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글, 긴글, 음슴체임
일단 3.3 스토리까지 완료하지 않으신 분들은 스포 가득하니까 뒤로가기 부탁드림

제목은 스포일까봐 애둘러 말했지만 사실 오르슈팡 호불호에 대한 주관적인 소리를 늘어놓고 싶었음

저에게 있어서 오르슈팡이라는 캐릭터는 항상 뜬금없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캐릭터였음. 주인공을 위해 희생하는 캐릭터? 있을 수 있음. 파판 시리즈에는 전통이라 할만큼 '희생' NPC가 많은데, 대표적인 예로는 파판7의 (스포일러)가 있음. 실제로 (스포일러)의 죽음은 (스포일러) 후유증 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충격받아서 자살하겠다던 유저도 많을 정도였고. 물론 이건 파판7이 갓띵작이었던 것도 한몫 함.

아무튼 희생한 캐릭터에게많은 유저들이 그런 캐릭터에게 마음이 가는건 이해할 수 있지만, 오르슈팡이 팬덤 사이에 인기가 많은 점에 대해서 내가 이상한걸까 싶을 정도로 오르슈팡에 대해서는 큰 생각이 없었음. (과거형)

물론 교황청 클리어 후 나오는 영상에서 충격을 받았던건 맞지만... 사실 이게 계기였을지도 모름. 당시 레벨 57이었고 한창 메인퀘스트 밀고 있었을 때 들어가서 '초행입니다!' 한마디 했더니 다들 "끝나고 영상 스킵하지 말고 꼭 보세요 ㅠㅠㅠㅠㅠㅠㅠㅠ 흐엉..." 이딴 소리 해서 짜게 식었던 기억이 있음. 아니... 원래도 스토리 신경 많이 쓰고 스킵 안하고 지냈던 사람임. 근데 굳이 저런 말을 해서 그 뒤에 '큰 무언가'가 있다는걸 내가 알았어야 했을까? 그거만으로 이미 스토리에 대한 흥미가 한 풀 식었었음. 스포일러에 민감한 타입은 아닌데 굳이 내가 듣기 싫은 내용까지 듣고 싶지는 않은 딱 그런 정도임.

그 뒤에도 자주 목격했음. 자유부대 채팅이나 초보자 채팅에서 '오르슈팡 원래 이렇게 변태에요?' 같은 채팅이 나오면 '나중엔 못보실테니 많이 봐두세요' 같은 대답 하는거 수도 없이 많이 봤고, 교황청이 항상 석양인 이유가 '두 번 이상 가는 던전은 모험가의 기억을 되살려서 가는 던전이다' '그래서 교황청에서의 기억이 너무 충격적이라 석양이 강렬했기 때문에 계속 석양인 것이다' 라는 출처도 없는 것을 사실인 냥 퍼트린다던지, 오르슈팡을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런걸 볼때마다 마치 빠가 까를 만든다의 전형적인 예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음.

위에는 부정적인 이야기만 줄줄 써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오르슈팡 까는 아니었음. 오르슈팡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굳이 따지자면 호불호가 없음. 아직까지도 글쎄... 싶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이해가 가기에 쓰는 글.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함.


스토리는 충분히 즐기고 있었고, 원래 콘솔게임도 스토리 위주로 고르는 경향이 있어서 상당히 이입도 많이했고 재밌게 즐겼었음. 친구가 적당히 추천해준 파판이라는 게임을 무료가 34인가 35까지라길래 키웠더니 그때 갑자기 모래의 집 몰살당하고. 근데 여기서 뒤를 더 보려면 결제를 해야함. 파판이라는 게임의 재미는 고사하고 그 뒤가 궁금해서 결제할 정도로 스토리는 좋아했었음. 그렇다고 설정덕후냐 하면 그정도까진 아니지만...

오르슈팡이라는 캐릭터를 처음 만났을때는 아직 기억남. 커르다스 서부고지에 처음 갔을 때 기지 대빵이라길래 어떤 사람일까 싶었는데 답도 없는 변태였던 캐릭터였음. 영상 속 내 캐릭터가 질색이라는 표정을 짓던 것도 다 기억나고, 이게 섹드립인지 진짜 그냥 몸이 멋지니까 밤에 구경하자 이런건지도 모르겠었고 그냥 개그 캐릭터인가 하고 넘어갔었음.

물론 당시 오르슈팡이 오해를 뒤집어 쓴 친우를 위해 모든걸 걸었던 스토리는 꽤 감명깊었었고, 그 지역의 스토리는 그걸로 해결 이라는 느낌이었음. 재밌는 스토리였고 생각보다 진지한 성격이었구나 싶었지만 내 안에서 오르슈팡이라는 캐릭터는 거기까지였다, 같은 느낌.

그리고 얼마 후 모두가 겪는 희망의 등불을 겪었고 내 캐릭터는 쫓기듯이 커르다스 지방으로 도망쳤는데, 거기서 반갑게 맞이해준게 오르슈팡. 거기까진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했음.
그리고 자신의 소개로 이슈가르드에 입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해하지. 나도 오르슈팡의 친구가 뒤집어쓴 오해를 푸는걸 도와줬으니까 오르슈팡이라는 캐릭터도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맹우여! 하면서 도우러 달려오는 오르슈팡에 대해서는 조금 이상함을 느꼈었음.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모두가 오르슈팡을 좋아하는데 왜 나는 그냥 그렇고 억지스럽다고까지 느낄까에 대해서 내가 이상한건가 싶을 정도로 정말 깊은 고민을 했었음. 나에게는 부담스러웠고,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용머리 전진기지는 대체 어떻게 한 것이며, 가장 결정적으로는

너가 발바닥에 땀나게 날 도우러 달려올 정도로 우리가 친했었나?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었음.

오르슈팡은 맹우니 친구니 이야기 하지만... 솔직히 나는 오르슈팡을 친구로 느낄만한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임. 그렇게 따지면 지금까지 모험가에겐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오르슈팡도 친구로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그들을 친구로 생각한다면 오르슈팡도 친구로 생각하는거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괴리를 느낀 부분을 이해했음. 나에게는 오르슈팡보다 훨씬 임팩트 있는 NPC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따지면 외지인을 배척하는 그리다니아에서 나를 따스하게 맞이해준 모험가 길드의 뮨, 메인 퀘스트 내내 얼굴을 비췄던 새벽의 혈맹, 비극으로 활시위를 못당기는 음유시인 제앙텔, 모래의 집에서 죽어나간 수많은 NPC들.

특히 모래의 집에서 죽어나간 NPC들은, 모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가 메인퀘스트를 하나 클리어 할때마다 대사가 바뀌고, 점점 사람이 없던 모래의 집에 나를 보고 모여드는 각자의 사연이 있는 NPC들이었다. 이름조차 있었고 사연이 없는 NPC는 없었고 그 중에는 나중에 던전에서도 만나게 되는 리아빈이나 인간을 돕기 위해 그 먼 다날란까지 와준 실프족 노라크시아도 있었다. 나는 매 메인퀘스트를 깰 때마다 이 NPC들에게 말걸면서 변화하는걸 즐겼고 대사 하나하나 고이 스크린샷 해서 아직도 스크린샷 폴더에 있다. 언젠가는 이들의 사연을 내가 서브퀘스트 같은거로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도 했었음. 근데 몰살 당했다.

죽어나간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거니와 모험가는 당시 새벽의 혈맹의 동료들이 생사불명 상태였음. 근데 왜 하필 오르슈팡인가... 라는 생각을 계속 했었다.

위에도 말했다시피 모험가가 오르슈팡을 친구로 여길거면 그 사람들도 다 친구였을 임팩트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친구의 죽음이라는 키워드에 모험가가 휘청휘청 할거라면 이미 진작에 ARR 스토리에서도 휘청휘청 했어야 했다는 거다. 모래의 집의 사람들이 몰살 당했을때, 노라크시아가 죽을 때 가만히 눈만 감겨주거나 시체들을 담담하게 치운다던가 할 게 아니라 충격받아서 삐뚤어지는 선택지(대답)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음.

그 때 처음으로 내 캐릭터에 일관성이 없다고 느꼈었음. 제일 위화감을 느낀건 교황청 클리어 후 나오는 영상에서, 오르슈팡이 죽었을 때 캐릭터가 석양을 배경으로 엄청 충격받은 표정으로 달려와 오르슈팡의 손을 부여잡은 것이다. 내 캐릭터가 나한테서 멀어보였음. 너 이정도로 얠 좋아했냐? 라는 생각.

이 얘기를 함께 3.3 클리어 후 날 파판에 꼬드긴 친구한테 말했더니 친구가 말하기를, 과묵한 주인공이 왜 온라인 게임에 필요한지 다시한번 느꼈다고 함. 지금까지는 과묵하고, 역경이 있어도 마음 속에서 스스로 정리해나가는 캐릭터였다. 그래 그런 캐릭터지만 마음이 한 번 흔들릴 수도 있지. 근데 그 한 번이 오르슈팡이었어야 했을까? 오르슈팡의 죽음으로 흔들릴 멘탈이었다면 이미 진작에 흔들려서 삐뚤어질 뻔 했어야 하는거 아닐까?

메인 퀘스트 한정만 이렇게 이야기 하는거지, 서브 퀘스트로는 훨씬 많다. 특히 이 세계관은 한번 제 7재해라는 걸 겪은 뒤라서 죽은 사람도 매우 많고 죽은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NPC들도 매우 많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서브퀘스트가 한둘일까?

또 서브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굳이 친구라고 하면 힐디가 진짜 친구 아닐까? 개그 스토리긴 하지만 힐디만큼 복잡하게 엮이고 다사다난했던 NPC도 없다. 힐디가 진짜 죽으면 3일장 지내면서 엉엉 울겠네.


나는 그래서 그 이후의 스토리에 나오는 모든 오르슈팡 관련된 것들에 이입할 수 없었다.
왜 특별취급으로 은빛 검날 이라는 칭호를 주는 것이며

포르탕 가의 방패는 그렇다 치더라도 오르슈팡 인형이라던가.

2.0 클리어 이후에 성 아다마 란다마 교회에 모래의 집 동료들이 묻힌 곳에는 발비추는 기색도 없이 제 7성력을 선포하는 행사에나 참여하고 있었는데 3.0에서는 오르슈팡의 묘비 앞에서 슬퍼하는 연출을 넣은 것인가.

너를 위해 전투에 쓸 특별한 옷이라는게 오르슈팡이 입었었던 갑옷과 같은 것? 이것은 그 쪽 기사들이 다 같은 옷을 입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ARR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르슈팡 외에 죽은 이젤은 아지스 라에 도착하자 주인공은 대사 하나조차 없으며 주변 NPC들이나 조금 충격이었다고 회자하고 가끔 알피노가 언급하는게 전부이고, 정작 주인공 모험가는 같은 초월하는 힘의 소유자인데도 신경조차 안쓰고 있고, 시간상으로 에스티니앙이 니드호그에게 지배당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에스티니앙은 마무리 영상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었는데.


내 생각은 쭈욱 그래왔다.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거의 혼자나 다름없게 남겨진 모험가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게 오르슈팡 이어서 였겠지. 도움 받은 모험가에게 우정으로서 보답하는 것. 그정도면 됐을 이야기.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생각되었다. 물론 공홈에 나왔던 창천 비화 '은빛 검날 오르슈팡'도 봤었다. 걔가 왜 몸에 집착을 하고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지 그런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조금 잔인하게 이야기하면 그 캐릭터의 사정이지 모험가인 내가 느낄만한 무언가의 이유는 아니었다.

남일... 같은 단어로 이야기 하고 싶은건 아님. 일단 이건 게임이고 스토리를 가지는데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는게 이입이다. 근데 오르슈팡에 대한 비화를 아무리 풀어줘도 그건 오르슈팡 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설정이지 내가 그 설정을 인게임에서 온전히 느낄 수도 없었거니와 그정도로 와닿진 않았던 것. 오르슈팡의 잘못이 아니라 스토리를 짤 때 플레이어가 충분히 이입할 수 있을만큼의 장치가 완성되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자기들이 의도한대로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려 하니까 이입하지 못한 플레이어 입장에선 제작진이 오르슈팡을 들이대기로 까지 느껴졌다... 전 그렇게 생각함.

물론 그 정도로도 충분히 이입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았을거고 그런 사람들이 오르슈팡의 팬이 된다고 생각함. 하지만 스토리를 챙기는 사람이라면 각자 가질법한 주인공 모험가에 대한 이미지라는게 있다. 끄덕맨 끄덕맨 하지만 메인퀘스트 등에서도 '절대 선' 처럼 보이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선택지를 준다. 선택지는 선악으로 나뉘는게 아니라 일단은 '선'이지만 그게 절대적인 선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그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던지 그런 선택지 등이 있고 나에게도 그런 어떠한 이미지가 있다. 개인적으론 2.0 스토리 끝무렵에 가이우스와 마도성에서 했던 긴 대화에서의 선택지가 인상깊었음.
내가 가진 모험가의 이미지로는 글쎄... 지금까지는 그런 것은 조금 아파해도 금방 딛고 나아가는 캐릭터였는데, 3.x 내내 회자되고 영상에서까지 회자될 정도일까... 하는 것임.


아무튼 앞 이야기가 좀 긴데, 내가 지금까지 오르슈팡에게 느낀것들은 이랬음.
그리고 용시전쟁의 끝이라는 3.3 메인 퀘스트를 다 깨고 나니까 제작진이 의도한 바는 명확히 알았는데 역시 이입을 충분히 시키지 못했구나 하고 깨달았음.

알피노가 계속 이젤을 언급했던 것이나 에스티니앙이 아이메리크의 친구였던 것. 사룡 니드호그가 여동생을 잃어서 천년간 분개했던 것과 에스티니앙이 여동생을 포함한 가족을 잃은 것으로 용에게 분노를 쏟아냈던 것 등등. 용시전쟁의 메인 테마는 인간과 드래곤의 어긋난 이야기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에 있어서는 '친구'라는 키워드가 중요했다는 것.

이미 잃은 친구를 잊지 않고 나아가는 알피노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친구를 잃는다 해도 나에게는 지켜야 할 백성이 있다고 흐레스벨그에게 호소하는 아이메리크, 그리고 그 사이에 서있는 모험가와 나에게 뜬 '친구를 구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선택지. 이쪽의 모험가는 구할 작정인 것 같다는 스크립트 등등.

수백명의 목숨이 달린 큰 스케일의 스토리지만 현실은 이랬음. 서로간의 이해관계는 맞지 않고 심지어 다시는 함께 할 수 없을정도로 어긋났더라도, 아이메리크의 말대로 작은 희망이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 이유는 친구, 가족, 살아있거나 지금은 죽어버린 다른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서. 누군가에게는 사소할 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임.


쭉 이해하고 보니, 테마가 이랬으니까 주인공 모험가만 붕 뜨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험가에게 '친구'를 만들어 줄 수 밖에. 혼자 ARR 시절처럼 그냥 모두의 믿음을 등에 실은 모험가 이런 태세면 당연히 스토리 전체에 모험가가 섞이기 어려워짐. ARR 시절 이야기가 자신을 믿어주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러져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주인공 모험가의 이야기였다면 창천의 이야기는 쓰러질 것 같을 때도 친구가 있기에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란 말. 새삼 참 JRPG틱 하다 싶음.

그 상황에서 모험가에게 쥐어준 친구라는 타이틀이 오르슈팡. 정확히는 이래서 ARR 시절과 창천 시절의 갭이 나에게 상당히 크게 다가왔다는 이야기임. ARR과 창천이 테마가 당연히 다르니까 그 테마에 맞춰서 모험가의 속성? 같은 것을 조금 바꾸거나 첨삭했다는 건데, 난 그래서 그 부분에 이입할 수 없었음. 더군다나 전 ARR 유저가 아니라 창천시작 유저라서 ARR 스토리를 끝까지 다 본 직후 바로 창천으로 넘어갔기에 더 그랬음.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창천의 스토리는 완성도도 높고 짜임새도 좋고 연출도 좋고 콘솔 게임 못지 않은 정말 좋은 스토리라고 생각함. 다만 이입 문제에 있어서는... '친구 오르슈팡'에 이입 할 수 있었던 사람에겐 정말 재밌는 스토리였겠지만 나는 스토리 재밌다고 여기면서도 오르슈팡에 관한게 메인 퀘스트에서 너무 들이대지면 어색해졌었던 것들이 아쉬움. ARR에서 창천으로 넘어가는 스토리는 꽤 부드럽다고 생각했지만서도...

모험가를 과묵한 모험가로 만들고, 간간히 선택지를 주면서 플레이어가 적당히 이입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져 있다면, 모험가에게 필요 이상의 캐릭터성(테마)를 주어줘선 안된다고 생각했음. 아니면 그럴 수 있는 확실한 계기가 있던지...


P.S 오르슈팡 싫어하지 않아요! 까는거 아님! 오르슈팡이라는 캐릭터는 참 잘짜여져 있다고 보는데 그걸 스토리에서 들이대는 과정에 대해 이입할 수 없던 유저가 있고 그 이유도 이제 좀 알 것 같다는 내용의 글임.

오르슈팡 때문에 멘탈이 탈탈 털릴거였으면 ARR 시절에도 탈탈 털렸으면 좋았을걸 싶은건 사실임. 인간적인 주인공 캐릭터 좋아하니까여

아침에 멍한 정신으로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는데 혹시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_~ 너무 길어서 다들 안읽으실 듯.



+ 아침에 두서없이 쓴 글이 댓글이 폭발하네요. 오르슈팡의 인기를 실감했습니다.

댓글에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어 이야기 되는 것 같아서 몇가지 더 추가로 적어볼까 합니다.

오르슈팡이라는 캐릭터를 게임을 플레이 하는 플레이어가 좋아하는게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고, 혼자나 다름없는 모험가를 거두어줬다는 것도 모르지 않고, 그 행동에 오르슈팡의 캐릭터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괜히 처음 3.0 깨고 3.3까지 흘러오는 몇개월의 시간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온건 아니에요.

제가 생각해왔던건 위에도 썼지만, 오르슈팡이 모험가를 희망의 등불 이후 눈의 집에 숨겨 도와줬던 이야기는 저에게 있어선 제가 도와줬던 사람 중 한명 이라는 느낌이 가장 강했었습니다. 물론 오르슈팡이라는 인물이 그냥 그저 그런 인물이라는 의미라기보단 저는 모험가로서 많은 NPC들을 도와줘왔었고 그것 중 하나가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그것 뿐은 아니었죠. 오르슈팡이라는 캐릭터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여러 풀린 비화 등으로 미루어보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건 제가 게임 내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오르슈팡이 저에게 다가온거에 대해서 내가 '감사하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오르슈팡은 사실 이랬어.' 하면서 보여준게 뒤 비화같은 느낌이었달까요. 그랬구나 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건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 주인공 모험가가 느낄만한 감정은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지금까지 겪어온 '모험가'는 그래왔었고요. 희망의 등불 스토리 때문에 멘탈이 무너져서 더더욱 오르슈팡이 가깝게 느껴졌었다면 2.5 이전의 ARR 시절에도 그것과 비슷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그러지 않았던 상황에 의아함을 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창천을 진행하면서 받은 느낌은, '너와 오르슈팡은 이제부터 맹우야' 라고 설정해놓고 나에게 그 이유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자연스럽게 오르슈팡과 친구가 될 계기를 주는게 아니라 너와 쟤는 친구야 라고 스피드왜건처럼 설명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저에겐 그렇게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이유가 있나? 그냥 인기캐라서 푸쉬해주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3.3까지 클리어하고 난 이후에 용시전쟁의 모든 스토리를 곱씹어봤을 때 용시전쟁의 키워드는 친구, 소중한 사람. 그런 것들. 거기서 모험가가 붕 뜨지 않으려면 모험가에게도 소중한 인연은 필요했다. 그래서 알피노에게도 아이메리크에게도 에스티니앙에게도 그 모두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하나씩은 있었죠. 심지어 적인 니드호그조차 소중한 사람이 죽임당한 것에 분노하여 움직였던 거였고요.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스토리는 잘 짜여졌지만 그 스토리의 테마에 모험가 캐릭터를 녹여내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친구라는 장치. 그게 이입이 가능했던 사람은 재밌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지만 이입이 불가능했던 사람들은 어색하고 때론 불편하기도 했다고 느껴왔었다는 겁니다. 주변에도 몇몇 있더라구요.

제가 쓰고싶은 말은 이게 다인데, 댓글에 자꾸 저에게 오르슈팡이 좋은 이유를 설득하려는 느낌의 댓글들이 달려서 좀 음... 싶었습니다. 전 본문에서 이야기 한대로 ARR의 스토리가 창천보다 뛰어났다고 이야기 하는것도 아니고 오르슈팡의 팬덤이 오르슈팡을 좋아하는걸 이해 못하는게 아니에요. 그게 이입이 되는 이유도 납득이 가고 그렇다 해도 이입이 되는 사람과 안되는 사람이 있는 것. 저는 후자의 사람으로 왜 그랬던걸까? 에 대한 이유를 용시전쟁 전체의 스토리를 다 보고 나서 생각을 마저 정리해볼 수 있어서 쓰게 된 글입니다.

모처럼 스토리에 대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어서 좋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