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트위터에 쓰고, 별백금님이 붙여주셨고, 제가 다시 사진을 붙였습니다.

저는 하스스톤에서는 잠시 손을 떼고 있는 카드게임 선수입니다. 현재 주종목은 Faeria(페어리아). 물론 하스스톤이 다시 마음에 드는 게임이 되고 돈 냄새가 나면 다시 돌아올 생각이긴 합니다.

어느날 오후에 제가 피씨방에 윤재(Capilano 선수)와 함께 갔는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조금 구경하며 지금 하스스톤이라는 게임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에는 윤재가 필드를 완전히 밀고 있길래 "이건 이겼네"라고 말하니 "이거 5:5예요. 저는 요그 없고 상대는 요그 아직 안 냈으니 5:5예요." 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상대 요그가 나오더니 필드가 작살났고 겨우 본체에 데미지를 넣어 이겼습니다. 5:5 맞더라고요.

그날 밤, 전부터 생각하던 어떤 모델이 하스스톤의 현 상황을 설명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트위터에 글을 좀 써봤습니다. 트위터에 적은 이유는 140자로 한 문단을 제한하면서 글을 압축시킬 수 있기 때문. 트위터로 보고싶은 분은 원문을(https://mobile.twitter.com/Gravekper/status/778621548437438464 )직접 보고 오셔도 이 글을 읽는 것과 비슷합니다. 트위터에 쓴 글을 산문으로 바꿔주신 건 별백금님입니다. 별백금님 좋아하는 햄버거 말씀하시면 하나 보내드릴게요.


이 아래부터 본문입니다.

블리자드에서 하스스톤 밸런스 담당자를 새로 뽑는다고 한다. 전설 유저이며, 2년 이상 게임 제작 경력이 있는 사람 등의 조건이 붙어 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수가 보는 입장에서 지금 하스스톤은 너무 많이 망가져 있고, 많이 고쳐야 한다.

지원서에는 이런 문제가 있다."하스스톤에서 제일 잘 디자인된 카드를 뽑아라". 나는 지원할 자격도 없고 지원할 생각도 없지만 만약 지원한다면 아래 다섯 장을 뽑을 것이다.



대지 고리회 선견자
노움 발명가
절개
개들을 풀어라
벼락


이 카드들을 뽑은 이유를 하스스톤이라는 게임을 어떤 모델에 비유해 설명하려고 한다.
개발자가 하나의 성을 똑같이 두 개 만들었다. 하스스톤은 두 플레이어가 만나 각자 성을 하나씩 받고 맨몸에 망치를 들고 누가 더 잘 부수는지를 겨루는 게임이다.



붐, 벌목기와 같은 카드는 성벽에 티나게 보이는 금이다. 이런 금을 때리는 건 벽을 깨는 데에 거의 항상 도움이 된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이런 금을 발견하면 반드시 때릴 것이고, 먼저 찾는 사람은 유리해진다. 그래서 7턴에 붐이 나오면 바로 낸다.



심지어 어떤 카드들은 커다란 금처럼 보이는데 내려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한번에 성이 와장창 무너지기도 하고, 꿈적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꿈쩍도 하지 않으면 플레이어는 짜증을 낸다. 영혼 발톱이나 임프 폭발같은 카드가 그런 경우다.



반면,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곳도 있다. 성을 빨리 깨는 게 목적이라면 그런 곳은 때릴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용암 광전사와 위습. 사실 위습은 밥통덱 등에 쓸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쓸모없는 카드는 아니고 쓸모없는 카드의 예시로 적합하진 않지만, 넣고 싶어서 넣었다. 위습만 황금인 건 일부러 그런 거다.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지금 하스스톤이 건강하지 못한 것은 벽에 저런 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금들은 시너지를 내기도 한다. 하나를 깨면 다른 쪽은 더 잘 쪼개진다. 그런걸 조금만 건드리면 벽이 박살난다. 이런 식으로.



금이 너무 많으면, 벽에서 금만 빨리 찾아내면 이기는 금빨X망겜이 된다. 성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할 필요도 없다. 그냥 금을 빨리 찾아서 때리면 이긴다. 그런 게임은 재미가 없다. 우리는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성을 부숴보고 싶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성을 부술 수 있으면 재미있을 거다. 시작하자마자 가로로 벽을 쭉 때려 그 윗쪽이 무너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약한 곳을 여기저기 찾아 성이 무너지기 쉬운 구조가 되게 유도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아까처럼 금만 찾아다닐 수도 있다.

이런 걸 전략이라고 부른다. 가능한 전략이 많을수록 성을 부수는 우리는 즐거워진다. 내 상대가 어떤 전략을 쓸 지 기대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전략들이 비슷하게 강해야 한다. 금만 때리는 전략이 너무 강하면 맨날 금 때리는 사람만 만난다.

그래서 어떤 카드, 또는 벽돌이 저런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까? 무른 벽돌은 깨기 쉬운 대신 다른 벽돌을 깨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단단한 벽돌을 깨면 그만큼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무른 벽돌을 만드는 건 비교적으로 쉽다. 적당히 강하고 다른 카드 도움을 쉽게 받지 않는 카드면 된다. 너무 강하면 금이 되고 약하면 아무도 깨려 하지 않는 단단한 벽돌이 된다. 라그나로스나 서리바람 설인같은 카드가 좋은 무른 카드의 예시다.

좋은 단단한 벽돌은 좀 더 어렵다. 적당히 약하고 조건부로 강해야 한다. 시너지는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있으니 성공하면 좀 많이 강해야 한다. 위에 뽑은 카드들은 좋은 단단한 벽돌이라 생각하고 뽑은 것이다. 설명 시작한다. 다들 오래 기다렸다

1) 대지 고리회 선견자



대지 고리회 선견자는 내가 하스스톤 카드들 중 제일 좋아한다. 평소에는 못쓸 물건은 아닌 3/3이다. 상대가 내 영웅 체력을 노리는 덱일 때는 조금 강한 카드가 된다. 필드에 선견자보다 큰 하수인이 지난 턴에 나온 상태에서는 훨씬 강한 카드가 된다. 두 시너지가 하나는 내게 의존하고, 하나는 상대에게 의존한다. 어떤 덱들에서는 테크 카드이면서 어떤 덱들에서는 덱 시너지의 일부가 되고 어떤 덱들은 둘 다 적용된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도 가혹하게 강하지는 않다.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2) 노움 발명가



노움 발명가는 4코스트 카드로서는 턱없이 약하다. 하지만 1이나 2코스트 카드는 혼자서 두장쯤 상대할 수 있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카드를 아주 빠르게 뽑고자 하는 덱이 카드를 뽑으며 낼 수 있는 하수인 중 위니 둘을 상대하는 제일 작은 하수인이다. 5코스트 하수인인 하늘빛 비룡이 일반적으로 더 좋은 카드지만, 주문 공격력이 전혀 필요없는 덱이라면 하늘빛 비룡의 공격력 4는 상대에 따라 사치스러운 것이 되기도 한다. 코스트가 하나 낮은 노움 발명가가 좋은 경우가 분명히 존재한다.
발명가를 제일 잘 활용한 덱이 옛 손님 덱이다. 4턴에 죽음의 이빨이 없는 경우, 또는 이미 동전 죽음의 이빨을 한 경우에 5턴 손님 콤보 이전에 카드를 한 장 더 뽑을 수 있다. 좋은 카드의 활용예가 역사상 제일 망가진 덱이라는 건 아이러니하다.

3)절개



절개가 약한 카드라는 건 내 친구 서른일곱 명에게 물어도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스스톤에서 한 턴에 두 장 이상 들이붓는 일은 대개 지양해야 한다.(물론 GvG 이전 이야기다.) 그리해서 다른 직업보다 1점정도 강하다니, 약하다.

절개가 강해지는 이유는 한 턴에 여러 카드를 쓰게 하는 도적의 어떤 다른 카드와도 쓸 수 있으며 무슨 용도로든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가짐과 쓰면 0마나 4데미지를 넣을 수 있고, 기습과 같이 쓰면 6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 마무리용으로도 좋다. 그렇게 다른 카드와 함께 강해진 절개는 도적의 핵심 전략인 Swing(한 턴에 많은 카드를 사용해 필드 주도권에 큰 변화를 주는 것)에 큰 도움이 된다. 가끔은 2데미지로 급한 상황을 처리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4)개들을 풀어라



개들을 풀어라는 일반적인 광역기 주문이 없는 사냥꾼이 상대가 여러 장의 생물을 소환할 때 대응하기 위한 도구이다. 일반적으로는 적 모든 생물들마다 1정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별로 강하지 않다. 피해 대신 돌진 하수인을 준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개풀은 여러가지 카드와 함께 사용돼 더 강한 효과를 낸다. 단검 곡예사, 레오크와 같은 일반 버프 외에도 사냥개조련사와 같은 야수 버프까지 받는다. 물론 그런 콤보를 손에 갖추는 건 쉽지 않기에 사용자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좋다.


5)벼락



벼락은 주술사의 가렵던 곳을 긁어준 카드라고 생각한다. 마나 효율은 그다지 좋지 않다. 번개 화살보다 1코스트 더 사용해 1데미지 더 많은 피해를 주지만 영웅을 때릴 수 없다. 용암폭발보다 싸지만 영웅을 때릴 수 없다.
하지만 벼락은 기존의 다른 카드들이 가지고 있지 않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번개 화살처럼 과부하 직후 적은 마나로 끼워넣기 좋은 작은 코스트이고 번개 화살과 차별화된 정리 대상을 가지고 있다. 같은 목적으로 사용하던 파지직은 불안정하고 용폭은 비싸다.


위의 5장같은 카드들이 건강한 게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데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절히 강한 카드들과 적절히 약하고 조화로운 카드들. 저런 적절한 벽돌들로 된 적절한 성은 적절한 부수는 보람이 생긴다.

물론 성을 부수는 모델이 완벽한 모델은 아니다. 이 모델은 상성관계와 유저 사이의 상호작용을 배제한 것이기 때문에 하스스톤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내가 설명하고 싶은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모델이니 이정도면 적절.. 아니 적당한 것 같다.

나중에 추가: 이 모델에서 요그사론은 금 수준이 아니라 성벽에 나있는 커다란 구멍이다.

올리기 직전에 추가: 익사 보고 다섯장 뽑으라고 하면 요그사론 넣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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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읽어주셨다면 좋겠습니다. 글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을 환영합니다. 다만 "하스스톤 몇달동안 손대지도 않은 어머니가 멀록이고 아버지가 고블린인 아만보 녀석아" 같은 말은 제끼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제 방송도 한번씩 체크해주시길. 요즘은 하스스톤 말고 Faeria라는 신작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곧 한국어 지원 예정이기도 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무수히 많은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게임입니다. 아래에 있는 제 프로필에서 링크 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추천사:



이렇게 올리라고 해준 두 선수에게 감사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별백금님께 햄버거 쿠폰 보내러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