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저는 일본어가 아닌 러시아어 번역에 종사 했었으며 지금은 여러 문제로 업종 변경 중임을 밝힙니다.




번역을 할 때는, 당연하지만 명확한 기준(보통 공식지정 된 외국어 표기법을 기반으로 작품 분위기, 현지화 사정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을 세우고 작업이 진행 됩니다.
물론 한섭의 번역팀도 그러한 기준이 없지는 않겠으나, 문제는 간혹 '기준이 있긴 한걸까? 있다면 뭐가 기준이지?' 라는 생각이 드는 번역오류들이 있었죠.
대표적인 예시 세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로스가르(ロスガル/Hrothgar)
- 슬라브계 언어에서 간혹 볼 수 있는, 단어 가장 앞의 알파빗이 묵음처리 되어야하는 경우입니다.
한섭에서는 이 묵음처리를 고려하지 않고 '흐로스가르'라고 번역 했었죠.
글섭에서는 대체로 '로스갈'이라고 했었기에 조금만 찾아봤어도 없었을 실수인데, 자료조사가 부족했던게 문제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2. 요우진보(用心棒/ようじんぼう)
- 작품내에서 캐릭터의 고유명사로 쓰이는 점을 간과하고, 의미 그대로 직역한 예시입니다.
이 후 사측에서도 문제를 파악했는지 '경호원'에서 '요우진보'로 번역을 고쳤으나, 이 역시 외국어 표기법에 맞지 않는 번역입니다.
用心棒의 정식 번역명은 '요짐보'이며, 번역 과정에서う장음을 살리고 싶었다면 '요우진보'가 아닌 '요우진보우'가 되어야 했을 겁니다.
아마 번역 과정에서 요짐보와 차별 되면서 어감이 어색하지 않도록 현지화 하려다가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사실 어감 때문에 외국어 표기법을 무시하고 번역하는 경우가 희귀한 것도 아니라서...
문제는 일본은 당연하고 글섭에서도 Youjimbo(영문명 Yojimbo)이고, 전작과 후속작에서 등장 할 때도 마찬가지인데다 한국어로도 '요짐보'로 번역 된 사례가 있으며 분명 본인들이 '파판 시리즈의 전통적 요소나 등장한 적 있는 명칭은 그대로 가져오고 그렇지 않은 것만 한국어로 번역한다.'고 했던 발언과도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죠.
요시P 피셜로도 요짐보는 요짐보이고...

3. 무도가(踊り子/Dancer)
- 이 경우는 조금 복잡한 것 같습니다.
일단, 한국에서 무도가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武를 쓰는, 즉 무예를 수련하는 이들을 의미하지 舞를 쓰는 춤추는 이들을 의미하지는 않죠.
한국에서는 보통 무희, 무용수라고 하고 일본에서도 무도가라는 표현은 흔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무도가라는 번역명은 그 자체가 뜬금없이 튀어나온 것이라서 더 의문이었죠.

특히 당시에 논란이 되었던 것은, '무희'라는 번역명이 특정 성별은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무도가로 번역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아직 젠더 관련한 분쟁이 심했던 시기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통 어떤 작품의 고유명사를 번역 하게 되면 최대한 현지사정에 맞춰 번역하거나(이 경우를 따르면 춤꾼이나 무용수), 해당 작품의 전작에서 쓰인 번역을 발췌하거나(이 경우를 따르면 무희 혹은 댄서. 비공식이라도 공식에 준하게 정착한 경우 발췌하는 경우가 많음.), 아예 제 3의 언어를 이용하여 번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를 따랐다면 댄서.)

물론 무도가가 舞蹈家라면 뜬금 없기는 하지만 제 3의 언어인 중국어를 차용한 번역이기는 하나, 댄서라는 더 좋은 대안이 있음에도 왜 무도가로 번역 했을지 좀 의문스럽죠.

그래서 사견으로는, 한섭의 번역팀이 현지화 과정에서 억지로라도 한국어로 번역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위의 요짐보, 지옥 입장/퇴장(...)이나 현자(그냥 세이지로 번역해도 좋았을걸 굳이...), 그리고 현자의 스킬명 등을 보아 유추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최대한 외국어와 외래어의 사용을 줄인 번역을 '완역'이라 하며 가장 대표적 사례가 스타크래프트입니다. (ex. 배틀크루저 > 전투순양함)
특히 논란은 아니나 몇몇 고유명사의 번역의 경우를 보면 한자어도 최대한 피하려는 듯 보이구요. (ex. 고기냠냠이, 원문은 ミートイーター/Meateater)
다만, 완역의 경우 원문을 대체 할 적합한 용어를 찾지 못하면 많이 어색해질 수 있기 때문에(ex. TV > 바보상자) 아예 새로운 용어를 만들거나 완역이 힘들 경우 그냥 그대로 발췌하기도 하는데...
한섭 번역팀은 이런 점에서 미숙했던 것 같네요.

여기에 더불어서, 액토즈 측의 설명이 부실했던 것도 컸던 것 같습니다.
후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를 일본식 표현인 무답가(舞踏家)에서 따온 것이라 했다고 알고 있는데(즉, 踊り子를 완역하고자 한국어에 없는 단어를 만든 것), 차라리 논란 초기에 이런 상황을 말했으면 이 정도로 논란이 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물론, 가능한 완역을 하겠다는 번역 방침과는 결이 안 맞지만요.

솔직히, 젠더 이슈는 해당 논쟁에서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무희로 번역 되었어도 당시의 분위기상 젠더 이슈는 있었을테고요.

진짜 문제는 한섭 번역팀의 역량을 벗어난 완역에 대한 무리한 고집과 파이널 판타지라는 시리즈에 대한 이해도와 자료조사의 부족, 거기에 가끔씩 보이는 줏대 없어 보이는 번역 기준으로 인한 오류 등이지 않나 싶네요.

여담으로, 무도가라고 번역을 한 또다른 이유는 아마 기존에 존재하던 '무희'라는 용어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였지 않나 싶습니다.
네, 울다하에 가면 많이 있는 진짜로 춤추는 그 무희들이요.
전투직이니만큼 겸사겸사 중의적 표현으로써 舞뿐만이 아닌 武의 의미도 담으려 했을거 같은데...

아무튼, 이걸 생각하면 sage를 기존의 현자들을 현인으로 만들면서까지 현자로 완역한 것도 비슷한 결의 문제로 보이며 완역에 대한 광적인 집착조차 느껴집니다.

기공사의 경우도 기를 다스리는 氣功士로 간혹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실제로는 機工士로, '기계공학사'의 줄임말로서 이 또한 헷갈리는걸 방지하려면 글섭 명칭인 머시니스트(Machinist)나 차라리 엔지니어, 공학자 같은걸로 완역 했어도 되긴 했겠으나 파판14에서는 氣功士의 입지를 몽크가 가졌기 때문에 이름이 겹치지 않으니 한자어 그대로 기공사로 완역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이런걸 제대로 설명 해줬어야 욕을 안 먹죠.
때문에 저는 해당 논쟁의 주요 논점이 무도가라는 번역명 자체보다는, 액토즈가 번역을 하면서 보이는 종합적인 역량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무도가가 유난히 주목 받은 사례일 뿐 암흑 도래, 창룡(원문이 Azure Dragoon이라 푸른 용기사여야 함), 버터 생선 튀김 등 워낙 기본적인 번역 능력의 부족과 중구난방인 기준이 보이는 오역이나 이탈자 사례가 많다는 점에 근거한 사견입니다.

다른 것보다 더 걱정인건, 이런 번역 역량으로 인해서 반년에서 1년 정도의 주기로 들여오던 패치에서도 오역과 이탈자가 많았는데 글섭과의 패치 주기가 짧아질수록 어떻게 될지...
그러고보니 번역 검수 때문에 글섭과의 패치 주기를 맞추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던 것을 생각하면, 번역의 퀄리티가 매우 실망스럽고 앞으로가 더더욱 걱정 되네요.






3줄 요약

1. 여러 사례들이 다채롭게 보여주듯이, 한섭 번역팀의 역량(특히 IP에 대한 이해도나 기초적인 번역 능력)이 매우 낮다.
2. 근데 그런 역량으로 완역을 고집하니 온갖 해괴한 번역이 생기고 논란이 된다.
3. 그걸 또 제대로 설명이든 해명이든 사과든 해야하는데 그것도 못하고, 이런 종합적 역량의 부족이 '무도가'를 포함한 번역 관련 논란의 핵심이라고 본다.

결론: 진짜 문제는 '무도가'라는 번역명 그 자체가 아니라 번역을 더럽게 못하면서 이상한 고집만 있고 설명도 못하는 방만한 운영이다.





두서없고 긴 글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갱얼쥐를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