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전투를 승리로 장식하고 새로운 식구도 늘어서 떠들썩한 저녁을 보내고 난 다음에 제대편제에 변화가 있었다. 아킬리

나(ak47)가 과거에 같이 지냈다는 나강할매와 같은 팀으로 있고 싶다고하여 수지(m1911)를 빼고 1제대에 집어넣게 되

었다. 수지는 공적으로 인해 신설된 5제대에 속하게 되었고 2제대의 미키(mk23)도 5제대로 빠지고 헬렌(M2HB)이 2제

대 소속이 되었다. 2제대 소속엔 우리팀에서 가장 민첩한 애들이 많아서 강력하지만 장전시간이 긴 기관총인 헬렌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편성한 것이다. 이후에도 새로운 식구들이 생겨났는데 저번 전투때 공적이 전혀 없는데다 엉뚱한데

로 돈을 써서 파산한 어느 지휘관때문에 'm1개런드'라는 애가 합류했다. 개런드를 제외하면 팀동료들은 전투실적이 거

의 없어서 그냥 민간으로 전역하고 개런드는 홀로 이곳에 왔다고 한다.


"M1개런드입니다. 앞으로 지휘관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여타 인형들로 비교하면 평범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우리에겐 저격이 가능한 첫 소총이라서 큰 도움이 되었다. 난 m1개

런드에게 '엠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녀도 크게 싫어하는것 같지않은 분위기라 엠마로 불리게 되었다. 엠마는 바

로 5제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오후엔 인형제조를 통해 벡터라는 아이가 나왔다.


"새로운 지휘관? 그래. 사이좋게 지내자."


그리즐리 이후 2번째 5성등급인 애인데 인형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표정하고 무미건조한 말투를 지녔다.

 그리고 원래 벡터라는 총의 호칭이 크리스벡터라서 그냥 '크리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크리스? 뭐라 불리든 상관없어. 난 어차피 잘 싸우는 상품일 뿐이니까."


크리스는 백발에 어울리게 백치같은 조용함을 지녔으면서도 눈매를 보면 상당히 지적으로 보였다. 어쩌면 크리스는

자신을 전투기계로 여긴다기보다는 미리 인간적인 면을 포기하고 있는듯 보였다. 벡터는 우선 빈자리가 있는 5제대에

 속했고 우연인지 5제대는 전부 미국출신들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본대인 우리 1제대도 얼른 러시아계열로 채워넣어야 겠구먼."


나강할매는 반은 농담으로 그렇게 얘기하면서 왜인지 장(mp40)과 그레타(G3)를 보았다. 구소련계열이 독일과 나쁜

사이라는 이야기가 지금시대에도 아직 통용되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그레타는 무

슨일인지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나중에 독일계열만으로 구성된 팀을 따로 만들어야겠다.


"여하튼 소총에다 기관총에다 5성급인 벡터양까지 모였으니 제대로 된 전력을 갖추겠구먼."


나강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정도 무기체계면 어느정도는 사단규모라고 할수 있을정도니까 말이다. 카리나는 어

제 내가 조금 더 공적을 쌓으면 샷건을 제조할수 있는 중형제조의 권한도 생긴다고 한다. 샷건인형까지 얻으면 어지

간한 중급 지휘관의 작전능력은 따라간다고 얘기했지만 대식가들이 많으니 주의를 당부했다. 난 지금 있는 애들도

잘먹어보이는데도 그 샷건애들의 대식능력은 어떨지 아직까진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64식 기관단총인 슈샨만 합류하면 사실상 소대규모라고 볼수 있겠네. 그런데 슈샨은 재입대라는 특수성때문인

지 오늘까지도 소식이 없어."


난 메이드(g36)양과 포티바(m45)등의 애들에게 새로 온 애들의 환영식을 열어달라고 말한후 슈샨에 대해 알아보려

고 카리나를 찾아갔다.


"지휘관님! 좋은 아침이예요! 아, 아침이 아닌가?"


카리나는 밤샘작업을 했는지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일어나 있었다. 그 때문에 머리칼도 부시시했지만 아는 사이여

서 그런지 개의치않은 것으로 보였다.


"오늘 헬리안씨가 조금 있다가 지휘관님을 호출한다고 하네요. 네? 64식, 아니 슈샨씨에 대한 소식은 아직 본부에서

 재입대에 대한 검토중이라는 것만 알아요."


재입대라지만 하루이상이 걸리는게 이상했다. 그렇더라도 나로선 급할게 없었고 그보단 카리나에게 철혈에 대해 물

어보기로 했다.


"그리폰과 철혈이 싸우는 이유요?"


사실 이곳에 갓 입사한후엔 고철덩이만 몇개 싸우면 되겠지했지만 드문드문 들리는 소문에도 철혈이 인간을 배신하

고 반란을 일으켰다는것과 우리 애들과 같은 인형병사들도 보여서 제대로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지시받는데도 싸우

기보단 적에 대해 확실히 알 필요가 있었다.


"저도 아는게 그리 많지 않은데요.. 그래도 얘기하자면 철혈이 왜 하룻밤사이에 제어를 잃었는지 아시나요?"


모르니까 물어보는 것이지만 카리나는 내가 굳이 답하지 않더라도 대답을 계속 이어갔다.


"들리는 말로는 고등AI를 가진 인형이 배후에서 조종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AI인형은 철혈지휘관에게 복종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공장내의 모든 인형을 컨트롤하게 되었어요. 여기까지는 알려진 사실이고 그 AI인형에 대해선

아직 모든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예요."


본거지가 공장이었으니 그렇게 많은 병력들이 쏟아질수 있는 것이었다. 쉽게 구할수있는 철같은 광물로는 프라울러

등의 철제병기를 만들고 고급기술로는 인형병사들을 만들어 전쟁을 벌이는것 같다.


"그 AI인형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에 대해선 다들 알수가 없다고 해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지휘관님. 철혈과

 그리폰의 최전선은 이쪽이 아니니깐요. 지휘관님은 평소임무에 충실하다가 가끔 부근에서 쳐들어오는 철혈찌끄러

기들을 쫓아내면 충분할 거예요."


카리나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세력인 철혈에 대해선 돈벌이를 할수있는 구실중 하나로 여기는것 같았다. 그들의 계

획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같은 인형들끼리 싸우는것은 좋게 생각되지 않았다. 어제 장이 처음으로 같은 인형인

병사들을 쓰러뜨려서 괴로웠다는데 그때 그곳에 내가 있었다면 어떻게 될런지..


"지휘관님. 헬리안님으로부터 통신이 들어왔어요."


좋은 타이밍으로 헬리안이 날 상념으로부터 꺼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지휘관. 오늘 당신은 특별훈련에 참가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볼때 신입치곤 괜찮은 공적

을 거두었더군요.'


헬리안은 아직 들어온지 얼마 안된 나에게 많은 실전경험을 쌓을 기회와 시간이 부족하다며 본부에서 나를 위한

특별계획을 준비했다고 한다. 아마 가장 공적이 큰 지휘관들부터 키워서 철혈과의 전투에 대비할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곧 강력한 침공이나 전투를 벌일지도 몰랐다.


'이전에 벌인 전투데이터를 참고로 하여 기존의 전장에 모의적군들을 배치했습니다.'


헬리안이 지도를 보여주자 우리들이 지금까지 참가했던 지역들이 고스란히 나왔다. 비슷한게 아니라 그 지역이

맞았다. 아직 철혈들을 몰아낸지 얼마안되어 빈땅이다보니 그곳들을 모의훈련장으로 만든 것이다. 홀로그램이나

 시뮬레이터훈련과는 다르게 물리적으로 치고 박아야 제대로 된 실전경험을 얻는다며 귀한 자원들까지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프라울러나 스카웃같은 고철병기들은 기존의 부품을 재활용하여 만들었는데 인형들은 우리

애들같은 인형이 아니라 움직이는 마네킹에 가까웠다. 전술인형까지 진짜로 만들기엔 예산이 낭비였나보다.


'비록 전장은 같지만 적군의 실력은 이전보다 훨씬 뛰어날 겁니다. 부디 지휘관의 실력을 훌륭하게 증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들도 당신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드릴 테니까요.'


헬리안이 그렇게 전달하고 통신을 끊으려고 하자 기왕에 물어볼거 슈샨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슈샨? 아, 64식 기관단총말이군요. 재입대에다 이전 보호자간의 문제로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지금쯤 지휘관

에게 배속되어 있을테니 돌아가시면 만나실수 있을 겁니다.'


헬리안은 그렇게 필요한 대답만 하고 통신을 종료했다.


"지휘관님! 헬리안님이 이렇게 지휘관 한사람에게만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어요. 이 기회를 잘 잡

아서 부와 명예를 가져보세요!"


카리나가 그렇게 얘기하면서 자신의 상점에 대해서도 신경써달라고 하자 나는 냉큼 숙소로 돌아갔다. 그러자 헬리

안의 말대로 슈샨이 새 식구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휘관님. 또 뵙네요. 앞으로 지휘관님앞에서 공부할수 있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점심겸 오후의 파티라서 금새 음식들은 비워지고 있었고 슈샨은 내가 좋은 차들을 가졌다며 내 찻잎으로 차를 우

리고 있었다. 어차피 슈샨의 아버지로부터 산 것이라서 상관없었고 물어볼게 많았지만 차를 다 마시고 나서도 시

간은 충분했다. 차를 처음 마시는 크리스와 엠마를 비롯한 애들과 그동안 커피를 주로 끓였다는 메이드양도 모두

 감탄할만큼 슈샨의 차우리는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공부를 청하다니..-중국에선 차를 다

루는 일을 공부라고 한다.-


"다들 파티가 끝나자마자 임무를 시작해야 해. 곧 전원이 총 출동하게 될거야. 그런데 이번 임무는 실전이면서도

훈련이니까 크게 위험한 것은 없을거야."


아이들은 모두 의기가 충만해서 큰 걱정은 안해도 되었다. 슈샨은 5제대의 남은 자리를 차지하였고 25명이나 되는

 우리 아이들이 전투를 할 준비를 했다. 그때 헬리안이 또 다시 통신을 했다.


'지휘관. 이번엔 지휘관의 지휘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직접 전투하러 가시지 말아주십시요.'


그렇게 통신이 끊어지자 난 다시 내 검을 내려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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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씨. 당신의 인형, 아니 따님인 64식을 다시 받아주는데도 절차가 복잡했습니다. 전역할때도 재입대할때도 자신

이 쓰던 총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리폰소속이 아니면서도 무장한 인형들을 또 받아들이라니요?"


그리폰의 어느 고위간부가 슈샨의 아버지와 함께 통신을 하고 있었다. 슈샨의 아버지인 린 유안뱌오는 중국본토에

서 인형들을 몇명 보낸다고 하며 그리폰에서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중국에서 오는 인형들은 전술인형의 제작을 담

당하는 16LAB의 중국지점에서 제작한 것으로 중국기술과 자본이 투입된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다

른 전술인형들과 다르게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점 때문에 그리폰에선 받아들이기 꺼려했다.


"따님도 그리폰을 나가고나서 암살과 관련된 여러 혐의가 있는걸로 압니다. 우린 민간경호단체지, 정치적인 단체가

 아니란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입은 곧 닫힐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그의 계좌로 거액의 돈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돈

이 들어왔다면 이 사실을 외부에 언제든 알릴수도 있다는 뜻도 되었다.


"이.. 무슨,"


유안뱌오는 통신너머로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말을 이어갔다.


"뇌물이 아니라 우리 애들을 잘 돌봐달라는 위탁료일세. 그리폰이 이득이 아닌 진심으로 인형아이들을 잘 대우해

준다고해서 보내는 것일세. 물론 아이들의 지휘관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그에게만 맡겨달라는 것이 내 마지막 부

탁이네."


고위간부에게 중국아이들을 맡길 지휘관의 사진을 보여주자 그는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바로 얼마전에 검을

들고 직접 전술인형들과 함께 전투를 하는 그 지휘관이었기 때문이었다. 입사할때부터 지금까지 꾀죄죄한 야상코

트만을 입고 다녔고 검 하나에만 의지해 싸우는 괴짜로만 여겼던 그가 이렇게 큰 거물과 인연이 있을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엔 그리폰의 사장과 헬리안등 고위지도층들도 눈여겨보고 있는 사내이기도 했다.


"정치랑 무관하게 순수한 마음으로 돌봐달라는 것일세. 그저 도구라던가 욕구처리가 아닌, 인형이지만 같은 사람으

로 봐줄수 있는곳이 그곳 그리폰이자 그곳에 속한 지휘관의 인간성도 믿을만해서 그렇다네."


고위간부는 유안뱌오의 말을 전적으로 믿긴 힘들었지만 적어도 64식 모델을 친딸처럼 여긴다는것은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받아들이죠. 하지만 그곳에서 오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제가 아닌 전적으로 그 지휘관에게 지울 겁

니다. 그가 지휘를 잘못하여 중국애들을 잃더라도 우릴 원망하시면 안됩니다."


고위간부가 그렇게 통신을 끊자 유안뱌오는 거의 마셔간 차에 푸른 하늘이 맺힌 것이 보였다.


"이제 우리들의 힘으로는 우리 중화를 일으키기 힘들어. 그 애들에게 전적으로 맡길수밖에.."


완전히 정치적이지 않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딸인 슈샨이 좀더 자유롭게 살았으면 하는것은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