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속 정령, 떠오르는 일본사 속 인물
 
오컬트로는 전무후무한 천만영화 <파묘>를 보고서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단순하고 애국심을 자극하는 설정에 기대고 있기는 하지만 꽤나 잘 쌓아올린 이야기 구조를 가진 이 영화 가운데서 무례하고 무책임한 모습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일본의 귀신은 그저 창작된 가상의 인물만이 아니다. 역사를, 또 일본에 대한 지식을 폭넓게 가진 이라면 반드시 하나의 이름을 떠올릴 밖에 없을 특정된 귀신이다.
 
시마 사콘(또는 시마 기요오키)은 일본 전국시대의 이름난 무장이다. 몇몇 주인을 섬겼으나 유력한 이는 없었고 마흔이 넘도록 낭인으로 떠돌았다. 그럼에도 특출난 무예와 병법으로 그 명성이 전국에 자자했다. 그런 그가 마침내 주인을 만나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복이자 그 사후 패권을 놓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명운을 건 한 판 싸움을 벌인 이시다 미츠나리가 되겠다.

존중 없음이 부끄러워졌다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파묘> 속 주인공들을 가로막는 귀신, 즉 정령을 시마 사콘으로 볼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해석이 맞다고 본다면 이는 결코 타국의 역사며 문화, 영웅적 인물에 대한 존중이 없는 무참한 설정이며 묘사라고 이해할 수 있는 탓이다. 무엇보다 민족적 정서를 자극하여 성공을 거머쥔 <파묘>가 도리어 민족적 자존감의 부재를 노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하는 때문이다.

일본에 대한 묘사, 지나치지 않았을까?
 
거슬리는 점은 이뿐이 아니다. 수차례 등장하는 '한국 귀신과 달리 일본 정령은 원한 없이도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해한다'는 류의 대사가 대표적이다. 일본귀신이 한국귀신에 비해 더 악독하다는 인식은 대체 얼마만큼 부조리하고 우스꽝스러운가.
 
글 초장에 적은 것처럼 일본이 같은 방식으로 이 땅의 인물을 원귀처럼 묘사하는 영화를 찍는다면 적잖이 불쾌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와 같은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불행히도 이제 나는 실재했던 인물을 거듭 떠올리게 되는 귀신이 나오는, 그것도 그와 '쇠말뚝 박기' 같은 비열하고 조잡한 일을 엮어놓은 영화가 한국에서 큰 호응을 일으켰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부끄러운가.
 
우리가 싫은 것은 남 또한 싫은 것이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같은 비극으로부터 저들의 가해와 우리의 저항을 나누는 건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이다. 침탈은 비판받아야 하며 저항은 존중돼 마땅하다.

그러나 영화는 저항을 넘어 불필요한 모독과 모욕으로까지 흘러간다. 삶의 무대를 넘어 죽음 뒤, 민속신앙의 영역에서까지 국적을 나누고 호오를 가른다. 판타지 오컬트이므로 어떠한 근거 또한 제시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래도 좋은 것일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