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게 된 발단은, KT전이 끝나고 페이커의 인터뷰입니다.

페이커는 인터뷰 중, 자신들의 탑이 탱커인 메타에서 SKT가 강하다는 말을 했는데요.

전 이 인터뷰 자체가 페이커의 실수이고, 또 SKT가 지닌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SKT는 탑이 약한 팀이 아닙니다. 후니가 폼이 좀 떨어졌고 운타라가 아직 팀에 녹아들기에는 시간이 좀 필요할 지 몰라도

탱커든 브루져든 다 소화할 수 있는 라이너입니다.

하지만 SKT는 줄곧 탑에게 탱커를 요구합니다. 이건 전 2가지를 함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탑 라인전과 탑 갱킹의 가치

또 하나는, 현재 탱메타를 바라보는 SKT의 시선 입니다.





SKT는 탑 갱킹에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물론 다른 팀도 대부분 탑에 큰 비중을 두진 않죠.

더욱이 요즘처럼 탑이 둘 다 탱커를 뽑은 상황에선 갱킹의 비중이 높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탱커 대 탱커 구도에서 갱킹이 성공한다고 하여도 성공한 쪽이 라인의 주도권은 어느 정도 유리하게 이끌 순 있지만 지속적인 견제로 압박을 넣어 솔킬의 위협을 주긴 힘들고,

또 하나는 탑 근처의 오브젝트인 탑 타워와 전령이 탑 갱킹과는 큰 연관을 짓기 힘들다는 겁니다.

탑 타워의 경우, 탱커 대 탱커가 아니라 한쪽이 딜탱형 전사 캐릭터라면 분명 갱킹은 의미를 지니겠지요. 만약 성공했다면 면 포블의 압박도 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탱커와 정글러만으로 탑 타워 철거는 힘듭니다.

분명 이전의 그레이브즈는 이런데 장점이 있었습니다. 타워 철거 하나는 기가 막혔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갱킹과 서브탱 사이의 역할을 정글러에게 요구하다보니 타워철거는 요원합니다.

또 전령은 지나치게 솔플이 잘됩니다. 특정 캐릭터들은 피 소모도 거의 없이 혼자 잡아버리죠. 그러다보니 굳이 갱킹이라는 턴을 소비하느니 시야잡고 조용히 먹어버리면 그만입니다.




이런 상황에 특히 SKT는 조합의 안정성을 매우 중시하는 팀이다보니 탑에 탱커가 가길 원합니다. 탑 탱커와 정글 탱커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성장기대치죠. 정글에서 크는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SKT는 요즘 탑은 탱커 메타라는 결론을 자체적으로 내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생각이 이번 결승을 보면서 확신으로 바뀌었죠.

지금 탱커가 부상한 건, 원딜과의 시너지를 노릴 서포팅 탱템이 뜬거지 하드 탱템들이 좋은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란두인의 갑옷, 태양불꽃망토, 망자의 갑옷 등은 크게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이걸 적나라 하게 보여주는게 2탱템 상태의 탱커와 딜탱간의 맞딜입니다.

과거에는 탑 탱이 많이 나온게 하위 탱템에서 1코어가 완성되는 시점부터 탱커들이 딜탱을 압도하기 시작해서

2~3코어까진 무난하게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스플릿구도에서 허무하게 죽는 일도 별로 없었으니

3코어쯤부터는 자신의 맞상대가 AD챔피언이더라도 마방템을 하나정도 섞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서로가 같은 1코어 상태더라도 탱커쪽이 이긴다는 장담은 하기 힘듭니다.

과거의 탱템은 비교적 싼 가격에 지속싸움에서 안밀리는 템이었다면

현재의 탱템은 그저 좀 오래 맞다가 죽는 템정도입니다.

이게 단순히 탱템이 너프먹어서만은 아니고, 딜탱 챔피언들이나 딜러들이 지나치게 효율적인 설계가 되어 있어서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다른 논리나 분석에 비해 설득력이 좀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건, 1:1 구도를 오래 둘 수 있는 시간이 과거에 비해 지금은 탱커가 매우 불리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만약 원딜 캐리메타 라고 생각한다면 원딜을 캐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템들은 정해져있습니다. 기사의 맹세, 솔라리펜던트, 불타는 향로 등이지요.

이런 템들을 섞어야 비로소 원딜과 탱커 사이의 의미있는 시너지가 생깁니다. 하지만 이 템들은 탑 탱커가 맞딜하는데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죠.

이러한 예시의 절정은 가고일돌가죽입니다. 이 템은 1:1에선 가치가 없습니다. 그저 이니시해서 들어가야 가치가 있는 템을 탱커들은 적어도 3코어쯤엔 올려야 하는데, 딜러들은 3코어로 관통템을 가버리니 탱커는 1:1에서 절대 딜러를 못 이깁니다.

하지만 이 논리를 어긋나는 유일한 캐릭이 초가스입니다. 초가스는 궁 하나로 깜짝킬각을 뽑을 수 있어서 3코어로 돌가죽을 가도 큰 손해가 아니죠.






다시 SKT의 얘기로 넘어가서, SKT가 탱 메타를 바라보는 시선은 트런들에서 잘 드러납니다.

SKT는 종종 트런들을 탑으로 써먹습니다. 상대 탱커와의 맞딜도 괜찮고, 라인정리나 스플릿도 쓸만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일종의 그런겁니다. 탱커와 딜러 사이의 타협점.

딜러를 뽑자니 안정성이 떨어지고 탱커를 뽑자니 라인전에서 압박을 하고 싶을 때, 탱커처럼 쓰면서 딜러처럼 압박해 줄 수 있는 챔피언으로 SKT는 트런들을 종종 꺼내죠.

이러한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줫다고 생각하는게 1경기 밴카드였습니다. 트런들 밴을 바라보면서 SKT는 롱주가 탱커를 놓고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롱주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죠. 탱커는 정글한테 맡기고 탑은 라인전 쎈 딜러, 특히 스플릿이 강한 캐릭터로 간다.



SKT가 종종 무너지는 그림을 보면 전 탑에 대한 딜레마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딜러를 줘서 갱킹당해서 망하면 어쩌지.

차라리 탱커라면 반반 구도, 못해도 한타에서 제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요즘 탑의 미덕은 텔들고 스플릿구도에서 밀리지 않는 겁니다. 이니시는 서포터들이 하고 서포팅 탱템은 정글한테 맡겨서 원딜 키우라고 둬버리고

탑으로 운영한다. 이게 롱주가 내린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롱주는, 미드까지 운영챔을 놓는걸 꺼리지 않죠. KT의 폰 선수는 운영챔을 선호하다시피 할 정도로 자주 뽑는데

BDD는 그정도까진 아니지만 자주 써먹는 픽이죠. 카사딘이나 제드나 탈리아 등등..




SKT는 이에 반해 운영을 미드에 맡기고 탑에 탱킹을 맡깁니다. 그래서 텔든 에코, 텔든 르블랑이 계속 나온거라고 생각하구요.

그리곤 탑은, 망해도 별 타격은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탑에 탱커를 뽑은 순간, 거기에 정글 탱메타에서 탑까지 탱커가 나와버리면

상대 탑에 대한 억제력이 전혀 없어지죠. 칸 선수가 잘한 것도 있지만 SKT가 과연 상대 탑을 견제할 밴픽을, 혹은 전략을 가져온 걸까 의문이 듭니다.




글이 지나치게 산만해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을 간추리자면,

현재 탑을 탱 메타라고 단정한 것은 자신이 지닌 카드를 제한한 꼴이 되어버렸다는 것.
절대로 망하지 않을 카드라고 생각한 탑 탱커 픽은 반대로 정글 탱 메타에서는 상대에게 무조건 흥할 수 있는 딜러 픽을 줄 위험이 있다는것

그리고 정글의 갱킹이 약해진 지금 탑을 탱커로 계속 써버리는건 운영에서 밀리는 그림이 자주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번 롱주의 우승을 놓고 혹자들은 어떻게 평할 지 모르겠지만, 전 SKT가 익숙함이라는 덫에 자승자박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 이상 과거처럼, 딜탱들 잡고 다니던 얼건 뽀삐도 없고. E 낙뎀과 폭뎀에 Q로 한방에 라인을 밀면서, W 퍼뎀으로 맞딜도 괜찮던 마오카이는 없습니다.

아직 롤드컵이라는 중요한 대회가 남아있지만, SKT에게 남겨진 과제는 생각보다 클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