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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0 13:27
조회: 3,792
추천: 0
신경숙은 왜 하필 극우파 '미시마 유키오'를 표절했을까?
아베 수상의 정신적 스승 '미시마 유키오'의 기괴한 최후
![]()
너희는 사무라이다. 자신을 부정하는 평화헌법을 왜 지키고 있는가?" 미시마 유키오는 부하들을 이끌고 도쿄 시내 육상자위대 총감부에 난입했다. 그는 총감을 인질로 잡고 2층 발코니에서 1,000여 명의 자위대원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했다. 건물 밖에서는 TV카메라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천황폐하 만세"를 외친 뒤 총감실로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가이샤쿠닌(배를 가를 때 칼로 목을 쳐주는 인물)의 역할을 맡은 모리타 마사가쓰가 칼을 내리쳤다. 다섯 번을 내리쳐도 미시마의 목은 떨어지지 않았다. 모리타도 미시마의 뒤를 따라 자기 배를 갈랐다. 고가가 다시 한번 모리타의 목을 잘랐다. 이렇게 해서 해괴한 퍼포먼스가 막을 내렸다. 일본도를 휘두르는 미시마 유키오. 약골 체력을 키우기 위해 헬스로 몸을 단련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뒤 대장성에 들어간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그가 8개월만에 대장성을 그만둔 것은 문학에 대한 열정과 미련 때문이었다. 일본문학의 최고봉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사사를 받아 1949년 <가면의 고백>으로 등단했다. 이 소설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동성애자가 겪는 고통을 묘사한 자전적 작품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전후 세대의 허무주의를 탐미적 스타일로 표현한 <사랑의 목마름>, <금지된 색>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일본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결국 방화를 결심하기까지의 심리 흐름을 치밀하게 묘사한 <금각사>를 대표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내가 상을 받은 다음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사람은 오에 뿐이다"라고 내다봤다. 정작 본인은 갑작스런 자살로 수상하지 못했지만 오 에가 19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 예언의 절반은 맞은 셈이다. '나라를 걱정한다'는 의미의 제목이 보여주듯 작가의 극우 사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얼마 후 자위대 청년 장교들이 천황의 직접 통치를 요구하는 2·26 궐기를 일으키는데 타케야마는 신혼이라는 이유로 궐기에서 빠진다. 다케야마의 동료들은 일부 각료를 사살했지만 끝내 쿠데타에 실패한다. 이들이 반역자로 몰리면서 다케야마는 자기 동료들을 사살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 그는 부인과의 동반 할복 자살을 선택한다."
바로 이 소설의 일부를 신경숙이 표절했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나온 시기를 전후해서 미시마는 극단적인 천황주의자로 치닫는다. 나중에는 자위대에 체험입대를 해서 공수부대 훈련을 받거나 F-14 전투기를 타는 등의 기행을 벌였다. 1968년 북한의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는 예비군의 공비 수색작전을 참관하기도 했다. 그는 행동에 옮길 조직 결성에 나섰다. 1968년 10월 사병대 '다테노카이'(방패회)를 만들었다. '천황의 방패'란 뜻이다. 미시마가 직접 면접해서 입회가 허락된 100여 명의 회원들은 도쿄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등 명문대학교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이었다. 1968년 10월 국제반전데모 모임 때는 학생시위대에 잠입해 리더를 색출하는 실전훈련까지 시켰다. 그러다 급기야는 극좌 학생들과의 공개토론에 나서게 된다.
극좌 학생운동단체인 전공투의 도쿄대 농성장에 들어가 공개토론을 벌이고 있는 미시마 유키오
이 곳에서는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소속 학생들 1,000여 명이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미·일 제국주의 타도'와 '제국대학 도쿄대 해체'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여기에 미시마 유키오가 홀로 들어가 단상에 섰다. 이른바 극좌와 극우의 '공개토론회'가 열린 것이다. 뭐~ 반동이 반동적인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기에 여기 섰습니다. (웃음)" 자연 대 인간, 시간의 지속성(크로노스)과 순간성(카이로스), 천황의 신격과 인격, 말과 사물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깊이있는 논쟁이 벌어졌다. "모든 과거를, 역사를, 전통을, 연속성을 부정하고 기억마저도 부정했다". 전공투가 보기에 미시마는 "과거에 대한 사모, 절대적 개념인 천황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기존 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어느 정도 폭력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도 통했다. 각 '해방구'와 '천황제'를 내세웠다. 전공투는 자신들이 점거한 학교 강당에서 겪은 시·공간의 체험을 유토피아로 내세웠다. 반면 미시마에게 천황은 모든 것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그러나 미시마는 이렇게 응수하며 토론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지금 제안은 아주 묘한 꼬드김이라 아주 유혹적이지만 나는 공동투쟁을 거부합니다." 이 흥미로운 토론회가 열린 지 1년 반 후인 1970년 11월 25일 미시마는 자위대 건물에서 전통 무사식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해 충격을 준다. 비합법적으로... 결투의 사상으로 사람을 죽이면 살인범이니까 포돌이들한테 잡혀가기 전에 자결이든 뭐든지 해서 죽어버릴 겁니다." 그의 죽음은 전후 일본 사회 저변에 흐르는 군국주의를 일으켜 세워 아베 수상이 꿈꾸는 나라로 치닫게 된다.
김지하 시인은 <아주까리 신풍>이라는 시를 지어 미시마의 자살을 풍자했다.
뭐가 대단해 너 몰랐더냐 / 비장처절하고 아암 처절하고말고 처절비장하고 / 처절한 神風도 별것 아니여 / 조선놈 아주까리 미친 듯이 퍼먹고 미쳐버린 / 바람이지, 미쳐버린 / 네 죽음은 식민지에 / 주리고 병들어 묶인 채 외치며 불타는 식민지의 / 죽음들 위에 내리는 비여 / 역사의 죽음 부르는 / 옛 군가여 별것 아니여 / 벌거벗은 女軍이 벌거벗은 갈보들 틈에 우뚝 서 / 제멋대로 불러대는 미친 미친 군가여
아주까리 신풍을 빗댄 "별것 아니여" 시인 김지하의 시는 올곧게 판단을 한 듯...
그러나 현 아베총리의 말은 제멋대로 불러대는 미친 지난 날들... 미친 군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와중에 신경숙이란 여자는 왜? 하필 아베란 恣가 '말의 아우토반'을 달릴 때 등장을 할까? 왜?... 모종의 이중투적인 암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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