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롤스터가! 역경을 딛고! 드디어 우승을~ 차치합니다~~~!"

폭죽을 터트리는 스태프도 화들짝 놀랄 만큼 우렁찬 목소리가 우승을 외친다. 뒤이어 침착한, 그러나 약간은 벅찬 목소리가 장내에 흘렀다.

"예. 정말 사연이 많은 팀이죠. 그중에서도 스코어 선수는..."

그러나 아무래도 들리지가 않는다. 하루가 멀다 격려해주던 해설진과, 자신이 우승한 듯 함께 기뻐해주는 팬의 목소리가 이렇게나 들리지 않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승 단상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밝구나.
나는 그저 멍하니 그 생각만을 했다.

"동빈아."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스멥이었다.

"빚은 갚았다."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보면 이 녀석과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허나 악수를 빙자해 손가락을 분질러버리려던 찰나, 누군가가 내 어깨를 짚었다.

"동빈."

아아.
무심코 눈을 가렸다.
숱한 역경을 지나서도 그의 미소는 빛을 잃지 않았다. 우승단상의 스포트라이트는 눈부시게 빛났다. 허나 그 미소에 비할 수는 없었다.

"고통에서 해방되었군요."
"원석아..."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싶지만, 아직도 용서할 중생이 많아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래. 알고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석이는 천천히 미소를 짓고 하늘로 승천했다.

"그런데 감독님은 어디 계시지?"

마타가 두리번거렸다. 그것에 알파카가 대답하려던 찰나, 한동안 잊고 있었던 우렁찬 목소리가 우리를 가리켰다.

"KT 선수들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이게 언제 내 손에 들려있었지? 나는 손에 들린 커다란 상금 표지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이게 목적이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기억은 어느새 내 손의 감촉과 함께 잊혀져있었다.

"그럼 스코어 선수 인터뷰를... 어라?"
"고돈빈?"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혁규였다.

"무쓴 일임이까? 돈빈의 모미 히미하게..."
"걱정 마, 혁규야."
"......."

혁규는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고, 그제서야 원석이가 없어졌다는 것을 눈치챈 듯 외쳤다.

"이 씹새끼야! 가지마! 우릴 떠나지 않는다고 했잖아!"
"...혁규야."

마타가 혁규의 어깨를 잡았다. 그 바람에 혁규는 헛디뎌 넘어져버렸다. 허나 그러면서도 내 발목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단지 그 손은, 이미 내 몸에 닿지 않았다.
혁규는 허공을 꽉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게 한참을 일어나지 않다가, 결국은 관중 앞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뭐야?"
"무슨 일이지?"
"연출인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그럼, 스코어 선수의, 인터뷰가... 있겠습니다...!"

한 사람만은 우렁찬 목소리를 잊지 않았다. 이미 다 알고 계실 텐데. 참 대단하신 분이다. 하지만 그분마저도 종래는 안경을 벗고 눈물을 한 번 훔쳐야만 했다.

어느새 내가 그만큼의 존재가 되었는지.
돌이켜보면 참 아득한 여정인데, 그러고보면 이것이 그 주마등이라는 것인가.

이와중에 탑은 보이지 않는다.
대벌레새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몰라 일단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이 단상에는 누군가가 올라올 것이다. E스포츠는 영원하니까.
단지, 거기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정글러가 있다는 것을.
앞서간 이가 있다는 것을.
그것만 기억해준다면, 난 아무런 미련 없이 사라질 수 있었다.

그랬을 텐데...

"정말... 감사했습니다...! 팬 여러분...!"

눈물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나는 원석이처럼 되지는 못했다.
혁규의 울부짖는 목소리도 이젠 너무나 멀리 들린다.
KT. 그 이름 아래 땀흘린 것도 어언 5년.
Score.
나는 여기. 승리의 자리에 있었다.




"결국... 나로선 막을 수 없었다."

금연구역일 터인 단상 뒤편, 쓸쓸한 담배연기가 피어오른다.
명장이라고 불리는 그는,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다.

"그뿐인 이야기다."

스스로를 타이르는 듯한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작았다.
담뱃재를 털고, 그는 천천히 경기장을 뒤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