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법사 이비]


1. 


 광휘의 루가 갓 나와 팔라라의 찬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그 시절에 있던 일입니다.


 그때 저는 굉장히 작은 길드에 있었는데 어느날 어떤 사람이 길드 운영진을 찾는 것입니다.
 길마는 거의 접속만 하고 나가서 없기 때문에 제가 대신 클레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클레임의 내용.
 
 "그 길드 이비가 레이드에서 딜을 안합니다. 주의주세요'

 그 이비는 마영전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뉴비였습니다.
 뉴비는 가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기행을 벌이고는 하죠.

 일단 저는 이비를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이비님, 이비님, 이비 운용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열심히요."

 열심히.
 인간적으로 매우 훌륭한 대답이지만 제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습니다.

 "아뇨, 저기 이비님이 레이드에서 딜을 안한다고 클레임이 들어와서... 그래서 어떻게 딜하시는지 궁금해서요."
 "??? 저 열심히 딜하는데요?"

 열심히.
 두번이나 나왔습니다.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투데이나 같이 가실래요. 오늘 벤체너 정상 투데이네요. 여기 재밌어요."

 벤체너 정상.
 다양한 몬스터가 나오고 맵이 충분히 긴 곳.
 딜사이클에 문제가 있더라고 해도 뉴비에게 가르쳐주기 충분한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이비의 대답이 믿음직스러웠습니다.


 2.


 벤체너 정상.
 저는 이 이비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비가 지닌 치명적인 문제.
 그것은, 파이어 마법만을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비가 파이어 마법으로 딜을 하고 라이트닝 마법으로 스태미너를 수급하며 아이스 마법으로 쿨타임 사이의 간극을 메꾼다는 건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비의 움직임은 남달랐습니다.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면서도 절대로 라이트닝 볼트를 쓰지 않고, 엘프 앞에서 헉헉거리며 집중하여 파이어 마법을 날리는 이비...

 뭐지!?

 "저기, 이비님, 라이트닝 볼트를 두대 맞히면 스태미너가 회복되어요. 저기 잡몹을 상대로 한번 해보세요."

 하지만 이비는 스태프를 든 채 서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비님?"
 "...수 없어요."
 "네?"
 "저는 라이트닝 볼트를 쓸 수 없어요."

 어째서?
 당황한 저를 보고 이비가 말했습니다.


 "저는 불마법사거든요."



 3.


 저는 불마법사거든요.
 아니 미친 이 게임에 무슨 불마법사입니까.
 이비는 삼대원소 다 쓰는 원소 마법사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이비가 지닌 불마법사의 신념은 생각보다 강해보였습니다.
 저는 조바심을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뉴비라서 보급셋을 입고 있을 뿐이고 순회에 갈 수 있는 스펙도 안됩니다. 순회를 돌거나 아스테라에 진입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터. 6종과 4종을 빠전으로 들락거리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처참한 딜링과 들어오지 않는 코어에 좌절하여, 원소마법사로 각성하게 될거라 생각했습니다. 진정한 이비로 각성할거라고요.

 하지만 이비가 지닌 불마법사의 신념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레이드를 돌 때도 이비는 파이어 이외의 마법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비가 '메테오'를 불마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레알 빠전 들어가서 홀딩기 안쓰면 얘 어쩔뻔. 사실 여기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메테오는 땅속성인거 같은데..."
 "불!"
 "운석이니까 땅..."
 "메테오는 불!"

 저는 레이드에 닥칠 재앙을 막아냈습니다.
 이건 레알 칭찬받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망의 네반 결사대...
 결사대야 뭐 사람들도 많고, 이분 컨 실력으로 봤을 때 금방 썩딸 띄우고 누울테니 그 기상천외한 플레이 방식이 티가 나지 않을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재앙은 다른 형태로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다른유저 : 이비님, 펄주세요, 펄.
 이비 : 죄송해요. 제가 펄을 못써요.

 그렇습니다.
 이 이비는 불마법사입니다.
 당연히 회복마법을 못씁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이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른유저 : 펄을 못쓴다는게 말이 돼요? 어서 쓰세요!
 다른유저 : 재생! 재생! 으어어어!
 다른유저 : F3! 도움! 부활주세요!

 결사대에 모인 수많은 용병들.
 그들은 모두 불마법사에게 회복마법을 쓰기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아 지금이라도 빨리 길탈하고 모른척할까... 
 저는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우리 이비가 좀 아파요...

 이비는 사념의 바다 한가운데 멍하니 섰습니다.
 리시타가 네반 새똥에 맞아 헉헉거리다 장판 밟고 죽는 동안
 이비는 고뇌에 빠진 듯했습니다. 사방에서 들리는 아비규환...
 구원을 원하는 용병의 목소리...

 저는 길드 채팅을 통해 외쳤습니다.

 "이비님, 제발! 지금은 펄을 쓸 때에요! 결사대만큼은! 님 이러다 사사게 가요!"

 그 순간이었습니다.
 이비가 스태프를 들어올렸습니다. 이비는 스태프로 바닥을 한번 콰앙 찍은 순간, 그의 손 안에서 오브와도 같은 찬란한 빛을 발하는 다섯개의 구체가 형성되어 주변에 뿌려졌습니다.

 다른유저 : 펄이다! 펄!
 다른유저 : 후욱후욱후욱후욱!
 다른유저 : 엄마, 형들이 내 펄 다 뺏어먹었어!

 단 한번의 펄.
 그 펄을 띄운 그 순간, 이비는 네반의 창에 몸이 관통되어 쓰러졌습니다. 썩딸을 띄우고 말았습니다.

 
 결사대 전투가 끝난 이후, 이비는 아무 말 없이 로그아웃했습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 자동탈퇴조치가 취해지는 그날까지도 길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네반 결사대... 그는 어떤 심경으로 펄을 썼던 것이었을까요.
 불마법사의 신념을 꺾고 회복마법을 썼다,
 그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마영전을 접게 된 것이었을까요.


 지금쯤 그 이비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부디 불마법만 쓸 수 있는...
 다른 게임을 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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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 실화는 아님
 드라마틱하게 소설식으로 재구성해서 각색 많이 들어감. 리시타 죽는 장면같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