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가 끝나고, 16세기가 열리던 때..서양사에 있어서

꼭 한 줄 이상은 차지하는 사긴이 발생한다.

 

 

바로, 포르투갈의 항해자인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것이다.

 

 

 

바스코 다 가마는 배의 화물창에 유럽인들이 가장 원하던 후추는 물론이요, 온갖 진귀한 동방의 향료들, 거기에

동방의 잡다한 보물들을 싣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 대가는 상당했는데.. 함대의 선원 대부분이 괴혈병과 같이 병에 걸려 리스본에서 출항했을 당시에는

200명에 달한 선원들이 절반 이상으로 확 줄어들어서 귀환한 것이였으며, 일부 배는 선원들이 너무 많이 죽고,

이런 저런 항해에서의 피해등으로 인해 운용할 수가 없어 버려두고 왔어야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바야흐로 포르투갈의 시대가 열린 것은 지당했다.

 

 

포르투갈의 왕은 즉시 대대적인 함대까지 꾸리고, 인도로 보내게 되며, 그 결과로 인도 서부의 항구인 '고아'를 점령한다.

또한, 바스코 다 가마가 갔을 당시 적대적이던 이슬람인들의 연합함대를 꾸려 반격에 나섰을 때도, 이를 완전히 격퇴했으며

이후 인도에서 후추나 정향등 향료에 관한 포괄적인 무역 협정을 체결하였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향료를 독점하고자 한 욕구는 아직도 왕성했다.

 

 

 

그들은 동방의 향료들의 보고라 불리우는 '동남아'로 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였다.

 

포르투갈은 인도의 '고아'처럼, 동남아 지역에도 유용한 항구를 손에 넣기 갈망했고, 그들은 '말라카'라 불리는 동남아의

항구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

 

 

또한, 여기서 멈추지 않고 포르투갈인들은 동남아 곳곳에 향료들이 나오는 섬이나 지역에 '요새'를 쌓기까지 하는데,

이건 엄연한 '정복행위'였다. 그로 인해 동남아의 원주민들이나 동남아 지역에 산재해있던 왕국들은 포르투갈에 상당한

적개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포르투갈인들도 그저 편함 마음으로 인도-동남아 등지에서 영향력을 확대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마젤란이 세계일주' 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비록 제독인 마젤란은 죽고, 함대또한 초토화되다시피 했지만, '서쪽으로만 항해해서 다시금 유럽으로 귀환'했다는 것은

최초의 세계일주도 세계일주이지만, '지구 구형설'을 입증하는 역할도 하게 됐다.

 

 

포르투갈은 스페인이 이렇게, '조약'을 위반했다면서 엄청난 항의를 해오는데.....

 

 

 

 

 

 

 

 

 

 

 

그것이 바로 '토르데시야스 조약'이였다.

 

 

 

 

 

다음편에 (다음편은 네덜-영국을 하나로 묶음, 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