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안타까운 생각이다...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죽격마격이 올린 영상캡쳐에 나온 인물이 누구인가 관심도 없지만 - 아마 미국의 어느 남녀차별주의자나 극우 파시스트겠지 - 저런 류의 어그로에 끌린다는 것은 아마도 지식이 없음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한다...
뭐 나도 지식이 부족함을 언제나 느끼지만...

아무튼 페미니즘도 남성성을 거세하지는 않아...
아 그런 애들도 있는데 그런 극단적인 페미니즘도 그들 안에서는 배척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일베와 메갈을 동류 취급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페미니즘은 관심이 없는 분야니 넘어가고...
유교가 과연 남성을 거세하는 학문 또는 종교였는가 이야기해보자...

이것에 아주 좋은 예가 있는데 그 분이 누구냐면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무과에 급제해서 군문에 계속 있다가 두 번의 왜란에서 나라를 구하신 뭐 설명이 따로 없는 이 나라 최고의 영웅이시다...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무과를 보게 되었을까?
이순신이 처음에 본 과거 시험은 문과였다...
여기서 두 번 낙방하고 무과시험을 보게 되었다...
ㄱ그런데 이 무과에서도 단번에 합격한 것은 아니다...
32살에 겨우 합격하고 그것도 장원이 아닌 무과 4위로 합격을 했다...
어떻게 보면 별로 잘한 것 같지는 않지만 조선시대 과거 시험에서 무과도 한번 볼 때 만명 이상이 응시했다고 하니 그중에 4등이었다면 엄청 대단한 것이겠지...

무과시험이 어떻게 치뤄지는가가 중요한데...
무과 시험은 초시 - 복시 - 전시 이렇게 세번 치뤄진다...
초시는 각 지역에서 복시를 치를 190명을 선발하는데 종목은 궁술시험 4가지가 있다. 땅에서 목전(나무화살), 철전(쇠화살), 편전(애기살)을 쏘는 시험이 있고, 다음에 기사라고 해서 마상궁술을 보는 시험이다. 그 다음에 기창이라 해서 마상 창술을 시험을 보고, 격구라고 해서 서양의 폴로 같은 경기를 하는 시험이 있었다.

이렇게 각 지역에서 뽑힌 초시합격자들은 한양으로 와서 다시 초시에서 본 시험을 똑같이 본다.
여기서 상위 28명을 뽑아 전시를 보는데 이 전시는 순위결정전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상위권에 뽑혀야 군문에 들어갈 때 높은 계급을 받는다...

그런데 복시부터는 초시의 무술시험에 다른 시험이 추가된다...
병법서 유교 경전, 법전과 역사서를 분야별 1권씩 무작위로 선정, 그 이해도를 답하거나 서술하는 방식이 추가되었다.
기본적으로 유교를 공부하지 않고는 무과시험에 합격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평소에 문무를 겸비하고 있어야 무과시험이라도 보게 된다는 말이다...

조선시대에 외세가 침략을 하면 많은 의병장들이 일어나시곤 했는데 그분들 대부분이 지방에서 책이나 읽던 양번서생들이다...
평소에 글이나 읽던 선비들이 어떻게 갑자기 의병을 세우고 침략군들과 싸워 이길 수 있었을까?
단지 병법서를 많이 읽었다고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수십장을 써도 부족할테니 이만 하고...
유교가 남성을 거세하는 학문이었다고?
반대로 유교는 남성을 무지하게 강조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유교 안에서도 글만 읽던 사람은 서생이라며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문무를 겸비해야 선비라고 불려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