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먹는 새

새를 쫓는다. 흰 새. 흰 새. 동백나무에 앉는다. 죽은 나무다. 아니 숯일까. 저 숯도 전에는 흰 눈이 내려앉은 나뭇가지였겠지(白炭ややかぬむかしの). 흰 새는 사라져 있다. 온통 세상이 희다. 찾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동백나무의 가지에 걸터앉아 내게 쌓이는 흰 눈을 보았다. 흰 새가 내려앉는다. 아아. 그럼에도 나는.

!”

 

이런, 일어나셨군요.”

 

기계 변조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 뒤가 뻣뻣하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를 좇을 수가 없다. , 눈도 뜰 수가 없다. 팔목 안쪽이 저려온다.

 

괜찮습니다. 진정하세요.”

 

꽤나 높은 여자 목소리였다. 근본 모를 목소리에 까닭 없는 안도를 느끼고 다시 어두운 차안에서 귀가 멀어짐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손을 뻗는다. 길게, 길게. 그리운 촉감이 손끝에 감긴다. 눈앞은 하얘서 보이지 않는다. 닿을 뿐 잡히지 않는 것이 또 괴롭다. 또 어째서 내겐 이게 그리운 감촉일까. 그저? 오래 살다 보면 그리워하게 될 것인가. 괴롭다 생각했던 이 세상도 지금은 그리워하는 것처럼. (ながらへば またこのごろや しのばれむ しと しき)

 

괜찮을 겁니다. 린드홀름 씨.”

 

의사양반, 그거 정말이야? 나 원 참, 이런 쪽은 내 분야가 아니라고!”

 

제가 전에 말씀드린 건 어떻게 됐죠?”

 

꽤나 물건이야! 함부로 대하기 힘들더라고! 일어나기만 하면 언제든 줄 수 있게 준비해놓지!”

 

고마워요. 그럼 다음에 뵙죠.”

 

갈라지고 카랑카랑하면서도 낮은, 또 신경질적인 특이한 목소리였다. 이번에는 기척을 지우고 가만히 있었다. 또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게 부담스러웠다. 자신이 마취제를 맞고 있었다는 것을 겨우 알아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몸의 세포 구석구석까지 모니터링 당하고 있으리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일어나셨군요. 그런 것 치곤 꽤 조용하시네요.”

 

종전의 여자 목소리였다.

역시 일본의 닌자는 다른가요.”

 

조금 비꼬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게 뭐 어떻다 할 개재는 없었기 때문에 동요는 없었다. 목소리가 자신의 사각에 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을 그 때쯤 알아차렸다. 아직 마취제 때문에 감각이 예민하지 못했다.

 

어디 아프신 데는 있나요? 있으시다면 눈을 세 번 깜박여주세요.”

 

그는 눈을 깜박이는 대신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직 턱 끝을 살짝 움직이는 정도였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하리라고 그는 생각했고, 또 사실이었다. 고개를 흔들자마자 온 몸에 붙어있던 관들이 일순간 떨어져 나갔다. 그는 순간 저것들이 모두 마취제 투여를 위한 관이었음을 깨닫고는 조금 놀랐다.

 

생각보다 마취가 빨리 풀리시는 군요. 될 리는 없겠지만 한 시간만 그대로 다시 주무세요. 금방 움직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꿈 앞에는 불안과 긴장, 공포, 환멸. 그래 그랬구나. 꿈이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눈이 시리게 하얀 세상이었다. ... 그리고 형. 형이 자신을 찢어 발겨놓던 달밤을 떠올렸다. 또 그 앞에서는 자신이 찔렀던 켄다의 모습이 선했다. 그리고 생각을 멈췄다. 다시 눈앞이 화해졌다.

 

. 눈을 밟는다. 걸어 나가면 발걸음 끝마다 꼬리가 생긴다. 발걸음이 용솟음친다. 발자국의 그림자에 흰 새가 깃든다. 새를 들이고, 석양을 들이는 눈은 당할 자 없으니.(夕日れる無敵) 처음으로 색이 빛나고 나는 비로소 나의 발을 보았다.

 

눈을 뜨자 곧 눈이 부셔 다시 감았다. 줄곧 자신을 가둬두던 침상의 덮개가 열린 것이다. 그는 손을 이마에 가져다 대어 빛을 가렸다. 손이 차가웠다. 아니, 차다기보다는 좀 더 날카로운 단어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이 쇳덩이 인 것을 알아채는 데는 길고도 긴 찰나가 필요했다. 손에 고무를 덧댄 느낌이었다.

 

“Guten Abend. Hm, Die Hand ist okay?”

 

일단 그는 자신의 손이 의수라는 데 놀라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말인지도 모를 소리를 알아들을 재간이 없었다.

 

“Oh, mein."

 

한 흰 가운을 입은 서양인이 자신의 앞으로 걸어왔다. 아직도 몸 전체가 부자연스러운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새하얀 피부에 금발, 한쪽으로 쓸어 올린 앞머리와 높게 묶은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눌렀다. 누를 때의 이질감으로, 그는 그 곳도 철판이 대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꽤 많은 부분이 자신의 원래 몸이 아닌 것에 조금 놀랐다. 회갈색의 섬유 다발이 자신의 몸의 상당부분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그곳을 눌러보았다. 그 섬유가 마치 살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또다시 놀랐다. 이번에는 좀 크게.

 

생각보다 귀여운 면이 있으시군요. 시마다 씨.”

 

비로소 겐지가 그녀를 보았다. 종전의 목소리의 주인이 그녀라고 확신했다. 아아, 번역기를 쓴 것이군. 그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 제 소개가 늦었군요. 앙겔라 치글러 박사입니다. 오버워치 위생 자문……. 아니 이런 건 아무래도 필요 없겠군요. 의사입니다. 혹시 지금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 아실 것 같나요?”

 

……. ,”

 

좋아요. 복잡하게 설명 드리려면 너무 오래 걸리니 중요한 부분만 체크하죠. 괜찮겠죠?”

 

 

좋아요. 지금 입을 벌려보세요 어떠신가요?”

 

, !”

 

겐지는 순간 치열이 뒤틀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입을 부여잡자 그녀가 빠르게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런,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그녀가 턱을 몇 번 누르더니 이물감이 사라졌다. 또 입이 굳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얇은 철판을 덧대어 주었다.

 

, 아무래도 턱은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네요. 아무래도 발성은 전자식이니까 쉽게 말은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렇죠?”

 

.”

 

좋아요

 

겐지는 그녀가 좋아요란 말을 굉장히 습관적으로 쓰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녀의 어투는 이 단어에서 만큼은 굉장히 일관되었다.

 

어디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가 볼까요? 일단 일어서 보시죠.”

 

그녀가 태블릿을 붙잡고 겐지의 용태를 주시했다. 그가 관 같은 침상에서 발을 들어 첫 발을 바닥에 내딛었을 때 그는 아주 새로웠다. 수년 만에 걸을 수 있게 됐다던 식물인간의 이야기가 단박에 떠올랐다. 늘 걷던 자신의 발이 한 밤에 이렇게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떤가요. 움직일 만 한가요?”

 

두 발을 떼자 그는 다시 일상의 감각을 되찾았다. 아직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조금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치글러는 그것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좋아요. 팔도 괜찮은가요?”

 

겐지는 팔을 몇 번 튕기며 민첩함을 과시했다. 그림자에 숨던 암살자는 낯선 이 의사 앞에서 마치 기운찬 꼬마 같았다. 치글러는 몇 자를 적더니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그를 데려갔다. 그가 따라간 곳은 꽤나 넓고 현대적인 회의실이었다. 다만 창문이 없어 조금 탁 막힌 느낌이 있었다. 거기엔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치글러가 그들에게 손짓하자 모두의 시선이 겐지에게로 꽂혀 들어갔다. 그는 반사적으로 눈을 피했다.

 

그래 자네가 겐지군.”

 

바실론 씨, 제가 몇 번을 말씀드려도!”

 

겐지는 조금 눈을 치떠 키가 큰 남자를 바라보았다. 넓은 어깨에 단단하고 우람해 보이는 가슴팍에는 “John Basilone”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가 지금 이 곳의 가장 높은 사람임을 직감으로 알아챘다. ‘존 바실론...’ 그는 입안에서 이름을 곱씹었다. 전자식 발음기가 자기 멋대로 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덕분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웃었다. 겐지는 의사와 상관없는 행동에 조금 당황했다.

 

그래, 그래. 관찰이 빠르군. 그래, . 시마다 군?”

 

그는 문장을 끝까지 내지 못하고 결국 또 큭큭 거렸다. 겐지는 그를 삐딱하게 쳐다보는 것으로 응수했다. 존은 그 눈빛을 받고서야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래, 난 존 바실론 대령이네, 현재 극동 옴닉 사태 파견 오버워치 최고 책임자지. 만나서 반갑네.”

 

그가 두터운 팔뚝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겐지는 그의 손을 잡으면서 자신의 기계손의 감각의 놀라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이 새로운 팔은 상당히 놀라웠다. 정교한 기계팔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데도 자신이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자기 팔을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아니, 사실 형태적 이질감만 빼면 자신의 팔과 같은 이 기계가 신기했다.

 

아무래도 치글러 박사님의 기적은 또 통했나보군.”

 

다 린드홀름 씨가 날밤을 새서 노력해주신 덕분이죠.”

 

, 다시는 저런 좀스러운 기계를 만들어 달라고 하지 마!”

 

키가 땅딸막하고 무지막지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얼굴이 벌개져서 자신의 의수를 가슴께에 탕탕 쳤다. 분명 자신이 그 관 같은 침상에 누워있었을 때 들렸던 남자목소리의 주인이었다. 치글러 박사가 겐지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시마다 씨, 여기 있는 분들을 다시 소개할게요. 여기는 아까 들으신 대로 존 바실론 대령이시고. 이 분은 토르비욘 린드홀름 씨입니다. 당신 의수를 만들어 주신 분이죠.”

 

겐지가 이를 듣고 허리를 굽혀 감사 인사를 했다. 린드홀름은 다시 얼굴이 벌게지더니 크게 웃었다.

 

하하! 그래! 그거 열심히 쓰고, 고장 나면 언제든 가져오라고!”

 

여기 이 여성분은 못 보던 분이시군요...”

 

치글러 박사가 혼자 어색하게 서 있던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일본인이었다. 그녀가 한 발 나섰다.

 

하사 우에다 미츠키(上田 充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그래 치글러 박사님은 처음이시겠군. 우리 첫 일본인 오버워치 대원 중 한명입니다. 그 왜 처음 왔을 때 얘기 있었잖습니까.”

 

글쎄요. 전 그 때 아직 스위스 지부에 있었던 것 같네요.”

 

바실론 대령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쨌든 시마다 군.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나?”

 

오버워치... 국제 안보군 본부입니까?”

 

대령이 머리를 끄덕였다.

 

사이타마 시로군요.”

그래 역시 잘 아리라 생각했네. 하지만 조금 달라. 네오-도쿄에 온 것을 환영하네.”

 

바실론 대령이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화이트보드라고 생각했던 칠판이 색이 옅어지면서 바깥 풍경을 보여주는 창문의 모습을 드러냈다. 빛을 가리던 흰 막이 사라지자 방 안의 탁한 분위기가 한순간에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 창문이 보여주는 밖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그들이 있는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네오-도쿄에서는 자기부양 차량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옴닉과 인간 용역들이 바쁘게 화물을 날랐다. 거대한 건물 옥상들 위에는 처음 보는 수송선들이 수직 이착륙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겐지는 이를 넋을 잃고 감상하고 있었다. 그가 있던 곳도 적지 않게 현대화가 된 곳이었지만 마치 이곳은 혼자 미래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도 거대한 방벽은 도쿄 앞바다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하루 이틀이 지난 뒤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고, 자신이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를 박사에게 물었다. 그녀는 한달 반이라고 대답해주며 바실론 대령을 가리켰다.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그래 두 번째 용. 자네가 그 시마다 겐지이기 때문이지.”

 

겐지는 반사적으로 적의 가득한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눈 깜짝하지 않고 여유로운 자세를 고수하고 있었다. 되려 미츠키 하사가 소스라치게 놀란 듯 했다. 사실 그도 그럴게, 현재 겐지의 모습은 썩 유쾌한 인상은 아니었다. 입은 아래턱이 날아간데다가 이를 금속으로 덧대놓은 조금 기괴한 모습이었고- 덕분에 아랫입술도 없었다. -나머지 팔과 다리는 군데군데 근육대신 특수 섬유가 드러난 것이 마치 땜을 한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20세기 말에 나왔다던 만화에 나오는 초생물 병기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이를 무서워하는 것은 말했듯이 미츠키 하사가 전부인 듯 했다.

 

진정하게. 악의는 없어. 시마다 가는 국제 안보군에 있어서도 꽤 골치야. 그리고 자네는 권력 다툼에서 밀려났고.”

 

권력 다툼?”

 

반응이 묘하군.”

 

그 뒤 미츠키 하사가 돌아가고 겐지와 세 사람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겐지는 자신이 그곳에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으며, 마침 시마다가의 주요 인물들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오버워치 일본 지부에 의해서 겐지와 한조의 정황이 포착되어 가까스로 살아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살아났다고는 해도 이미 겐지는 턱과 왼팔이 잘려나가고 많은 양의 근육이 손상되어서 못쓰게 된 상태였다고 한다. 그걸 운송부터 치료까지를 책임졌던 게 앙겔라 치글러 박사였고, 이후 도쿄 요새화가 완공되면서 국제 안보군은 빈약하던 사이타마 시 본부에서 벗어나 도쿄 시내에 주둔지를 설치하고 앞바다를 감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더불어 오버워치는 아시안 옴닉 사태의 복구뿐만 아니라 중남미에서 일어나는 마약 마피아의 근본적 원인을 일본으로 보고 있고, 또 이를 근원부터 제거하기 위한 작전 역시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겐지는 이를 통해 일련의 사건에 대한 개연성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이 집단을 완벽하게 신뢰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집단이 자신이 전략, 혹은 정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만큼은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본론이 뭡니까.”

 

의외군. 자네가 아무래도 피하고 싶어 하는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아무래도 잘 되었네. 우리는 꽤 많은 야쿠자 유파들을 잡아냈지만 실제 마약 유통량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감지했네. 아무래도 더 큰 조직이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단 생각을 했지. 그게 그리고 하나무라 일거라는 내부의 추측이 있었어. 틀린가?”

 

겐지는 반응 하지 않고 계속 얘기를 하도록 두었다. 바실론이 담배를 한 대 물더니 이야기를 계속했다.

 

, 틀리든 아니든 하나무라는 시마다 가문의 기업이란 것은 틀림없지. 어쨌든 우린 그 내부 자료가 필요해. 그래서 이 정보를 틀어막는 한조란 자를 계속 추적했었어. 하지만 대외적인 범죄 조직은 아니니 일단은 최대한 비밀스럽게 말이야. 그래서 우린 확실한 정보가 필요한 거야.”

 

겐지는 얼굴에서 의심을 감추지 못했고, 바실론 대령도 이를 충분히 느꼈을 터였다. 대령은 손을 저었다. 이미 린드홀름은 어딘가로 가버렸고, 치글러 박사도 떠나가고 있었다. 겐지는 독대가 부담스러웠다. 대령은 확실히 호감이 가는 쾌남인 사람이긴 했지만, 어딘가 지독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겐지는 그것이 계속 못미더워 경계했다. 대령은 꽁초를 떨이에 짓누르고는 다시 겐지를 보았다.

 

나는 자네가 좋아. 자유로운 영혼은 자신이 무엇이 옳은지 볼 기회가 있거든. 난 자네가 적어도 이 곳 생활이 편했으면 하네. 그래, 자네 방 키를 가져오라고 시켰었지. 좀 늦는군.”

 

대령이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잠깐 적막. 오히려 이를 참기 힘들었던 겐지 쪽에서 말을 붙였다.

 

오버워치는 뭐하는 곳입니까. 꼭 국제 안보군과 구별해 부르더군요.”

 

, 그래. 헷갈릴 만도 하지. 아직 한 번도 대외적으로 따로 움직인 적은 없으니. 그냥 특별 대응 국제군 정도일세.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위에 상부기관이 없는 단독 조직이지. 글쎄, 조금 작은.”

 

, 그렇군요.”

 

겐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문이 열리면서 미츠키 하사가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여러 잡다한 물건이 들려있었다. 처음에 눈에 띈 물건은 그가 쓰던 어깨 덮개였다. 그가 다가가자 미츠키가 곧 걸음을 멈췄다. 여전히 미츠키의 눈에는 겁먹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존 바실론은 그럼에도 미츠키에게 방까지의 안내를 시켰고 미츠키는 강하게 싫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 미국인은 그만큼 섬세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그것 이상으로 짓궂었다. 결국 회의실 문을 나선 둘은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길을 걸었다. 그리고 물론, 겐지는 그 적막이 싫었다. 그는 어떻게든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녀는 완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발끝만 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곤란하네...’ 겐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발성기는 자신의 일을 너무나 충실히 해냈다. 미츠키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자신의 옆을 돌아보았다. 겐지는 정말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언젠가 이 발성기는 사고를 칠 물건이라고 느끼게 됐다. 겐지는 아무 말이나 해서 이 상황을 무마할 책임이 주어지게 됐다.

 

,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까지 간다고 했죠?”

 

그녀는 짤막하게 사병들 숙소가 있는 C2061호라고 대답한 뒤 다시 발끝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겐지는 이 소심하고 가녀린 소녀를 어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꽤 귀여운 인상을 한 소녀였다. 윤기 있는 검은 머리는 더벅머리 소년 같았지만 그 뒤에 흘러내리는 하얀 목선은 굉장히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체적으로 체구는 왜소했지만 걷어올린 소매에 보이는 팔뚝은 그녀가 얼마나 자기 수련을 열심히 해왔는지 알게 해 주었다. 반쯤 눈을 감았음에도 눈동자를 반도 덮지 못하는 그녀의 눈에는 묘한 빛이 어려 있었고, 코는 작고 귀여웠다. 겐지는 얼마쯤 그녀를 보고 있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완전히 실색하여 입으로 신음을 토해낼 정도였다. 겐지는 결국 하고 싶지 않던 말을 하고 말았다.

 

제가 무서운가요?”

 

…….”

 

거의 기어들어가듯 한 그녀의 목소리는 미안함이 섞여있었다. 겐지는 덕분에 조금 장난기가 일었다. 그들 둘이서만 C관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그는 능글맞게 웃는 얼굴로 물었다.

 

제 아래턱 말이죠, 꽤 괜찮지 않나요? 복싱 기어 같아서 나쁘지 않군요.”

 

얼굴을 들이대는 겐지에게 미츠키는 아무 말도 못하고 속으로는 덜덜 떨 것을 그냥 예의상의 웃음만 유지하고 있었다. 겐지는 한 달 반 만에 만난 이 일본인이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겐지는 반응이 나쁘지 않자 속으로 승전보를 울렸다. 아마 이제 대학생 초년생이라고 생각되는 이 소녀는 건물 바깥을 나왔을 때도 다른 사람과의 대면을 피해가며 겐지를 이리저리로 이끌었다. 겐지는 그걸 지켜보는 게 너무 즐거웠다. 20층에 도착하자 그녀는 일단 자신이 들고 있던 겐지의 소지품과 열쇠를 모두 주었다. 그리고 겐지에게 처음으로 말을 붙였다.

 

, 이건 여기서 저하고 정말 몇 분만 아시는 문젠데, 여기서는 시마다 씨는 자기 이름을 쓰시면 안돼요. 왠지는 아시죠?”

 

, ...”

그래서 여기서 겐지 씨는 산고 케이다(珊瑚 圭邰)라고 이름을 쓰셔야 할 거예요. 전산 처리도 이미 다 그렇게 되어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겐지는 작명법이 정말 짓궂다고 생각했다. 산고라면 삼오로 풀이되지 않는가. 아마 일본을 잘 아는 사람이 지었을 게 분명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겐지는 그녀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이거 이름 지어준 사람이 누구죠?”

 

소녀는 상당히 곤란한 얼굴로 그들의 방 앞에 섰다.

 

그게... 저희.. 오빤데..”

 

?”

 

그녀가 방 열쇠를 겐지에게서 받아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는 전에 없던 큰소리로 그녀의 오빠를 불렀다.

 

오 미츠키. 왔냐?”

 

.”

 

전에 없던 밝은 얼굴이었다. 이것만으로도 겐지는 그녀가 얼마나 낯을 가리는지, 또 얼마나 자신의 오빠가 중요한 존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안녕하세요. 시마다 씨. 우에다 마츠지로(上田 松次郞)라고 합니다. 그렇지 시마다 씨가 아니고... 산고 씨

 

그는 그의 여동생과는 다르게 꽤나 활달한 인간이었고, 겐지의 추측대로 산고라는 이름은 그의 온갖 못된 장난기가 응집된 작명법이었다. 미츠키는 그 전말을 듣고 그의 오빠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그게 그에게는 일말의 효과도 없었다는 것 역시 너무나 당연했다. 마츠지로는 부대 내에서 보급 물자 관리와 경비를 하는 여동생과 다르게 어엿한 전투원이었다. 무려 도쿄 방어전까지 치렀던 그는 도쿄 탈환 이후 해자대에서 국제 안보군, 아니 오버워치로 소속을 바꿨다. 그는 겐지에게 오버워치가 얼마나 대단한 조직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데 온 저녁을 썼다. 겐지는 그 이야기를 질릴 때까지 듣고 그에게 있어서는 첫 밤인 잠을 준비했다.

 

칼은 새를 꿰뚫는다. 뚫린 것은 칼이다. 뚫은 것은 새다. 새는 칼을 꿰뚫는다. 새의 부리는 녹물로 가득 찬다.

 

다음 날부터 그는 사실 크게 할 일이 없었다해봐야 재활 치료와 면담을 빙자한 취조정도, 그 뒤에는 체력 단련실이라는 데를 들러서 운동을 했다. 치글러 박사의 말로는, 이 근육을 대체한 인공 근섬유 역시 인간의 근육처럼 쓰는 대로 발달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겐지는 늘 하던 운동을 게을리 할 이유는 없었다. , 입을 열지 못하는 겐지를 위해 치글러 박사가 준비해준 영양제를 꾸준히 맞는 것도 일과 중 하나였다. 음식 맛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으나 누구 앞에서 속 시원히 말할 이야기는 못 된다고 겐지는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꽤 주변사람들과 친해졌다. 또 오버워치에 대해서도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미츠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공포심이 사라지자 금세 겐지에게 호감을 보였고 이런 미츠키를 마츠지로는 재밌다는 듯이 겐지에게 떠벌려서 일을 키우기도 했다. 겐지는 이런 다시 찾아온 평화에 감사하고 있었고, 자신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결국 꼭 40일이 되던 날 겐지는 오버워치의 협력 요청에 응했다. 그는 적게나마 알고 있던 시마다 가의 불법 사업에 대해 모든 정보를 알려주었고, 오버워치의 전투 요원 제의도 받아들였다. 일단은 특별 계약이었다. 그는 그의 특기를 살릴 수 있게 배려를 받았다. 오버워치 일본 지부 기술부는(린드홀름은 이 프로젝트에서 빠졌다. 그는 이미 귀국을 한 상태였다.) 그에게 알맞은 무장을 맞춰주었다. 그의 의수는 그가 애용하던 수리검을 수납하고 언제든 쉽게 꺼낼 수 있게 개조되었고, 그가 한조에게 당하던 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와카자시는 그 날을 그대로 단도로 만들어 주었다. 또 얼굴이 밝혀지길 꺼리던 그를 위해 탈착 가능한 금속 마스크를 제작해주고, 전체적인 근섬유의 감각이 민감해지도록 조정되었다. 이후 그의 정확한 투척 실력은 총의 사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특히 유용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겐지를 놀라게 했던 것은 린드홀름이 만들어 두고 간 긴 카타나였다.

 

이건 말이죠. 치글러 박사님과 린드홀름 씨의 역작이라고요. 여기서 이 버튼을 누르면 신경계와 동기화가 됩니다. 물론 산고 씨만을 위한 물건이죠. 자 어서 한 번 해보세요.”

 

사실 이 검은 형의 것이 분명했다. 도신에는 선명하게 용검이라는 글자가 박혀있었다. 아마 형이 자신의 검을 가져가고 이 검을 버려둔 것이 분명했다. 검의 날이 묘한 초록빛 형광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손잡이를 잡고 버튼을 눌렀다. 아마 겐지에게 이는 엄청난 경험이었다. 마치 칼이 자신의 팔의 일부가 된 듯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겐지는 엄청난 두통을 호소하며 칼을 놓쳤다. 기술부 직원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이후 칼의 동기화 기능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이후 그는 도쿄 방어 전선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치글러 박사의 건의에 따라 일본 야쿠자의 마약 유통을 감시하는 전력이 되었다. 이후 치글러 박사도 일본 지부에서 떠나고 겐지는 산고 케이다로써 실질적으로 오버워치 일본지부의 존 바실론의 대 옴닉 국제 안보군 공동 전선과 별도로 운영된 대 야쿠자 전선을 이끌게 되었다. 그 규모는 비밀 조직답게 거의 미미했지만 바실론의 배려로 특수 부대의 인원을 차출할 수 있었다. 그가 거의 1년 만에 이런 지도부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일본의 어두운 조직에 대한 지식과 그 자신의 압도적인 무력의 힘이 컸다.

그가 이끈 8개월간 오버워치는 시마다 가의 눈을 피해 여러 조직을 효과적으로 괴멸시켰다. 마약 유통량이 크게 줄어든 효과는 없었지만 조사 결과 수출 항구가 점점 편중되어 가는 것을 확인했다. 겐지와 바실론은 곧 시마다 가가 결정적 실수를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한조가 잠적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조는 어느 순간에 하나무라 엔터테인먼트의 공식적인 직함을 내려놓고 시마다 가 내부에서도 그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겐지는 굉장히 이를 신경을 쓰고 예의주시했지만 바실론은 이를 그의 에너지 낭비로 치부했다. 어쨌든 그 이후 겐지는 조금 더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그는 그가 새로 갖게 된 일 덕분에 자신의 이전의 삶들이 조금 씩 덧대어져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의 불명확한 신념이 그래도 지켜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또 그는 마음 한편에서는 그의 불명확한 신념이 언제나 불안했지만, 이것을 그가 직접 깨달은 것은 조금 더 뒤의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뒤엎는 일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20498월이었다. 네오-도쿄 함락사건이 터진 것이다. 사건 전개는 이러했다. 오버워치의 남중국해 감시기지에서 이레귤러 옴닉의 대량 이동이 감지되었고, 대만과 필리핀을 포함한 여러 주변 국가가 비상체제로 들어갔다. 이 때, 일본 지부에서 엄청난 수의 국제 안보군이 차출되어 해당 주변 지역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배치 일주일 후 느닷없이 이레귤러 옴닉들은 네오-도쿄를 덮쳤고 일본 자위대와 일부 국제 안보군 그리고 소수의 오버워치 요원들은 이를 저지하려 했으나, 타이탄 급의 기체까지 동원된 맹습에 네오-도쿄의 해안 방벽은 파괴되었다. 최종적으로 해수면보다 저지대였던 해저 도크와 안보군 통신기지, 무기고의 1/3은 완전히 수장되었고, 다시 그들은 사이타마 시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겐지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안긴 것은 미츠키의 죽음이었다. 당시 네오-도쿄에 돌아와 있던 그와 부대원들은 방어 작전 중 비전투 요원을 호위, 탈출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전원 03 게이트까지 이동! 우리 부대원들은 적들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해라!”

 

겐지는 비전투 요원들의 선두를 맡으며 이미 후방까지 침입한 옴닉들을 제거해가면서 전진했다. 하지만 모든 수송기마저 폭격기로 대체 운용되는 가운데 도보만으로 도시 외곽까지 움직여야 했던 그들의 속도는 지나치게 느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케이다, 괜찮은 걸까? 오빠는...”

 

걱정 마. 네 오빠는 놀라울 만큼 약삭빠르니까,”

 

겐지는 뒤에서 걱정하는 미츠키를 안심시켜가면서도 자신도 못내 현재 방어 병력들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이미 그들이 주둔지에서 벗어날 때부터 전황은 암울했다. 동남아 지역으로 차출된 병력이 귀환하는 데까지는 적어도 1주일이 소요될 것이다. 이 강력한 공세를 그들이 귀환할 때까지 막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무리라는 것을 바실론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 때였다.

 

세시 방향에서 적 부대 접근 중! 규모 45! 정찰기 1기 이외에는 모두 배스쳔급!”

 

상당한 규모였다. 그의 모든 부대원은 이미 그 강력한 기습을 막으러 집중되어 있었고, 겐지가 이끌던 거대한 규모의 인원은 사실상 무방비해졌다. 겐지는 이를 의식하듯 최대한 옴닉 부대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이동을 재촉했다. 다행이었던 점은, 겐지의 부대는 충분히 유능했고, 압도적인 병력차를 이겨내고 해당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다. 불행했던 점이라면, 사주 경계가 불가능해졌던 틈을 타 다른 옴닉들이 그를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제길! 여기는 본대! 적 부대가 12시 방향에 출현했다! 지원이 시급하다!”

 

겐지는 무전을 하고는 자신의 요원 둘과 빠르게 달려들었다. 족히 스물은 되어 보이는 그들의 부대는 빠르게 비전투 요원들이 있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총을 쏘는 그들에 맞서 빠르게 수리검을 던졌다. 인공 근섬유의 초인적인 힘은 그들의 간소화된 장갑을 뚫고 치명적인 효과를 내었다. 그러나 결국 겐지와 두 명의 전투원은 옴닉의 전진을 완벽하게 제지할 수 없었고, 사실상 민간인이었던 비전투 요원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세 명뿐인 호위팀은 이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중간에 겐지의 나머지 부대가 합류해 뒤를 치지 않았다면 비전투 요원들은 몰살당했을지도 몰랐다. 잠시 주변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겐지는 피해 상황을 수습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미츠키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겐지와 대치하던 옴닉 일부가 비전투 요원들을 노리자 사격을 시작했다. 몇몇 비전투 요원들은 이를 도왔으나 옴닉들의 화력은 이를 가뿐히 상회했다. 제대로 된 전투 훈련을 받지 않은 이들은 다른 비전투 요원들을 지키는 데는 성공적이었으나 그 자신들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다. 결국 미츠키는 전투에 임한 다른 요원들과 함께 온 몸에 기관포 세례를 맞고 숨이 끊어졌다.

사이타마 시 후퇴 뒤 겐지를 만난 마츠지로는 오열했다.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된 그의 여동생을 만지지도 못하고 그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목을 놓아 울었다. 그리고 겐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적대감에 몸서리쳤다. 마츠지로는 겐지에게 동생을 지키지 않은데 대한 온갖 광기에 가까운 원망을 쏟아냈다. 다른 이들이 그 자리에서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뭔가 더 큰일이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겐지는, 그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어쩌면 속으로는 그 역시 자신에게 그 광기에 가까운저주를 퍼붓고 있을지 모를 노릇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국제 안보군은 다시 네오-도쿄를 탈환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여론은 이 패배에 대한 책임을 국제 안보군의 대응능력 부재로 몰아나갔고, 일본에서 오버워치가 행동력을 잃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타격은 당시 방어전에서 바실론 대령의 전사도 한 몫 했다. , 당연한 일이지만, 겐지는 더 이상 일본 지부에 남아있지 못했다. 그는 주변과의 불화는 물론 그 자신 스스로도 불안 증세에 고통받았다. 그는 마츠지로가 준 산고 케이다란 이름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영국령 지브롤터에 오버워치가 무기한 임대를 해서 건설한 감시기지 쪽으로 이동했다.

 

나는, 나는? 나는? 그래? 그럴까? 정말로? 아니야 그럴 리 없지. 나는? 아니, 아니 너는. 그래그래. 너는 말이지. 아니. 아니! 그래? 정말로? 너는. 그래 나는 말이지. 아니야! 아니? 아니라고? 글쎄? ? ? 어느 쪽? 나는. 나는. 아니 그래. 너는.

 

겐지, 괜찮은가요?”

 

, 치글러 박사님.”

 

치글러 박사는 50년부터 53년까지 지브롤터에서 복무했다. 그 때 대부분의 겐지가 아는 오버워치의 중핵 요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불면증이군요.”

 

겐지는 그 사건 이후 지독한 수면 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치글러는 거의 매일 시간을 쪼개어 겐지의 상담을 도왔다. 그럼에도 겐지는 매일 거의 위험한 수준의 신경 안정제와 수면제를 복용해야 했다. 겐지가 정신적으로 처절하게 파괴된 것은 파리 전투 이후였다. 파리 북부 외곽지역 폐 옴닉 처리 시설에서 시작된 이 파동은 이미 상당한 민간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파리 군의 구조 요청과 동시에 시작된 이 전투는 에펠 탑으로 유명한 샹 드마르스 공원까지 번져나갔다. 정확히는 파리 수도 방위군과 경찰의 판단 미스였다. 셴강 북부에서 너무 전선을 넓게 형성한 나머지 전선 중간이 뚫려, 크게 타격을 입고 패주한 후 재집결 한 곳이 샹 드마르스 공원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옴닉들이 셴 강을 건너면 이후의 파동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이미 한 번 전선이 뚫린 파리 방위군 입장에서는 결사적으로 옴닉들의 도하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오버워치 지브롤터 강습부대가 공수작전을 시작했다.

 

여기는 잭. 겐지와 윈스턴은 파리 북부에 강하해서 시민들을 구출한다. 트레이서? 작전 상황은?”

 

여기는 트레이서. 거의 다 됐어요. 2분만!”

 

좋아. 메르시, 발키리 슈트 강하를 준비해라 너와 난 나머지 부대와 남부를 지원한다. 레예스 녀석이 사태의 근원지인 처리장을 박살 낼 거다. 아마리, 수송선에서 저격을 계속해라.”

 

라져.”

 

좋아요. 발키리 슈트 가동. 강하합니다.”

 

이후 조종은 자동 모드로 고정한다. 윈스턴 팀 강하 14분 전! 시각을 확인해라.”

 

반복합니다. 시각을 확인합니다. 현재 시각 2008. 겐지, 준비 되셨나요?”

 

그래. 언제든지.”

 

겐지는 그의 마스크를 쓰고 역추진 강하복을 착용했다. 그는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를 바라봤다. 2009. 12분이 남아있었다. 수송기 무전이 들려왔다.

 

여기는 트레이서! 준비 완료! 언제든 가능해요!”

 

좋아, 빠르군. 시작해!”

 

쇼 타임!”

 

코드 트레이서, 레나 옥스턴은 상당히 활달한 성격이었다. RAF(Royal Air Force:영 공군)에서 복무한 엘리트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말괄량이에 장난꾸러기였다. 아마 지금 맡고 있는 작전은 펄스폭탄을 이용해 옴닉의 헤드 쿼터를 박살내고 또 그때 발생하는 자기폭풍을 이용해서 통신을 두절하는 계획일 것이었다. 거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그녀에게 잠입 임무는 암살자인 겐지에게 만큼 쉬운 일이었다.

 

여기는 잭. 적 통신 두절이 확인 됐다. 프랑스 군과 함께 도하를 시작한다.”

 

? 이미 네놈은 끝났어. ? 그래, 그래 넌 누구냐고? 아니, ? 글쎄. 네놈에게 묻는 게 빠르겠지, 나는 누구지?

 

겐지 씨! 일어나세요! 이제 가야합니다!”

 

윈스턴이 흔들어 깨웠다. 아무래도 잠을 못잔 것이 자꾸 피로로 다가왔다. 눈앞이 계속 몽롱했다. 윈스턴이 그를 걱정했지만 그는 괜찮다며 일어섰다. 겐지는 수송선 끝에 서서 기다렸다. 경고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문이 열렸다. 겐지는 손잡이를 잡고 밑을 내려 보았다. 상당한 높이 임에도 시내가 불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윈스턴이 겐지를 잠깐 바라보고 뛰어내렸다. 겐지도 잡념을 떨쳐낼 때였다.

파리 북부 시내로 진입했으나 생각만큼 적이 많지 않았다. 22, 겐지와 윈스턴이 함께 움직이면서 3시간 동안 파괴한 옴닉의 수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적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였다.

 

여기는 잭, 적들이 후퇴하기 시작한다. 윈스턴 팀과 레예스 팀은 주의해라.”

 

알겠습니다! 겐지 씨, 여기선 차라리 갈라지는 게 빠르겠군요. 모리슨 씨 부대에서 만납시다.”

 

그래.”

 

겐지는 서쪽으로, 윈스턴은 동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거의 프랑스 군의 진지에 가까워 졌을 때 겐지는 후퇴중인 옴닉 한파와 맞부딪혔다. 이미 대부분 반파되어 싸울 수 없는 기체들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후였다. 옴닉들은 겐지를 같은 옴닉이라고 생각하고 도움을 구했다. 이미 피로가 정점에 선 겐지는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을 합리적으로 타개할 생각을 할 만큼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겐지는 그저 검을 들고 그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냈다. 그리고 단 한 기가 남았다. 그 옴닉의 단말마는 처절했다.

 

이 더러운 배신자!”

겐지는 칼을 집어넣고 옴닉의 머리를 세게 후려찼다.

이후 파리 전투는 싱거울 만큼 쉽게 끝났다. 레나 옥스턴과 레예스의 활약으로 프랑스 옴닉 사태는 뿌리까지 뽑혔고, 이후 프랑스는 옴닉의 위협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작전 중에서 레예스가 벌인 비도덕적 행각이 발각됐고, 레예스는 잭 모리슨과의 불화까지 겹쳐 비밀조직 블랙워치를 조직해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겐지는 그 이후로 전투에 나가지 못했다. 그는 하루 종일 운동을 하고 침대에 틀어박혀서 잠을 자지도 못하고 그저 괴롭게 시간만 죽여 나갔다.

 

거울이다. 거울 앞에 서도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거울에 녹물이 흐른다. 피가 흐른다. 또 새는 하늘을 날지 못한다. 땅에 내려온 먼지는 또 그대로 땅이 된다. 겹치고 겹친 눈들은 더러울 뿐이지. 눈은 검다. 그래 내 눈도. 새는 날지 못한다. 새는. 새는.

 

그는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자신의 살에 들이박힌 쇳덩이들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반이 기계이기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근거 없는 결론을 내고는 자신을 저주했다. 그는 몇 번이고 자신을 유지하고 있는 핵심적인 장치들을 자신의 손으로 부숴버리고 기절해버리는 일을 반복했다. 한번은 자신의 턱을 다시 부수기도 했다. 자신의 악력으로. 이런 신체들은 치글러 박사의 배려로 복구할 수 있었지만, 이미 그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옴닉 사태가 진정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 역시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일본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광적으로 거부했다. 그가 투여 받는 약은 점점 더 늘어났고, 그는 처음 그가 지금의 몸을 가졌을 때보다 더 상황이 나빠졌다. 그는 이제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에 들었고, 귀신같은 괴성을 지르면서 잠에서 깨었다. 치글러 박사는 더 이상 그에게 약을 투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그러기엔 겐지라는 존재 자체의 위험성이 너무나도 컸다. 지브롤터의 요원들은 겐지에게 연민을 가지면서도 그를 계속 묶어두길 희망했다. 무엇보다 그가 사고를 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겐지 역시 그러한 기대를 느끼고 있었고, 그를 더 괴롭게 하는 요인이 됐다. 자신이 다시 무능해져가고, 또 무뎌져 가는 것을 느꼈다. 거의 폐인이 되어 그의 손은 검 하나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악몽을 꿨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잠 대신 악몽들을 먹어치웠다.

 

두 발 앞에 한 걸음 뒤에, 넌 또 누구를 죽였지? 용은 보주를 잃고 진흙탕의 미꾸라지. 나는 죽음을 향해. 나는 죽음을 향해. 너를 걷네. 너는 누굴 위해? 세상은 어딜 향해. 몽롱한 쾌감에 휩싸여 죽음을 택하는 새의 깃털은 구부러지고 부러지고 타버리는- 나는 네가 죽인 삼천도의 해골들. 너는 누구를 향하여? 나는 너를 걷네. 너를 걷네. 나무는 숯이 되지만 숯은 나무가 되지 않네, 네가 죽인 나무여, 동백나무여. 네 죽음만큼 오래된 그들의 죽음. 그리운가? 그들의 근육과 뼈와 힘줄들. 그들을 어루만지는 너란 죽음은. 아 그래. 그래. 그 새는 이미 없을지도 모르는-

 

이후 오버워치는 스위스 지부 테러사건을 계기로 UN의 감사를 받았고 비밀리에 움직이던 블랙워치란 산하 조직이 문제가 되어 최종적으로 폐쇄되었다. 당시 스위스 지부에 있던 앙겔라 치글러 박사는 중상을, 잭 모리슨과 가브리엘 레예스는 사망하였다. 호라이즌 기지에 가 있던 윈스턴은 빠르게 복귀 했으나 상황이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잠적한 뒤 연락 두절이 됐고, 레나 옥스턴 역시 떠났다.

이미 정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겐지는 레나의 조언에 따라 인적이 드문 오지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사람을 피하고 신경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인 자신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악몽은 그를 극한까지 몰아붙였다. 매일같이 길바닥에 기절해서 잠을 자고 또 계속 걷는 일을 반복했다. 체력이 바닥나면 아무 생각 없이 잘 수 있었기에 그는 악몽이 자신을 몰아붙이기 전에 자신을 미리 몰아붙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꿈을 꾸지 않고 자는 데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소비했다. 그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만큼 그는 괴롭게 지냈다. 밤이 되면 그의 귓가에 그 때의 옴닉의 외침이 반복됐다. 배신자! 그는 하루의 마지막을 그 저주스러운 단어로 마감했다. 그는 자신이 속했던 모든 곳에서 배신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발단인 형과, 또 자신을 저주했다. 그믐달의 날 끝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기분 나쁜 현기증이 눈앞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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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입니다.

아, 뭐랄까, 글이 산만하네요...

 

그냥 겐지의 정신병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싶었습니다.

 

3편은 한조 얘기를 짧게 할 거구요.

4편은 젠야타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점점 이야기를 추상적으로 바꿔나가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만,

 

필력의 한계로 이  사단을 내는군요 ㅠㅜ

 

아무쪼록 잘 봐주십쇼. 댓글 달아주시면 더 감사할 것도 없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