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하 왕궁의 테라스로부터 불멸대의 장병을 배웅한것은 이미 몇일전의 일이다.
죽음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을 따온 [달 관문]을 넘어서는 것으로, 한 번 '죽음'을 경험하고, 전장에서의 죽음을 피한다는 옛날로부터의 풍습에 따라, 부대는 동쪽 관문으로부터 출진했다.
그들의 모습이 황야의 사막으로 사라질때까지, 울다하 제17대 국왕, 나나모 울 나모는 결코 테라스로부터 멀어지려하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나나모의 모습은 일변했다.
항상 긴장된 모습을 무너트리지 않고, 그러면서도 진정하지 못하며 정무에 집중하지 못한다. 심지어, 식사조차 제대로 목을 넘어가지 않는 상황. 그런 때에 믿을 수 있을 남자인 라우반 알딘이 부재중이어서는, 시녀들조차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라우반은 왕가를 보좌하는 모래전갈회의 일원이지만, 동시에 총사령부 [불멸대]의 최고사령관이기도 하다. 당연히, 갈레말 제국군과의 결전으로 주력부대를 이끌고서 출진해 있었다.


" 짐은, 16세가 되는 터임에도, 마치 어린아이와 같지 않은가... "


그렇게 생각해보지만, 식사는 목을 넘어가주지 않는다.
또다시, 거의 손을 대지 않는 식탁을 뒤로한 나나모를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피핀 타루핀. 라우반이 후견인을 맡고있는 라라펠족의 고아였다. 불멸대의 장교이기도 한 그는, 카르테노로의 종군을 원했으나, 라우반의 명에 의해 왕궁에 남아있었다. 여왕의 정신적 면을 받쳐주라는 라우반의 배려였으나, 피핀이 대역을 맡지 못하고 있는건 누구의 눈에도 명확했다.

불안한 나날이 진흙처럼 천천히 지나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올 날이라는 것은 오는 것이다.

" 나나모 폐하, 동맹군 본부로부터 링크쉘 통신입니다.
카르테노의 땅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


왕궁의 접견홀 [향연의 장]에서 피핀으로부터의 보고를 받은 나나모는, '그러한가' 라는 한 마디만을 했다. 너무나도 반응이 없는 탓에 피핀은 어리둥절한 모양이었으나, 동석중이던 휴런족의 청년은 신경쓰는 모습도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 그런 태도여서는 곤란합니다, 나나모 폐하.
당신에게는 아직 책무가 남아있으니까요 "

경박해보이는 얼굴의 그 남자. 산크레드는 '구세시맹'이라 불리는 조직의 일원이며, 상담역으로서 왕궁의 출입이 인정되어있는 인물이었다.

" 계집애에 지나지 않는 짐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이냐! "
나나모는 화풀이라는걸 알면서도,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노기를 품은 여왕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산크레드는 동요하지 않았다.

" 그렇게나 건강하다면 괜찮겠지요.
지금부터, 폐하에게는 알다네스 성궤당으로 향해주시기 바랍니다.
달 신의 비석에, 기원을 바쳐주셔야 합니다.
에오르제아를 지키는, 12신을 강림시키기 위해서 말이죠 "


강신. 그것이야말로, 라우반들이 전장에 향한 이유였다.
지금이라도 낙하하려하는 달의 위성 [달라가브]를 밀어내고, 에오르제아를 재7영재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에오르제아 12신을 소환한다. 그 비술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 많은 [기원]의 힘이 필요했다. 발안자이기도 한 현자 루이수와로부터 들은 작전 개요를, 나나모는 떠올렸다.

" 설령 당신이 계집애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키고싶은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 강한 기도는 신을 부르는 힘이 됩니다.
그러니까 폐하, 아시겠지요? "

잠시간의 침묵.
어리광을 부리고있던 자신을 부끄러이 여긴 나나모는, 그저 조용히 수긍하고서 뛰쳐나갔다. 호위인 피핀을 데리고서.

" 이런 이런, 손이 많이 가는 여왕폐하네. "


이렇게하여, 나나모와 피핀은 차가운 알다네스 성궤당의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바치게 되었다. 여왕을 부추긴 산크레드는, 울다하의 또 하나의 성당인 [미르바네스 예배당]으로 향했기에, 이 자리에는 없다.
나나모는 일심불란하게 기도를 올렸다. 울다하의 수호신, 쌍둥이 신 [날달]에게. 에오르제아의 구제와, 울다하의 수호를. 그리고, 라우반의 생환을.

수 시간에 걸친 기도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도중, 폭음과 함께 격진이 일어나며 사방으로부터 비명이 들려와도 나나모는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혼돈이 천천히 울다하를 집어삼키려던 그때, 둘이 기도를 바치고 있던 [달 신의 비석]이 빛을 냈다. 신상을 지지하는 비석으로부터, 빛의 기둥이 떠오른다.
이 순간, 확실하게 그녀는 직감했다. 신은 나타났다!
그리고 꿈인지 현실인지, 나나모는 기도중 현자 루이수아의 목소리를 들었다.


[ 에오르제아의 신생을... ]

어느새인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있던 나나모는 성당안에 울리는 발소리에 눈을 떴다. 바로 곁에서는 똑같이 쓰러져있던 피핀이 머리를 흔들며 일어서려 하고있었다.
잠시 멍하니, 빛이 사라진 달의 비석을 보고있던 나나모였으나, 한 남자의 절규에 정신을 차렸다.

" 크 큰일이다! 사파이어 아베뉴에서 폭동이다!
자포자기한 시민들이 약탈을 시작했어! "

날 달 교단의 주술사로 보이는 남자가, 얼굴색을 바꾸며 성당에 뛰어들어왔다. 어떻게든 본래의 역할을 떠올린듯한 피핀이 바로 진언한다.

" 위험합니다, 나나모 폐하. 왕궁까지 돌아가죠! "

대하는 나나모의 반응은 빨랐다.

" 아니된다! "

바로 일어선 나나모가 주변을 둘러본다.
주술사들의 총본산인 알다네스 성궤당 내부에서는 사제들이 귀중한 신구나 서적을 폭도로부터 지키기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중, 핏발선 눈으로 부하에게 지시를 내리는 작은 남자의 모습이 있었다. 성궤당의 총사교, 대도사 무무에포였다.

" 알겠냐, 너희들~, 폭도들을 성당에 들여서는 안된다~
가까이 오면 파이어로 불태워버려~! "


끔찍한 지시를 내리는 무무에포를 본 나나모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외친다.

 

" 백성을 불태우다니, 그러고도 성직자더냐! "

 

일갈한 나나모는 계속해서

 

" 백성을 지키는 것은 왕의 의무! 공포에 빠진 백성을, 짐이 구하겠다!
누군가, 짐에게 힘을 빌려줄 자는 없는가! "

 

다가오는 폭도들 앞에 선 여왕의 모습을 보고, 피핀이 나선다.

 

" 여기에! 의부 라우반을 대신하여, 이 피핀을 써주십시오! "

 

하지만, 이 말에 이어 모인것은 호위기사인 파파샨과, 형제로 보이는 주술사 길드의 젊은 5명뿐이었다. 어떠한 자는 두려워하여, 어떠한 자는 재보를 지키기 위하여, 여왕같은건 보고있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나모는 나아갔다. 기이하게도 라라펠족만이 모인 7명이 원진을 짜며, 여왕 나나모를 지키고, 혼돈에 빠진 시가지를 나아간다.
아름다운 울다하의 회랑에는 폭도화한 군중이 넘쳐나고 있었다. 상점을 습격하는 자, 도망치는 상인,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 공포상태에 빠진 자들의 앞에 선 나나모가 외친다.

 


" 파파샨, 섬광을 쏘아라! "
여왕의 호령에, 노년의 호위기사가 [섬광]을 쏘았다.

 

" 주술사들이여, 있는 힘껏 마법을 쏘아라! "

5명의 젊은 주술사들이 파이어, 선더, 블리자드를 하늘을 향해 마구 쏜다. 특히, 안면을 붕대로 가린 젊은 자는 거대한 화염을 불러내며 폭도들의 눈을 끌었다.


" 피핀, 짐을 들어올리거라! "

체구가 작은 라라펠족인 피핀이지만, 그 어깨에 나나모를 태우고서 혼신의 힘으로 일어선다. 그 위에서 나나모는,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 듣거라, 울다하의 백성이여! 듣거라, 사막의 백성이여!
지금, 에오르제아의 땅에 제7영재가 찾아오려 하고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살아있다!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야만 하느니라!
쓰러진 자의 재보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도와 일으켜 함께 재보를 쌓을것을 생각하거라!
지금, 그대들이 배웅한 불멸대는...
라우반들은, 카르테노의 땅에서 싸우고 있다!
그들은 울다하를 지키기 위하여, 그대들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있는것이니라!
그런 그들이 돌아왔을때, 폐허가 된 도시를 보이겠다는것이냐!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 제7영재라고 한다면, 일곱번째 성력을 만들어낼 뿐!
공포에 빠지지 마라! 절망에 삼켜지지 마라!
짐과 함께, 이 상처입은 울다하를, 에오르제아를 신생시키는 것이다!
"

 


작은 여왕의 이 연설에 의해, 폭도는 진정되고, 이어서 조직적인 구조활동이 시작되었다.
몇일 후, 생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을 따온 [날 관문]을 지나 귀환한 불멸대의 생환자들은, 마치 죽은 자들처럼 피폐해 있었으나,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돌아갈 집이 남아있었다.
부흥작업에 몰두하는 나날이 잠시 이어진 후, 나나모는 날 달 교단에 대하여 왕령을 선포하여, 총사교 무무에포를 파면시켰다. 꼭두각시인 여왕에게 그다지 힘은 없었으나, 피핀이 뒤에서 움직여 무무에포의 부정한 재산의 증거를 모아 교단을 협박한 것이 공을 이루어, 그는 수감되었다.

그리고 후임 주술사 길드 마스터의 자리에는, 그 날 나나모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붕대를 감은 젊은 자와, 그 네 명의 형제들이 앉았다.

나나모는 때때로 떠올린다. 제7영재가 찾아온 그 날을.

분명 그 때, 왕좌를 장식하는 인형이라 야유당한 그녀는, 왕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다. 그렇기에, [왕]으로서 최후의 책무 또한, 다할 수 있을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