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심심해서 쓱쓱 써보는 이야기입니다.
아참, 전 문과입니다.






속칭 '이과놈들' 짤.jpg 중 하나이다.
이공계 전공자들이 놀림감이 되는 요소가 적지 않다는건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놀림감 되는 품성들의 결과는 
역병을 정복하고, 인간이 하늘을 날게 만들고, 지구의 밤을 낮으로 바꾸었다. 

사람들은 밈으로 놀리지만 어떤 이과 학문이든 궁극적 대원칙은
1. '인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이다.

그래서 사명감에 불타는 이과놈ㄷ... 아니 대학원 연구실 대학원생들은 19세기 남미 사탕수수 노예같은 근로환경에서도
교수를 암살하지 않고 랩을 날려버릴 폭탄도 제작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731 부대, 핵폭탄 개발 등 삐딱선을 탄 적도 적지 않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쓰거나 다른분들이 글로 말해주실 거고 
이건 '과학자는 인류의 번영을 위해 어디까지 감수하는가' 이야기이다.


==========================================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은 소련을 침공한다.
역대 다른 전선과 달리 이 전쟁의 목적은 특별했다.



정확히는 유럽 중부 게르만 파시즘 제국이
유라시아 슬라브 인종에 선포한 '인종말살전쟁'이었다.




'슬라브인은 인간이 아니다.'


1941년, 독소전 개전 이후 러시아 제2의 대도시인 레닌그라드 포위를 완료한 독일 국방군은 

소련 방어병력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해 도시 점령 전략을 수정한다.




지형을 이용한 포위망을 공고히 하여, 레닌그라드의 군인과 민간을 굶겨죽이기로 작전을 변경한다.

900여일간 러시아 현대사에서 그야말로 처참한 레닌그라드 포위전이 시작되었고, 

민간인 100만여명이 전투가 아닌 아사로 사망한걸로 추정된다.

물론 레닌그라드 전투는 이 이야기의 본 주제가 아니다.




레닌그라드 시내의 파블롭스크 실험국은 인류 최초의 식물 종자 연구소였다.

1920년 홀로도로무 라는 러시아 대기근을 겪은 후 설립자인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식물 종자 개량연구의 중요성에 눈을 뜬 최초의 과학자였고, 스탈린에게 숙청되기 전까지 전 세계의 식물종자를 수집해 파블롭스크 실험국을 설립했다.


이 다양한 종자들은 전세계 각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최적화된,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종자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과학 재산이었다.



나치의 포위 직전에 레닌그라드 박물관의 미술문화재들은 포위 직전 반출에 성공했지만
파블롭스크 실험국의 40여만종에 달하는 식물 종자, 씨앗, 뿌리, 과실 표본은 반출에 실패했다.


나치가 식량배급 창고를 폭격한 후, 식량이 없어 죽어가는 도시에서
삶아먹을 구두, 혁대, 그리고 인육마저 부족한 상황이 되자
굶주림에 미친 쥐떼와 민간인들이 이 종자은행으로 눈이 옮겨갔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배를 부여잡고 와서 본 것은

16개 종자보관실과 연구소 전체를 바리케이트로 요새화시키고 무장한 채 24시간 교대근무하는 종자은행 연구원들이었다.

아마도 당시 그 과학자들을 이해해준 시민들은 없었을 것이다. 



'겨울이 되서 도시 동쪽 호수가 얼어붙으면 포위망이 뚫릴테고, 
언젠가는 국가에서 종자표본을 가져오러 연구소에 사람과 차량을 보내올 거야.'



그렇게 일반인들에게는 비정하게만 보이는, 과학자들의 종자를 지키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후술하지만, 그건 과학자들이 자기 자신에게 한 가장 비정한 짓이기도 했다.




1941년 여름에 시작된 레닌그라드 포위전은 1944년 1월에 풀렸다.







그레고리 알렉산드로비치 룹초프 : 과학자. 영양실조로 사망. 과일 담당.

아브람 야코블레비치 카메라즈 : 과학자. 아사로 사망. 덩이줄기 식물 담당.

게오르기 카를로비치 크로예프 : 과학자. 아사로 사망. 의료용 식물 담당.

알렉산드르 가브릴로비치 슈킨 : 과학자. 아사로 사망. 땅콩류 담당.

드미트리 세르계예비치 이바노프 : 과학자. 아사로 사망. 벼 품종 담당.

리디야 미하일로브나 요디나 : 과학자. 아사로 사망. 귀리 품종 담당.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담당 식물 종자 몇천여종이 가득찬 방에서 '굶어죽었다.'






과학자들은 '식품'을 자기 연구실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굶어 죽는 선택을 했다.
포위가 풀린 이후에도 연구소 생존자들의 기아로 쇠약해진 몸은 전쟁을 이겨내지 못했다.









제대로 알아주는 이조차 없는 이 과학자들의 희생은 인류에게 도움이 되긴 된 건가?







세계 대전이 끝나고, 소련은 파블롭스크 실험실에서 살아남은 종자로 나치 독일이 황폐화시킨 전 영토 식량생산량의 75%를 복구시키는데 성공했다.






1980년대 연구소 종자는 흉작으로 100만명이 굶어죽는 에티오피아에 보내졌고

식량난 해결에 성공했다.
 




그래도 평상시에 밥은 굶지말자.
이과생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