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게시판이 논쟁으로 뜨겁게 불타고 있는 김에,
나이트와 파판의 탱커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좀 적어볼까 합니다.



1.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듯 나이트 세팅엔 정답이 없습니다.
우리에겐 딜러처럼 명백하게 미터기가 말해주는 객관적인 지침 같은 게 없죠.
사실 저도 세팅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팅에 참고하려고 영어, 일본어권 커뮤니티의 옛날 글을 여기저기 뒤져봤는데 딱히 여기만 싸우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논쟁의 흔적은 어딜 가든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내용도 비슷합니다.
탱 vs 딜, 1차스탯 효율, 받넘의 효율, 다른 2차 딜스탯의 효율, 파티마다 다르다, 힐러님과 상의 뭐 이런 것들이요.

물론 서로 의견이 다른 부분도 있지만, 의견의 일치를 보는 부분들도 있어요.
(활력과 힘 중 뭘 선택하냐와 별개로) 주스탯의 효율이 좋다던가, 2차스탯 중에선 유일하게 탱커 본연의 스탯이라 할만한 받넘의 효율이 나쁘다던가, 그렇다고 의지 극대 같은 다른 2차 딜스탯의 효율도 충방 때문에 그다지 좋지 못하다던가, 뭐 이런 것들이요.


참고로 전 활력과 받넘을 1순위로 두고 금단을 섞어서 딜링보단 탱킹력에 초점을 맞춘 세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받넘이 찍고 싶어서 찍은 스탯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근데 그렇다고 딜스탯 중에 찍고 싶은 스탯이 있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닙니다.

아래는 제가 다른 여러 사이트들을 다니면서 봤던 글 중 가장 인상깊었던 문장입니다.


"만약 똥과 똥 중에서 하나를 반드시 골라야 한다면, 냄새가 덜 나는 똥을 골라라. 받넘은 가장 냄새가 심한 똥이다."

네. 저는 받넘 세팅을 했지만 저 말에 깊게 공감합니다.
모든 스탯이 다 똥이라서 더 나은 똥을 찾아야 하는 똥같은 상황이죠.
사실 고민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점이지만, 이놈의 나이트 세팅은 뭘 해도 불만족스럽습니다.
받넘을 찍자니 효율이 나쁜데, 그렇다고 충방 때문에 다른 스탯도 효율이 남들보다 좀 나빠요.

즉, 뭘 해도 구립니다.

세팅에 답이 없고 뭐 그래 좋아요.
하지만 '뭘 선택해도 만족스러운' 상황에서 세팅을 고민하는 것과,
'뭘 선택해도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세팅을 고민하는 것은 좀 다른 기분이죠.
꽃과 꽃 중에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 똥과 똥 중에서 고민을 해야 하는 현실 자체가 불편한데 아마 이게 많은 나이트들의 심기를 이미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세팅에 대한 논쟁을 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격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2.
물론 제가 받넘을 가장 냄새나는 똥이라고 생각하는 데도 받넘을 올린 건 성격이 이상해서도 아니고, 메인 탱커면 탱을 해야 한다 같은 원론적인 이유 때문도 아닙니다.
사실 전 탱이라고 꼭 탱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대의 필요에 따라선 탱커에게도 딜이 요구될 수 있겠죠.
특히 주요 패턴을 딜로 밀어서 넘기는 게 가능한 경우엔 약간의 딜 상승으로 유의미한 트라이 시간 감소와 난이도 감소를 가져올 수 있고, 공대 딜이 아슬아슬하다면 약간의 탱커 딜이라도 아쉬워지는 법이니까요.

그럼에도 제가 받넘을 선택한 건 공대적인 관점 때문이었습니다.
레이드는 공격대의 자원이 소모되기 전에 보스의 자원을 먼저 소모시키는 게임인데, 공대적인 관점에서 굳이 내가 딜을 올리지 않더라도 공대 전체의 딜을 올릴 방법은 많지만, 공대 전체가 받는 대미지를 줄일 방법은 (비록 매우 효율이 구리더라도) 메인 탱커인 내 탱스탯이 높아지는 것 말곤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었죠.

물론 올바른 무빙으로 바닥을 피하거나, 올바르게 공략을 이행하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생존기를 올리거나, 강한 딜로 쫄을 녹여서 받을 쫄 대미지를 줄이거나 등등, 공대가 받는 대미지를 줄일 선택지가 그거 말고 아예 없단 건 아니지만,
주로 파밍과 세팅적인 의미에선 사실 탱커가 튼튼한 템을 두르는 게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뭐, 이상론적 관점에선 멘탱이 탱 스탯을 줄이고 딜 스탯을 올리면 탱커의 dps는 연속적으로 오르고 힐러의 dps와 탱커의 생존력은 이산적으로 내려가니, 탱이 눕지 않는 선에서 rdps가 극대화되는 지점에 맞춰서 세팅하는 게 가장 유리할 테고,

약간 더 현실적인 관점에선 탱커 딜 상승으로 단축된 클리어 시간 vs 탱이 약간 물렁해진 것 때문에 전멸할 확률 * 리트라이 시간 중에서 실질적으로 시간 이득을 주는 건 아마도 탱이 튼튼한 쪽이겠지만, rdps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탱커가 딜을 약간 더 올려서 패턴 하나를 덜 보면 그걸로 얻는 시간 이득이 아마도 더 클테고,

좀 더 현실적인 관점에선 어차피 탱이 뭔 세팅을 하든 클리어에 지장 생길 일은 없으며, 딜러가 쿨기 타이밍에 손이 꼬이냐 마냐가 클리어 타임과 rdps를 결정할 것이며, 클리어 여부는 보통 공대원의 다른 실수 아니면 힐러의 실수가 결정할 것이고,

더 현실적인 관점에선... 사실 이 게임에서 세팅 폭은 그다지 넓지 않으며, 그 세팅 폭이란 것도 스왑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지, 일단 내 템이 좀 나와야... ㅂㄷㅂㄷ...

너무 옆으로 샌 거 같으니 원래 맥락으로 돌아가지요.


탱딜힐 게임에서 탱커는 보스에게 대신 맞아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른 클래스보다 튼튼하고, 덜 아프게 맞을수록 좋은 역할이죠.
근데 이 게임의 탱커가 튼튼해지는 방법은 탱이 튼튼한 템을 두르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그게 효율이 구리든 좋든 상관 없이 그게 유일하게 탱이 튼튼해지는 방법이에요.

딜러는 본인의 손가락으로 본인의 딜을 스펙이 허락하는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고,
힐러 역시 (사실 이 게임의 힐러는 좀 과할 정도로 부담이 크죠) 본인의 선택과 컨트롤로 파티원의 명운을 가름하죠.
탱커도 어느 정도는 비슷합니다.
실력이 기준선 이하라면 탱커는 공대 전멸로 이끌어가기 가장 쉬운 포지션이죠.
하지만 어느 선을 넘고 나면 탱커라는 포지션에서 실력적인 보람을 느낄 구석이 별로 없어요.
탱커는 탱커 본인이 탱 사이클을 잘 돌려서 받는 대미지를 줄이고 생존해내는 게 아닙니다.
파판에서 탱커의 탱킹력과 생존력은 탱커 본인의 실력이 아니라 탱커의 파밍된 스펙에 의존하고, 주로 탱커 본인보단 힐러의 손가락에 명줄이 달려있단 부분이 탱커로서 무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탱은 탱커란 포지션의 역할인 '튼튼하고 덜 아프게 맞는다'를 자랑할 여지가 없어요.

특히 나이트가 더욱 그렇습니다.
나이트의 실력은 어느 선을 넘으면 사실 나이트의 튼튼함과 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나이트의 유일한 콤보 변화는 탱키함이 아니라, 마나수급과 광어글에 관련되어 있죠.
생존기가 많이 있다고는 하나, 정해진 타이밍에 정해진 곳에 써야 하는 생존기들을 제외하고 나면 사실 남는 생존기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도 패턴화되면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타이밍에 누르게 되죠.
그 이후엔? 더 튼튼한 템을 두르는 것 뿐입니다.
뭐, 전사도 원초를 제외하면 수동성 면에서 나이트와 별반 다를바 없긴 하지만, 공대에서 전사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나이트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다르니까요.

사실 BiS로 논쟁을 하는, 진성 파밍을 어느 정도 마친 유저들은 어느모로 봐도 공략상 상위권의 유저일 것입니다.
고정공대든 반고정공대든 레이드 클리어에 이미 큰 지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죠.
4층 클리어를 못했더라도, 상위 층까지의 클리어는 이뤄내고 있는 유저들이 주로 논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유저들은 더 나아지고, 더 강해지고, 더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지요.
(그래서 어차피 다 잘 깨는 데도 BiS를 맞추고, 논쟁을 하죠. 읍읍.)
이런 유저들은 이미 기준선을 넘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탱으로서의 기본적인 튼튼함은 다 갖추고 있어요.
실력적으로 더 튼튼해질 구석이 딱히 없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이제 내 실력이랑은 전혀 관계가 없는 거죠.
더 나아지려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딜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거죠.

심지어 이 게임은 (트라이 단계 기준으로) 힐러와 오프탱에게도 꽤 빡빡한 딜을 요구할 정도로 딜컷이 높은 편입니다.
이 경향성은 당장의 진성도 그렇고,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아요.
이 게임에서 딜을 잘 뽑는 건 비단 딜러 뿐 아니라 탱커와 힐러도 어느 정도는 갖춰야 할 덕목입니다.
물론 본인들의 본 포지션의 역할을 올바르게 수행하고 난 이후의 이야기긴 하지만요.
그러니 자기 역할을 다 할 스펙을 넘어서면, 그 이후부터 딜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도 딱히 이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미터기는 객관적으로 내 상태를 증명해주기 때문에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고요.



사실 정상적으로 탱커가 탱커로서의 튼튼함을 컨트롤로 얻어내서 자신이 튼튼한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탱스탯이 효율적이라고 느껴져서 찍어도 손해보는 기분이 안 들 환경이었다면, 굳이 탱커가 열심히 딜스탯을 찾아서 더 올리려 하지 않았을 거에요.
미터기를 볼 때도 딜량이 아니라 '받은 피해량이 적은' 걸 자랑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나이트라는 클래스의 스킬셋 자체가 컨트롤적인 측면에서 더 튼튼해질 방법이 없고, 목숨줄이 탱커보단 좀 더 힐러에게 달려있는 파판 탱커의 수동적 특성을 생각하면 탱커라는 역할에서의 만족감이 낮을 수 밖에 없고, 다른 방향에서 만족감을 추구하는 움직임은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탱커는 탱커이기 때문에 탱커 포지션 본래의 가치를 추구하는 움직임도 당연히 있을 거고요.
생각이 다르니 당연히 충돌할 거고, 그게 지금의 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탱커가 온전히 탱커로서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잘 마련되지 않는게 아쉽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전 방패 쓰는 클래스가 좋아서 계속 나이트를 하고 있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