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움직여야 환호성이 나왔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근대 축구가 태동했을 때부터 그랬다. 공이 멈추는 순간 관심도는 떨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공이 멈췄을 때 숨죽이게 됐다. ‘죽은 공(Dead ball)’을 멋지게 살려내 골을 터뜨리는 기술자들이 등장했다. 한쪽에서는 골키퍼가 수비벽에 큰소리를 지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키커가 수비진이 미처 메우지 못한 틈을 노려본다. 키커가 공을 향해 도약하기 시작하면, 공 하나에 모든 이들의 눈과 신경이 쏠린다. 프리킥은 그렇게 우리 마음을 훔쳤고, 지금도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그리고 K리그에는 어떻게 뿌리내렸을까? <네이버 스포츠>와 류청 기자가 프리킥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간다. 이번에는 프리킥 역사를 바꾼 한 남자 이야기다.

역사적인 인물과 역사를 만든 인물은 다르다.

프리킥에 능한 선수는 많았다. 역사상 최고 선수를 두고 경쟁하는 선수들은 프리킥에 능했다.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지쿠, 미셸 플라티니, 지네딘 지단, 리오넬 메시 그리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한방을 지니고 있었다. 프리킥으로 일가를 이룬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호베르투 카를로스 같은 선수도 있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역사적인 선수다.

100년이 넘는 축구역사, 그와 궤를 함께하는 프리킥 역사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든 선수는 단 한 명이다. 그 선수의 등장이 프리킥 역사에 분기점이 됐다. 브라질의 수많은 주니뉴 중에서 페르남부코(Pernambuco)주에서 태어난 주니뉴 페르남부카누는 프리킥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프리킥으로 75골(76골이라는 주장도 있다)을 넣었기 때문이 아니다. 주니뉴가 등장한 이후 프리킥을 차는 선수들과 막는 선수들 모두 생각을 바꾸게 됐다.

#프리킥 역사를 바꾼 무회전 프리킥

주니뉴는 프리킥으로 골을 가장 많이 넣은 선수 (통산 75골-리옹에선 44골)는 아니다.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얀 펠레’ 지쿠가 프리킥으로 100골 이상 넣었다는 기록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다. 주니뉴는 골 숫자 이상의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바로 기술이다. 대개 프리키커는 자신이 좋아하는 1~2가지 방식으로 공을 찬다. UFO슛으로 유명한 카를로스는 강력한 인스탭슛을 좋아했고, 베컴은 공을 발로 부드럽게 감싸며 큰 곡선을 만들었다. 미하일로비치는 베컴보다 각은 작지만 좀 더 빠른 프리킥을 찼다.
 

 

 

 유명한 UFO슛

 

주니뉴는 발의 모든 부분을 사용해 프리킥 골을 만들었다. 발등, 발 안쪽과 바깥쪽. 구질도 다양했다. 주니뉴는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가까운 곳에서는 벽을 넘기거나 벽을 피하는 프리킥을 찼고, 먼 곳에서는 강한 프리킥을 구사했다”라고 설명했다. 주니뉴가 말한 ‘강한 프리킥’은 바로 무회전 프리킥이다. 유럽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궤적을 가진 프리킥이라며 ‘너클볼(knuckleball)’이라고 표현했다. 주니뉴가 가장 처음 무회전 프리킥을 찬 선수는 아닐지 몰라도, 처음으로 무회전 프리킥을 능숙하게 구사한 선수인 것은 확실하다.

"당시 주니뉴 만이 무회전 프리킥을 차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클로드 퓌엘 니스 감독, 전 리옹 감독)

무회전 프리킥이 등장하면서 공이 멈춘 뒤 풍경이 바뀌었다. 카를로스처럼 골대에서 30m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직접 골대를 노리는 선수도 있었지만, 골키퍼가 예측할 수 있는 궤적(가끔 나오는 UFO슛은 제외)이었다. 베컴과 미하일로비치도 먼 곳에서 프리킥을 성공시키기도 했으나 그들의 프리킥을 방어하기 위해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2명 정도로 벽을 만들고 나머지는 페널티박스 안에서 헤딩 경합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주니뉴가 나오면서 ‘프리킥의 일반’이 무너진 것이다.

주니뉴는 골대에서 30m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바로 슈팅했다. 그의 프리킥은 벽을 넘어 날아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밑으로 떨어진다. 골키퍼들은 예상치 못한 궤적 변화에 넘어지거나 주저앉기 일쑤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주니뉴가 무회전 프리킥을 쏘아 올리면서 프리킥을 방어하는 방식은 완벽하게 바뀌었다. 먼 곳에서 프리킥이 나와도 골키퍼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 축구 전문가들은 주니뉴가 만든 새로운 프리킥 방식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주니뉴는 프리킥을 마치 페널티킥처럼 찬다고.

"상대가 누구든 간에 우리는 주니(주니뉴의 애칭)가 프리킥을 차려고 공으로 다가서는 순간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클로드 퓌엘 니스 감독, 전 리옹 감독)

"프리킥만 놓고 보면 주니뉴가 호나우지뉴보다 낫다." (안드리 셰브첸코)

#칸과 발데스를 울린 주니뉴

 

 

 

칸을 무너뜨린 무회전 프리킥

 

주니뉴 프리킥이 전 세계적으로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것은 2003/2004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바이에른 뮌헨 원정이었다. 주니뉴는 전반 6분 만에 세계 최고 골키퍼 올리버 칸을 무너뜨렸다. 주니뉴는 먼 곳에서 얻은 프리킥을 무회전으로 찼고, 칸은 갑작스러운 프리킥 궤적 변화에 중심을 잃으면서 얼굴로 골포스트를 받았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독일을 준우승으로 이끈 올리버 칸도 무회전 프리킥에 무너진 것이다. 주니뉴의 프리킥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고, 칸의 얼굴은 골대로 향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머리에 아직도 남아 있다. 주니뉴와 무회전 프리킥을 알린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주니뉴 프리킥은 우리의 엄청난 무기였다. 심판이 휘슬을 불고, 주니뉴가 공에 다가서면 우리에게 기회가 생겼다. 상대에게는 엄청난 위협이었다."

(앙토니 레베이에르, 리옹 시절 동료- 전 프랑스 대표팀)

 

 

 

발데스 울린 프리킥

 

주니뉴는 빅토르 발데스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올랭피크리옹은 ‘2008/200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FC바르셀로나(당시 우승팀)와 대결했다. 리옹은 홈 경기장인 스타드제를랑에서 벌어진 1차전에서 선제골을 넣었다. 주니뉴가 왼쪽 측면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그대로 골대 안으로 넣었다. 주니뉴가 찬 공은 하늘로 솟구치다 갑자기 떨어졌다. 바르사 골키퍼 빅토르 발데스는 뒷걸음질 치며 손을 뻗어보지도 못했다. 리옹은 이날 후반에 티에리 앙리에게 한 골을 허용하며 1-1로 비겼고, 2차전에서는 1-5로 패했다. 리옹은 패했지만 주니뉴의 프리킥은 승패를 넘어섰다.

"빅토르 발데스는 공이 어떻게 날아왔는지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리옹 전 주장 크리스)

 

 

주니뉴 프리킥 골 모음

 

주니뉴의 프리킥 골 모음 동영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골키퍼들의 반응이다. '당했다', '분하다'는 표정이 아니다. '이건 뭐야'라며 당황하는 표정이 많다. '조금만 더 일찍 뛰었다면 막을 수 있었는데', '벽을 잘 세웠으면 막았을 텐데'와 같은 맥락이 아니다. 무회전 프리킥은 예상할 수 없어서 무섭다. 20년 넘게 프로로 뛰며 월드컵과 각종 경기를 소화한 김병지는 무회전 프리킥을 대하는 골키퍼의 자세를 이렇게 설명했다. "중계로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저걸 왜 못 막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골을 막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측이다. 무회전 프리킥은 예측할 수 없다. 골대 바로 앞에서 갑자기 떨어지고, 없어진다. 골키퍼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무회전 시대를 연 주니뉴, 그를 따르는 호날두, 피를로 그리고 피아니치

주니뉴 프리킥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골키퍼들은 울었고, 프리킥 좀 찬다는 선수들은 주니뉴를 따라 하기 위해,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안드레아 피를로 그리고 미랄렘 피아니치는 주니뉴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무회전 프리킥을 구사하지만, 뿌리는 같다. 주니뉴의 프리킥을 체화하면서 각자의 방식을 만든 것이다. 리옹에서 주니뉴와 함께 뛰었던 피아니치는 "주니뉴의 프리킥을 보고 연습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거장이었다. 하지만 프리킥을 차는 나만의 방식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피를로는 자신의 자서전 <나는 생각한다, 고로 플레이한다> (도서출판 한스미디어)에서 자신의 프리킥이 '피를로 스타일'이지만 뿌리는 주니뉴에 있다고 고백했다.

 

"나는 이탈리아인이지만, 일부는 브라질인이기도 하다. 피를리뉴라고 할까. 프리킥을 찰 때는 포르투갈어로 생각하고, 득점 후 기뻐할 때는 이탈리아어로 한다. 나는 그 프리킥들을 '피를로 스타일'로 찬다. 그 모든 슛은 나의 이름을 갖고 있으며 그들은 모두 나의 자식들이다. 그들은 서로 쌍둥이는 아니면서도 서로 닮았는데 같은 남미의 뿌리를 뽐내곤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같은 영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안토니오 아우구수토 레베이로 레이스 주니어, 역사에는 주니뉴 페르남부카누로 적혀진 미드필더다." (자서전 발췌)

피를로는 주니뉴 프리킥의 비밀을 풀기 위해 주니뉴의 프리킥 영상을 모두 구해 돌려봤다고 했다. 처음에는 공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아 장비 담당관이 자신을 미워했다는 이야기도 털어놨다. 피를로는 어느 순간 주니뉴가 발가락 3개만을 이용해 프리킥을 찼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처음으로 상상 속에 있던 프리킥을 현실로 만들어낸 후 감격했다. 2016년 현재, 피를로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프리키커다. 그가 프리킥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뿌리에는 주니뉴가 있다.

'호날두의 로켓'이라 불리는 무회전 프리킥을 구사하는 호날두는 직접 주니뉴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 회전 없이 흔들리며 날아가는 탁구공을 본 뒤 홀로 프리킥 연습을 하다 '마술 걸린 듯 움직이는' 프리킥을 완성했다고 했다. 프리킥 비법에 대해 언급하길 꺼리는 호날두는 공의 중앙을 '어떤 방식'으로 차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호날두가 프리킥을 차기 전에 공을 돌려놓는 데 비밀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공에 바람을 넣는 공기주입구를 차는 게 호날두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같은 무회전이라도 주니뉴와 피를로, 호날두 그리고 피아니치의 프리킥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주니뉴의 프리킥이 후배격인 피를로, 호날두 그리고 피아니치가 갈 길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피를로가 언급한대로 이런 프리킥의 뿌리에는 주니뉴가 있다. 주니뉴가 프리킥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니뉴 이전에도 몇몇 선수는 무회전킥을 찬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프리킥이나 킥이 일반적이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시도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주니뉴는 무회전 프리킥이 연습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무회전 프리킥 상용화의 대부인 셈이다.

#프리킥계의 지단 혹은 호나우두

 

지금 이 순간에도 프리키커로 성공하려는 이들은 주니뉴를 연구한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무회전 프리킥은 강력한 프리킥이나 감아 차는 프리킥보다 골로 연결될 확률이 높다. 골을 넣지 못해도 다음 상황에서 골이 나올 확률 또한 높다. "쳐낼 수는 있어도 잡을 수는 없는" 특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주름잡던 많은 프리키커 가운데 주니뉴를 따로 뽑아서 언급한 이유다. 주니뉴는 '죽은 공'을 전에 없던 방식으로 살려내 축구가 갈 수 있는 새로운 문을 열었다. 레베이에르는 주니뉴를 이렇게 평했다.

"가장 위대한 프리키커를 이야기하다보면 바로 주니뉴를 떠올리게 된다. 주니뉴는 (프리킥에 있어) 데이비드 베컴이나 지네딘 지단 같은 선수다. 주니뉴는 가까운 곳, 먼 곳, 어느 곳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호날두와 피아니치는 주니뉴보다 프리킥으로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다. 두 선수는 아직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호날두와 피아니치를 능가하는 무회전 프리키커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도 주니뉴보다 더 큰 상징성을 지니지 못한다. 존재하지 않던 것을 만든 사람과 누군가 만든 것을 개선한 사람은 다르다. 주니뉴는 무회전 프리킥에 생명을 부여하고, 많은 이들에 영감을 준 선수다. 주니뉴는 무회전 프리킥으로 게임의 법칙을 완전히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