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미흡했던 설명에 사과.

본인이 이 칼럼 1부에서 말한 '카밀의 배경 및 스토리 설정이 나쁘다.'의 핵심은 그 설정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보단 그런 설정을 풀어나가는, 스토리텔링적으로 형편없다는 이야기였음.

물론 스토리 텔링만 나쁘다는 이야기도 아님. 그 다음으로 지적하는 것은 카밀의 배경 및 스토리가 실제 게임과 연결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신챔프인 카밀의 설정이 기존의 챔피언과 겹친다. 이런 이야기임.

그리고 그 다음. 챔피언 배경의 첫문단은 라이엇 게임즈 인증 요약문이 맞음.

리그 오브 레전드 유니버스 들어가서 챔피언 항목 들어가보면 아래 배경 스토리 부분에 챔피언 요약문이 나와있고 거기에 붙어있는 배경 스토리 버튼을 누르면 요약문이 첫문단으로 나오는 장문 배경 스토리가 나옴. (실제로 모든 챔피언을 확인한 건 아니므로 예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본 20개 이상의 챔피언은 전부 그랬음.)

어쨌든 본문으로 넘어가겠음.


3.4. 너무나도 장황한 장문배경.

1부에서 요약문이 정말 후지다는 언급을 했음. 그러면 이제 그 뒷부분인 부연설명에 대한 분석을 적어야 하는데...... 문제는 말했듯이 카밀 스토리 자체가 엄청나게 길고, 게시글 하나에 올리기엔 솔직히 엄청나게 긴 단편이 2개나 붙어있어서 처리에 좀 난감함. 그런고로 원문을 다 올리는 대신 원문의 링크를 걸겠음.

그리고, 추가로 한마디 더. 당연한 얘기지만 카밀 스토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본사에서 쓴 걸 번역한 거임. 난 진짜 영어 원문을 보지 않았고, 그 쪽의 카밀 스토리 평가가 어떤지도 난 몰라. 하지만, 내가 지적하는 장황하기 짝이 없는 배경이 문화적 차이라던가 문체의 문제, 혹은 번역으로 인한 문제나 번역 자체의 오류는 아닐 거라고 대체로 확신하고 있음.

그와 상관없이 번역이 좀 깔끔하지 못한 것 같긴 함.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생기는 문제가 조금 보이기 때문이지. 어쨌든 그건 이 칼럼에서 주요하게 지적하는 요소는 아님.


3.4.1. 첫 문단(이후 전부 요약문을 제외한 순서) 

카밀이 속한 가문은 외딴 계곡의 모래에 분포하는 생명체로부터 채취한 희귀한 수정을 통해 부를 쌓았다. ‘태초의 수정’이라고도 불리는 이 마법 수정은 보통은 마법 능력을 타고난 이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카밀의 고모할머니인 엘리샤는 이 생물체를 찾기 위한 가문 초기의 모험 도중 팔 하나를 잃었고, 목숨까지도 잃을 뻔 했다. 페로스 가에서는 엘리샤의 이 같은 희생을 칭송했으며,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가문의 가훈에 남아 있다. “가문을 위해 내 한 몸 바치리.”

이게 요약문(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뒤 첫 문단임. 상당히 골때리지. 왜냐면 카밀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카밀의 가문에 대한 설명을 먼저 했음. 그리고 카밀의 가문에 대한 설명 역시 좀 길다는 생각과,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음.

왜냐면 필요한 건 카밀의 가문에 대한 글이 아니라 그 가문에 있는 카밀이라는 챔피언에 대한 글이니까. 저 문단에서 남겨둬야 할 것은 3개임.

1)카밀은 페로스 가에서 태어났다.
2)페로스 가는 부유하다.
3)페로스 가문의 가훈은 "가문을 위해 내 한 몸 바치리." 다.

어떻게 부유한지 설명을 좀 과도하게 한 것 아닌가? 그냥 대충 넘어가도 됨. 그래도 배경설명에 디테일이 있다는 점이 큰 마이너스는 아니니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겠음.


3.4.2. 다음 문단.

엘리샤 페로스가 발견한 생물체 브래컨은 유한한 자원이었으므로, 페로스 가는 그간 축적한 수정의 수를 늘릴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 그들은 화학공학과 룬 연금술에 어둠의 투자를 함으로써 힘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조달하기 쉬운 합성 마법 수정을 시장에 공급했다. 이 같은 일에는 때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소문에 따르면 자운의 하늘이 ‘잿빛 대기’라고 불릴 정도로 스모그로 가득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합성 수정의 생산 때문이라고 한다.

...... 뭐야? 왜 다음 문단도 카밀 배경설명의 디테일에 대한 디테일을 설명함? 이 문단은 아예 필요가 없음. 이 문단이 카밀 배경 스토리에서 필요하려면 카밀의 스토리는 가문이 발견한 자원과 연관되어 있어야 함.

요컨대 [페로스 가에 부를 가져다 준 수정은 유한했다. 카밀은 새로운 수정을 찾아야 한다.] 라던가.

아니면 [페로스 가에 부를 가져다 준 수정은 유한했다. 다 떨어지자 가문은 몰락하고 말았고 카밀은 가문을 부흥시킬 방도를 찾고 있다.] 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페로스 가에 부를 가져단 준 수정은 유한했다. 언젠가 그것이 다 떨어질 것을 걱정한 페로스 가는 자기 가문의 카밀에게 새로운 부를 가져다 줄 무언가를 요구했다.] 같은 게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아니면 적어도 선조가 발견한 힘과 카밀의 힘이 연관되어 있어야 함. 그게 카밀 챔피언에게 반영되어 있으면 더 좋겠지. 카밀은 선조가 찾아낸 수정의 힘을 쓰는데 그로 인해서 카밀의 플레이는 이러이러한 특징을 지니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님. 배경에서 제시한 첫번째 스토리는 이미 배경 내에서 스토리가 종결됐음. 이후 스토리도 저것과 크게 관련이 없음. 그러면 대체 저 문단엔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듬.

그러나 저 문단에 의의가 하나 있긴 함. 롤 스토리를 열심히 보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 외딴 계곡에 분포하는 생물체에게서 얻은 수정. 브래컨. 브래컨은 스카너의 종족 이름임. 저기서 말하는 수정은 스카너 스토리에서 엄청나게 중요하게 다뤄지는, 브래컨 그 자체나 다름없는 물건이고.

그러니까 카밀 스토리는 스카너와 연결되어 있는 셈인데....... 카밀 관련 챔피언에 스카너는 없음. 스카너도 그렇지.

물론 당사자들이 모르는 걸 수도 있음. 그런데 카밀 대사를 봤을 때 스카너와 연관점이 있는 대사나 스카너와 관련된 대사는 없음. 어...... 왜? 18분이나 되는 카밀 대사에, 카밀 배경에서 가장 처음으로 나오는 설정과 연관되어 있는 챔피언 대사 한줄을 넣기가 그렇게 힘들었나? 대사로 구현하지도 않을 거면 저 설정은 왜 배경에서 가장 먼저 설명하는 거야.


3.4.3. 세 번째 문단과 네 번째 문단.

필트오버의 블루윈드 궁에서도 가장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카밀은 당시 페로스 가문의 수장인 로드리와 젬마의 여섯 번째 자녀였다. 그러나 카밀과 그녀의 남동생 스테반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모두 성인이 되기 전 사망했다.

이렇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음. 리그 오브 레전드 스토리 팀은 첫문단이랑 세번째 문단의 순서를 헷갈린 거지?

당연히, 마땅히, 자명하게 이게 첫문단이어야 할 것 아니야. 앞 문단은 필요가 없음. 카밀이 태어난 시점에서 시작하고, 그 다음 가문의 내력과 배경에 대해 설명하면 디테일이 쓸데없이 자세하다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구성에 대해서는 넘어갈 수 있었음. 그리고 그 다음 문단.

페로스 가의 관심은 살아 남은 두 자녀 중 첫째인 카밀에게 집중되었고, 그녀의 교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카밀은 어린 나이에 귀족다운 태도와 의무감을 지니게 되었다. 발로란 최고의 학자들이 끊임없이 필트오버를 방문했으므로, 카밀은 늘 훌륭한 선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아이오니아 남부의 지운 방언과 우르 녹서스 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발로란의 역사에 관심을 가질 것을 교육 받았으며, 오딘 계곡에서 아버지를 도와 발굴 작업을 하면서 고대 슈리마 어를 읽고 쓰는 법도 배웠다. 카밀은 또한 첼로비나를 수준급으로 다루는 훌륭한 연주가이기도 했다.

참고로 오딘 계곡은 스카너 구 배경에 나온 브래컨 종족의 고향임. 현재 설정에선 슈리마에 있는 것으로 추정됨. 아무튼.

이 문단은 요즘 챔피언 스토리 고질적인 문제인 설정덕질을 여실히 보여줌. 그냥 [(전략)카밀은 늘 훌륭한 선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뛰어난 인재로 성장했다.] 정도만 써도 상관이 없음.

리그 오브 레전드 스토리 팀이 갈수록 분량에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함. 아니면 챔피언 배경 설정을 일대 서사시처럼 쓰려 한다는 증거라던가...... 서사시로 쓰는 것 자체야 큰 문제는 아닌데 쓸데없는 디테일이 늘었음.

앞서 말한 스카너로 예를 들면, 스카너의 배경도 솔직히 디테일이 많긴 하지만 그건 챔피언의 요약문을 제대로 뒷받침하는 부연 설명이자 챔피언 자체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역을 해내는데 배경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첫 능력이 카밀의 언어학적 소양이라는 건 좀...... 필트오버의 설정, 위에서 나온 카밀의 설정 등을 볼 때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음.


3.4.4. 다섯 번째 문단.

필트오버의 명문가에서는 자녀들 중 나이가 어린 아이가 가문의 검과 방패라 할 수 있는 최고 정보 요원의 역할을 맡는 것이 관례이다. 최고 정보 요원으로 선택된 아이들은 가문의 최선의 이익을 추구할 책임이 있으며, 수장을 도와 가문의 지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면서 필요하다면 어떤 수단이라도 동원해야 한다. 비밀이 많은 페로스 가는 언제나 이 직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반드시 가문 최고의 인재가 최고 정보 요원이 되도록 막대한 자원을 들이곤 했다.

카밀의 동생 스테반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기에 최고 정보 요원이 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간주되었다. 카밀이 스테반 대신 가문의 최고 정보 요원이 되었을 때 카밀의 부모, 특히 카밀의 아버지는 그녀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카밀이 추가의 훈련과 교육을 받게 되자 스테반은 질투에 사로잡혔다. 카밀은 전투, 첩보활동, 고문에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기술은 숀산 검을 이용한 검술, 심문을 통한 정보 수집, 그리고 서부 바다뱀 군도에서 쓰이는 줄 달린 갈고리를 가지고 무너진 시계탑에서 레펠 강하를 하는 것이었다. 

정말 할말을 잃게 만드는 대목임. 원문은 사실 다 붙어있지만 보기 편하라고 내가 두개로 분리했음.

첫번째 내용은 [최고 정보 요원]이라는 직책과 그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임. 이건 이 자체로는 별 문제가 없음. 근데 앞문단하고 이어지면서 이 문단은 되게 못 쓴 문단이 됐음. 왜냐.

위에서 페로스 가문의 가훈인 "가문을 위해 내 한 몸 바치리."를 아이오니아 남부의 지운 방언이나 첼로비나 연주 같은 사소한 디테일과는 다르게 다소 분량을 할애해서 내력을 설명했으니까. 그런데 이 문단에선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트오버의 명문가 관례 중 하나라고 설명한 거임.

'그게 대체 무슨 문제인데? 필트오버 명문가의 관례는 관례인 거고 페로스 가문의 가훈은 그냥 별개인 거지.'

라고 따질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 지적은 일단 맞음. 확실히 모순은 아님. 하지만 이야기적으로 보면 완전히 골때리는 내용임. 이렇게 글을 쓰면 안 됨. 다른 필트오버 명문가에도 그런 관례가 있다면 페로스 가문은 그냥 어떤 가문에게도 있는 범용한 지침을 가훈으로 삼은 정도가 된 거임. 앞서 독자에게 설명한 페로스 가의 중요한 가훈의 인상이 흐려졌단 말이야.

가문을 위해 헌신하라. 이게 카밀의 이야기를 만드는 핵심 동기임. 그래서 첫문단부터 카밀이 아니라 가문과, 그 내력과, 그 가훈을 설명한 것 아니었나? 라이엇 게임즈가 말한 챔피언 디자인의 핵심 원칙이 있음. 챔피언은 특별한 존재여야 한다. 특별한 존재이기에 챔피언인 것이다. 단순히 성능이나 플레이 스타일 뿐만 아니라 배경 스토리에서도 주요하게 여기는 부분임.

하지만 이 문단 때문에 가장 먼저 설명했고 가장 주요하게 여긴 '가문'은 아주 특별한 것이 안 되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카밀의 스토리는 상당수가 가문에 의존하고 있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카밀은 특별한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특별한 사건을 겪었고 그래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가 카밀 스토리라고. 그런데 가능한 특별하게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여기서 카밀 가문의 특별함을 깎아내리다니. 대체 집필진들은 무슨 생각인 거임? 

두번째 부분의 경우도 절반까지는 좋아. 허나,

[카밀은 전투, 첩보활동, 고문에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기술은 숀산 검을 이용한 검술, 심문을 통한 정보 수집, 그리고 서부 바다뱀 군도에서 쓰이는 줄 달린 갈고리를 가지고 무너진 시계탑에서 레펠 강하를 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필요가 없음. 뒷문장은 정말 하나도 필요가 없음. 얘 게임 플레이에서 숀산 검을 가지고 검술을 함? 아니면 심문으로 정보 수집을 함? 서부 바다뱀 군도에서 쓰이는 줄 달린 갈고리를 가지고 무너진 시계탑에서 레펠 강하...... 흠. 이건 좀 관련이 있긴 하군.

하지만 어쨌든 굳이 적을 필요가 없는 디테일임. 적어도 [서부 바다뱀 군도에서 쓰이는]이라는 말은 쓸 필요가 없음. 도대체 집필진은 왜 룬테라 지방 이름에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스토리의 사소한 부분에서도 룬테라의 다른 지방과 세계관을 드러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하는 것 같음. 그게 바로 내가 아마추어 작가의 설정노트라는 소리를 하는 이유임.

창작물에서 인물을 짤 때 일단 노트에 인물에 대한 온갖 잡다한 설정을 다 끄적여가며 가상의 인물을 구체화하고 그렇게 구체화한 인물을 이야기에 던져넣는 방법이 있음.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이 이야기에서 인물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게 한다는 작법론이지.

이 방법론에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가장 단순한 차이를 말하라면 프로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혹은 이야기 내에서 인물을 구체화하는 것이 핵심이고 잡다하게 써놓은 설정은 그저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단 적어두긴 했지만 작품 내에서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상관없음. 하지만 미숙한 아마추어는 인물을 구체화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설정 그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혹은 그렇게 되어버려서 글이 인물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인물의 설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되어버리는 본말전도가 일어난다.

카밀 스토리가 딱 그럼. 저기 적힌 온갖 잡다한 설정과 디테일은 그냥 다른 곳에 적어도 됨. 예를 들자면 AMA에서 누가 [카밀은 어째서 자신의 마법공학 의족에 갈고리를 넣었나요?] 라고 물었을 때 [아 그건요~ 어릴 적 최고 정보 요원 훈련을 받았을 때 갈고리 강하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서 그래요~] 라고 대답하거나 아니면 줄 달린 갈고리가 나오는 컨셉 일러스트에 화살표 달고 내력을 적은 뒤 그걸 리그 오브 레전드 유니버스에 올리면 되는 거지 굳이 장문 배경에 끄적일 필요가 없는 거라고.


3.4.5. 여섯 번째 문단.

카밀이 25세 때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신체를 증강시킨 한 떼의 불량배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자운의 지하세계에서 출세하기 위해 페로스 가의 비밀에 손을 뻗치려고 작정한 자들이었다. 카밀과 그녀의 아버지는 부상을 입었다. 카밀은 회복되었으나 아버지는 결국 부상을 이겨내지 못했다. 카밀의 어머니 또한 집안에 드리운 괴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곧 세상을 뜨고 말았다. 수장의 직함은 카밀의 동생 스테반이 이어받게 되었다. 어리고 충동적이며 가문의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증명하고 싶었던 스테반은 이미 과도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페로스 가의 마법공학 증강체 연구를 두 배로 강화했다. 

역시 이야기적으로 다소 문제가 있는 것 같음. 왜냐면 현재까지의 배경에선 페로스 가의 비밀은 중요한 요소도 아닐 뿐더러 그 비밀이 무엇인지도 안 알려줬기 때문. 저 위에도 비밀이 많은 페로스 가 운운하는데...... 이 비밀은 아마도 2번째 문단에 있는 합성 마법 수정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카밀 스토리는 합성 마법 수정과 관련이 없음. 그 비밀이 카밀 스토리와도 크게 관련이 없음. 카밀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가문에 헌신하는 게 아니라 가문에 헌신하다보니 결과적으로 가문의 비밀을 지키게 되는 인물임.

한 소재에만 집중할 수는 없나? 아니면 적어도 챔피언에게만 집중할 수 없었나?

챔피언 배경에서 집중해야 할 부분은 당연히 챔피언임. 왜 챔피언 그 자체가 아니라 챔피언의 불필요한 디테일이나 챔피언과 별 관련 없는 큰 세계관을 그렇게 열심히 설명하는 건지 모르겠음. 명백히 큰 이야기를 전개하고 떡밥을 뿌리느라 정작 당장 설명해야 할 주요 인물, 극을 이끌어나갈 주인공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음. 그러니 난 아마추어가 분수에도 맞지 않는 대서사시를 쓰는 것 같다는 평을 할 수밖에 없음.


3.4.6. 일곱 번째 부터 아홉 번째 문단.

1년의 애도기간이 끝나자 페로스 가의 저택은 다음 번 진보의 날 기술자 선발 대회를 위해 찬란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졌다. 스테반은 가문의 최고 책임 연구자로 슈리마의 해변 도시 벨준 출신의 젊고 전도유망한 수정학자 하킴 나데리를 선정하고 그의 취임식을 직접 감독했다.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자신의 무능력함에 충격을 받은 카밀은 하킴에게 자신을 인간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법공학 증강체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카밀을 만난 그 순간 그녀에게 매료된 하킴은 카밀을 부모의 죽음에서 비롯된 어둠에서 건져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리고 슈리마의 사막에 대해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몇 개월 간의 친밀한 시간이 흘러간 후 카밀은 자신도 하킴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카밀이 증강 수술을 받을 날이 다가옴에 따라,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에 대해 점점 더 신중함을 잃어갔다. 수술을 하면 그들의 관계가 끝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킴은 페로스 가의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 것이고, 카밀은 최고 정보 요원으로서의 의무에 다시 충실히 임해야 할 것이었다. 하킴이 무엇보다도 가장 우려한 것은 카밀의 심장을 바꾸는 과정에서 자신이 너무 깊이 잘라서 그녀의 인간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수술을 며칠 앞두고 하킴의 걱정이 폭발했다. 그는 카밀에게 청혼하면서 수술 대신 함께 도망가자고 애원했다. 그는 미래를 그려보였다. 태양이 타오르는 벨준의 사막을 돌아다니면서 고대 슈리마의 폐허를 발굴하고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미래, 카밀이 가문에 지고 있는 책무에서 멀리 벗어난 미래였다. 난생 처음으로 카밀의 마음은 갈등에 빠졌다. 

챔피언의 연애사가 챔피언의 배경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건 가렌 카타 이후 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음. 꽤 흥미로운 대목임. 

정작 배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차라리 빼는 게 나은 배경이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지.

왜 챔피언 개발 팀이 팬픽을 쓰고 있나? 챔피언으로서 리그에 참전하는 카밀의 배경에 들어갈 메인 사건으로 이 러브 스토리는 전혀 적합하지 않음. 왜냐면 이건 카밀이 가문에 헌신하는 최고 정보 요원이 되는 계기나 과정, 최고 요원으로 벌인 활약에 관한 스토리가 아니라 최고 정보 요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스토리잖아. 이걸 굳이 배경에 넣으려면, 카밀 스토리의 메인은 [인간성과 가문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는 카밀]이 되야함. 그런데 그것도 아님. 카밀은 자신의 인간성과 가문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번민하는 것이 그 자신의 정체성이 아님. 오히려 단편을 보면 미련은 있을지언정 확실하게 가문을 위해 살기로 스스로 결론을 내렸음. 그럼 대체 이 스토리는 무슨 의미가 있음?

이해할 수가 없어. 이런 식으로 써진 롤 챔피언 스토리가 또 뭐가 있지? 없음. 이건 개성적인 것도 아니고 참신한 방식도 아님. 완전한 실패임. 챔피언 장문 배경에서 나타내야 할 건 이런 싸구려 러브 스토리가 아님. 그럼 배경에서 핵심적으로 서술해야 할 건 뭐냐.

1) 이 챔피언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 그 자신의 개성만으로 아주 특별한 경우. 보통 나르나 람머스 같은 개성이 넘치는 이종족이나 초월적 존재의 장문 배경이 이럼. 이 경우 그냥 과거나 내력만 서술해도 됨.

2) 이 챔피언이 지금 뭘 하고 있나. 제라스, 빅토르 등 원대한 목적을 품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악역이나 아니면 그런 악역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루시안, 요릭 등 선역의 배경이 이럼. 이 경우 어째서 이런 일을 했는지에 대한 과거 설명이 들어가고 그게 어떻게 현재로 이어지는지 서술됨.

3) 이 챔피언이 이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트위스티드 페이트, 탈리야 등 평범했다가 특별한 힘을 각성한 케이스. 아니면 럼블 같은 케이스가 대표적임. 얘들이 구체적으로 뭘 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어울리는 뭔가를 할 예정임.

4) 이 챔피언이 무엇을 대표하며, 그 자신은 무엇을 바라는가. 가렌, 다리우스 등이 이렇지. 가렌과 다리우스는 그냥 데마시아의 선봉대장, 녹서스의 장군 같은 단순한 개성에 게임 플레이를 봐도 그냥 힘 센 떡대 인남캐에 지나지 않지만 이 둘은 데마시아와 녹서스 양 국의 일반적인 군인상을 대표함. 그러나 그것에서 끝나지 않고 가렌의 경우는 녹서스의 카타리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고 다리우스는 새로운 녹서스를 만들기 위해 스웨인을 지지한다는 스토리가 적혀 있음.


근데 이 러브 스토리는 정말 중요하지 않음. 챔피언이 되기 이전이잖슴. 챔피언의 핵심 정체성과 그렇게 상관있는 부분도 아니잖슴. 그냥 이 러브스토리는 완전히 빼거나 '카밀은 자신의 인간성을 버릴지 말지 한참을 고민했으나 마음을 굳게 다잡고 가문에 대한 헌신을 택했다.' 정도로 넘어가도 괜찮음. 그리고 그 러브 스토리는 다른 단편으로 새롭게 쓰는 게 옳음. 왜냐면 저 러브 스토리로 인해 카밀이라는 챔피언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저 스토리가 카밀 스토리의 핵심 주제도 아니기 때문이지. 그럼 대체 카밀의 핵심 스토리가 뭐냐? 라는 질문이 돌아올 수밖에 없음.

그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글쎄?


3.4.7. 열 번째 문단부터 열네 번째 문단까지.

수장으로서의 스테반은 카밀의 능력에 크게 의지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스테반이 이 비밀 청혼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최고 정보 요원이 자취를 감추기 일보 직전이며 그에 따라 페로스 가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이 약화될 위험에 처했음을 감지했다. 그래서 스테반은 카밀이 아버지에게 했던 의무의 맹세를 상기시킬 계획을 세웠다. 카밀이 하킴이 함께 있느라 자리를 비운 틈에 자신이 공격을 받은 것처럼 꾸민 것이다. 허약한 체질 때문에 최고 정보 요원의 직책을 거부당했던 스테반은 바로 그 약함을 이용해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카밀 앞에 나타났고, 아버지를 지키지 못했던 그녀의 어두운 기억을 휘저어 놓았다. 카밀은 최고 정보 요원의 주의력이 흩어졌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똑똑히 보았고, 그 증거를 부인할 수가 없었다. 

하킴은 카밀을 간곡히 설득했지만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카밀의 의무는 대대로 전해 내려온 것이었고, 그녀가 보다 잘 준비되었더라면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고 동생의 부상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카밀은 수술을 받겠다고 고집하며 하킴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하킴은 여전히 카밀을 사랑했으며 수술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연인이 수술대 위에서 죽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스스로 카밀의 심장을 교체했다. 그녀의 기계 심장이 잘 뛰는 것을 확인한 하킴은 최고 책임 연구자의 자리를 사임했다. 카밀이 수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와 하킴이 함께 일했던 실험실은 텅 빈 채 버려져 있었다.

카밀은 그녀의 임무에 매진했다. 그녀는 칼로 된 다리와 갈고리가 달린 허리 등으로 신체를 계속 증강해 나갔다. 각각의 증강체를 추가하는 것은 매번 기술의 한계를 시험할 뿐만 아니라 카밀을 한계에 밀어붙이는 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카밀이 인간으로서 남은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 했다. 페로스 가가 권력과 부를 축적할수록 카밀이 동생을 위해 수행하는 임무도 더 어둡고 위험해졌다.

젊음의 기운을 계속 불어넣는 마법공학 심장 덕분에 시간이 흘러도 카밀은 세월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녀에게 하킴 나데리는 곧 희미한 기억이 되었다. 시간은 스테반에게는 잔인했다. 그의 신체는 점점 더 약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가문의 수장이라는 이름을 부여잡은 손만은 약해지지 않았다.

러브 스토리의 연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챔피언이 되었는가로 대충 납득이 되긴 함. 즉, 카밀은 인간성과 가문 중에서 가문(동생)을 고른 거지. 그것은 동생의 음모였다. 즉, 카밀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최고 정보 요원을 하고 있는 셈이며 그것은 카밀의 주요한 정체성임. 그럼 대충 정리가 되는 것 같음.

근데 다음 문단이 이 모든 정리를 한방에 날려버린다.


3.4.8. 열다섯 번째 문단부터 마지막 문단.

최근의 임무에서 카밀은 한 순진한 필트오버 인이 악당에게 속아서 약혼식을 올릴 뻔한 현장을 발각해 냈는데, 이와 함께 밝혀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스테반이 저지르고 있었던 반역 행위가 드러났다. 하킴을 몰아냈던 스테반의 거짓말이 이제는 카밀과 페로스 가를 파멸시키려 하고 있었다. 카밀은 스테반의 욕심을 한눈에 꿰뚫어보았다. 그는 이기적이었으며 더 이상 가문의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지 않았다. 그 순간 그녀는 동생에게 느끼고 있던 마지막 동정심을 버리고 페로스 가의 통제권을 손에 쥐었다.

카밀은 이제 자신이 가장 아끼는 조카의 딸을 가문의 수장으로 세워 페로스 가의 공무를 관장하고 있다. 덕분에 그녀는 가문의 성공을 보장하는 보다 비밀스런 작전을 계속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려운 문제의 해결사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카밀은 인간을 벗어난 자신의 변화와 이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였다. 카밀의 혈관에 마법 수정의 에너지가 흐르는 한 그녀는 안이하게 앉아 있었던 적이 없으며, 산업 첩보전, 잘 우려낸 따뜻한 차 한 잔, 그리고 긴 산책에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

갑자기 관계 없던 사건이 하나 터졌네. 카밀 공개 이전 [끊어진 고리] 만화와 [가장 약한 심장]이라는 카밀 단편에 나온 내용임. 도대체 그 단편으로 설명한 부분을 왜 여기서 다시 언급한 건지 모르겠음. 어쨌든, 그 사건을 해결했더니....... 동생을 위해 헌신하는 카밀의 이야기가 끝났네?

아니, 그 정도 문제가 아님. 이 스토리는 말도 안 됨. 배경 내에서 카밀에 대한 이야기가 완전히 끝났음. 지난날 트런들 배경 설정을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편을 강행한 이유가 뭔데. 배경 설명에서 그 챔피언의 스토리가 끝나버렸기 때문 아님?

현재 남아있는 카밀의 목적은 가문의 성공을 보장하는 일을 한다. 이게 끝이야. 더 큰 음모. 없음. 스스로 꾸미는 음모. 없음. 멋진가? 그냥 기득권층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에 불과한데. 그게 아니면 이 자체로 너무나도 아름답고 멋지고 흥분되는 이야기인가? 아닌 것 같은데.......

배경에서 생각할 여지가 안 남았음. 얜 그냥 영원히 비밀요원일 거고 마지막에 있는 대목인 [잘 우려낸 따뜻한 차 한 잔, 그리고 긴 산책에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를 보면 그 입지가 흔들릴 것 같지도 않음. 여태 했던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여지를 남기지 않았음.


4. 결국 의문만 남는 카밀 스토리.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어진다. 카밀 메인 스토리가 대체 뭐임? 카밀이라는 챔피언의 정체성이 대체 뭐지?

페로스 가문. 페로스 가문이 합성 수정을 만들면서 자운에 자욱한 스모그가 드리웠다는 떡밥. 가문의 비밀. 브래컨. 비밀 때문에 카밀의 부모를 죽인 자운의 '신체를 증강한' 불량배들. 카밀의 러브 스토리. 인간성. 동생. 동생의 음모. 그리고 가문의 실권을 쥔 카밀.......

일부는 제시만 함.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배경 내에서 그걸로 스토리를 전개하지도 않았음. 완전히 불필요한 부분이었다는 거지. 그리고 주요하게 보이던 부분은 모조리 배경 내에서 해결되어 버렸고 새로운 목적도, 새로운 위기도 생기지 않았음.

결국 남는 건 하나임. [카밀은 페로스 가의 최고 정보 요원이다.] 문제는 그 정체성은 어떤 스토리도 만들지 않았을 뿐더러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아보임. 왜냐면 다른 필트오버 명문가들도 최고 정보 요원은 가지고 있음.(언급된 사실을 볼 때) 그리고 카밀은 최고 정보 요원으로 어떤 활약을 펼쳤냐는 설명은 그냥 두루뭉실하게 넘어갔음.

무엇이 카밀을 특별하게 만드는 거지? 무엇이 카밀을 챔피언으로 불리게 만드나? 카밀이라는 존재는 이 세계, 최소한 필트오버와 자운에서 대체 무슨 영향을 끼치나? 전부 비밀이라서 배경에서도 못 알려주는 거임?

그럼 요약문으로 다시 돌아가보겠음.

카밀은 무법자를 처단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무기화한 우아한 엘리트 첩보원으로, 그녀의 임무는 고도화된 필트오버와 그 하층부의 자운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녀는 뛰어난 적응력과 더불어 세부사항까지 꼼꼼히 살피는 주의력을 갖추었으며 너저분한 기술은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예법과 재력을 갖춘 집안에서 자라난 카밀은 페로스 가문의 최고 정보 요원으로서, 마치 환부를 도려내는 외과의사처럼 가문의 어두운 문제들을 확실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마법공학 증강을 통해 최고가 되기를 추구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이 품고 있는 칼만큼이나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카밀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여자라기보다는 기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참 못 쓴 요약문임. 이 요약문은 챔피언의 특별함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음. 챔피언의 유능함을 설명하고 있지. 한 문장씩 볼까?

1) [카밀은 무법자를 처단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무기화한 우아한 엘리트 첩보원으로,] 칼날의족이라는 말을 굳이 안 하고 무기화했다는 식으로만 설명함. 카밀의 특이한 외모는 카밀의 정체성이 아니라는 거지. 애초에 스토리에 칼날의족이 깊게 연관되어있거나 그것이 카밀의 유일한 정체성인 것도 아니니까. 칼날의족이 아니라 칼날 손이거나 에너지 캐논을 달았어도 솔직히 아무 상관 없었음. 마법을 써도 괜찮았을 거고. 그런데 그냥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칼날의족을 택했을 뿐인 거임.

2) [그녀의 임무는 고도화된 필트오버와 그 하층부의 자운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건 중요한 부분일까? 애초에 이 요약문은 '카밀이 얼마나 유능한 첩보원인가' 만을 설명하고 있으니 중요해보이긴 함.

근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정작 이후 부연해야 할 배경스토리에선 전혀 카밀의 유능함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거임. 유능함을 보여주는 방법은 많음. 위기의 순간 그녀의 능력을 발휘해 어려운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던가, 아니면 그녀의 유능함 덕에 무슨무슨 일이 해결되어서 필트오버가 더욱 발전했다던가. 이런 언급은 일절 없음.

3) [(전략)예법과 재력을 갖춘 집안에서 자라난 카밀은 페로스 가문의 최고 정보 요원으로서, 마치 환부를 도려내는 외과의사처럼 가문의 어두운 문제들을 확실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페로스 가문이 대단한 건가? 얼마나 대단한 건가? 페로스 가문이 혹시 필트오버의 지배자인 건가? 가장 부유한 집안이라는 언급은 있긴 한데. [끊어진 고리] 단편에서는 알비노 클랜의 레이디 소피아가 필트오버에서 가장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는다 운운이 있어서 또 그런 것 같진 않음.

페로스 가문은 배경 스토리에서 그저 카밀이 헌신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나타나고 페로스 가문이 구체적으로 무얼 하며 무얼 꾸미고 무슨 공격을 당하는지 일절 서술되지 않음. 그냥 그곳은 잘나가는 명문가임. 비밀이 뭔지 알려줬으면 좀 달랐겠지.

4) [마법공학 증강을 통해 최고가 되기를 추구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이 품고 있는 칼만큼이나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카밀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여자라기보다는 기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여자(인간)인가 기계인가 의구심을 품게 된다....... 그러니까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 카밀의 정체성인가? 근데 스토리를 보면 카밀은 자신이 무엇인지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고, 고민하는 건 그녀를 보는 다른 사람임. 심지어 마지막에는 자신을 인간에서 기계(도구)로 만든 동생조차 필트오버와 가문을 위해 죽여버리고 페로스 가문의 비선실세로 군림함. 카밀이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걸로는 안 보임.

요약문에 나오는 내용이 4개나 되는데 그 중 핵심은 없고 남은 이야기는 0개임.

왜 이런 스토리를 짰는지 이해가 안 감. 혹시 팀원들 여럿이 무슨 이야기 넣을까 서로 상의하다가 일단 다 넣어버린 건가?

카밀 스토리에서도 언급되는 것처럼 카밀이라는 존재는 말 그대로 필트오버 스토리의 톱니바퀴 같은 느낌임. 카밀은 뭘 하는 게 없음. 대신 카밀 스토리에서 수많은 떡밥이 뿌려져 있고 필트오버 스토리를 전개할 때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는 편한 위치에 있음. 가장 부유한 가문의 비선실세+최고 정보 요원이니까. 카밀은 그냥 필요하니까 만든 거고. 일단 멋지게 만들고 목적은 나중에 부여하려고 한 거임. 그래서 캐릭터의 특별함이 아니라 캐릭터의 유능함을 설명하게 되어버린 거지.

그래서 정작 카밀의 캐릭터성이 없어졌음. 목적도 없고, 뭐 큰 역할을 하는 것도 없고.(정확히는 유추할 수가 없고)

굳이 있다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일한 할머니 캐릭터라는 거?(개발자 공인 80세 이상) 카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실 상관없는 정도의 캐릭터, 다른 최고 정보 요원이 대체해도 별 문제가 없는 정도의 캐릭터가 된 거임.


5. 요약.

엄청나게 길어졌으니 정리하자면.

1) 무의미한 디테일에 집착.
2) 배경 플롯이 난잡함.
3) 굳이 배경에 적을 필요도 없는 내용을 적음.
4) 챔피언 스토리인데 그 챔피언에 대한 내용은 없고 큰 세계관 떡밥만 뿌림.
5) 분량은 많은데 내용이 없음.
6) 실제 게임 플레이와 챔피언 배경 사이 연관성이 지극히 적음.

내가 1부 끝에서 말한 것. 아마추어 라이트 노벨 작가의 망상노트 수준이다. 라는 말이 바로 이거임. 이야기의 흐름을 전혀 통제하지 않고 있음. 떡밥만 줄창 뿌림. 요즘 유독 이런 경향이 있지만 카밀의 경우는 너무 심해서 챔피언 자신의 이야기가 파괴되어버렸음.

리그 오브 레전드는 소설이 아님. 게임임. 이전의 단순한 챔피언 설명에서 벗어나 챔피언에게 구체적인 설정을 입히려는 노력은 좋아. 그런데 설정을 구체적으로 짜는데 집착해서 정작 챔피언의 설명이 난잡해져버리고 이해를 돕지 못하면 무슨 소용임?

원래는 카밀 단편 등과 최근 챔피언 스토리 등등도 전부 싸잡아서 말하려고 했는데 게임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길어져서 패스함. 3부에선 이런 설정이나 스토리 등의 질 같은 부분이 아닌 실제 게임 플레이와 관련된 말을 하겠음.

그래도 결론은 같게 나옴. 실제 게임으로도 카밀은 실패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