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범인이라는 표현 안좋아하는데, 대체할만한 간단한 표현이 딱히 떠오르지 않네

제우스 범인론은 사실 이번 젠지 결승전만 보고 하는 얘기가 아님.

T1팬 입장에서 이전 탑인 칸나는 나쁜 선수가 아니었고
언해피 이후 제우스라는 검증 안 된 탑을 불안한 마음으로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이 불안함을 실력으로 싹 다 휘어잡은 선수가 바로 제우스임
이 선수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수 밖에 없고, 그 기대치에 걸맞는 플레이를 리그전에서 많이 보여줌.

근데 막상 다전제, 플옵 소위 빅게임으로 넘어오면 제우스가 헤까닥 하면서 엎어지는걸 2년동안 몇번을 보는지 모르겠음. 처음에는 컨디션 문제, 메타 문제, 긴장 문제 이것저것 그럴싸한 이유도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 이번 플옵에서는 제우스의 문제가 제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음.

(짚고 넘어가자면, 제우스 바꿔라가 아니라 이런 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T1이 다전제에서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단 의미임.)

내가 생각한 문제는, 제우스의 챔프폭과 조커픽의 부재임.
제이스, 나르, 갱플랭크, 레넥톤, 피오라 이것저것 꽤 잘함.
근데 시즌중에 보여줬던 탑 세주아니, 플옵때 보여준 탑 사이온. 이 두 개의 숙련도 및 탱커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는 진짜 제우스라는 선수에게 기대하는 사람들의 기대치에 반에 반도 안갔을거임.

제우스 범인론은 얘가 잘한다고 보여준 몇몇픽을 제외하고, 팀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핵심이라고 본다.


페이커 범인론은 좀 복잡한데, 이걸 단순하게 무리한 메이킹으로 게임 하드쓰로잉 해서 짐. 으로 압축하면 안됨. 이건 양날의 검이고 페이커 최대의 무기임. 이 상식밖의 플레이가 없으면 페이커는 페이커가 아님. 감코를 아무리 바꿔도 반복되는 T1의 주도권 밴픽, 이거랑 엮어보면 좀 보임.

T1의 핵심 선수는 누구냐? 단연코 페이커다.

이 페이커의 강점이 뭐냐? 그냥 변수덩어리 그 자체임. 미친 플레이메이킹이 최대 강점인 선수.
현재 메타상 미드가 딜찍누 하면서 플레이메이킹을 할 순 없고, 판 깔아주기가 끝임.
독박 플레이메이킹은 프로 단계에서 대처가 된다. 유리한 상황에서 툭툭 던져보는건 성공확률이 높지만, 불리한 상황에서 이거 아니면 우린 끝이야 상황이라면 더더욱 대처가 된다.

T1팬이라면 감각으로라도 알건데, 페이커 독박 플메 경기가 생각보다 많고, 페이커 독박 플메보다 정글이나 서폿에서 플메를 같이 뛰어주는게 체감 승률이 높다라는 사실을.

그럼 왜 감코는 페이커에게 독박 플메의 멍에를 씌워주나?
아니다. 페이커가 가장 잘하고 선호하는게 플메이고, 이 강점을 살릴 수 있도록 픽을 짜주는거다.
당장에 베이가를 봐라. 그 베이가를 들고 망갑을 올려서 플메를 했고, 3세트에서 스스로 그 능력을 증명한 선수다.
근데, 롤이란 겜은 결국 대미지를 어디선가 끌어와야한다.
미드가 플메를 한다면, 대미지는 끌어와야한다.
(탈리야가 패귀픽인 이유도 이런데서 오지 않나 싶다. 결국 대미지를 못끌어온다는 거.)

다시 돌아와서 독박 플메를 벗어나게 하려면
다른 라인이 도와줘야하는데, 탑이 도와주면 정글이 대미지를 보충해줘야 한다.
근데 알다시피 지금 정글이 과거 그브&니달리 처럼 대미지를 확실하게 보충해 줄 수 있는 메타는 아니다.
자연스럽게 탑에서 대미지를 보충해주고, 정글에서 플메를 도와주는 그림이 기본적으로 그려지는거다.
바텀은 조금 더 딱딱한게, 바텀시너지가 일단은 우선이다.
미드가 플메인데 바텀이 망해버리면 대미지 보충의 대전제가 망가지니까.


아마 다들 알고 있었겠지만, 몰랐더라도 여기까지 왔으면 그래도 다 알거라 생각한다.
미드 - 플메 (고정) 인 상황에서, 바텀의 중요도는 높다.
따라서 바텀에 신경을 써줘야하고 
-> 탑은 상대적으로 유기되어야 하나
-> 후반엔 대미지도 보충해줘야함 
-> 주도권

결국, 몇 년째 반복되는 그놈의 주도권 과속페달 운영 밴픽은
메이킹형 미드 중심으로 게임을 꾸려가다보니
탑&정글 밴픽의 다양성을 해치는 문제를 낳았고
어찌보면 그 역할을 대단히 잘 수행하는 T1 선수들로 인해 리그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파고들 약점도 분명한 탓에, 상대적으로 준비 기간이 긴 다전제에서 특히 취약해지고 있다.


이번에 쵸비가 메이킹 & 하드캐리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것 처럼

페이커 역시 하드캐리 측면에서도 여전히 잘할 수 있다는 것과
페이커가 대미지를 쏟아넣는 픽이면 제우스쪽에서도 메이킹이 된다는 것

이 두가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T1의 MSI도 마찬가지일거다.


어디 언저리까진 파괴적인 게임내용을 보여주다가 빅게임에서 쭈욱 미끄러질 것이다.
어떻게 보면, T1은 결국 우승할 팀은 못되고,
그저 T1을 일찍 만나는 팀이 운이 없는 대진계의 고춧가루가 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