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혼란스러운 파벤이군요. 이 틈을 타 나름의 고찰을 끄적여봅니다.
제목에도 써놨지만 6.0 스토리 다 본 유저만 보시는 걸 권합니다.
또한 글이 다소 두서 없을 수 있습니다.(하다못해 교양 레포트라도 절대 이렇게 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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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엘피스 에픽 전까지는 그저 그랬는데, 엘피스 에픽 하면서부터 이 글을 쓸 생각했습니다.
일단 듀나미스와 엔틸레케이아 설정을 보면서 설마 그건가 했는데, 맞더군요.
 이 둘의 유래가 아리스토텔레스 우주관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듀나미스는 아직 실체화되지 않았지만 그럴 잠재력이 있는 상태, 즉 가능성의 상태라 보면 되고요, 엔텔레케이아는 가능성의 상태에 있던 것이 현상계에 실체화된 것을 말합니다. 스쿠에니는 엘피스 에픽에서 듀나미스를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리고 엔텔레케이아는 바로 이 듀나미스를 가지고 능력을 발휘하는 존재로 풀어냅니다. 이걸 보고 스토리 작가가 배운 변태인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아모로트 때도 그랬지만 고대인 컨셉 자체가 고대 그리스인에게서 가져온 건데,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습니다.

 이제 인물 고찰인데, 여기서 미리 밝힐게요. 6.0의 주제는 "너 왜 사니?" 입니다. 6.0 주요인물들은 이 질문의 답을 끝내 못 찾았거나 아니면 확실히 찾은 이들입니다. 이 점에 주목해주세요.
 
 먼저 고머인들과 메티온에 대한 고찰입니다. 기본적으로 에테리스의 고머인들은 죽음에 대해 별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에테르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할 뿐이죠. 이는 자신들이 창조한 피조물은 물론, 자신들이 퇴임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현생 인류처럼 수명이 짧게 정해진 것도 아닌지라 오래 살다가 모든 임무를 끝낸 뒤 자기가 에테르로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가면 됩니다. 
 
 여기에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것이 바로 헤르메스입니다. 헤르메스는 엘피스 소장으로서 피조물들이 살처분될 때 그들의 고통과 슬픔, 분노를 직면합니다. 거기에 헤르메스 본인도 굉장히 아파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헤르메스는 듀나미스를 연구하기 때문에 감정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그러니 타인 뿐만 아니라 피조물들의 감정에도 굉장히 예민합니다. 때문에 헤르메스는 고대인들의 죽음 뿐만 아니라 수없이 죽어가는 피조물들의 죽음에 굉장히 슬퍼합니다. 그리고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고대인들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현실에 고통스러워하죠. 그리하여 헤르메스는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나 왜 살지? 너 왜 사니?" 라는 고민이죠.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헤르메스는 저 너머 다른 별의 지성체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알고 싶어졌고, 그래서 메티온 자매들을 만들어 우주로 보냅니다. 
 
 그러나 헤르메스의 생각은 순진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말 나이브(naive)하죠. 하데스가 지적했듯이 만약 우주에 에테리스 말고 다른 행성에서 만난 그 어떤 지성체도 살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사실 이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섬뜩하고 슬픈 사실이긴 합니다) 결국 헤르메스의 잘못된 전제는 안 그래도 감정 스펀지인 메티온이 공허감과 절망에 흠뻑 젖게 만듭니다. 이로 인해 결국 메티온은 엔드싱어가 됩니다. 헤르메스의 웃긴 점은 이 다음인데, 이쯤 됐으면 메티온을 말로라도 구슬려서 상태 악화를 막을 생각을 할 법도 하건만 오히려 인간을 피조물과 동일한 선상에 놓고 그들의 삶을 시험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생과 사에 대해 고민한 결과가 이런 행위였다는 것은, 사실 헤르메스가 이 문제와 그로 인한 감정에 함몰된 나머지 진정으로 깊은 고찰을 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떤 면에선 수동적 니힐리즘과 비슷해보일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메티온은요? 이 친구는 엔텔레케이아로 만들어졌습니다. 즉, '감정 스펀지'입니다. 타인의 감정에 매우 예민하고 쉽게 동화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힘으로 삼아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런 메티온이 잘못된 전제를 코딩받은 상태로 우주 저편에 가서 온갖 참상을 다 만납니다. 거기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말만 무수히 듣죠. 어두운 감정을 무수히 빨아들입니다. 이러니 엔드싱어로 흑화하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주의 깊게 볼 것은 여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메티온 나름대로 저항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겁니다. 감정 스펀지이지만 무작정 감정을 담고 그걸 바로바로 쓰는 게 아니란 뜻이죠. 이 점은 인상 깊더군요.

 제가 여기서 가장 유심히 본 것은 다름 아닌 '베네스' 입니다. 베네스는 헤르메스의 안티테제이자 동시에 기존 고머인들의 안티테제입니다. 베네스는 고머인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학자이자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많은 경험을 한 모험가입니다. 이런 베네스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가능성을 확인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베네스 역시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겪었습니다만, 베네스는 이것을 부정하지 않고 직면해야만 진보와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베네스는 우선 헤르메스의 안티테제입니다. 헤르메스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못하고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고통과 감정에 함몰되었다면, 베네스는 왜 삶이 소중한지 그리고 죽음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또한 기존의 고머인들(조디아크 소환을 주도한 14인 위원회 포함)과도 정반대에 위치합니다. 고머인들은 자신의 세상이 완벽하다고 여기며, 따라서 재앙이 왔을 때 과거를 복원하는 데 매달립니다. 그러나 다른 별의 멸망과 종말의 진상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베네스는 이런 것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보다는 인간과 세계의 불완전함과 필멸성을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해야 진보와 성장이 이뤄진다고 말하죠. 이는 하이델린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인상깊었던 점은 베네스와 빛구를 오버랩하는 장면이었습니다. 5.0 때 하데스와 맞서는 빛구와 피칠갑인데도 두 눈을 푸르게 빛내며 걸어가는 베네스를 오버랩하더군요. 베네스의 가르침이 빛구에게 잘 전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헤르메스와 엔드싱어가 수동적이고 피상적인 니힐리즘에 빠졌다면, 베네스는 오히려 실존주의 비슷하게 나갔다고 할까요.

 아, 하데스와 휴토로다에우스요? 이 친구들도 분명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만, 여기선 말을 아낄게요. 이 친구들을 제가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너무 좋아해요. 하지만 심도 깊은 고찰까지 가기엔 좀 그렇더군요.

 다음으로 아몬에 대한 고찰입니다. 아몬은 알라그 말기 퇴폐적으로 변하는 조국에 탄식하여 강력한 황제 쟌데를 예토전생합니다. 그러나 그 쟌데마저도 죽음을 이미 겪은 지라 죽음과 '무'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몬은 이걸 그대로 다 봅니다. 그리고 알라그의 멸망을 겪으면서 이 세상이 덧없는 생각으로 빠집니다. 그리하여 큰 사고를 치고, 자신은 별바다로 갑니다. 그러나 별바다로 가서도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닿지 못합니다. 결국 그 상태로 아사히와 함께 별바다의 나락으로 추락합니다. 제가 보기에 아몬이 진정 원했던 것은 종말이 아니라 삶입니다. 자신이 인정받으면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했던 것이죠. 아몬은 이것을 모른 채로 결국 침몰합니다. 특히 엔드싱어와 비교하면 이 점을 알 수 있는데, 엔드싱어는 이미 고통스럽게 죽어간 자들의 저주 덩어리입니다. 즉 엔드싱어의 극단적인 니힐리즘은 아몬의 사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다음은 제노스에 대한 고찰입니다. 이놈은 한 마디로 그냥 극단적인 '탑신병자'입니다. 궁정에서 온갖 중상모략과 권모술수를 접하며 살아온 제노스는 이 세상이 그저 진흙탕 같다고 말합니다. 제노스는 타인의 마음에 전혀 관심 없습니다. 그러니 타인과의 관계도 전혀 관심 없습니다. 이런 제노스에게 "너 왜 사니?" 라고 물어보면 답은 한 가지, '극한의 전투를 통해 자신의 생명을 연소하는 데서 얻는 쾌감'입니다. 이를 얻기 위해서라면 타인이 어떻게 되든 전혀 신경 안 씁니다. 이는 6.0 끝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겁니다. "제노스가 텅 빈 공간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거 아냐?" 그러나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불가능합니다. 첫째, 제노스는 에테리스의 다른 그 어떤 것에도 애착이 없습니다. 애초에 제노스가 관심을 가질 정도의 강자는 빛구 정도인데, 그마저도 자신의 모든 걸 태웠지만 결국 졌습니다. 돌아갈 이유도, 힘도 없습니다. 둘째, 제노스는 듀나미스를 다룰 가능성이 없습니다. 단순히 다룰 수 없다는 게 아니라, 타인의 마음에 관심 없는 제노스가 앞으로도 듀나미스를 다뤄 그 공간에서 나올 가능성이 없단 뜻입니다. 이는 사이코패스에게 감정을 묻는 것과 비슷합니다.

 빛구와 새벽 인물들은 패스할게요. 이미 작중에서 많이 보여줬거든요. 인물 고찰은 여기까지 하고, 그 다음은 6.0의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울티마 툴레에서 이전에 멸망한 존재들의 여러 케이스가 나오죠. 기계 문명에 패배한 뒤 생존할 힘을 잃어버린 용족, 진리를 극한까지 추구하며 자신의 육체를 버렸으나 되려 그것 때문에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이아족, 자신의 전신을 기계로 대체하고 끊임없이 다른 별을 침략하며 강화했으나 그 끝에 이르자 더 이상 나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오미크론, 질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한 사람들, 전쟁으로 인해 공멸해버린 사람들, 그리고 완전한 공동체(마치 칼라로 이어지듯)를 이루고 불사를 얻었으나 그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어 라라를 소환한 사람들. 이들의 공동점은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지 못하고 외면했으며, '나아가기'를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아족, 오미크론, 라라를 소환한 사람들(17번째 종말)을 주의깊게 봤는데,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 완벽에 도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삶을 포기해버렸습니다. 
 우리는 왜 살까요? 6.0의 핵심이기도 한 이 주제의 답도 베네스가 제시합니다. 새로운 곳에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가기 위해서요. 그라하 티아가 오미크론에게 그런 말을 하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고. 맞습니다.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굴러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매일 새로운 것을 마주할 가능성이 펼쳐진 것이죠. 베네스는 바로 이 점을 역설합니다. 

 6.0의 공식 오프닝 곡은 Endwalker-Footfalls입니다만, 제가 보기에 6.0의 진정한 메인 스트림은 Flow입니다. 베네스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자 Endwalker 전체를 꿰뚫는 메시지가 바로 Flow에 담겨있습니다. Flow 즉 '흐름'은 우리가 체념하고 낙담하고 있을 게 아니라 앞을 보며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함을, 그래야 삶에 이유가 생긴다는 것을 전해줍니다. 다만, 저는 여기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네요. 바로 ARR 때 나온 Answers요. 특히 Answers 마지막 부분은 반드시 다시 볼 것을 권합니다. 다음은 Answers 마지막 부분입니다.

Thy Life is a riddle, to bear rapture and sorrow
To listen, to suffer, to entrust unto tomorrow
In one fleeting moment, from the Land doth life flow
Yet in one fleeting moment, for anew it doth grow
In the same fleeting moment, thou must live, die, and know.

6.0 전에 이 가사 봤을 때랑 6.0 다 보고 이 가사 봤을 때 느낌이 다를 겁니다. 이렇게나 넓고 깊은 뜻이었을 줄이야.

 







결론 한 줄 요약: 6.0의 주제는 "너 왜 사니?" 이고 답은 베네스가 말해줬다.
두 단어 요약: Flow, Answers (Flow는 글섭게에 가사 번역된 거 있으니 한 번 보세요. 아니면 유튜브에 ffxiv Flow/Answers Lyrics 라고 검색하셔도 됩니다.)


+여담
1. 향후 스토리에서 빛구한테 두 가지 능력 보장해줬으면 좋겠다. 하나는 자기가 원하는 때 상대의 기억을 엿보는 능력(베네스한테 배움), 또 하나는 듀나미스를 사용하는 것(빛구 정도면 나중엔 혼자서도 가능할지도?)

2. 저는 예전부터 엔딩 크레딧 끝까지 다 봤는데, 이번 건 ARR부터 컷신 다 보여주더군요. 마지막에는 Flow Primals(?) 버전 나오고요. 진짜 파판16에 올인할 생각인가 생각 들 정도로 공 많이 들였구나 싶었어요. 특히 마지막은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아니 마지막에 Warrior of Light 뭔데, 요시다!

3. 저는 Answers, Flow 빼면 Neath the Darkness(아모로트 bgm)이랑 Tomorrow & Tomorrow 좋아합니다. Neath the Darkness는 들을 때마다 소름돋는데, 이번 메인 시나리오에는 편곡 버전이 나오는 것 같더군요. Tomorrow & Tomorrow는 나중에 에오르제아 콘서트나 오케스트라 때 엔딩곡으로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이제는 Flow가 엔딩곡이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