메타 속에서 저평가 받았던 챔피언도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평소 비주류 챔피언 장인들이 목놓아 울부짖던 '안 좋은 챔피언은 없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또한, MSI에서 소라카와 소나, 나미가 활약했기에 다음 시즌부터 원거리 서포터의 재등장 가능성이 커졌다. 대격변이 일어난 6.9 패치에서 서포터 포지션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6.8 말미에 등장해서 활약했던 원거리 서포터들이 계속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서포터에도 탱커 챔피언을 강요하는 '3원딜 조합'의 힘이 빠졌다는 점 역시 원거리 서포터 재등장 여부에 힘을 보태고 있다.


흔히 '대회에서 쓰이지 않는 챔피언은 좋지 않다'고 한다. 물론, 연습 과정에서 엄청난 연구를 진행하는 프로게이머와 코치진의 선택인 만큼 대회에서 쓰이는 챔피언의 활용 가치가 더 높은 것은 맞다. 하지만 쓰이지 않는다고 안 좋은 챔피언이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MSI에서 선수들이 증명하지 않았나. 그것도 연구가 완료된 6.8 버전에서 말이다.

안 좋은 챔피언은 없다. 그저 인식의 차이만 존재할 뿐. 메타는 돌고 도는 법이다. 곧 진행될 각 지역의 섬머 시즌에서 원거리 서포터들 간의 기 싸움이 벌어지길 기대해본다.


* 일러스트 제작 : 남기백 기자 (Juneau@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