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켄타로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더 파이팅의 작가 모리카와 조지씨가 트위터에 미우라씨와의 일화&추모글을 남겼습니다.



모리카와 조지(<더 화이팅> 만화가)


“미우라 켄타로 군의 명복을 빕니다.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소년매거진으로 데뷔했습니다. 사진(아래)은 제가 19살에 (만화를) 연재할 때, 18살이던 그가 그려준 학교입니다. 한기가 들 정도로 재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둘 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작가로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갑작스런 비보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연재 1000회 축하드립니다!  

학생시절 한번 임시 어시스턴트를 했었습니다만 그땐 기량부족으로 다리를 잡아끌뿐이었습니다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때의 반성과 감사를 담아서!)




사진(위)은 그가 그려준 타카무라입니다. 제가 처음 주간 연재를 하면서 스태프가 한 명도 없어서 곤란했을 때 그가 도와주러 왔습니다. 그가 18살이고 제가 19살이었습니다. 모 대학 예술학부 학생이어서 강의 끝나고 한 손에 스케치북을 들고 왔습니다.


그가 어느 정도 그릴 수 있는지 몰라서 제가 그린 걸 보여주고 비슷하게 그려주세요, 라고 했는데 다 그린 걸 보고 까무러쳤습니다. 그 나이에 걸맞지 않은 (뛰어난) 실력이었습니다. 몇 점인가 그려달라고 한 뒤, 이마 저는 그에게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아직 어렸던 우리들은 손을 멈추고 만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스케치북 내용이 궁금해서 보여 달라고 했더니, 더욱 깜짝 놀라 소름이 돋았습니다. 거기에는 요정이, 낙인이, 커다란 검을 든 검사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훗날의 파크, 가츠였습니다. 굵은 연필로 그린 그림은 압도적이었습니다. “이건 뭐야?”라고 물었더니, “머릿속에 있는 거예요. 실력을 늘리고 나서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답했죠. 언제부터 구상해왔던 걸까요. 이미 거기에는 <베르세르크>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저는 <더 화이팅>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동시에 <베르세르크>가 발매되었죠. 고생한 이야기도 조금 들었습니다. 하지만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무조건 인기를 끌 만화가 시작됐다고 말이죠. 그 켄타로 군이 스스로 실력을 키웠다고 판단하고 때를 기다려 시작한 연재였으니까요. 분명 세상은 저와 마찬가지로 깜짝 놀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됐습니다. 뛰어난 화력(그림 실력)에 혼신의 화면(구성), 매회에 담긴 에너지에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의 추억담은 여기까지입니다.
그와 만난 건 그때뿐이었지만, 저에 대해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그와 만난 일이 자랑이자 영예입니다. 내 멋대로 밝혀서 미안해, 켄타로 군. 언젠가 마지막편 읽으러 갈게.



출처. https://extmovie.com/movietalk/65559438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