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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벽 71퍼센트 손상,즉시 전장 이탈을 권고합니다."

망할,송하나는 욕설을 중얼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메카의 전방 투영창에 옴닉들의 총탄이 비오듯 쏟아내리며 시야를 가리는 가운데,무서운 속도로 떨어져가는 방어벽 수치만이 뇌리를 채웠다.
그 뒤론 산만한 덩치의 옴닉이 수많은 화기를 난사하며 그녀에게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분명 이 메카는 근거리에서 옴닉괴수의 포격엔 버티지 못할 거라는건 자명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강철같이 굳건하게 융합포를 연신 쏘아대고 있었으나,더 이상 살아남지 못할 것임은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동료들은 하나 둘 부산에 쓰러졌으며‚기동기갑대 2소대원중 남은 이는 송하나 한명이었다.
그녀의 손으로 눈을 감겨준 친구들만 여럿이 넘었고,수를 셀수 없던 고층건물은 자취를 감췄다.

"방어벽 80퍼센트 손상,자동으로 방어 매트릭스 전개합니다."

다시 AI가 시끄러워졌다.
송하나는  매트릭스가 수동으로는 먹통이었으나 자동으론 혹시나
켜질까 라는 기대를 잠시 걸어보았지만 헛일이었다.
옴닉들의 총탄은 여전히 메카에 고스란히 쏟아지고 있었고,피해가 누적된 메카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더이상 이곳을 살아나갈 자신이 없었다.

"아아,여기는 디바,입감 되나요?"

그녀는 죽을때 죽더라도 요란하게 죽어야 직성이 풀리는 위인이었다.
직업병일까,원래 성격일까.그녀는 문득 죽음을 앞둔 상황임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웃겼다.

"디바? 거기서 뭐하는 거야! 공군이 출동했네! 빨리 탈출해!"

기동부대장의 다급한 외침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태산만한 거대한 옴닉이 잿빛 하늘을 덮으며 육중한 걸음을 옮기는 광경은 언제 봐도 압도적이면서 짜증이 불쑥 났다.
저런 덩치만 큰 로봇보다는 내 메카가 훨씬 멋지단 말이지,색깔도 현대적이고 무장도 심플한데다 자그마한 컴퓨터로 웹서핑도 할수 있고 말야.
한 옴닉이 호응이라도 하듯 조종석으로 정확히 3점사를 날렸다.귀여운 놈.
몇초 지나지 않아 그녀석은 융합포에 몸이 산산조각으로 찢겨지며 강 밑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방금의 공격으로 융합포 회로 하나가 날아간듯 오른쪽 포 하나는 아무리 조작해도 먹통이었다.
그녀는 쓴 웃음을 짓고는 무선으로 부대장에게  투덜댔다.

"아저씨,내 부스터가 고장났어요,융합포는 한쪽만 겨우 발사되지,매트릭스는 먹통에,로봇  AI도 좀 이상한거 같아요.아,얜 원래부터 이상했나?"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빨리 거기서 나와! 내가 지금 간다!"

부대장의 다급함이 무전선을 타고 그녀에게 전해졌다.
문득 송하나는 눈물이 양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막상 죽음을 앞두고 나니 생각만큼 멋지게 가지는 못할것 같았다.

"아저씨,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녀는 조종석 한켠에 놓인 권총을 잡았다.
손잡이 끝에 달린 분홍색 토끼가 찰랑거렸다.

"원자로를 폭파시키면 저 옴닉들을 정리할수 있을것 같아요."

송하나는 목이 메이는걸 억지로 참으며 말을 이었다.
우는걸 들키는건 죽기보다 싫었다.

"뭔소리야! 내가 직접 갈테니까 좀만 버텨!"

그녀는 들은 채도 하지 않고 무전망을 발신용으로 바꾸고는 원자로 설정을 열었다.

"흠…여기있네.원자로 안전 잠금 장치 해제,체크하고.
그리고 자동탈출..체크하고.."

그녀는 살아나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자폭하는 로봇 안에 갇힌 채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경고,경고,원자로 수치가 과부하되었습니다.
방어벽의 전원을 해제합니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방어벽이 사라지고,총탄이 메카의 분홍색 몸통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송하나는 그렇게 싫어하던 AI의 감정이 배제된 목소리도 그리울것 같았다.
물론 이 커다랗고 귀여운 핑크색 로봇도 말이다.

"자폭 시퀸스 가동!"

원자로가 신음하기 시작했고 조종석은 불길한 진동으로 흔들렸다.
요란한 경고음이 울려대고 소름끼치게 붉은 비상등이 연신 점멸하는 가운데 옴닉들의 총탄이 메카의 구석구석을 훑으며 메카의 오른팔을 날리고 파편을 사방으로 튀겼다.
곧 기분나쁜 압력이 뒤에서 가해지더니 송하나의 얇고 호리호리한 몸이 메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메카가 한차례 크게 비틀거렸다.

뒤이어 새하얀 폭발이 온 도심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