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의 태동기부터 활동한 1세대 프로게이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승부사적 기질을 살려 포커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는 임요환, 방송의 재능을 살려 방송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홍진호 그밖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e스포츠 업계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들도 있다. 오늘의 주인공 임성춘 해설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20년 가까이 e스포츠 판에서 활동하며 프로게이머, 해설, 감독, 스트리머 등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경험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TV의 간판 프로그램인 ASL과 LoL 챌린저스 리그 중계를 맡고 있다. 빡빡한 중계 일정 때문에 임성춘 해설은 그야말로 24시간이 모자란 사람이었다. 최근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임성춘 해설과 만나서 그의 e스포츠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한 방 프로토스'부터 해설자가 되기까지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초창기, 아직 '빌드'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임성춘은 '한 방 프로토스'라는 플레이 스타일을 처음 대회에서 선보이며 유명세를 탔다. 게임의 유불리에 상관없이 잘 모은 한 방 병력으로 시원하게 돌파하는 그의 플레이를 보며 관객들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당시 2게이트 질럿 러쉬가 아니면 프로토스가 저그를 이기기 힘들었다. 초반에 끝내거나 그 뒤에 언제 러쉬 타이밍을 잡느냐가 문제였는데, 나는 대부대 컨트롤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한 번에 승부를 보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선수들보다 저그를 잘 잡았던 거 같다."

프로토스 팬들의 속이 뻥 뚫리는 명경기를 수없이 많이 선보였지만, 이후 리플레이가 도입되면서 그는 연습량을 줄이게 된다. 자신의 노하우가 리플레이로 여기저기 퍼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유저들에게 너무나 편리한 시스템인 리플레이가 그 당시 몇몇 선수들에게는 게임의 흥미를 잃게 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다.

그렇게 점점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그는 새로운 진로를 찾았다. 선수 시절,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유명세 덕분에 MBC게임으로부터 해설 제의를 받게 된다.

"빌드를 만들고 실전에서 사용하면 상대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전략을 연구하는 재미로 게임을 했다. 저그 상대로 본진 플레이를 하면서 커세어-다크템플러 빌드를 많이 써서 이긴 적도 있다. 그런데 리플레이가 나온 뒤부터 연습량이 줄었다. 괜히 내 플레이가 리플레이로 남겨지는 게 싫었다. 리플레이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하면서 연습량이 줄었던 거 같다."

"연습량이 줄면서 당연히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그러다가 MBC게임 측에서 해설 제의가 들어왔다. 원래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고, 그 당시에는 더 말이 없었다. 해설을 하고 싶다고 평소에 어필한 것도 아닌데, 해설 제의가 들어와서 놀랐다. 아마도 남들보다 조금 더 유명했기 때문에 제의가 들어온 것 같다. 선수와 해설을 병행할까 고민했지만, 하락세에 굳이 병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해설자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

"나는 말을 하는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막상 방송을 하다 보니 재미를 붙여서 그런지 말을 많이 하게 되더라."





확실히 직접 만나본 임성춘 해설은 의외로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방송에서 그렇게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임성춘 해설을 보면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임성춘은 보통의 해설자와 달리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해설자다. 눈치를 보거나 돌려 말하기 보단 하고 싶은 말은 속 시원하게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설의 내용이 가볍거나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굳이 따지면 '사파' 해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작정하고 한 건 아니지만, 재미를 위해 비유 같은 것을 많이 사용했는데, 그게 조금 튀었던 거 같다. 최근 e스포츠 방송을 보면 중계진이 재밌게 하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초창기에는 그런 것이 거의 없었다. 재밌게 하기보단 진지하게 중계하는 분들이 많았다. 물론, 내가 맡은 중계가 서바이버 등 2부 리그라서 조금 더 편하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박상현 캐스터가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서 분위기를 잘 띄웠다. 나도 박상현 캐스터와 함께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재밌게 하려고 노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재미보다는 중계가 우선이다."




힘들고 아쉬웠던 감독 생활

그렇게 스타크래프트 해설자로 자리를 잡은 것도 잠시. MBC게임이 폐국되면서 임성춘은 타의에 의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 그의 세 번째 직업은 아주부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임단 감독이었다. 원래 감독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해설과 마찬가지로 '일단 시작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감독직 제의를 수락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프로게임단 감독으로서 혼자 10명의 선수를 지도하고 관리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프리랜서 해설자로 일한 탓에 숙소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었다.

"MBC게임 방송국이 폐국된 뒤 일이 없어서 LoL만 하던 시절, 강현종 감독으로부터 아주부 스타크래프트2 팀 감독 제의를 받았다. 원래 감독이 되고 싶은 꿈은 없었지만, 일단 해보자는 생각에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감독의 역할이 쉽지 않더라. 관리직을 해본 적도 없고, 프리랜서 해설자로 오랫동안 일한 탓에 숙소 생활이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사고가 나면 안 되고 성적까지 신경 써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해설 복귀, 달라진 LoL 챌린저스 리그의 위상

2014년 2월 아주부 스타크래프트2 팀은 해체 수순을 밟았고, 임성춘은 ASL의 전신인 '대국민 스타리그'를 거쳐 결국 ASL 해설로 복귀하게 됐다.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재치 넘치는 입담과 날카로운 분석은 여전했다. e스포츠 태동기부터 활동한 프로게이머가 많은 과정을 거쳐 해설자로 다시 복귀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스타크래프트를 사랑해주셔서 내가 해왔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굉장히 기쁘다. 과거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폐지되면서 은퇴를 하거나 방황하는 선수도 많았는데, 아프리카TV가 다시 리그를 열었고 개인 방송을 통해 수입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선수, 시청자, 중계진 모두에게 큰 혜택이 된 것 같다."

LoL의 성공 가능성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LoL 중계를 준비한 임성춘 해설은 작년 2018 LoL 챌린저스 리그 중계진으로 합류하게 됐다. 임성춘 해설이 LoL 챌린저스 중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잘 모르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양질의 중계를 위해 24시간이 모자를 만큼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즐기면서 LCK를 본다면, 나는 공부를 하듯이 보는 편이다. 5일 치 LCK 경기를 모두 본 뒤 내가 중계하지 않는 챌린저스 경기도 챙겨본다. 물론, 해외 지역의 중요한 경기도 찾아본다. 게다가 현재 ASL 중계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선수 개인 방송과 KSL 경기도 챙겨 본다. 예전에 ASL만 중계할 땐 한가했는데, ASL과 챌린저스 중계를 병행하게 되면서 많이 바빠졌다. 해설자로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정보가 되기 때문에 놓쳐선 안 된다."

작년 그리핀을 시작으로 올해 샌드박스 게이밍이 LCK에서 놀라운 활약을 선보이면서 LoL 챌린저스 리그에 대한 대중의 주목도가 높아졌다. 현재 많은 LoL 팬들이 그리핀과 샌드박스 게이밍 같은 팀이 다음 시즌에 또다시 등장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고 있다. LoL 챌린저스 리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임성춘 해설에게 제2의 그리핀의 등장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아직 리그 초반이지만, 지난 시즌에 비해 많이 얌전해진 것 같다. 작년에는 정말 패기 싸움을 하듯 서로 치열하게 싸웠는데, 이번 시즌에는 선수들이 너무 사리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사실 챌린저스에서 승격을 한 지 얼마 안 된 팀들이 LCK에서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그리핀의 등장도 놀라운데, 샌드박스 게이밍까지 나온 것을 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데, 그런 팀들이 또 나오는 건 굉장히 어렵지 않을까 싶다."




지금처럼 오랫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눈 사이 어느덧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 다가왔다.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임성춘 해설에게 마지막으로 꿈에 대해 물었다. 임성춘 해설은 잠시 고민에 잠기더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박한 꿈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원래 꿈을 잘 안 꾸는 타입이다. 거창한 꿈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가장 크다. 솔직히 일을 안 해도 스트레스를 받고, 일을 많이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도 일을 안 할 때의 스트레스가 더 크더라. 지금은 일 생각만 하고 일 준비만 하는데 시간이 다 흘러가서 지루하진 않은 것 같다. 일이 없을 땐 집에만 있는 편인데, 지금은 일이 많아서 외출도 많이 한다. 덕분에 정신 건강도 좋아진 것 같다. 아무튼,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최대한 오래 하는 것이 목표이자 꿈이다."

남다른 매력으로 20년 동안 e스포츠 판에 몸담은 임성춘 해설은 끝으로 "ASL과 LoL 챌린저스 리그를 중계하면서 채팅창을 많이 보는데,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많은 힘이 된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감사하겠다"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