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시 돌아 왔습니다. -_-^ ㅋㅋㅋ

대항해시대에서 동남아 지역이 열린다고 했을때, 이미 유저들의 도마위에 올랐던 도시, 페구(Pegu)!
인도의 항구를 대안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환상의 보석 4종(루비,별갑,비취,진주)세트의 등장은 모든 유저가 탐을 내는 동남아 제1순위 도시입니다. 그럼, 옛기억을 더듬어서... ㅋ



[ 미얀마 문장 ]


지금은 군사-독재정부에 의해 '미얀마(Myanmar)'로 국명을 바꿔 부르고 있으나 현재 페구가 위치해 있는 국가는 원래 '버마(Burma)'라고 불렀답니다. 버마는 매우 다양한 민족이 모여서 만든 국가인데, 중심이 되는 버마(Burmese)족이 몬(Mon)족, 샨(Shan)족, 까친(Kachin)족, 까야(Kayah)족, 꺼인(Kayin)족, 친(Chin)족, 여카인(Rakhine)족과 함께 만든 나라입니다. 페구는 현재 이름을 바꿔 바고(Bago, 이하 바고)라고 부르고 있으며, 바고는 몬족의 중심도시랍니다.


한국에서는 미얀마로 가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태국 방콕을 경유하여 갑니다. 또한 비자가 필요한 국가여서 방콕에 있는 미얀마 대사관에서 미리 비자를 받아 미얀마의 수도인 양곤으로 비행기를 이용하여 입국합니다. 미얀마의 군사정권은 공식적으로 국경을 모두 막아 외국인의 육로 출입을 원칙적으로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는 방콕-양곤 구간중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있던 비만-방글라데시 항공사를 이용하여 양곤으로 입국하였습니다. -_-; 비행기 뜨기전에 방송이 나오면서 모두들 기도합니다. 알라~! 알라~! 알라~! -_-+ 그렇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국가 였고, 국적기인 비만-방글라데시 항공은 알라를 찬양하며, 푸른 날개를 벌리고 이륙했습니다. 이륙하자 마자 음식이 나왔는데, 승무원들이 빨리 먹으라고 재촉합니다. -_-; 방콕-양곤의 비행시간은 1시간이 조금 더 되기 때문이죠. 목이 막혀 음료를 달라고 했더니, 쥬스 or 사이다 or 물 이랍니다. -_-+ 메뉴에는 당연 돼지고기 없습니다. 술도 없습니다. 뜨거운 음료도 없습니다. 커피도 없는 항공사는 또 처음이네요. ㅎㅎㅎ 양곤 국제공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을 듣고 창문밖을 보니 암흑천지입니다. 전력난이 심각하다는 것을 한눈에 봐도 알겠더군요. 공항에 도착한 모든 외국인들은 무조건 200달러씩을 강제환전 합니다. 미얀마 독재정부는 FEC라는 말도 안되는 국가수표를 발행하여 모든 외국인들은 무조건 200 미국달러를 FEC로 바꾸게 하였죠. 그리고 FEC는 달러같이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었고, 또는 현지 화폐인 "짯"으로 재환전하게 하였습니다. 혹시나 남는 FEC는 외국에 가면 휴지조각이죠. 정부는 공항을 출입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강제환전하게 하여 환금성을 높여 외화벌이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것도 5불정도를 슬쩍 주머니에 넣어주면 그냥 통과시켜 주었기에 많은 배낭족들은 3-5불 정도를 뒷돈으로 주고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였습니다. 저는 뇌물을 주느니 200불을 다 바꾼다는 생각으로 200불을 모두 FEC로 바꿔 1달을 여행하고 돈이 남는 사태를 맞이하였죠. ㅋ 결국 마지막날 현지인과 미국달러로 재환전을... 벌써 몇년이 지나지만 미얀마 물가가 그만큼 쌉니다. ^^*


양곤에서 3일을 보내고, 미얀마 남부의 불교성지 '짜익띠요 파고다'를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탔는데, 바고에 도착을 한 버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1일을 생각지도 않게 머물게 되었습니다. 미얀마의 열악한 교통사정과 도로사정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는데, '롱지'라는 기다란 천으로 된 치마를 입은 남자들이 버스에 주렁 주렁 매달려 그 상태로 고속도로를 질주 합니다. 정말 위험천만에 고속도로라야 대한민국 국도보다 못한 도로들이고, 먼지는 또 얼마나 많이 날리는지 창문을 열고 내달리는 버스는 정말 아수라장입니다. 2시간도 못되서 바고에 도착하고 보니 오전중이라서 밥을 먹고 가까운 파고다를 가기로 했습니다. 도시에서는 마차를 타고 갑니다. -_-; 말은 아니고, 당나귀 정도 되는 작은 말에 마차를 달아서 가는데, 딸랑딸랑 종을 울리면서 갑니다. 옆으로는 차도 지나다니고, 오토바이도 지나다니죠.



[ 쉐달랴웅 와불, 바고 ]




전설에 의하면 바고는 573년 몬족의 두 공주에 의해 세워진 도시라고 하는데, 아랍의 지리학자에 의해 850년 경에야 역사에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몬족의 수도가 타톤(Thaton)이라는 지역으로 옮겨 졌고, 바고는 1056년까지 버마족에게 점령당하죠. 1287년에는 몽고가 버마에 침입 국토를 유린하면서 바고를 함락하였고, 버마족에게 흡수되어 살던 몬족은 몽고의 침입에 힘입어 다시 독립하게 됩니다. 몬 왕조는 13세기에 바고를 중심으로 황금기를 누리면서 대단히 성장하였고, 1539년에는 몬 왕조의 따웅구 왕에 의해 수도로 지정되었습니다. 16세기 몬 왕조는 대단한 기세로 이웃의 시암(태국)왕국을 여러차례 공격하여 영토르 넓혔으며, 바고는 미얀마 최대의 무역항구로 성장하여 많은 유럽인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1634년 강력한 이웃이던 버마족은 수도를 아바(Ava)로 옮겨 다시 몬족을 압박하였고, 1740년 몬족은 반란을 꾀하여 버마족으로 부터 완벽한 독립을 선언하려 하였으나, 1757년 버마족은 바고를 약탈하여 완전히 파괴시켜 버리고 몬족을 정벌합니다. 그후 바고는 재건 되었으나, 자주 강물이 범람하면서 도시 자체를 바다로 부터 차츰 분리시키게 되었고, 항구로서의 기능을 잃어 가면서 현재는 약간 내륙쪽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교통의 요지로 중요한 도시이지만, 대항해시대 미얀마 최대의 항구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죠.

바고에는 유난히 많은 인도계 미얀마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는 중국과 인도의 문화가 교차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음식에서 유난히 그 점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었는데, 음식이 매우 기름지고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점이 특이하더군요. 또한 버마족과 확실하게 구분되는 인도인의 외관은 언뜻 보기에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이땅에서 태어나 자란 미얀마인이라는 점이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싱가포르에서도 볼 수 있죠. ^^* 미얀마는 불교를 국교로 가지고 있는 국가로 국토 전체가 파고다로 뒤덮혀 있답니다. 어느 도시를 가도 파고다는 있고, 파고다를 중심으로 국민들이 단합하고, 깊은 신앙심으로 단결하고 있죠. 생활물품이 많이 부족한 미얀마는 왠만해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행을 했을때는 머리가 길었기 때문에 가끔 샴푸 사용후 린스를 해줘야 했었는데, 마침 바고 여행중에 똑 떨어져 백화점에 갔었습니다. 말이 백화점이지 우리나라 마트보다 적은 물품들과 시설이 열악한 건물에서 모든 상품을 유리관에 진열한 곳이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샴푸만 있고, 린스나 트리트먼트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자세히 좀 보자고 했더니 자물쇠를 열고 유리관 안에 있는 샴푸를 곱게(?) 건네주더군요. -_-; 결국 바고를 다 뒤져도 못산 린스는 나중에 양곤에 와서도 결국 못 구했습니다. 린스는 안쓰나 봐요 -_-; 트리트먼트나 린스 종류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결국 미얀마에는 린스가 엄따!! -_-+ 수도인 양곤에는 대단히 큰 금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대항해시대에는 금이 나오지 않는군요. 보석은 원래 미얀마가 예전부터 매우 유명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미얀마 루비는 대단히 유명하고, 진주 역시 알아 준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 미얀마 제1의 수출품목은 '쌀'입니다. 따뜻한 날씨로 인해 3-4모작이 가능하고, 단순한 노동집약적 산업인 쌀농사가 매우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냥 씨앗만 뿌리고 거두면 될 정도로 풍부한 강수량과 강렬한 태양은 이런 쌀농사가 가능하게 하는 조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길가에서 바위를 맨손으로 나르던 현지인들이 생각납니다. 인터넷을 차단하여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있던 미얀마 정부는 얼마전 수도를 내륙으로 이전하였고, 계속되는 독재정권은 언론을 탄압하여 쑈를 하고 있습니다. 바고에서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미얀마어를 공부하는 부산외대 미얀마어과 학생들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미얀마가 태국보다 잘 사는 그날까지~!!!"

군부 독재로 유지되는 미얀마는 곳곳이 출입금지 구역이고, 여행시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1983년 아웅 산 폭파사건으로 당시 대한민국은 부총리와 장관등 17명이 순국하였고, 14명이 부상당하는등 피해를 입었는데, 이후 미얀마 정부는 북한과의 외교를 단절하였고, 뒤이어 일어난 1987년의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으로 인해 남한에서는 국민들의 반공의식 성장과 함께 '깡패 국가와는 더 이상 협상할 수 없다' 는 대북 강경노선을 취하게 됩니다. 작게나마 이 자리를 빌어 아웅 산 폭파사건과 KAL기 폭파사건의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너무 오랫만에 와서 그런지 너무 많이 썻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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