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글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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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들 중 가장 돋보이는 챔피언 중 하나가 에코입니다.


지난 16일 LCK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SKT ‘Faker’ 이상혁 선수가 미드 에코를 사용하여 KT에게 승리를 따냈고, 18일 NA LCS 결승에서도 1, 3경기 CLG ‘Huhi’ 최재현 선수가 미드 에코를, 5경기에서 CLG ‘Darshan’ 선수가 탑 에코를 픽해, 결국 TSM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에코가 등장하지 않은 나머지 경기들에서, 에코는 거의 밴 상태였습니다. 오늘은 이 에코에 대해서 더 자세히 관찰해볼까 합니다. 바로 지난 플레이오프 경기였던 SKT T1 vs KT의 경기로 말이죠. 3경기를 되짚어 보면서 과연 미드 에코가 좋은 챔피언인지, 어떤 유불리가 있고 실제 활용은 어떻게 되는지 자세한 부분까지 살펴 보겠습니다.

 

1-1. 픽 & 밴 구도: 탑 에코?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SKT Faker의 미드 에코 픽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딜탱형 템빌딩을 바탕으로도 강력한 딜링을 보여줌과 동시에, 특유의 치고 빠지기로 어그로 관리에 능한 에코는 현재 탑 라인 챔피언 중 최상위 티어에 분류되어 있습니다. 이번뿐만 아니라, 두 번의 버프 이후 수없이 밴 목록에 이름을 올렸죠.


SKT는 3경기에서 에코 밴이 풀리자 별 고민 없이 1픽으로 에코를 가져갑니다. SKT가 애초부터 미드 에코를 쓰려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탑 에코를 생각했던게 맞고, 추후 밴픽 과정에서 유연한 선택을 한 것이라 보여지는데요, 천천히 짚어보죠. 다음으로 이어지는 픽은 KT의 코르키와 그레이브즈. 현재 정글 픽을 양분하고 있는 정글 챔피언은 그레이브즈와 니달리입니다.



   ▲  에코가 밴에서 풀리자 곧바로 1픽으로 가져가는 SKT (출처 : OGN)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요, 탑 or 미드 에코의 이지선다가 기존부터 있었다면 사실 KT의 코르키 픽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현우 해설도 SKT 측에서 에코가 선택되자 잠시‘가장 무난한 건 그냥 시비르, 마오카이 바로 가져가버리는건데’ 라고 언급합니다. 


KT의 선택은 달랐죠. 그레이브즈를 뽑은 이유는 위와 같고, 안전한 선택은 마오카이이긴 합니다. 하지만, 결승 티켓을 두고 2대0으로 뒤지고 있는 안좋은 상황. 여기에서 그저 안전한, 혹은 무난한 길로만 가는 것이 괜찮을까? KT 측은 고민에 빠집니다. 여지껏 대부분의 에코들이 탑에 갔듯, 에코의 포지션이 탑이라는게 사실이면, 직후에 KT가 마오카이 같은 탑 챔피언 뽑게 되었을 시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에코 상대에 좋고, 현재 최상위 티어인 탑 마오카이를 ‘확정적’으로 가져오기

(2) 카운터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팀 다른 포지션의 픽밴 노출 줄이기

 

물론, 대신 포기할 것도 있습니다. 에코를 빼앗긴 대신 얻게 된, 다른 라인에서 유리한 챔피언을 먼저 가져올 수 있는 두 개의 픽 권한 중 하나를 내려놓아야 하죠. 챔피언 폭이 극도로 좁은 솔랭과는 달리, 프로 레벨에서의 픽밴 구도에서는 블루 1픽에게 가장 좋은 챔피언 하나를 빼앗긴다면, 퍼플 1, 2픽은 다음으로 우선되는 챔피언 둘을 가져오는 것으로 상쇄하는 것이 전략적인 선택입니다. 


탑을 빼앗겼는데 그에 맞서는 탑을 픽하는 것은 챔프 폭이 좁은 상태에서 지지않기 위한 단순 맞대응일 뿐, 승리를 가져오는 선택 혹은 픽밴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KT는 ‘굳이 마오카이를 뽑지 않아도, 마오카이는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한 듯 보입니다. 탑 에코가 확실하다면, SKT가 마오카이를 뽑을 일은 없으니까요. 에코라는 좋은 챔피언을 빼앗긴 KT는 대신 코르키를 선택하며 미드 or 봇 이지선다를 강제하여 픽밴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1-2. 픽 & 밴 구도: KT, 왜 안 마오카이요?
이후 SKT는 시비르, 트런들을 가져가는데, 아직 미드 에코를 고려하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에코를 먼저 뽑은 만큼 KT가 3, 4픽으로 마오카이를 가져갈 거라 생각한 듯 싶고, 그래서 알리스타, 브라움 대신 마오카이 같은 하드탱커의 위력을 상쇄할 수 있는 트런들을 선택했죠. 하지만 KT의 선택은 마오카이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봇라인 – 루시안과 브라움으로 받아치죠. 이로써 3원딜 체제를 완성하고, 탑 챔피언은 선택되지 않은 채 5픽으로 남게 됩니다.


‘Ssumday’ 김찬호 선수의 최근 챔프 폭을 잠시 살펴보면, 뽀삐, 마오카이, 피즈, 케넨, 에코 정도입니다. 이 중 가장 주력인 뽀삐는 저격밴, 에코는 SKT가 가져갔고, 피즈 같은 경우 바로 전 1경기에서 ‘Duke’ 이호성 선수의 마오카이 상대로 역부족이었으며, 무엇보다 탑 에코를 상대로 좋은 픽은 아닙니다. 


남아 있는 유의미한 옵션은 케넨과 마오카이 정도인데, 케넨 같은 경우 선픽할 시 매우 강력한 카운터가 들어오기 때문에, 항상 픽밴 후반부에 등장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케넨을 선택할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지만, SKT에게 너무 정직하게 마오카이 픽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랬는지 끝까지 탑을 보여주지 않았네요.


                

▲ 에코를 빼앗긴 대신, 니달리/그레이브즈 중 하나 남은 상위 티어 정글러, 그레이브즈를 먼저 가져가는 KT.
    이후 끝까지 보여주기 싫었던 것인지, KT 탑 포지션은 5픽으로 밀려난다. (출처 : OGN)

 

KT가 정말로 케넨 픽을 할 시, 반드시 고려해야할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SKT도 마오카이를 픽하지 않아야 한다.’ 는 조건이요. 마오카이는 현재 최고의 탑 챔프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케넨의 궁극기를 묶을 수 있는 카운터 챔피언이기도 하거든요. 결론적으로 KT는 SKT의 저 에코가 탑이라면, 마오카이가 나올리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SKT야, 너네 우리가 탑 마오카이 할 것처럼 보이지? 안 그럴수도 있어. 피즈나 케넨이 있다구!’ 하고 자신들이 픽밴을 꼬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Ssumday가 픽할만한 챔피언이 마땅찮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걸 수도 있구요. 그렇지 않고서는 SKT의 봇라인이 확정된 상태에서, 굳이 같은 봇라인을 뽑으며, 5픽까지 마오카이를 픽하지 않고 열어둘 필요가 없거든요.

 

1-3.    픽 & 밴 구도: Faker의 통수, 에코는 내가 할꺼임!
3, 4픽에는 마오카이가 넘어갈 줄 알았던 SKT 측도, 마오카이가 아직까지 남아있자 여러 커뮤니케이션이 오갔을 겁니다. ‘마오카이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왜 마오카이를 안가져가지? 도대체 뭘 뽑으려고 그러지? 정말로 케넨? 아니면 1경기의 피즈?’ 이런 생각들이요. 그리고 SKT 측 브레인은 결국 이 질문에 도달했을 겁니다. ‘마오카이, 우리가 가져올 수 있나?’ 그리고 Faker가 대답했겠죠. ‘네, 가져와도 됩니다.’
           


▲  미드 에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탑 챔피언 선택을 5픽으로 미룬 KT를 응징하는 SKT의 묘수. (출처 : OGN)


2번의 버프 이후, 미드 에코는 최근 경기에서 검증된 적이 없었습니다. 고려 가치가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미드 에코는 아직 연구 단계였고 평가는 사람마다 조금씩 엇갈리고 있었죠. 탑과는 달리 미드에서는 에코의 라인전이 녹록치 않거든요. 깜짝 픽으로 언제나 관중을 놀래키던 Faker는 이번에도 Duke에게 마오카이를 쥐어주며, 동시에 상대 Ssumday의 선택을 제한해서 다시 한 번 놀라움을 선사했습니다. 


덕분에 Faker는 어려운 라인전을 망하지 않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무거운 과제를 짊어지게 되었지만, 사실 2대0의 여유로운 경기 스코어가 SKT에게 웃어주고 있었으니 이런 도전적인 픽을 하기에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2-1.    미드 에코의 라인전 난이도
여태까지 미드 에코가 잘 보이지 않았던 이유, 왜일까요?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라인전 난이도가 만만치 않습니다. 생존력 측면에서는 괜찮은 편이지만, 원거리 챔피언을 자주 상대해야 하는 미드 라인에서 근접 챔피언인 에코로 CS를 챙기는 게 굉장히 어려운 편이거든요. 
             


▲ 라인 정리와 CS 수급에 필수적인 시간의 톱니바퀴(Q).
어그로 핑퐁과 한타시 딜러 암살자, 라인 CS 수급능력이 르블랑 운영과 많이 닮아있다. (출처 : OGN)


실 Q 자체로는 미니언 정리에 나쁘지 않은 스킬입니다. (뛰어난 편도 아니지만…) 그러나 Q를 미니언 정리하는데에만 쓰면, 조금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초반 1대1 솔로 라인전에서 핵심인, ‘딜교환’에서 말이죠. 이것에 대해 짚어보기 전에 에코의 주력 스킬 콤보를 살펴보죠. 

(1)    예상되는 교전 지역에 W, 평행 시간 교차를 멀리 던져둡니다.
(2)    E, 시간 도약으로 W를 깔아둔 지점으로 이동함과 동시에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 평타로 패시브 1타를 만들어 냅니다.
(3)    가장 최근접 상태에서 Q를 던져 스킬샷이 빗나갈 확률을 줄이면서 패시브 2타를 만들어 내고, 상대가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면 다음 평타로 패시브 3타를 만들어 냅니다. 
(4)    만약 거리를 벌렸다면, 멀찍히 날아가 있는 Q가 돌아오면서 3타를 기대해 볼수도 있지만 맞추기 어렵긴 합니다. 대신 Q에 슬로우가 있어, 상대 챔피언이 탈출기를 쓰지 않는다면, 후속 평타가 어렵진 않습니다. 
(5)    위의 과정 중에 에코도 데미지를 입게 되지만, W 영역 안이라면 한발 늦게 발동되는 실드가 어느정도 피해를 상쇄해주며 손해보지 않는 딜교환을 하게 됩니다.

 

Q라는 스킬의 투사 속도는 굉장히 느리기 때문에, 왠만큼 근접하지 않으면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E-Q의 콤보가 가장 기초적인 에코의 콤보가 되고, 패시브까지 손쉽게 터뜨려 주기 떄문에 Q 없이는 정상적인 딜교환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 딜교환 시 에코의 스킬 콤보에 필수적인 시간의 톱니바퀴(Q). (출처 : OGN)

 

혹시 에코의 이런 매커니즘에서 문제를 찾아내지 못하셨나요? 에코의 문제점은 바로 딜교환과 미니언 정리에 모두 Q 스킬, 시간의 톱니바퀴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에코는 매번 Q 스킬을 쓸 때마다 미니언에 쓸지, 딜교환에 쓸지 항상 선택을 강요 당해야 되고, 게다가 이를 상쇄해줄 다른 스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미니언을 먹어야할 상황에 딜교환에 Q를 쓰면 CS를 손해보게 되고, 반대로 딜교환을 해야할 상황에 미니언에 Q를 쓰면 딜교환에서 크게 손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손해 계산을 쉬지 않고 예측해야되고, 한 번만 실패해도 굉장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상대 챔피언의 유효 사거리, 에코 자체의 거리 감각, 특유의 CS 습득법 등 꽤 고난도의 숙련을 요구하는 챔피언입니다. 


게다가 근접 대쉬 챔피언이라 꽤나 라인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데 의외로 탈출기가 없어(E 스킬은 진입기) 이동기 없는 뚜벅이 챔피언처럼 상대 갱킹에 대한 염려도 해야하는 편이죠. 탑에서는 서로가 근접 챔피언인 경우가 많고, 몸이 약한 AP 에코보다 탱키한 템빌딩을 하기 때문에 미드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거든요.

 

2-2.    Faker의 도전 과제: vs 코르키, 어떻게 풀어나갈까?
이런 에코를 가지고 Faker는 어떻게 풀어나갔을까요? 최근에 미드 에코를 자주 접하지 못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코르키가 우월한 사거리를 바탕으로 에코를 엄청 괴롭힐거라 예측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Faker가 찾아낸 미드 에코 파훼법은 꽤나 저돌적이었습니다. 라인전 운영에 세 가지 조건을 걸었죠.

(1)    거리를 충분히 벌려 코르키의 사거리 밖에서 Q로 미니언들을 친다. CS 수급보단 밀리지 않게 푸시를 하는 것이 목적. 이 과정에서 잃은 소량의 CS는 과감히 포기한다. 
(2)    코르키가 스킬이 빠지기 전에는 싸움을 걸지 않는다. 만약 코르키가 먼저 스킬(특히 Q)로 에코를 먼저 견제하려 하면, E로 스킬을 피하면서 거리를 좁혀 맞교환을 한다.
(3)    코르키가 Q를 회피 못해 패시브 1타가 발동되거나 에코가 던진 W의 실드가 작동할 위치라면, 그때는 과감하게 선제 공격을 하여 코르키의 HP를 깎아놓는다.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면 미드 에코로 코르키를 상대할 때 스킬을 피해 E로 도망가는 정도에 그쳤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라인은 점차 에코 쪽으로 밀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타워와 CS 경쟁을 해야되는데, 가뜩이나 CS 먹기 녹록찮은 에코로써는 이게 참 어렵습니다. 


게다가 타워 밖에서 툭툭 때리는 코르키의 견제를 더욱 심하게 받게 되죠. 반대로 코르키 쪽으로 라인이 밀리게 되면, 근접 챔피언이라 미니언 바로 옆에 붙어야 되는 에코로써는 코르키+타워 앞까지 가지 않는 이상 나머지 웨이브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Faker는 약간의 CS를 버리더라도, 코르키가 타워 앞에서 프리징 하는 것을 막고, 자신 쪽으로 너무 당겨지는 것도 막기 위해 계속해서 모든 미니언에게 Q를 맞추어 전체 라인을 지속적으로 클리어 해버립니다.


또한 딜교환 과정에서, ‘Fly’ 송용준 선수의 코르키가 유효 사거리에 에코가 들어왔다고 판단해 딜교환을 시도하면, Faker는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E로 붙어 Q를 던지고 3타 패시브를 터뜨리는 맞교환을 시도합니다. 이게 굉장히 저돌적인 방법인데, 솔로랭크 상황에선 이런식으로 한 번 붙으면 양 측의 킬각과 피지컬이 프로 수준만큼 정교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둘다 죽을때까지 싸우게 됩니다.


여기서 코르키에게 적당히 붙어 3타를 터뜨리고 적절히 빠지는 Faker의 프로급 밀당이 참 날카롭습니다. 일반적인 아마추어 플레이어들은 ‘내가 먼저 이렇게 달려들었는데 사나이답지 못하게 도망치면 뒤로 빠지면서 몇 대 더 맞고, 나만 손해볼 것이다.’는 생각에 이렇게 못하거든요. 


실제 Faker vs Fly의 딜교환에선 워낙 에코의 패시브 3타 딜량이 강력해서, 에코가 도망가면서 맞아야 둘 다 같은 수준으로 HP가 빠지기 때문에, 에코가 일방적으로 손해보는 딜교환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경기 시간 3분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딜교환 전략인겁니다. ‘코르키 니가 나한테 딜교를 걸어? 응징한다! 내 피도 깎이겠지만, 그건 너도 마찬가지라고!’ 이런 전략인거죠. 극초반에는 서로 대등한 딜교환 정도로만 그치게 되고, 미니언 막타가 조금 더 편리한 코르키가 CS를 조금 앞서게 됩니다. 


하지만 6렙에 가까워질수록 ‘에코가 라인전 불리한거 맞아?’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코르키를 압도하게 됩니다. W를 깔아놓고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에코에게 코르키가 할 수 있는게 거의 없거든요.


코르키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봅니다. Q, 인광탄을 먼저 쓰게 되면, 에코는 E로 피할 겁니다. 그래서 Fly는 평타 짤짤이 말고는 스킬을 먼저 쓰긴 좀 부담스럽죠. 하지만, 코르키는 에코의 W가 들어올때 무조건 피해야됩니다. 서 있으면 잠시 후 스턴이 터지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회피 기동 중인 코르키에게 E의 확정 타겟팅 스킬로 에코가 따라 붙습니다. 


그리고 맞딜교를 하려 하면 에코의 W 실드가 가동되어 버리죠. 코르키 입장에선 참 답없는 상황입니다. Faker가 엄청 유리해보이고, 상성도 굉장히 좋아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습니다.

 

3-1. 왜 Faker는 자유자재로 상대를 압박할 수 있었을까?: 에코의 갱킹 탈압박
실제로 에코가 5렙이 됐을 때 과도할 정도로 코르키를 타워까지 밀어붙이면서, 굉장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압박합니다. 여러분이 솔랭에서 미드 에코를 하며 코르키를 만나면, Faker처럼 저렇게 무조건 E로 달라붙어 쥐어패버리면 이기는 걸까요? 그렇게 플레이하면 여러분은 십중팔구 채팅창에 이 대사를 타이핑하게 될겁니다.


에코(0/4/0): 정글러어어어어! 적 정글은 미드에 사는데에에에에!!’
            

 ▲ 미드 라인에서 상당히 전진해 있는 Faker. (출처 : OGN)


마치 상대 정글러가 없는 것마냥 저돌적으로 코르키에게 달라붙어 퍼플 미드 타워 코앞까지 파고드는 Faker에게는 적의 갱킹이란 옵션은 아예 고려조차 안하고 있는 것처럼 없어 보입니다. 이럴 수 있는 배경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에코를 제압하기 어려운 미드+정글의 조합: CC기의 부재
(2)    극 초반부터 Ssumday의 노틸러스를 공략하는 ‘Blank’ 강선구 선수의 킨드레드: ‘Score’ 고동빈 선수의 그레이브즈가 발이 묶임
(3)    Faker가 직접 적 정글 깊숙한 곳에 설치한 와드: 다 읽히는 정글 그브의 움직임

일단 코르키와 그레이브즈는 둘 다 하드 CC기가 없습니다. 플래쉬가 켜져있는 에코를 잠시라도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둘 방법이 마땅치 않죠. 게다가 6렙 이후에는 에코의 궁극기 때문에, 브라움이나 노틸러스의 도움 없이 에코를 잡아낸다는 건, Faker의 결정적인 실수가 있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3-2. 시종일관 존재감을 과시했던 정글러 Blank: 파괴당하는 노틸러스
두번째 이유가 Faker의 갱킹 탈압박에 더 영향이 큽니다. 아무리 플래쉬가 있다고 하더라도, 딜탱 에코가 아닌 AP 에코는 코르키와 그브의 폭딜에 도망치기도 전에 한순간에 터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Blank의 킨드레드의 활약이 돋보입니다. 


킨드레드는 스탯 중첩을 위해 정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Blank는 여기서 좀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입니다. 정글 파밍에 집중하는 대신 집요하게 탑 라인에 딜 갱킹을 가는 선택을 하죠.


거기에서 굉장히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데, 첫번째 갱킹으로 노틸러스의 플래쉬를 빼고, 두번째 갱킹으로 플래쉬가 빠진 Ssumday를 다시 노려 결국 잡아냅니다. 라인전 구도가 이렇게 한 쪽으로 많이 기울어지면, 불리한 팀 정글러의 선택의 폭이 굉장히 좁아집니다. KT측 정글, Score의 시선은 결국 탑라인으로 묶이게 됩니다.


 ▲ Ssumday의 노틸러스를 압박하는 Blank의 킨드레드. (출처 : OGN)


Ssumday의 노틸러스는 픽밴부터 사실 어쩔수 없이 떠밀린 감이 있습니다. 마오카이를 픽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지만, 2경기에서 보였던 Ssumday의 마오카이도 좋은 모습은 아니었거든요.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한 노틸러스도 운용법 숙달이 많이 떨어져 보였고, 노틸러스 자체도 너프 후 한물간 힘이 많이 빠져있는 챔피언이었습니다. 이는 결국 주력인 뽀삐가 3연밴을 당하자 심각하게 무력해진 Ssumday의 역량이 드러나는 모습이었습니다.


노틸러스 특징은 각종 하드한 CC기를 무장했다는 외에도, 사실 라인전에서 엄청난 푸시력을 갖고 있습니다. 노틸러스의 데미지 구성을 보면 계수는 낮아 후반에 기대되는 딜링은 떨어지지만, 스킬 레벨 업시 올라가는 깡데미지는 높기 때문인데요(정글하기 좋은 디자인), 실제로 솔랭에서 만나면 라인전 초반 단계에서는 굉장히 강력합니다. 


경기에선 이런 요소가 Ssumday에게 안좋게 작용하는데, 불리해서 라인을 좀 당겨먹고 싶은 상황에서도 슬슬 밀려버리는 라인 때문에 계속해서 갱킹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프로 경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굉장히 클래식한 라인 갱킹으로 무력하게 무너져 버리죠. 마오카이 속박+킨드레드 딜갱의 단순 갱킹의 형태는 사실 솔랭에서 성공률이 더 높고, 프로 씬에서는 시야 장악과 빠른 백업 때문에 성공하기 어려운,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갱킹입니다.


푸시력이 좋은 노틸러스의 특수성은 Score 역시도 인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탑 라인 와드 지원과 역갱 각을 좀 더 세밀하게 바라봤어야 했는데 Ssumday가 무력하게 무너지는 와중에 Score의 정글 백업도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두 선수의 상태만으로도 이 노틸러스가 준비된 픽이 아니라는게 명확하게 보여지는 낮은 경기력이었죠. 그리고 이 스노우 볼은 미드에도 영향을 끼쳐, 그레이브즈가 탑에 신경쓰는 사이 미드에 있는 코르키는 고통받게 됩니다.

 

3-3. Faker는 피지컬만 좋은게 아니다: 세체미의 시야 장악
애초부터 SKT는 Faker의 피지컬에만 의지하는 원맨팀이 아닙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운영법을 구사하는 팀들 중 하나입니다. Faker의 피지컬이나 컨디션이 난조를 겪을 때에도, 타 라인에서 이것을 극복하거나, 팀 운영으로 그것을 상쇄하는 스타일의 팀입니다. 


기량이 최고인 선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만, 사실 Faker = 피지컬도 조금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타 팀들의 피지컬 역시도 상향평준화 되어 Faker만 유별나다고 하기는 좀 어려운 셈이죠. 다만 이런 SKT의 운영에는 Faker 역시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고, Faker는 피지컬이랑 무기 외에도, 상당히 넓은 챔프 폭이라는 두번째 무기도 가지고 있습니다. 탈론이나 (정화 없는) 카르마 같은 의문의 픽을 보이기도 하지만요.
 


▲ 시야 장악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Faker의 에코. (출처 : OGN)


조심스러운 맞교환을 보였던 극초반과는 다르게 6렙에 다가갈수록 Fly에게 더욱 더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Faker의 행동에는 상대 정글러의 갱킹이 다양한 방식으로 고려되어 있습니다. 퍼플 정글 깊숙히, 늑대 안에 한 와드가 그 방식들 중 하나입니다. 

조심스럽게 딜교환을 하며 라인전을 이어가던 Faker는 귀환 후 갑자기 상대 정글 쪽으로 들어가 그레이브즈가 지나갈 지점에 와드를 설치합니다. 이 역시 Blank와도 적절히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보이는 게, 이 타이밍은 Blank가 탑 라인 갱킹을 반복하면서 탑 라인 쪽에서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반대로 Faker는 봇쪽 정글의 시야를 살피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 Faker가 상대 정글 아래 지역을 밝힐 때, 윗 지역을 밝혀주는 Blank. (출처 : OGN)


이런 시야 운영이 Faker에게 굉장히 자유로운 코르키 압박을 해주는 발판을 마련해 준 겁니다. 그래서 단순 상성으로는 의문점을 자아낸 미드 에코가 힘을 받을 수 있었죠. 앞서 언급했듯, AP 에코는 성장을 못하면, 정말 팀 기여도가 부질없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흥해야 했으며, 절대 망하면 안되는 픽이었습니다.

 

4. 미드 에코의 한타 운영법: 파.괘.한.다. 원딜러!
KT의 경기력 부진했기 때문에, 에코의 단점들이 가려졌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팽팽한 대결구도가 펼쳐진 NA LCS에서의 미드 에코도 잠시 언급해볼까 합니다. 북미 최강 미드라이너라 불리는 TSM ‘Bjergsen’ 선수를 상대한 CLG ‘Huhi’ 최재현 선수의 결승전 미드 에코를 살펴 보면 제가 앞서 언급했던 단점들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Huhi의 에코는 CLG의 시야 운영의 빈틈을 파고 든 ‘Doublelift’ 선수와 ‘Yellowstar’ 선수의 날카로운 갱킹에 반항 한 번 못해보고 퍼스트 블러드를 내주기도 하고, CS 수급 역시도 Bjergsen에 비해 밀리는 상태였습니다. Huhi 역시도 미드 에코의 기본적인 운영 매커니즘은 Faker와 동일했습니다.


단지 라인 스왑과 시야 운영이 SKT만큼 차이나지 못했기 때문에, 갱킹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Faker처럼 무작정 Bjergsen의 코르키나 르블랑을 후드려 패지는 못했죠. 대신 Bjergsen이 딜교환을 시도하면, Huhi도 동일한 수준으로 맞받아 쳐주는, 동등한 라인전은 가능했습니다. 


시종일관 상대를 압도했던 Faker 역시도 Huhi처럼 Fly 코르키에게 CS는 항상 밀리고 있었습니다. 이게 에코가 미드에서 미니언 막타 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 신출귀몰하며 매섭게 원딜 Arrow를 노리는 Faker.
이미 초반 용 교전에서 킬과 어시스트를 얻고, 성장한 상태라 주요 딜러가 금방 죽는다. (출처 : OGN)


그러면 이렇게 성장한 에코는 한타에서 어떻게 활약할까요? 일단 무난한 성장만 했다면, 잘 큰 미드 피즈를 떠올려 보면 됩니다. 막을 수가 없습니다. 성장하지 못한 에코는 상당히 무기력해지고 기여도가 심각하게 떨어집니다만, 적당히 잘 큰 에코, 특히 AP 에코는 폭발적인 딜량을 보여주면서 스킬 콤보 한 번으로 상대의 주력 딜러를 삭제 시킬 수 있습니다. 


E의 짧은 대쉬 + 점프 평타의 엄청난 거리를 자랑하는 2단 이동기와 함께, 텔레포트와 신속의 장화를 이용한 기동성, 그리고 원딜러 삭제 후 궁극기로 탈출 등, 에코가 한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살펴 보면, 모두를 바보로 만들며 농락하고 E, 재간둥이로 유유히 빠져나가는 미드 피즈의 무서움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5. 미드 에코 총평
현재 에코가 가장 핫하고, 밴 목록에 계속해서 이름을 올리는 이유는 바로 탑라인에서 막을 수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탑 에코에 비해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폭발력은 더 강력한 미드 AP 에코. Faker 경우 메자이의 영혼 약탈자까지 구입하면서, 그 폭발력을 증가시켰고 에코 난입을 막을 방법이 없었던 KT는 그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3경기마저 내주며, 결승전을 향한 티켓을 따내지 못합니다.


픽밴 단계부터 KT를 꼬이게 만들고, 경기 내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킨 SKT Faker의 미드 에코는 결승전에서 만날 팀 ROX Tigers에게 탑 or 미드의 이지선다를 강요하며 어느정도 부담을 안겨줄 것 같습니다. 시즌 내내 기복이 심하고 매끄럽지 못했던 SKT의 경기력이, 이렇게 결승 즈음에 다시 안정되어가는 모습에, 이번 결승의 ROX 전도 상당히 기대하게 만듭니다.


또한 NA LCS에서도 무난하게 미드 에코를 성장시켜, TSM Doublelift를 상당히 집요하게 괴롭혔던 CLG Huhi의 플레이도, 결국 CLG가 우승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을 제공하면서, 미드 에코가 오로지 Faker만이 가능한 픽이 아니란 사실도 보여줬습니다. 미드로 진출한 에코는 확실히 솔랭에서 쓰기에는 여러가지로 까다로워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양대 리그에서 맹활약했으니 당분간 프로 씬에서는 지금보다 자주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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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op.gg/r/detail/53724/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