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팬픽] 의사가 되기 위해...(니시키노 마키)'를 좀 더 다듬고, 연결을 매끄럽게 한 Remake 버전입니다.


─유년 시절


나, 니시키노 마키(西木野 真姫)는 니시키노의 외동딸로써, 이미 결정된 운명을 지닌 채로 태어났다.

니시키노는 대대로 내려운 의학의 명문 집안으로, 나에게는 그 대를 이어갈 의무가 젖병보다 먼저 쥐어지게 되었다.

어린 애한테 가혹할 정도로 많은 과외는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얼마나 쓸모없는지 깨닫게 해주었고, 복잡한 사교 생활은 인간관계에 있어 솔직함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허점투성이의 거미줄과 같다는 것을 배웠다.

이러한 현실의 습득은 차라리 몰랐으면 더 나았을, 훨씬 나중에 배워도 상관없는 것들 뿐이었으나, 주어진 운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교육이었다.

간을 조금이라도 허투로 낭비하지 않게 보내던 어린 시절에서, 유일하게 인간으로써의 '낙(樂)'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은 '피아노 연주'.

거칠고, 가식적인 주위 사람들보다, 피아노가 훨씬 부드럽고,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건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물방울과 같은 음표들이 모이고 모여, 부모님이 마련해준 길을 외로이 달려가는 나의 목을 축여주는 옹달샘을 만들어 주었다.

하루의 일과에 지친 나는 가끔씩 그 옹달샘에 머물러, 건조할대로 건조해진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었다.

정말로 시원한 이 옹달샘에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었다.

이 행복한 시간 만큼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경쟁'의 개념을 습득하고 나서 이에 대한 환상은 완전히 부숴지게 되었다.

평소 취미생활로 배웠던 피아노 연주를 다른 사람에게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들어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피아노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결과는 2등.

이 등수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에 불과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 실력을 보여줬다는 기쁨에 딸려온 '덤'일 뿐이었다.

어리고 어렸던 나는 이 사실을 밝고, 순수한 목소리로 아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2등 밖에 못 했다니... 이제 더이상 피아노를 다룰 이유가 없구나. 앞으로 공부에나 더 전념하거라."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피부에 가시가 박혔던 것보다 더 날카롭고, 아프게 내 마음을 후벼팠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 당시에는 부모님의 지원이 없으면 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터.

그 날 이후로 결국 옹달샘과 같았던 내 '피아노 연주'는 흙으로 메워지게 되었고, 나는 그 메워진 곳을 밟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 때의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사람이 너무 슬프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그 때 깨달았다.



─청소년 시절

몸에 2차 성징이 찾아왔어도 그것은 겉모습의 변화일 뿐, 내 내면에 큰 변화는 없었다.

본격적으로 학급이 올라가면서 더 많고,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도 필요한 얘기 외에는 딱히 그들과 소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길은 어차피 정해져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서 깊은 우정을 나눠도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완벽하게 맞춰진 퍼즐에 더 들어올 조각이 없는 것처럼...

그런 마음가짐 때문에 중학교 시절은 그렇게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무난히 중학생 시절을 넘겨 고등학교로 들어가게 되었다.

니시키노家에서 원하는대로 의대를 가기 위해서는 명문 고등학교로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아빠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이유로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시켰다.

솔직히 그 때는 어이가 없어서 처음으로 반항도 해보았지만 어차피 부질없는 짓이었다.

모든 계획과 손익이 잡혀있는 아빠에게 있어서, 그렇게 일이 진행되어야 자신한테 유리한 점이 있었던 것이겠지.

어찌됐든 나는 오토노키자카 학원에 입학하게 되었고, 들어오자마자 보였던 매우 적은 학생 수와 들려왔던 폐교 소식은 깊은 한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그래도 졸업이 가능하므로 이런 흉흉한 사실들이 내 미래를 바꾸진 못 할테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 학원에서 좋다고 느꼈던 점은 음악실의 피아노였다.

학생수가 적고, 어차피 폐교될 운명이라 그런지 학교 기자재 사용에 있어서 다른 학교보다 자유로웠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 '설렘' 이란 감정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방과 후, 처음으로 혼자 음악실에 들어갔다.

비록 오래된 피아노였지만 그 기품만은 잃지 않았다.

오랜만에 피아노의 건반 위를 손가락으로 걸어보았다.

잔잔히 울려퍼지는 음색과 선율의 행진은 계획된 내 미래를 다 바꿀 정도의 기분을 들게 할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물론 이 기분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착각'이다.

하지만 그 착각은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함을 가져 마치 니시키노 의사로써의 인생이 아닌, 다른 길의 인생을 살아보는 듯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어렸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쉽게 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음악실로 찾아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즐거웠다.

인생을 차지하는데 있어서, 고등학교 생활 기간은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나는 그 기간을 최대한 행복하게 누리고 싶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숨쉴 틈 없던 달리기를 보상받는 느낌으로...

그리고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스쿨 아이돌 활동을 권유했다.



─스쿨 아이돌 시절(上)

호노카를 만난 이후부터 내 인생의 길은 갑작스러운 지각변동에 시달려야만 했다.

작사, 작곡, 노래, 춤, 호흡, 의상, 연습, 공연, 그리고 동료...

이 모든 것들이 한 순간의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파도는 나를 덮쳐 넘어뜨리려는 것이 아닌, 내 뒤를 떠밀어주고 지탱해주는 고마운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처음에 거부감이 들었던 내 마음은 어느새 변덕스럽게 바뀌어 이 자체를 즐기고 있었고, 이는 몰랐던 내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기도 하였다.

동시에 스쿨 아이돌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녀들은 시간을 허투로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들 또한 내가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멤버가 늘어나고, 공연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 즐거움은 옹달샘보다 훨씬 큰, '오아시스'의 개념으로 다가왔다.

보다 구체적으로, 실체화된 형태로써.

이제까지 지내왔던 시절 중에서 최고로 즐거운 나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집에서 안무 연습을 하던 도중, 아빠에게 들키고 말았다.

고지식한 가장을 피해서 몰래 활동하고 있던 터라 그 여파는 크게 휘몰아쳤다.


 "지금 무슨 부끄러운 꼴을 하고 있는거냐! 당장 때려치워!!!"


이제껏 보지 못 한 호통에, 나로써는 그 분노를 식힐 여력이나 이해시킬 만한 논리가 부족했다.

결국 여러모로 약한 내 자신은 꼴사납게 눈물을 흘리며 멤버들에게 원치 않는 탈퇴를 알려줘야만 했다.

마치 유년시절의 나처럼, 무기력하게...

하지만 그 때와는 다르게 내 곁에는 동료들이 있었다.

μ's 라는 그룹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는 결속력이 나 뿐만 아니라 아빠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내 탈퇴 선언과 속사정을 들은 멤버들은 전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집에 몰려갔다.

그리고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존재임을, 모두 앞다투어 말했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 한 '친구'들의 도움에 솔직히 울컥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빠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그녀들을 내보내려고만 했다.

이 소란 속에서, 우미는 멤버들 속에서 조용히 나와 아빠 앞에 마주보며 섰다.

아빠는 사교 활동을 통해 소노다를 알고 있었던 터라 먼저 알아보았지만 반기기는 커녕, 오히려 나를 비교하며 우미 또한 소노다에나 신경을 쓰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미는 흔들림없이 예를 갖추고,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당당하고도 단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소노다家의 자식으로써 그 의(義)를 저버리지 않을 뿐더러, 동시에 '스쿨 아이돌'이라는 활동에 대한 의(義) 또한 저버리지 않는다고.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만큼 양립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니시키노 마키 또한 니시키노家의 소중한 자녀이지만, μ's에서도 소중한 일원이라고.

때문에 니시키노 마키를 저버릴 수 없다고.

부디 니시키노 마키를 μ's의 일원으로써 인정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지금까지 집에 온 사람 중, 그런 식으로 아빠에게 말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만큼 강경하고, 강한 사람 앞에서, 우미는 진심어린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무조건적인 우기기도 없이 내가 μ's 에 있어야 되는 이유를 논리적이면서 동시에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우미다운 화법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제까지 포기하고 지켜보기만 했던 나는 그 복받쳐오르는 감정을 참을 수 없어서, 결국 아빠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μ's 활동을 계속 할 수 있게 부탁한다고 말했다.

멤버들의 간절한 기원 덕분일까.

우미와의 대화를 마친 아빠는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멤버들을 내보냈다.

내 스쿨 아이돌 활동을 허락해준다는 말과 함께...

모두가 나간 뒤에 내가 고맙다고 말하자,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좋은 친구들을 두었구나."


처음 보는 아빠의 미소에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날 밤, 나는 μ's의 활동 허락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우미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스쿨 아이돌 시절(下)

그 날 이후로 나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에 시달려야만 했다.

다른 사람을 볼 때 상관 없었지만 우미를 볼 때마다 심장박동수가 증가했다.

의학적으로 보면 갑작스러운 심장박동수 증가는 심장이나 혈관질환과 관련있다고 했지만, 그런 지식 따위에 내 상태를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그 날 보여줬던 우미의 모습이 내 눈동자에 너무나도 각인이 되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마지막에 아빠의 허락을 받아내었을 때, 살며시 내 손을 잡아주고 글썽거리는 눈으로 미소를 지었을 때는 정말 잊으라고 해도 잊고 싶지 않았다.

처음 겪는 현상에, 그 증상을 숨기느라 급급해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평소에 나는 작곡, 우미는 작사를 맡는데 둘 다 창작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서로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위함과 동시에 결과물에 대한 합을 바로바로 맞춰야 했기에 둘만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은 편이었다.

전에는 서로 의식하지 않고 각자 할 일을 하면서 마지막에 합을 맞춰보는 식이었지만, 그 날 이후로 제대로 집중하지 못 하기 시작했다.

우미가 작사를 하면서 머리카락을 귀뒤로 쓸어넘기는 행동이나 펜을 입에 물고 뭔가를 중얼거리는 모습 하나하나가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얘기를 꺼내지만 우미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 친절하고 부드럽게 답해주었다.

한번은 우미가,


 "마키랑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하네요. 작사도 잘 되는 것도 마키 덕분이겠지요?"


라며 반농담식으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짐짓 급한 일이 생긴 척 하며 뛰쳐나갔지만 사실은 빨개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그랬던 것을, 영원한 비밀로 숨기기로 했다

우미가 다른 2학년 멤버들과 지낼 때처럼 나한테도 모든 희노애락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우미가 다른 사람 앞에서 미소 지을 때마다 왠지 모를 질투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쪽 모습이던지 우미는 우미라는 생각에 그러한 욕심도 차차 접게 되고, 단지 둘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함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런 그녀를 내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데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려야만 했다.



─졸업식

니코, 노조미, 에리의 졸업에 대한 씁쓸함과 슬픔을 뒤로 하고 학교 생활을 하다가, 어느새 다가온 두번째 졸업식 소식에 내 심장이 아파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선배 멤버들이 졸업했을 때도 슬픈 감정을 느꼈지만, 이번 졸업식은 그녀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쓰라렸다.

우미는 졸업한 후, 소노다 가의 당주로써 대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타지로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약간의 안도감을 주었다.

하지만 '대를 잇는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아는 나이기에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나도, 그녀도, 둘 다 여자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신에게 맞는 남성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자식을 낳으며, 그 자식에게도 대를 이을 권리를 넘겨줘야 될 의무가 있었다.

우미가 그런 미래의 길을 갈 생각을 하자 현기증이 일어났다.

마냥 달콤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던가.

그 말이 뼈저리게 다가와 실감했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우미에게 품고있던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고백을 하지 못 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답을 하던지, 나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졸업식에서 다들 인사를 마치고 혼자 있게 된 우미를 발견한 나는 다급히 그녀의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뒷뜰로 달려갔다.

깜짝 놀란 우미는 무어라고 외쳤지만, 어느 순간 조용해지며 얌전히 내 손에 이끌려왔다.

내가 흘린 눈물이 바람을 타고 그녀의 얼굴에 닿았기 때문일까.

그러다가 서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뒷뜰에 도착하고, 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기 위해 땀과 눈물을 동시에 닦으며 말했다.


 "우미, 나는...!"


그 순간,

목이 메었다.


 "난...!"


그 순간,

눈물이 다시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

말을 잇지 못 했다.

내 눈에 들어온 우미는 언제나와 같이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표정으로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입술을 꽉 깨문 내 입 안에서, 다시 이빨을 있는 힘껏 꽉 깨물었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누가 더 잘 나가는지 너와 겨뤄보고 싶어!"

 "...예?"


내 마음과 다른 형태로 나온 그 말을 외친 순간에 보였던 우미의 표정은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로 멍한 표정이었다.

목소리가 한 번 터져나오자, 나는 그 기세를 이어 쉴 새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음악 쪽에서 나는 작곡, 너는 작사를 맡았던만큼 한 번쯤은 너와 승부를 겨뤄보고 싶었어. 우리 둘 다 가문의 후계자고, 거기다가 미래에 정해진 길이 있잖아?"

 "..."

 "그러니 그 길을 따라간 사람들 중에서 누가 제일 가문을 잘 살리고, 발전시키는지 내기하는거야."

 "..."

 "나는 의사니까 몇 명을 치료하는지, 우미는 전통무용 당주니까 몇 명을 교육시키는지로 결정하면 되겠네."

 "..."

 "그리고 거기에서 더 많은 사람의 인생을 인도해주는 사람이 승리 하는거야!"

 "..."

 "진 사람은 승리한 사람에게 뭐해주기로 할까? 비싼 음식 사주기? 아니면 이긴 사람 명령 따르기??"

 "...마키."

 "기, 기간은 언제로 정할까? 10년 후까지? 아니면 20년 후??"

 "마키."

 "보, 보나마나 내가 이, 이길꺼지만 그, 그래도 역시 우미랑 하, 한번쯤은 제대로 된 대, 대결을..."


나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 했다.

어느새 다가온 우미가 나를 상냥하게 안아주었기 때문에...


 "이제 그만해도 됩니다."

 "..."

 "그러니, 이제 무리하지 말아주세요..."

 "......"

 "저도 마키와 헤어지는 것이 슬픕니다. 마키와의 소중한 추억을 계속 잇고 싶고요."

 "........."

 "그래도 언젠가는 다가올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웃으면서 헤어지고 싶었지만..."

 "......흑..."

 "가끔은 속 시원히 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우윽...흑.......으아아아앙!!!!!!!!!!"


결국 바보같은 나는 전해주고 싶은 말을 전해주지도 못 하고, 그만 우미의 품 안에서 어린애처럼 엉엉 울 수 밖에 없었다.

우미는 조용하게, 나는 소리내어 울었다.

그 때 만큼은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우미와 내가 작사, 작곡을 하는 자리처럼...

그렇게 서로 울기만 하다가 짧은 몇마디를 나누고는 각자의 길을 가며 헤어졌다.

다시 만나자며 눈물어린 눈으로 환하게 미소짓던 그녀의 모습을, 내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한 채로...

오지 않기를 염원했던 졸업식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현재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창피하다.

다 큰 처자끼리 서로 부둥켜 안고 펑펑 울다니...

뭐, 그래도 그렇게 울었던 덕분에 혼란스러웠던 내 마음이 안정되었으니 괜찮았다.

거기다가 우미 품에 안기기도 했고...

우미의 졸업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퉁퉁 부은 눈으로 아빠에게 반드시 의사가 되겠다고 또 한번 다짐했을 때, 아빠가 놀란 표정을 지은 것과 동시에 아무말 없이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은...

굳이 더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최종적으로 나는 의사가 되는 내 인생 자체를 바꾸지 못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지 못 했을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마침내 얻을 수 있었다.

만약 피아노를 미련에 두지 않았다면, 만약 스쿨 아이돌이 되지 않았다면, 만약 우미를 만나지 못 했다면...

이렇게까지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때까지의 생활에 염증을 느껴 가출이라도 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얘기를 했으며, 많은 즐거움을 얻었기에 지금의 내가 성장할 수 있었다.

의사가 된 지금은 아무런 후회가 없으며, 매일매일을 보람찬 하루로 살고 있다.

가끔 시간에 여유가 생길 때, μ's 멤버들과 자리를 만들어 어른이 되어도 신나게 놀고는 한다.

특히 우미도 전통무용의 당주에 대한 책임과 수련 때문에 하루하루 피곤하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 때마다 고등학생 시절과 묘하게 겹쳐보여서, 귀여운 나머지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다행히도 졸업식 때의 약속을 잘 기억해주고 있어서, 우리는 서로 만날 때마다 각자의 업적에 대해 거나하게 얘기하곤 한다.

우미도 승부근성이 강해서 그런지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에 대한 칭찬과 능력을 끊임없이 말하고, 나 또한 어린 환자들의 귀여움과 호전되는 과정을 자세히 얘기하며 맞대응한다.

그러다가 서로를 인정하고, 웃으며, 다시 떠드는, 그런 평범하고도 행복한 시간이 흐르는 것이다.

언젠가는 우미나 내가 각자 결혼의 길에 들어서게 될 것을 생각하면 약간 우울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면 난 진심으로 축복할 것이다.

그녀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기 때문에...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