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의 젊은 아버지뻘인 도타이야기를 해보자.


도타는 영웅은 영웅으로 카운터치는게 맞았다.

내가 영웅을고르고 적팀에게 카운터영웅을 맞으면, 우리팀이 그 적팀의 영웅의 카운터를 골랐다.

이게 생판 처음본 우리 사이의 믿음이고, 이게 픽단계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팀워크였다.


정상적인 팀과 함께라면

상성으로 고통받는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카운터치기위해 뽑은 적또한 우리팀에게 고통받을것이었으므로.




게임을 져서 클랜끼리 싸우기도 했지만, 조합에대한 진지한 고찰과 약점을 분석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MOBA류 게임의 여명기를 함께한 그 시간은, 진지한만큼이나 너무나 즐거웠다.




E스포츠의 여명을 같이한 스타크래프트도 그랬다.

저글링은 바이오닉으로, 바이오닉은 럴커로, 럴커는 탱크로. 메카닉은 다시 저글링으로.

이렇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둥글게 연결된 물고 물리는 카운터가 게임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줬다.

그중간에 수많은 전략적 변수와 공중유닛까지 언급하면 너무나 이야기가 길어지니 이만 줄인다.


이렇게 혼자서 하는게임도 이토록 많은 상성에 의해 전략적인 변수가 생기고,

그 상성을 어떻게 다른 상성으로 제압하느냐, 중간 큰 변수인 마법유닛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따라

수많은 전략과 수많은 (물론 맵퍼들의 큰 도움이 있었다.) 전술이 나왔고,

(지금은 비록 레이트메카닉과 저프전상성이 꽤 무너지긴 했지만)

'스타는 하지않아도 보는재미는 있다'라는 E스포츠에 너무나도 이상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덕분에 난 3.3혁명이라는 잊을수없는 대 사건까지 라이브로 볼수 있었다.




요즘 상승세인 오버워치도 그렇다.

파라는 위도우로, 위도우는 윈스턴으로, 윈스턴은 리퍼로. 리퍼는 맥크리로.

이렇게 단순한 상성외에도 맥크리와 로드호그처럼 활동범위는 같지만 역할과 상성은 전혀 다른 경우도 있고,

탱커를 카운터치는것은 같지만 활동범위가 전혀 다른 젠야타와 리퍼의 경우도 있다.

또한 모든 영웅이 카운터칠수있는 상성상 우위인 적영웅이 3개 이상이어서 어느 상황,맵,영웅이냐에따라 정말 모든 영웅

을 다 쓰면서 게임하게 된다. 

또, 적팀의 리퍼가 있더라도 나는 로드호그를 고를수 있다. 우리팀 맥크리가 죽여주길 기도하면서.

이것은 팀게임의 장점을 매우 잘 활용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영웅이 적어서 가능한 상황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클베때부터 영웅이 점점 늘어가면서도 밸런스가 무난하게 

굴러간다는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수없다.

그만큼 블리자드는 상성에 철저하게 이 게임을 만들었다.

상성없이 대처불가능한 픽이었던 초창기 맥크리와 위도우에게 정의의 철퇴를 날린것만봐도 알 수 있다.




사실 롤이 지양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는 안다.

언제 한번 레드포스트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본 기억이난다.

'모르가나를 골랐다고 탈론 상대로 라인전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은 없어야 할것'

맞는 말이다. 롤은 가벼움을 추구했고, 상성을 배제하는 업데이트를 계속 내놓았다.

이건 가벼움을 추구하는 그때의 롤에 너무나도 잘어울리는 방침이여서

나는 그 레드포스트에 직접 따봉까지 박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챔프들 상성의 차이가 적어질수록 높은수준의 경기에서 나오는 픽은 점점 더 고착화되어갔다.

전략적인 픽의 카운터로 나오는 또다른 전략픽. 그 전략픽을 카운터치는 또다른 전략픽이라는건 

결국 챔프들간의 상성이 있다는것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기어이 롤은 '어떤상황에도 대처가능한 약점이 없는 챔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회에서 1티어로 활약하며, 노잼의 원흉이 되어갔다.

그것들을 잡기위해 또다른 '기존 챔프를 상성이 적은 챔프로 만들기위한' 리워크가 진행되었고,

손이 OP인 프로게임 구간에서는 고만고만한 무상성 챔프중에 가장 좋은 성능을 가진 녀석들이 1티어가 되었다.

로우리스크 하이리턴, 이것을 가진 챔프가 롤에는 너무나도 많다.


사실 무난한게 특징인 영웅은 도타에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거듭된 패치를 통해 로우리스크인 만큼 리턴이 적은 영웅이 되어서 밸런스를 맞춰갔다.


PDD의 자크와 샤이의 제이스를 기억하는가?

제이스는 포킹과 라인전의 강함, 자크는 탱킹과 한타의강함.

서로 그리는 그림이 시작부터 달라서 너무나 흥미진진했던 롤드컵.


롤은 이제는 과연 이 수많은 챔피언들 사이에서 '전략'이라고 부를만한 무엇인가를 더 만들어낼수 있는 게임인가 싶다.

그 챔프를 대회에서 보고싶으면 라인전도 쌔고 한타도 쌔야한다.

시즌2때, 탈론과 모르가나 사이의 상성을 손으로 커버할수 있게 한다는 이야기를 꺼낸것을 다시 떠올려본다.

물론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결국 모르가나를 보고 탈론을 뽑은 쪽은 어느정도 이득을 봐야하는것이 옳지 않을까.

그 탈론을 보고 우리편이 또다른 탈론의 상성을 뽑고 그 상성챔프에 또다른 상성챔프로 대응하는 적팀.

롤의 고차원적인 픽밴 '나 하나고르고 저쪽 두개고르고 우리 두개고르고'는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것이 아닌가?

그 전략을 볼수 없게 됨에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롤은 너무나 많은 챔피언들이 나왔고, 그때문에 서로 비슷한 역할의 챔프가 있을수밖에 없다.

그들의 상성과 특색이 뚜렷하지않다면, 그중 가장 무난하며 가장 좋은것만 픽되는 상황은 피할수 없을것같다.




PDD의 자크와 샤이의 제이스가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