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인 탱-딜-힐 역할분업은 MMORPG에서 왔지. 그 현대적인 탱-딜-힐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던 에버퀘스트 자체도 엄청나게 성공했고, 에버퀘스트를 하드코어하게 즐기다가 우리도 직접 만들어보자 해서 탄생한 와우의 더 큰 성공은 두번 말하면 입만 아플 정도지.

현대적인 탱딜힐 역할분업의 핵심은 뭘까. 바로 탱커의 "어그로 컨트롤"임. 탱커가 어그로를 잡아두고 있으니까 딜러와 힐러는 안전해질 수 있었고, 안전해질 수 있으니까 다른 부분들을 다 포기하고 오로지 딜, 힐에만 집중한 퓨어 딜러, 퓨어 힐러로 진화할 수 있던것임. 그전까지의 파티게임들의 전투가 그냥 단순하게 마법사는 마법으로, 전사는 무기로 무작위 다굴놓고 생존은 각자 알아서 식이었다면, 현대적인 탱딜힐은 그걸 퓨어 탱커, 퓨어 딜러, 퓨어 힐러들로 나눠놓고 각자 자기 역할만 잘 하면 그게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조직적인 전투"로 진화시켰던거지.

그리고 저 시스템이 엄청나게 성공한 만큼 당연히 타 쟝르, 특히 PvP 에서도 저걸 도입하려고 많이 시도했었음. 하지만 하나같이 PvE 를 뛰어넘진 못했지. 그 이유는 딱 하나, PvP로 넘어가면 어그로 컨트롤이라는게 사라지기때문.

일단, 탱커는 졸지에 할일이 사라져버림.(다시말하지만 탱커의 메인 업무는 쳐맞는게 아니라 어그로 컨트롤) 그리고 탱딜힐 역할분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어그로 컨트롤이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예 조직적인 전투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는 의미임. 딜러 힐러도 더이상 안전하지 않게 되었으니 딜힐뿐 아니라 다른것들에도 다 신경을 써야 했고, 현대적인 분업이 와해되고 탱딜힐 역할분업이 도입되기 이전의, 모두가 각자도생 해야하는 야생의 시대로 돌아가는것밖에 안됨.

옵치도 별반 다르지 않지. 메인 업무를 잃어버린 탱커는 원래라면 힐러들이 갖고있어야 할 것들중 힐이 아닌 보호스킬들 + 딜러에 버금가는 높은 꾸준딜을 대체재로 받음. 힐러도 더이상 안전하지 않았기에 자기몸 지킬만한 1:1 능력은 갖고 있어야 했고, 그래서 많은 힐러들이 딜러에 준하는 딜능력을 보상으로 받음. 그렇게 딜러는 잉여가 되어갔고.

한마디로 옵치도 여타 탱딜힐 PvP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탱딜힐로 나눠놨긴 한데 그냥 와우가 탱딜힐로 나눴으니까 우리도 탱딜힐 하자 이런 느낌이고 딱히 탱딜힐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그런 상태임.(나는 최근의 블리자드의 몰락(?)도 이것과 연관이 매우 크다고 봄. 와우가 너무 크게 성공한 나머지 이후 거의 모든 게임에 와우출신 개발자들이 핵심으로 들어옴.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와우의 특징을 게임에 입히려고 안달이 나있는데 대부분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컷지.) 특히나 제일 애매한게 저 메인 업무를 잃어버린 상태에다가 인기까지 없던 탱커고.



내가 볼때 옵치에서 인기있는 케릭과 인기없는 케릭의 핵심적인 차이는 컨트롤이 정밀하게 제어되고 반응이 빠른가 라고 봄. 저런 케릭들에 가까울수록 인기가 많고(픽률이 높다와는 비슷한데 좀 다르다고 봄. 픽률은 현실적인 승률을 위해서 재밌는거 하고싶은거 포기하는 경향도 있으니까) 컨트롤이 굼뜨고 느릴수록 인기가 없음. 근데 저 굼뜨고 느린 부분을 탱커라는 이미지에 맞추려고 억지로 탱커한테 딱 박아버림. 인기 없는 속성만 때려박아놨는데 인기가 없는게 당연하지.

다시말하지만 옵치, 아니 PvP 에서는 PvE MMORPG 마냥 딱히 탱커라는 역할이 필수적인건 아님. 실제로 PvP 탱커 자체도 보통 그들 공통의 유니크한 능력이 있다기보다 그냥 뚱뚱하고 맷집쌘 딜러 느낌이 더 강함. 자리먹기라는 개념도 사전에 의도했다기보다 후에 유저들이 부여한거에 가깝고. 그 정도는 웬만한 딜러들도 그냥 피통/생존만 탱커만큼 높여주면 유효사거리가 더 길기때문에 오히려 탱커보다 더 잘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봄.(자리싸움도 위도우 하나 박아놓는게 탱보다 효율적인 경우도 많고) 특히나 탱커 살리겠다고 맷집쪽을 강화할수록 게임이 지루하게 늘어진다는 치명적인 부작용까지 생기는걸 감안하면 탱커와 이 게임 자체가 좀 상극인것같음.

결론은 나는 탱은 어마어마하게 바꾸는게 맞는것같음.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인기가 있던적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밸런스 문제로 역고를 탄생시키고, 이후에는 큐시간 문제로 포맷까지 5:5로 바꾸게 만들었고 이 모든것의 중심에 탱커가 있었지. 지금까지도 해결이 안됨. 우회하는 방식으로는 고칠 방법이 없거나 고칠 능력이 없다는 의미임. 어느쪽이건간에 결론은 바꾸긴 바꿔야 한다고 봄.

탱커라는 이미지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부정적 요소들(느리고 굼뜬 컨트롤 등) 탱커라는 네이밍과 함께 없애버리고 역할 자체를 새로 설계하는게 맞는거같음.

일단 제일 확고한 역할은 지원가라 봄. 힐이라는 본인들밖에 못하는 능력을 갖고있고 이것만으로도 철밥통이라 얘네는 그대로 가도 될거같고

딜러는 너무 중구난방이라 좀 나눌 필요가 있을듯.(말만 딜러고 사실상 피통 적고 힐안되는 애들을 모두 한데 모아놓은 쓰레기통) 대충 생각나는것만 해도 설치전문가, 폭격전문가, 교란, 중거리 메인딜, 스나이퍼 등등 여러가지로 가능할듯. 탱커는 리워크해서(특히 탱커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그 부정적 요소들은 가능한한 삭제) 저런 카테고리중 하나에 꽂아넣어도 될거같음. 

그리고, 탱커가 사라져서 생기는 부작용은 모두의 피통을 좀더 늘리는 형태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함. 물론, 원샷이 거의 불가능해지는것의 피해자인 한조/위도우는 생존력을 더 강화하는 형태의 보상도 방법이 될 수 있고.

그리고 저렇게만 되면 인기도도 어느정도 균등하게 배분될거같고, 그럼 역고 자체도 큰 부작용 없이 폐기가 가능해질듯.

물론 하나의 안일뿐, 수많은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하겠지. 확실한거 하나는 개발자들이 굳이 와우의 향수에 젖어서 탱딜힐이라는거에 매몰되지좀 않았으면 싶음. 그리고, 한다 해도 지금은 이미 한참 늦었지. 가능한 타이밍이라면 아마도 옵치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