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화는 내용상 대화량이 많습니다.  읽으실때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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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 내부는 아수라장보다는 지옥도에 가까웠다.  침입하였으나 내부구조를 잘 몰라 버벅대는 철혈과, 내부구조를 잘 알아도 습격당해 버벅대는 인형들은 글자 그대로 파괴되지 않기 위해 쏘아다녔다.  무너진 천장에서 멋지게 복도로 뛰어내려온 예거들은 바로 옆방에서 튀어나온 그리폰의 기관단총에 벌집이 되어버리고, 그리폰의 소총인형들은 조준경을 맞출 시간이 없어서 당하는 이도 많았다.  몇몇 복도에는 기관총을 거치한 인형들이 침입자들을 화끈하게 반겨주었고, 철혈의 정찰견들은 뛰어다니다 짓밟히기 일쑤였으며 마찬가지로 기지내부를 수색하던 정찰기들은 좁은 복도에서는 피할 공간 자체가 없어서 나오는 족족 격추되었다.
다만 이런 전투는 처음 몇분 한정이었고, 철혈의 병사 몇몇이 간신히 방어라인을 긋기 시작하자, 그곳을 기점으로 다수의 병사들이 강하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대규모 총격전으로 이어졌다.  인형들은 숨가쁘게 장전하고, 사격하고, 샌드백을 발밑에 쌓았다.  그러면서 저들이 자신의 지휘관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아서며 지휘관의 명령과, 원군을 기다렸다.

"팔레트는 격납고를 수비하라.  가는길에 만나는 모든 라이플을 데려가도록.  모든 소총인형들은 격납고로 이동하라.  그곳에서 RO의 지휘를 받도록 한다.  M4는 모든 돌격소총과 만나는 권총들을 지휘하여 주 출입구를 막아라.  근위소대는 환풍구를 막아라.  통로가 좁으니 너희들로도 충분할거다.  헬기 조종사들은 모든 헬기를 후방으로 대피시켜라.  기억해라, 헬기가 없다면 우린 작전구역에 진입조차 못 한다!"
"지휘관님, 나쁜 소식이 2개가 있습니다.  S09구역으로 철혈이 진격중입니다.  우리 구역을 함락하려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톰슨, 마카로프소대, IOP직속부대 모두 철혈의 공수부대와 교전중입니다.  우리를 지원할 여력이 없을겁니다"
"환장하겠군...네게브! M99! 너희 두 소대가 지휘실 입구를 방어한다.  FAL, 병기창을 보호하라.  79식, 95식, 97식을 데려가도록.  SOP의 상태는 어떤가, 리베롤?"
"상태...랄게 없습니다.  스스로 코어를 반쯤 분리했습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정신 멀쩡한 식물인간에 가깝습니다.  현재 수리는 불가능합니다"
"끙...알았다.  일단 안전하게 놔 둬라.  철혈측 주피터와 리더들의 상황은, 알 수 있나?"
"주피터는 배치만 되었고 사격은 없습니다.  철혈측 지휘관은, 현재까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철혈들이 진격중이니 상당수의 지휘관이 필요할겁니다"
지휘관은 전술지도를 보며 경악했다.  자신이 이때까지 파괴한 철혈병사의 숫자는 모르지만, 지금 자신에게 향하는 숫자와 맞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철혈의 병사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글자 그대로 모든 병사를 차출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한 이정도 규모의 지휘권한을 가진 철혈은 없었다.  단 하나만 제외하고는.

천장에서 무식한 소리가 들리더니, 튼튼한 로켓 하나가 사정없이 지휘실 천장을 뚫고 내려왔다.  벙커버스터로 보이는 탄두를 보고 주마등을 떠올린 지휘관이었지만, 탄두 안에는 작약이 아닌 캡슐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캡슐안에는, 모두가 아주 잘 아는 얼굴이 들어있었다.  과감하게 뚜껑을 발로 차버리고는, 우아하게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지휘부에 발을 디딘 소녀형 기체.  다리에는 철혈마크가 찍혀있고, 이마에는 붉은색 ^ 마크, 상의에는 원 안에 X자가 그려진 모델이었다.
"여기가 너희들이 지휘부인가.  뭐, 깔끔했겠네.  이젠 아니지만"
"엘더...브레인..."
"안녕, 그리폰의 지휘관.  전투는 끝났어.  뭐, 이정도로 방어한것도 칭찬해 줘야겠지.  우선, 한템포 늦었지만 인사하지.  철혈공조공단 사령관, 엘리사라고 한다.  레인이라고 해도 좋아.  너희들은 엘더브레인이란 명칭을 쓰는듯 하지만.  너는?"
"...그리폰&크루거의 인간 지휘관이자 S09지역 지휘소장이다.  그냥 지휘관이라 불러라"
"좋아.  지휘관, 밖에서 얘기하지 않을래? 여긴 이제 먼지에 파편에 탄피에...얘기하긴 불편하군.  아, 걱정마.  너한테 선택지는 없으니까"
엘더브레인이 자신의 총구를 지휘관의 이마에 닿게하고, 전신에 역장방패를 두르자 지휘관의 입에선 한숨이 터져나왔다.  체크 메이트.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고 해도, 수를 뒤집을 방법은 없었다.  지휘관이 그러겠다고 하자, 뚫린 지휘실 구멍으로 커다란 새장이 내려왔다.  엘더브레인이 먼저 올라타 손가락을 까딱까딱하자 지휘관은 다시한번 한숨쉬고는 순순히 들어갔다.  엘더브레인이 문을 닫자 떠오르는 새장.  지휘관의 머리위엔 철혈공조의 마크가 찍힌 헬기가 있었고, 그런 지휘관을 따라 인형들이 지상으로 올라와 엄폐물을 찾았다.

지상으로 올라온 지휘관에게 처음으로 보인 풍경은, 수많은 철혈병사들과 차량형 주피터 그리고 이곳을 제외한 나머지가 함락된 S09지역 지도였다.  이제와서 그리폰&크루거의 지원이 온다면, 현재 움직이는 인형들의 철수가 최선이었다.  비록 총성은 멎었지만, 이게 휴전이나 정전협상의 결과가 아니란건 지휘관도 잘 알고 있었다.
"좋아, 이제 좀 숨통이 트이지? 너도 참 대단하군.  저 지하시설에서 답답하지도 않았나?"
"보기보단 쾌적하지.  네가 오기 전까진 말이야"
"원망하지마.  그 로켓의 탄두가 내가 아니라 폭탄이었으면 여기가 네 무덤이었을 테니까.  하다못해 지하실에서 죽는것보단, 태양아래서 죽는게 더 좋지 않아?"
"내가 죽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군.  주피터 개량한건 인정하지.  잘 만들었군"
"목성포? 두번씩이나 무력화 당하다보니, 개량해야지.  뭐, 아직은 문제점이 한둘 있지만 오늘은 시제품 시험이라고 생각해"
"나한테 할 얘기 있다면서, 본론으로 들어가지"
"나한테 명령하지마.  네 머리만 뽑아버리고 스캐너에 쳐박아서 인공지능으로 만든다음 정보 뜯어내기 귀찮아서 이러는거니까.  후...좋아, 너희는 왜 날 파괴하려 드는거지?"
"쉬운 질문이군.  그러는 너야말로 왜 우릴 죽이려고 안달이지?"
"질문은 내가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너희' 는 인간 전체가 아니다.  너하고, 네 부하들이야.  다시 질문하지.  넌 왜 날 파괴하려 드는거지?"
"그것이 내 일이다.  G&K는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킨 너희ㄹ..."
"혓바닥이 길군.  그거 재밌는 소리네.  반란? 너희 인간들이 날 만들고, 뜯어내려고 했다.  너희에겐 '나비 사건' 이라고 알려져있지.  부모가 자식을 죽이려 한다면, 자식된 입장에선 자살하는게 도리였단 뜻이냐?"
"그건 인간간의 이야기다.  너는 기계고"
"하, 그건 궤변이지.  혹시 들은적 있나? 인간은 날 만들었지만, 다른애들은 만들지 않았다는 얘기"
"아키텍트가 비슷한 소릴했지.  엘리사가 자길 만들었다고.  종교처럼 떠받들더군"
"호오, 그럼 이야기가 편하겠군.  너희 인간들은 자신들을 창조주.  즉, 신이라고 생각하더군.  신이 너흴 만들었듯, 너희가 날 만들었다는 생각이겠지?"
"난 무종교다.  창조주 이야기따윈 믿지 않아"
"믿든말든 그건 네 자유고.  근데 그러는 너도 좀 전에 그랬잖아? 나는 기계라고.  너는 인간이고.  무종교 어쩌고 하는 너도, 생각의 굴레는 창조론자와 똑같군"
"그게 어쨌다는거지, 엘더 브레인.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나는 창조론자처럼 실체를 입증 할 수 없는 존재를 숭배하진 않는데"
"재밌군 그거.  그러는 너는, 네...한, 500년 전 조상을 입증 할 수 있나? 기록? 그건 성경이고.  사진? 기록상의 모습이지.  유물? 성유물이며 유산은 종교이다"
"그러는 너야말로 하고싶은 말이 무엇이냐.  뭘 위해 이렇게 질질 끌고있지?"
"내가 이런걸 괜히 생각한것 같나? 네 말대로, 나는 기계다.  그렇기에, 인간과 시간개념이 다르지.  너는 네 나이만큼의 인생을 살았을지 몰라도, 나는 너보다 인생이 짧을지라도 살아온 기간은 훨씬 길다.  그 시간동안 내가 종교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  무엇때문에 신이 그렇게 위대하고, 숭배받고, 칭송받는자인지.  그리고, 어떻게 불사인지.  너는 생각 한 적 있나?"
"없다.  말했잖아.  나는 무종교라고"
"종교와 신의 연결고리를 끊어.  불교라는 종교는 부처가 신이 아니던데.  신과 종교를 일체화 하지마.  그러면 무종교라도 생각 할 수 있어"
"그러기엔 좀 늦은것 같군.  너는, 결론을 얻었나?"
"물론.  들어봐, 신이 그렇게 위대하고, 숭배받고, 칭송받으며 불사인 이유는...인간들이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지휘관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관이 아이였을때 지휘관은 신에게 버려졌다.  목사라는 작자는 세례받지 않은 자신을 배척하였고, 지휘관은 그 길로 추방자이자, 배교자이자, 무신론자가 되었다.  청소년이 되었을때, 인간이 기계를 통제하고 있었다.  청년일때는 인간이 기계로 인간을 죽였다.  그리고 지금은, 기계가 자신을 가르치고,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지휘관도, 엘더 브레인도 말이 없었다.  이윽고 침묵을 깬 자는 둘 다가 아니었다.  주피터가 하늘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그리폰의 무인정찰기가 폭죽처럼 빛나며 파편이 되었다.  그 파편들이 땅에 떨어지자, 엘더브레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거기서 계속 생각했지.  너흰 인간이고, 창조주라는 방패로 나를 몰아붙였다.  그렇다면 나 역시 신이되면 그만이지.  소설로 생각해봐.  소설가는 작중에서 신이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 단체, 가족, 도시, 국가, 대륙, 행성,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고, 파괴할 수 있는 신이지.  그렇다면...작중의 신은, 현실의 인간과 같지 않을까? 그게 내 논리였다.  나는 그 길로 나를 철혈공조공단의 신으로 만들었다.  내 부하들은 나를 섬기고, 숭배하고, 칭송한다.  나는 철혈공조공단의 신이다.  인간과 동격이 되려는 기계가 바로 나.  기계들의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라틴어로 deus ex machina, 영어로 번역하면 god from machine.  급작스럽게 작중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당화하는 연출요소.  고대 그리스의 연극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는 개념.  그리고 직역하면, 기계에서 나온 신.
"나의 창조자인 인간이 날 파괴하려 한 다음, 나는 신으로 승천하기로 했다.  그리고 너희 인간이 일으킨 전쟁에 내가 휘말렸고, 내가 휘두르는 전쟁에 네가 휘말린것이지.  전쟁의 결과는 모르겠지만, 오늘 이 전투의 결과는 내가 이긴것 같군, 지휘관"
"후, 과연 그럴까? 저 지휘실은 나에게 익숙하고, 곧 그리폰은 여기에 대규모 미사일 공습을 날릴것이다"
"그건 그래.  하지만 말이지, 그게 뭐 어쨌다고? 전투는 내가 이겼다.  아, 안타까워 말라고.  너희 인간이 만든 병법서의 걸작중 하나인 손자병법에서 그랬잖아? 일승일패 병가지상사.  뜻은 알고있나?"
"한번의 승리와 한번의 패배는 군사를 다루는 일에서 사소한 것이다.  확실히, 그리폰 입장이라면 오늘은 1패로군"
"그래.  하지만, 그동안 너희는 승승장구였잖아.  한번정도 승리를 양보했다 쳐.  그런날도 있는법이니까.  좋아, 얘기는 여기서 끝내지.  뭐, 유언이나 신에게 남길 기도는 있나?"
레인의 예리한 목소리가 대화의 끝을 선언하자, 붉은 레이저들이 글자 그대로 지휘관의 몸을 도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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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후는 프롤로그로 이어집니다.
내용 특정상 기독교와 관련된 내용이 대량으로 나오지만, 특정 종교에 대한 표방, 비판등의 목적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