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4678&my=post&l=5711 - 1편 링크.

 

 알베르트 가른은 한창 용접에 집중하고 있었다. 작업실의 벽면엔 다양한 방식으로 개량된 크루세이더의 갑주들이 매달려 있었다. 방구석에는 세계 각지에서 배송된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탁자엔 수많은 설계도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지만 가른은 능숙하게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꺼내 작업을 이어나갔다. 나는 문 앞에 서서 그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작업모에서 구슬땀이 흘러내릴 때마다 합금은 더욱 견고해졌다. 가른은 내게 곁눈질을 보낸 뒤에 이마의 땀을 훔쳐내며 일어났다.

 

 Q : 옴닉 사태 당시 독일의 대응책에 관하여.

 A : 음…그냥 제가 아는 선에서 말씀드리면 되는 거겠죠? 저희는 지금 이 벽에 걸린 것들로 옴닉을 상대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당시 독일군은 대부분 로봇 장비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일시에 무력화된 뒤부터 사람이 가장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는 장비가 필요했습니다. 러시아나 미국은 광활한 국토를 활용해 지연전을 펼치면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저희는 물러설 곳이 많지 않아서 서둘러야 했습니다. 저희의 갑주는 원래 대테러전을 생각해서 만든 시가전용 장비였습니다. 경기관총까진 무리 없이 막아냈고 그보다 더 강한 화력엔 방벽 방패를 전개하는 거로 해결할 수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그걸 일선용 장비로 개조해야 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기술자들이 잠도 없이 일하는 동안에도 옴닉의 공격은 갈수록 거세져 갔습니다. 크루세이더 부대는 갑주를 받자마자 독일 전역에서 쉴 새 없이 싸웠습니다. 그러고도 모든 병력을 긁어모아서 한 번 크게 붙은 뒤에야 옴닉을 겨우 저지할 수 있었죠.

 

 Q : 그 한 번이 아이헨발데를 의미하는지?

 A : 물론입니다. 아이헨발데는 슈투트가르트 인근에 있는 유서 깊은 성채 마을이었습니다. 옴닉이 슈투트가르트의 산업 시설들을 점령한다면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물량이 쏟아져 나올 게 분명했죠. 독일군은 병력이 압도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대담한 작전을 계획했습니다. 그들은 크루세이더를 포함해 소수 병력으로 구성된 모루가 아이헨발데를 거점으로 버티는 동안에 망치 역할을 할 주력으로 옴닉의 보급로를 끊고 놈들을 양쪽에서 포위하려고 했습니다. 옴닉의 대병력이 아이헨발데로 밀려오는 동안에 모루 부대는 정말 처절하게 버텨야 했습니다. 크루세이더의 부대장인 발데리히 아들러를 비롯해 용맹한 크루세이더 전사들이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죠. 다행히도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망치 부대는 옴닉의 후방을 제대로 후려쳤고 놈들은 역으로 아이헨발데에 끼어버렸습니다. 그 뒤에도 전쟁은 계속됐지만, 우린 거기서 처음으로 옴닉의 진군을 막아냈습니다.

 

 Q : 크루세이더 부대는 정말로 효율적인 수단이었는지?

 A : 당신도 철없는 얘들이 지껄이는 헛소리를 들었나 보군요. 지금에 와선 이 크루세이더 장비들은 전부 구식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엔 저희가 쓸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였고 그게 효과적으로 먹혔다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의 강화 군인들만큼이나 우리 크루세이더 전사들도 일당백 정도는 거뜬했어요. 단지 적이 너무 많았다는 게 문제였죠. 러시아의 조종사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크루세이더는 콩알만 한 배터리가 맛이 갈 때까지 싸워야 했습니다. 저는 그때 정비창에서 일하면서 크루세이더의 장비를 수시로 점검해 주었습니다. 전장에서 무사히 돌아온 이들은 스스로 갑주를 벗을 힘도 없어서 종종 축 늘어져 있곤 했죠. 피투성이가 된 부상자들은 도자기처럼 갑주를 일일이 깨부숴서 꺼내줘야 했습니다. 헬멧 부분을 해체할 때 보이는 그 처참한 얼굴들은 차라리 꿈에서 귀신을 보는 게 나을 정도죠. 죽어서 실려 온 이들은 갑주를 관으로 삼아줬습니다. 지금 국립묘지에 가보면 그런 식으로 관 속에 관이 담긴 묘지가 수두룩하게 널려 있습니다. 크루세이더가 효율적이었냐고요? 그들이 있었던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남아있는 겁니다. 그런데 감히 그들에게 효율을 논해요? 당신이야 그냥 물어보는 거니까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좆도 경험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따위 소리를 공공연하게 지껄여대는 놈들은 제가 만나면 아주 죽여버릴 겁니다.

 

 Q : 옴닉의 무장 상태는 어땠는지?

 A : 옴닉은 초기엔 원래 우리가 보유하고 있던 장비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바스티온과 타이탄을 비롯해 은행 경비용으로 쓰던 경찰 로봇까지 놈들의 전자전에 넘어가 버렸죠. 어느 정도 생산 기반을 마련한 뒤부턴 그것들을 옴니움에서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린든홀름 씨의 역작들도 수없이 도용됐습니다. 아이헨발데 이전까진 그것들만 상대했기에 저희도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었죠. 아이헨발데 전투 이후부턴 옴닉들은 뭐랄까…마치 각성한 것 같았어요. 자체 개발한 전쟁 괴물들이 전장에 나타났죠. 제가 그 장비들을 살펴볼 때마다 외향은 거의 비슷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발전하는 모습이 분명히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옴닉 사태가 끝날 때까지 똑같은 바스티온만이 계속 옴닉의 주력으로 쓰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온갖 환경과 용도에 맞춰 변화해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옴닉의 전술도 갈수록 정교해졌다곤 하는데 저는 그 부분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옴니움이 계속 가동됐다면 지금 박물관에 있는 바스티온의 외형들도 완전히 딴판이었을 겁니다. 그것들을 전시할 박물관까지 없어졌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요.

 

 Q : 왜 군대는 EMP로 대응하지 않았는지?

 A : 그게 사람들이 가장 착각하는 점입니다. 전자 병기는 저희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들이 가진 핵무기만 동원해도 세계 각지의 옴니움은 모조리 마비시킬 수 있었어요. 아무런 장애물이 없었다면 말이죠. 옴니움에 거대한 방벽이 쳐져 있었다는 사실은 당신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게 저희의 공습을 막아줌과 동시에 일종의 패러데이 새장 역할을 해주고 있었어요. 설령 그 방벽을 뚫는다 쳐도 옴니움의 핵심 컴퓨터들은 전부 방호책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Q : 전후 처리에 관하여.

 A : 우리가 그것들을 어떻게 정리했냐고요? 오버워치 대원들이 옴니움을 정지시키고 나서 놈들의 병기는 대부분 제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그 뒤부턴 군대보다 저희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았습니다. 지천에 깔린 고철들을 수거하고 잔해를 정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종으로 처리되어 있었던 사망자들을 곳곳에서 찾아냈죠. 그 작업에만 몇 년을 매달렸는데도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게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아이헨발데도 그 중 한 곳입니다. 정부에선 늘 재건 사업에 필요한 예산이 부족하다고 우는소리를 하지만 그 역사적인 현장을 폐허로 내버려 두는 건 크루세이더 부대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 혼자서라도 그곳을 방문해서 전사자들을 제대로 된 곳으로 옮겨주고 싶습니다.

 

 

 야리 코스키넨은 창밖을 내다보면서 파이프를 뻐끔거리고 있었다. 산장에 방문객은 없었지만, 그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의 몸은 야위었지만, 눈매는 누구보다 날카로웠고 앉은 자세에서부터 꼿꼿한 기개가 느껴졌다. 그는 쇠꼬챙이로 화로 속에 남아 있는 타다 만 장작들을 툭툭 건드리면서 내 질문을 기다렸다.

 

 Q : 저항 활동을 하기까지.

 A : 우리나라는 옴닉에 저항할 힘이 없었어. 다른 나라들처럼 군인들이 뭔가 해보려고 했지만, 놈들을 막기엔 턱도 없었지. 순식간에 헬싱키를 포함한 주요 도시들이 함락되었고 사람들은 난민이 되어 조국을 떠나거나 놈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들었어.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지. 그나마 난 가족 같은 게 없어서 맨몸으로 다니는 게 어렵지 않았어. 나보다 책임질 게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것을 지키려다가 죽어버렸어. 처음엔 그런 선택을 피하고 싶어 하던 이들이 저항을 선택했네. 그런 다음에 나처럼 옴닉의 지배가 개 같다고 느낀 이들이 모여들었지. 군대가 버리고 간 장비가 많아서 물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 그러니까 처음엔 그랬단 소리지.

 

 Q : 어떻게 활동했는지?

 A : 그야 될 수 있으면 조용히 움직였지. 도시엔 놈들에게 굴복한 사람과 옴닉밖에 없었어. 그래서 인적이 드문 촌락이나 여기 같은 산맥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옴닉보다 같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게 더 힘들었어. 그땐 옴닉에 협력하는 기회주의자들이 꽤 많았거든. 대놓고 공개는 안 하지만 다른 나라에도 그런 놈들이 꽤 있었을 거야. 우리 소대는 산과 빙판을 오가면서 놈들을 끈질기게 괴롭혔어. 당연히 정면승부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말이야. 낮에는 숨어있다가 늘 밤에 움직였어. 그나마도 적이 우리보다 많을 때는 그냥 보내줘야 했지. 그렇게 길게는 몇 주씩 눈치만 보고 있다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적이 나타나면 이리떼처럼 한꺼번에 덮쳐서 전멸시킨 뒤에 재빨리 보급품을 챙겨서 달아났어. 그게 우리가 탄약과 부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어.

 

 Q : 옴닉은 어떻게 공격해왔는지?

 A : 놈들도 우리만큼이나 끈질기게 추격해왔지. 놈들은 처음엔 병력을 집중시켜서 아예 우리가 덤벼들지 못하게 하려고 했어. 그런데도 우리가 계속 빈틈을 찾아내서 공격하니까 그때야 토벌대를 풀기 시작했지. 산의 주요 통행로엔 원래 우리 거였던 경비 로봇들이 배치되고 옴닉들이 직접 숲들을 헤집고 다녔지. 그래도 우린 매번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어. 놈들이 우리를 과소평가했는지 항상 허점이 있었거든. 덕분에 놈들을 역으로 사냥할 기회가 많았어. 그때가 우리의 황금기였지. 통신 장비가 확보되면서 다른 지역의 저항 단체들과도 협력할 수 있게 됐어. 한 번은 대대급 병력을 포위해서 몰살시킨 적도 있었다니까. 근데 그게 놈들을 너무 자극했던 모양이야. 수십 명을 잡으려고 수천 대를 풀어대더군. 놈들은 하늘에서도 미친 듯이 퍼부어댔어. 우리 머리 위엔 새보다 드론이 더 많았는데 산을 갚아 엎어버릴 기세로 폭탄이 수백 발씩 쏟아졌어. 그걸 맞고 죽은 사람보다 충격에 미쳐버린 사람이 더 많았어. 그런 사람들은 멋대로 도망치다가 차례차례 놈들에게 걸려들었지.

 

 Q : 바로 죽이지 않았나요?

 A : 포로들 말이야? 저항하면 죽였지. 순순히 잡혀간 사람들은 심문을 받다가 말이 안 통한다 싶으면 죽기 직전까지 고문했고 그래도 불지 않으면 공개처형을 했어. 불더라도 정보를 전부 캐낸 뒤엔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처리했지. 이런 방식이 알려진 뒤부턴 항복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 이건 놈들이 너무 멍청했던 거야.

 

 Q : 그 이후부터의 활동에 관하여.

 A : 벌레만도 못한 생활을 해야 했어. 삽과 곡괭이만으로 터널을 파다가 들통날 것 같으면 며칠씩 같은 자리에 숨어서 놈들을 따돌려야 했는데 그땐 나무껍질까지 씹어가면서 버텼어. 어쩔 땐 신발이나 혁대라도 삶아 먹고 싶었지. 우린 이동 수단을 스키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나중엔 철판을 떼어다가 어떻게든 구부려서 스키를 만들었어. 그런 장난감 같은 걸 타다가 눈사태에 휘말리면 비명 한 번 못 질러보고 쓸려나갔지. 그런 식으로 몇 달, 몇 년을 버티고 또 버텼어. 그 지옥 같았던 시간은 아무리 길게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거야. 그렇게 살아남는 와중에도 악착같이 옴닉을 죽여나갔지.

 

 Q : 본인들의 저항 활동이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는지?

 A :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있었지. 사실 우리 전과는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야. 우리가 옴닉을 수천 대는 조지긴 했지만, 놈들은 그 정도의 피해는 금세 복구할 수 있었어. 우리가 아무리 사방에서 날뛰어봤자 놈들을 조금 성가시게 만든 게 전부였지. 우리 선조들이 소련인을 막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던 거야. 그래도 나는 그때 내가 했던 생고생들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곤 생각하지 않아. 그런 발악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은 희망과…의지를 잃었을 거야. 나는 가끔 도시에 들를 때마다 비밀리에 우리를 환영해주던 그 눈빛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진짜 희망은 오버워치가 가지고 왔지만, 사람들에게 그동안 버틸 수 있는 용기를 준 건 우리였어. 우리의 저항은 분명히 의미가 있었어.

 

 Q : 여전히 옴닉을 증오하는지?

 A : 물론이지. 난 절대로 그 고철들이랑은 섞여 살 생각 없어. 그런데 요즘엔 옴닉보다도 더 가증스러운 것들이 생각나더군.

 

 Q : 가증스러운 것?

 A : 옴닉이 그만한 힘을 갖출 때까지 내버려 둔 작자들 말이야. 그 새끼들은 무슨 생각으로 옴니움을 내버려 뒀던 거지? 그 멍청한 짓만 아니었어도 전쟁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어. 지난 몇 년간 빠짐없이 신문을 챙겨봤는데 관련자들을 잡기는커녕 수사했다는 내용조차 찾아볼 수 없었어. 그 정신 나간 새끼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씨발!

 

 


 리암 자크는 내게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의 깔끔한 정장 차림 못지않게 사무실은 책상 위만 빼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한가득 쌓여 있는 서류 뭉치를 책상 밑에 대충 처박아놓은 뒤에 내게 커피에 설탕을 몇 개나 넣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거절했다. 커피를 가져오면서 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감돌았다. 자크가 다루는 서류에 관련된 내용을 생각하자니 그의 환영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Q : 제네바의 옴닉 사법 기관이 하는 일에 관하여.

 A : 간단합니다. 옴닉 사태 때 옴닉들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조사하고 그와 관련된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게 저희의 역할입니다. 1차 옴닉 사태가 끝나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희생자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조사해온 사건의 배후엔 대부분 옴닉이 있었죠. 이미 멈춰버린 병기들은 어쩔 수 없지만 옴닉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합니다.


 Q : 옴닉의 전쟁범죄에 관하여.

 A : 민간인 학살, 무차별 폭격, 생화학 무기 사용, 불법 무기 사용, 아동 살해, 인체 실험, 포로 학살 그 외 약탈과 파괴 행위 등등 강간을 제외한 범죄를 전부 저질렀습니다. 포로 심문 중에 가한 성적 학대까지 포함한다면 성범죄도 적잖게 저지른 셈이죠. 여기에 옴닉은 선전포고 없이 전 세계를 상대로 기습공격을 감행했습니다. 형량으로 따지자면 옴닉들이 땅속에서 분해되어 사라질 때까지 가둬놔도 모자를 지경이죠.


 Q : 범죄자를 어떻게 찾아내고 있는지?

 A : 저희는 국제 수사기관들과 공조해서 사회에 숨어 있는 옴닉 전범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놈들은 인간 범죄자들보다도 교활하고 은밀합니다. 수시로 외형을 바꾸거나 자기 자신도 인지할 수 없게 기억을 삭제하곤 하죠. 그래서 의심 가는 지역에 있는 옴닉들을 전부 불시 검문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옴닉들의 제조 기록과 일련번호, 기억 소자, 개조 상태 등을 파악한 뒤에 수상한 점이 발견되면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조사합니다. 범죄 사실이 확인된 옴닉들은 이곳에서 재판을 받고 저지른 죄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Q :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A : 군인 이외의 살인이 입증될 경우엔 무조건 폐기 처분됩니다. 그와 관련된 지시를 내렸거나 책임이 있던 옴닉들도 마찬가지고요. 강도가 높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경우엔 인공지능과 관련된 핵심 부품들을 제거한 뒤에 몸체만 보관 용기에 가둬집니다. 이런 부류는 나중에 다시 쓰일 여지가 있지만, 지금으로선 폐기나 마찬가지라고 보면 됩니다. 그 외엔 인간들처럼 전용 감옥에 수감됩니다.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고 식비가 들지 않아서 인간 죄수보다 나은 점도 있긴 합니다. 형량을 모두 채운 뒤엔 기억 소자를 새로 이식해서 본인을 전쟁 이후에 제작된 옴닉으로 인식시킵니다. 실용성은 없지만 이렇게라도 옴닉들이 죗값을 치르길 바라는 사람들이 아주 많답니다.


 Q : 옴니움에 소속되어 있던 옴닉들만 처벌을 받고 있겠죠?

 A :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Q : 안타깝다뇨?

 A : 저는 격리주의자들처럼 옴닉들을 모조리 몰아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옴니움에서 만들어졌건 아니건 간에 옴닉들은 사회 곳곳에 숨어져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의견을 대놓고 말하면 옴닉 인권 운동가들한테 뭇매를 얻어맞겠지만 겨우 그런 것에 기죽어서야 살인마 옴닉들을 기소할 수 있겠습니까?


 Q : 하지만 일반 옴닉들은 옴닉 사태와 상관이 없잖아요?

 A : 그렇습니다. 옴닉 사태 당시에 옴니카 코퍼레이션의 본사와 중역들을 철저히 조사해봤지만, 그들에겐 옴니움을 다시 가동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옴니움 내부에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할 만한 장치나 프로그램을 남겨놨다는 증거도 없죠. 옴니움에 들어간 옴닉 또한 옴닉 사태 이전까진 목격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옴니움이 가동되기 전에 제작된 옴닉들은 전쟁에 책임이 없습니다.


 Q : 그런데 어째서….

 A : 그냥 제가 옴닉이 좆같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로 칩시다. 물론 당신에게 생각이 있다면 이런 내용을 그대로 쓰진 않으시겠죠.


 Q : 인간들이 옴닉에게 저지른 범죄에 관하여.

 A : 흠…인간이 만든 발명품을 부수는 게 범죄라고 친다면야 재판받아야 할 사람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옴닉 사태 초기에 사람들은 몇몇 과격한 옴닉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사회에 동화되어 있던 옴닉들은 화를 모면할 수 있었죠.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옴닉이 점점 세력을 확장하자 사람들은 각자 가까운 곳에 있는 옴닉들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비무장 옴닉들이 길바닥에서 채이고 쇠사슬에 목이 감긴 채로 공개 처형되는 일들이 빈번했죠. 사태가 진정된 후에도 옴닉들은 갖가지 차별을 받아야 했고 종종 과격파의 분풀이 대상으로 쓰이곤 했습니다. 지금의 법대로라면 그들도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옴닉의 인권 조례안이 정립되기 전이었어요. 그래서 옴닉들 입장에선 안타깝게도 그들의 범죄는 묵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Q : 앞으로의 계획에 관하여.

 A : 저희는 모든 전범의 체포를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목표로 삼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간 전범들을 기소하는 일이죠.


 Q : 무슨 말씀이신지….

 

 자크는 책상 서랍에서 빛바랜 컬러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의 자크 옆에 그보다 앳돼 보이는 금발 머리의 소녀가 찍혀 있었다.


 A : 제 여동생입니다. 옴닉 사태 때 저랑 같이 대피하다가 기차가 탈선되서 죽었습니다. 옴닉 새끼들이 민간인 대피 경로에 폭탄을 갈겨댄 덕분이죠. 전 거기서 기적적으로 경상만 입었습니다. 그래서 구출될 때까지 여동생이 좌석에 끼어서 으스러진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제 제가 왜 옴닉들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지 아시겠습니까? 옴닉들이 그렇게 나대도록 놔둔 범죄자들이 여기저기에 숨어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새끼들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터 우즈는 내 인터뷰 제안에 세 가지 조건을 달았다. 첫째, 자기가 지정한 장소에서만 대화할 것. 둘째, 그 장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안대를 착용하고 자신의 안내를 따를 것. 마지막으로 셋째, 촬영 및 녹음에 이용될 수 있는 전자기기를 소지하지 말 것. 나는 수첩과 볼펜만을 들고 으슥한 골목을 돌아다녔다.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내 눈에 안대를 씌웠다. 그는 내 손을 잡고 따라오란 듯이 흔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십 분을 돌아다닌 뒤에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문을 닫고 나서 내 안대를 벗겨주었다. 곰팡이가 피어 있는 낡은 벽으로 둘러싸인 밀실이었다. 천장엔 백열전구 하나만이 애처롭게 빛나고 있었다. 우즈는 모자를 벗고 퀭한 얼굴로 나와 마주 보았다.

 

 Q : 옴닉 사태 이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A : 우리는 옴니카 코퍼레이션의 처분을 맡고 있었습니다. 사기극이 밝혀진 뒤에 그들의 자본을 압류하고 각지의 옴니움을 정리하는 게 목적이었죠.

 

 Q : 그런데 왜….

 A : 바로 그 빌어먹을 질문 때문에 제가 이렇게 가명을 쓰고 있습니다. 무지한 대중은 전쟁의 책임이 우리한테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전 그땐 일개 월급쟁이에 불과했어요. 그냥 회사로 쳐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몰수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Q : 그렇다면 뭐가 걸림돌이었나요?

 A : 옴니카 코퍼레이션의 막대한 자본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에게 몰려 있던 자본이 얼마나 되는지 대충은 알고 계시겠죠? 옴니움은 한 곳에만 적게는 수십조 원이 뿌려진 돈지랄 그 자체였습니다. 그 엄청난 돈이 어디서 났겠습니까? 세계 곳곳의 투자자들한테서 얻어낸 거죠. 그런데 그 투자자 중에는 국가들도 있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기타 등등. 수많은 국가의 자본이 몰린 게 움니움의 실체입니다. 놈들의 사기극이 들통나고 나서 투자 국가들은 자신들의 자본이 먼저 돌아올 수 있게 여러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개되지 않은 물밑 작업이 엉켜서 결국엔 아무것도 가지고 나올 수가 없게 됐어요.

 Q : 예를 들자면?

 A : 독일에 있던 옴니움을 생각해봅시다. 독일 정부는 옴니카 코퍼레이션에 바스티온을 주문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옴닉 사태 초기부터 옴니움에선 바스티온이 몰려나왔죠. 물론 옴니움이 서로 간의 설계도를 공유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엄청난 숫자는 미리 만들어둔 게 아니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거기에 바스티온을 주문했을까요?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 정부가…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방부가 옴니카 코퍼레이션에 주문한 로봇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옴니카 코퍼레이션은 그걸 한꺼번에 소화하려고 여러 옴니움에 물량을 배분했습니다. 이건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계 각국의 주문들이 그렇게 꼬여 있었어요.

 

 Q :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나요?

 A : 옴니카 코퍼레이션은 몇몇 지역에 비축해둔 자재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 한두 달만 그런 식으로 옴니움을 돌릴 생각이었어요. 모든 옴니움이 가동되고 나면 원래 계획대로 특정 국가의 주문은 그 지역의 옴니움만으로 해결할 생각이었죠. 근데 사기극이 너무 빨리 들통났던 거예요. 완성된 재고들은 그대로 옴니움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수백조 원이 걸린 문제다 보니 재고 처리와 옴니움의 지분 분배 문제로 소송이 잇따랐습니다. 만약 저희한테 시간이 몇 년만 더 있었다면 그 엉킨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나갈 수 있었을 겁니다.

 

 Q : 그렇다면 우즈 씨는 옴닉 사태를 방지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건가요?

 A : 물론입니다. 우린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다 해봤어요. 그래 봤자 우리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나리들이 땍땍거리는걸 막을 순 없었습니다.

 

 Q : 그런데 왜 지금까지 침묵하고 계신 건가요?

 A : 옴닉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그 사람들은 우리의 입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굉장히 달콤한 유혹이었죠.

 

 Q : 그걸 받아들이신 거죠?

 A : 그게 없었다면 지금쯤 꽤 많은 사람이 인민재판을 받았을 겁니다. 어찌 됐건 간에 그 옛날의 옴닉 사태는 다 끝난 일이니까 당신처럼 정보력이 좋은 사람이 제 뒤를 캐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Q : 제가 인터뷰한 사람 중에는 당신들을 죽이려고 벼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A : 앞으론 제가 더 잘 피해 다녀야겠군요.

 

 

 모래사장은 겉보기엔 언제나처럼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미처 메꾸지 못한 전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바다를 둘러싼 철조망은 군인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에 반해 도시는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뿐 대체로 한가한 분위기였다. 박창경은 각이 잘 잡힌 군복을 입고 해안가에 있는 카페테리아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테리아 안의 TV에선 때마침 송하나가 촬영한 국방부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가 음료수를 주문하는 동안에 나는 녹음기를 꺼냈다.

 

 Q : 한국의 옴닉 사태에 관하여.

 A : 옴닉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전 아직 초등학생이었어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온통 난리가 났었죠. 옴닉이 서울을 위협하는 동안에도 군대의 사령관들은 휴전선에서 병력을 빼내는 걸 주저했어요.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국내에 옴닉의 세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뒤늦게 정신 차린 정부가 일선 병력과 함께 예비군을 소집해서 놈들을 해안가로 밀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가장 치명적인 실수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죠. 옴닉들은 저항하지 않고 그냥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우린 놈들이 도망쳤다고 생각했어요. 뉴스에서 로봇과의 전쟁이 끝났다고 요란하게 떠들어댔었죠. 저는 그때 앞으론 피난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마냥 좋았었어요. 바다에서 놈들이 괴물들을 올려보내기 전까지는요.

 

 Q : 괴물들에 관하여.

 A : 그것들은 오직 파괴만을 추구하는 병기였습니다. 처음엔 타이탄과 비슷한 이족 보행 형태의 거대 로봇들이었죠. 우리 군대는 남아도는 재래식 화력으로 반격했고 처음 몇 대까진 큰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 튼튼한 장갑과 강력한 화기를 갖춘 괴물들이 등장했습니다. 형태도 이족 보행의 틀을 벗어나서 실제 괴물처럼 변해갔죠. 그런 놈들도 화력을 엄청나게 쏟아부으면 잡을 수는 있었어요. 문제는 그렇게 잡으면 저희 손해가 너무 크단 거였어요. 충분한 포병 화력을 전개하려면 괴물들이 해안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 과정에서 도시들이 많이 파괴되었죠. 싸우는 도중엔 말할 것도 없고요. 놈들을 저지하기 위해 동원된 전차와 항공기들도 무수히 터져나갔습니다.

 

 Q : 한국의 대응책에 관하여.

 A : 국방부는 이런 손실을 보다 못한 나머지 괴물에 대응할 군대를 드론으로 편성했습니다. 저희가 가진 막대한 화력에서 조종사만 빼보려는 시도였죠. 전략도 해안가에서 놈들이 기어 나오기 전에 박살 내는 거로 바꿨습니다. 괴물을 하나 잡으려면 드론을 수백에서 수천 대는 보내야 했지만, 인명을 잃는 것보단 그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Q : 그 전략이 무너지기까지.

 A : 옴닉들은 우리 군대를 상대로 뒤늦게 전자전을 감행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그 무시무시한 전파 공격 앞엔 제아무리 강력한 성능의 드론이라도 무용지물이었죠. 우리는 다시 한번 큰 손실을 치르면서 막아내거나 당장 쓸 수 있는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국방부는 후자를 선택했고 그 결과물이 제가 조종하는 MEKA입니다.

 

 Q : MEKA에 관하여.

 A : 사실 MEKA는 그리 강력한 병기는 아닙니다. 원래 드론으로 쓰던 걸 유인 조종으로 바꾸느라 성능이 약화됐죠. 각 기체가 가진 화력은 전차나 헬리콥터보다 못한 수준이라서 소수로는 괴물에 흠집조차 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러시아처럼 거대 로봇을 만들기엔 저희가 가진 기술력이 부족했죠. 그 대신 저희에겐 물량과 뛰어난 조종사들이 있었습니다. MEKA는 조종사의 숙련도가 성능을 좌우하는 기체입니다. 동영상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소수 MEKA의 교란 작전이 괴물들한테 통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조종사들을 양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실력이 부족한 조종사들은 대부분 첫 출격에서 줄줄이 떨어졌습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교관들이 있어야 신병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고 그만큼 더 빨리 숙련도를 높일 수 있는데 그 첫 단추를 끼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죠. 저희는 군대의 영역에서 벗어나 MEKA 조종에 적합한 인재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Q : 그래서 프로게이머들을 찾아다닌 건가요?

 A : 사실 꼰대들은 그 안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앞서 말한 단추 끼우기 과정을 몇 차례 더 반복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논의됐죠. 프로게이머들은 일반인보다 멀티태스킹 능력이 우수하고 상황 판단 또한 더 빠릅니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단련되어 있었죠. 물론 군인으로서의 자질은 떨어졌지만, 로봇 조종에 관한 교육만 이수하고 나면 금세 적응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우리 군대의 보배가 숨어 있었죠.

 

 Q : 송하나 양의 활약에 관하여.

 A : 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죠. 그 말괄량이 아가씨는 일류는 어디서나 일류라는 걸 증명해 보였습니다. 하나는 첫 전투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 현란한 조종술은 보는 이들을 모두 경탄시키죠. 저는 바로 곁에서 하나가 MEKA를 모는 모습을 몇 번이나 지켜봤었는데 여전히 흉내조차 못 내고 있습니다. 그녀가 전수해준 경험과 교훈들은 우리가 그때까지 생각하던 어떤 전술보다 괴물들에 효과적이었습니다. 맨 앞에서 우리를 이끌어줄 때 그렇게 듬직할 수가 없어요. 일상적인 모습은 너무 딴판이라는 게 좀 깨는 부분이지만…. 혹시라도 MEKA에 관해 더 묻고 싶은 게 있다면 하나를 찾아가 보는 게 더 나을 겁니다.

 

 Q : 송하나 양과는 이미 일정을 잡아뒀습니다.

 A : 그래요? 그럼 뭐, 제가 더 해드릴 말은 없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