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오후 남구 신정동에서 만난 정후복 할아버지와 박을림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 건물에서 나온 고물을 리어카에 담는데 여념이 없었다.

“고물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져 꼼짝없이 굶어 죽게 생겼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고물 주워봤자 담배 한 갑 값 벌기도 어려워….”

6·25 참전 유공자인 정후복(82·울주군 언양읍) 할아버지와 박을림(76) 할머니 부부는 22일 오후 남구 신정동의 한 도로변에서 고철과 폐지, 플라스틱 등 고물을 리어카에 담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들 노부부는 다리도 불편하다. 파지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펴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고물을 주워 생활하는 이들 부부는 요즘 고물 값이 너무 떨어져 생계가 더 막막해졌다고 하소연했다. 하루 수입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지난해까지는 1만원 정도는 집에 가져갔지만, 지금은 하루 3천원도 벌기 힘든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경기 침체가 고물업계도 영향을 주면서 최근에는 업체마다 고물 매입량을 크게 줄였다.

울산지역 고물상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1kg당 220원 가량하던 파지 가격은 지난달 추석 연휴를 앞두고 80원으로 하락했다. 이달 들어서는 30원대까지 떨어졌다.

정 할아버지 부부는 새벽 6시쯤 집을 나서 오후 늦게까지 고물을 줍는다. 점심은 시청 인근 한 급식소에서 100원을 주고 끼니를 해결한다.

정 할아버지는 “요즘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리어카 하나를 채우기 힘들다”며 “고물 줍는 노인들 사이에도 자신의 구역이 정해져 있어 다른 곳에 가서 마음대로 고물을 수집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정 할아버지 부부의 고정 수입은 매달 국가로부터 받는 참전유공자 수당 15만원이 전부다. 5남매를 뒀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자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자식들 생활 형편도 넉넉지 않아 손을 벌릴 수 없는 형편이다.

박 할머니는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집도 월세로 살고 있다”며 “가진 땅이라도 있으면 농사라도 지을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 부부는 “집에서 놀면 뭐하노. 이렇게 돌아다녀야 약값이라도 마련하지”라며 리어카에 담은 고물을 싣고 자리를 떠났다. 여전히 정 할아버지가 입고 있는 노란색 점퍼 깃에는 참전 용사 유공 뱃지가 반짝였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생활비 마련방법은 현재(2009년 기준) ‘본인 및 배우자가 직접 부담‘하는 경우가 51.9%로 절반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