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RvR을 배제한 PvP적 관점에서만 논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1. 간단한 주사위와 확률 이야기

 

 

 

1,2,3,4,5,6 의 여섯가지 눈금이 새겨진 주사위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이 주사위를 던졌을때, 각각의 숫자가 나올 확률은 어떻게 될까요?

분수로 1/6 또는 16.67 % 라는건 누구라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주사위를 여섯차례 던졌을때의 분포는 어떻게 될까요?

이론적으로는 각각의 수가 한 번씩 나올거라 기대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학적 확률과 실제로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확률에는 분명히 괴리가 있지요.

 

 

그러나, 만약, 주사위를 여섯번이 아닌 훨씬 더 많은 횟수, 이를테면 600 회 쯤 던진다면?

처음의 여섯차례 시도 보다는 수학적 확률에 훨씬 근접한 분포를 보여주게 됩니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시행횟수가 많아질수록, 수학적 확률과 근접한 결과를 얻게 되지요.

 

 

 

 

2. 아이온에서의 PvP

 

 

 

이제 얼토당토 않은 비전공자의 확률론은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궁성 유저 공손억님과 마도성 유저 doihachiro님이 필드에서 마주쳤다고 가정해봅시다.

은신 상태였던 공손억님이 침묵화살을 시작으로 한쿨을 넣고 있다고 가정해보지요.

 

 

이 PvP의 승패는 침묵화살과 이어지는 기절 효과의 적중 여부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두 직업뿐만이 아니라, 아이온에서의 모든 전투는 상태이상기가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나의 상태이상기는 상대에게 적중시켜야 하고, 상대의 결정적인 스킬은 저항해야 하는거죠.

 

 

상태이상기나 결정적인 스킬 콤보를 상대에게 적중시키면, 절대적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면 장비나 컨트롤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거나 칼 반응 상치정도가 되겠죠.

결국 칼 상치도 결정적인 스킬 콤보를 무너트린 경우에 해당되니 조금 다른 얘기가 되고..

 

 

상황이 이러니, 거의 대부분의 일반 유저들은 상태이상기에 의존하는 PvP 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각 캐릭터의 생명력에 비해, 스킬 데미지가 매우 강력하다보니, 일방적으로 몇 초 쯤 때리고 나면,

사실상 승기를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선택지는 도주 또는 사망이 되죠.

 

 

 

 

3. 홀짝게임과 PvP

 

 

 

이쯤되면 아이온에서의 PvP가 홀짝게임과 다를게 무엇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5% 확률의 침묵 신석이 터지면, 내 상태이상기가 상대의 저항을 뚫으면, 거의 결론이 나지요.

본질적으로 컨트롤 역량에 의해 좌우되기 보다는 양측의 스펙 싸움과 확률 게임이 됩니다.

 

 

상대의 마법 저항이 3000 이라도, 1% 확률을 뚫고 마침 내 상태이상기가 들어가면 이길 수 있죠.

만약 검성이 창의 넉백을 통해 두번, 세번, 계속해서 상대를 넘어트리고 있다면? 네, 이깁니다.

이처럼 아이온에서의 PvP는 결정적인 스킬 1~2개의 명중 또는 적중 여부로 승부가 결정되는데,

 

 

확률적 요소 자체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시행의 횟수가 끔찍하게 적은 환경이라는게 문제입니다.

이제 처음 도입부에서 주사위와 확률 이야기를 한 이유를 얘기해드릴 시간이 된 것 같은데요..

주사위를 한 번 던지는 단판 승부에서 눈금 1 이 나오면 이기고, 나머지 경우에는 진다면 어떨까요?

 

 

여섯번에 한 번은 이기겠구나? 아닙니다. 실제로 체감하는 확률은 예측불허의 뒤죽박죽이 되지요.

이런 끔찍한 환경에서는 이상적인 밸런스를 위한 적중률과 저항률을 찾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상황에서 피드백을 통해 적절한 밸런싱을 유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all or nothing 의 환경에서 PvP 밸런스를 설계하려면, 쌍방이 충분히 오래 싸워야합니다.

중요한 스킬들이 한두번쯤 명중하거나 회피/저항하는 것이 결과를 좌우하지 않는 환경 말이죠.

그러나 나날이 강력해지는 스킬 레벨과 장비에 비해서 물리방어 값은 너무나 무기력한게 현실입니다.

 

 

또, 마법 스킬에 대한 방어 스탯인 속성 방어값도 유의미한 수준의 스탯 변화를 보이지는 않다보니,

결국 레벨이 올라가면 생명력은 찔끔 오르고, 스킬 데미지는 더 강력해져서 전투는 더 빨리 끝나네요?

조금 있는 스킬 운용적인 측면과 약간의 무빙을 제외하면 결국 홀짝게임 단판승부가 되는거지요.

 

 

 

 

4. 실마리

 

 

 

사실 해결책은 이미 위에서 언급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간에 쌍방의 전투 시간을 늘리면 됩니다.

그게 생명력을 지금의 두배로 늘리는 것이든 PC 데미지 감소폭을 늘리는 것이든 마석의 상향이든간에,

전투 시간을 지금보다 늘려주면 스킬 하나에 명암이 갈리는 허무한 홀짝게임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만약 틀을 바꾸지 못한다면, 적중 자체의 확률 싸움이 아닌 적중 강도(intensity)의 싸움이라도 되야죠.

강도의 확률 싸움이라는 것은 가령 이런 것 인데요. 명중 - 회피 및 적중 - 저항 관계에 있어서,

 

 

 

  저항 (회피)        /        무승부 (상쇄)        /        적중 (명중)      

 

        -                         지속시간 50%                지속시간 100%

                                          or

        -                       스킬 데미지 50%            스킬 데미지 100%

 

 

 

지금처럼 지나치게 운에 의해 PvP가 좌우되지 않기 위한 충분한 시행 횟수를 보장하기 어렵다면,

경우의 수라도 늘려줘야 이 웃기지도 않은 홀짝게임이 아닌 '컨트롤' 에 의한 PvP 에 더 가까워지겠죠?

확률적인 요소 자체가 싫다는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 확률이 거의 결정 지어버리는건 문제가 있어요.

 

 

100 번 양보해서 스킬을 손가락으로 순서대로 누르는게 대단한 컨트롤이라고 생각해보아도,

1% 신석 터지면 이기고, 5% 침묵에 스턴이 같이 들어가면 이기죠. 이게 재미를 위한 신석일까요?

적중 또는 저항하기 위한 스펙을 갖추거나, 공격력에 투자하는 것도 결국 가위바위보 수준입니다.

(=명중 또는 회피&방어)

 

 

현란한 그래픽으로 무장한 가위바위보와 홀짝게임의 짬뽕을 추구하는게 아니라면,

이제 바뀔때가 된 것 같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