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명작들 사이에 출시된 라이브 어 라이브(LIVE A LIVE)는 여러 스퀘어 SFC 작품 중에서도 단연 독특한 작품이다. 일본식 RPG 본연의 내러티브 중심의 이야기 전개는 유지하면서도 여러 시간대를 다루는 옴니버스식 시나리오로 매 이야기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낸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파트가 하나의 이야기로 뭉치는 구성으로 쪼개진 이야기의 결합 당위성을 더한다. 한국어 정식 출시도 없었고, 게임 카트리지 정가에 구매하기 어려웠던 그 시절을 넘어 28년 만에 이루어진 게임의 리메이크는 그래서 더 가치 있다.
게임명: 라이브 어 라이브 | 개발사: 스퀘어에닉스 / 히스토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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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7+1인의 시나리오,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
실제로 플레이한 이는 적을지 몰라도 라이브 어 라이브는 20년 넘게 옴니버스식 시나리오를 대표하는 타이틀이었고 또 그 예로 널리 쓰였다.
그간 다양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도입부와 이야기로 게임을 풀어내는 로맨싱 사가가 있었고 HD-2D의 첫 활용과 함께 JRPG의 부활을 그렸던 옥토패스 트레블러는 8인 각각의 이야기를 게임 중 전개했다. 하지만 라이브 어 라이브는 이야기의 중심을 각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 잡았다. 처음에 선택할 수 있는 7명의 캐릭터 중 누구를 먼저 시작하든 문제가 없고, 이야기는 그 각각의 시나리오와 함께 완결된다.
최종편에서야 주역들이 모종의 이유로 한 데 모이지만, 완결되는 이야기의 조합은 각각의 이야기 연출과 전개에 자유로움을 보장했다. 원시, 서부, 쿵후, 막부 말기, 현대, 근미래, SF 등 각 편의 이름처럼 이들은 이어지는 이야기를 딱히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주역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제는 명탐정 코난으로 더 유명한 아오야마 고쇼나 바사라의 작가인 타무라 유미 등 캐릭터 디자인도 서로 다른 작가에게 맡겨 이루어졌을 정도로.
그리고 이 자유로움은 단순히 극을 구성하는 배경과 인물만이 아니라 장르, 연출상의 특징으로 이어진다.
스페이스 호러 분위기로 그려지는 SF편은 최종 전투를 빼면 전투 하나 없이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한다. 반면, 현대편은 격투가 마사루를 주인공으로 격투 게임처럼 6명의 상대를 골라 대결을 펼치고 마지막 보스를 포함, 7명과 전투만 줄곧 이어진다. 캐릭터의 이동이나 대화 등은 따로 표현되지 않을 정도로 극단적이다. 근미래편은 쯔꾸르 RPG를 보듯 조사와 퍼즐 등 어드벤처 요소를 다수 겸하고 있다.
장르적 특색에 겸해 일반적인 전투가 이루어지는 게임도 핵심이 되는 시스템의 변화를 둬 같으면서도 다른 게임으로 즐기도록 했다. 원시 시대의 인물은 말 대신 몸짓과 유인원과 같은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냄새를 맡아 적의 위치를 찾아내는 특징을 지녔다. 적들은 눈에 적이 보이지 않으니 무작위로 적을 조우하는 랜덤 인카운터같지만, 냄새를 맡아 위치를 찾아내면 직접 적과 부딛히거나 피할 수 있는 심볼 인카운터 형태가 된다. 전투 도입 자체가 바뀌는 식이다.
또 전투 중심의 현대편은 적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 익힌다는 격투가의 콘셉트에 맞춰 피격 기술을 바로 습득해 기술의 다양성을 높인다. 반대로 노사부가 심산권을 전수하는 내용의 쿵후편은 노사의 레벨은 고정인 대신, 3인의 전승 후계자의 성장을 그렸다.
서로 다른 주인공, 다른 이야기는 비교적 짧은 플레이 타임 안에 다양한 스토리, 그리고 게임 콘텐츠에서의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 개발자가 풀어내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도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게임에서는 그게 수많은 오마주 요소로 구현되는데 좁은 통로를 두고 위협하는 괴물 베헤모스는 에이리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전체적인 구성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따른다.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갱 크레이지 번치에 대항하는 총잡이 키드와 매드 독의 모습은 7인의 사무라이를 서부극으로 옮겨낸 황야의 7인과 닮았다.
구성의 자유로움은 전통적인 JRPG의 느슨한 중반부를 과감히 도려낼 수 있는 근거가 됐다. 흥미로운 도입부와 스토리 전개에도 진행 자체가 막히는 구간을 뚫어내기 위해 반복되는 레벨 그라인딩은 기존 JRPG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였다. 라이브 어 라이브는 이걸 복수 시나리오라는 구성으로 짧게 짧게 밀어내는 내러티브와 진행 구조를 통해 레벨 하한과 상한의 폭을 줄였다.
반복 구간이 줄어드니 짧은 이야기 구성에도 플레이어가 몰입하는 구간 자체는 많아졌고 집중도도 높아진다. 캐릭터 하나하나에 애정을 가지도록 만든 셈이다. 그리고 최종편에서 이 주인공들을 다시 선택할 수 있으니 플레이어와 교감을 쌓은 캐릭터들의 조합에도 덩달아 관심이 가도록 유도된다. 이런 구성이 무려 1994년에 나온 거다. 그리고 그건 리메이크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 번에 클리어? 여전히 많이 남은 숨겨진 무언가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시나리오 선택권을 주고 등장했던 캐릭터는 최종편에서 다시 만난다. 하지만 각각의 구성은 짧은데다 추가로 등장하는 중세편과 최종편 모두 특출나게 긴 구성을 가진 편은 아니다. 결국 이야기와 플레이 구성을 압축했기에 정해진 길만을 걷는다면 게임을 그다지 오래 붙잡지 않고도 엔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는 게 파고들기 요소다. 개발진은 선택한 주인공, 게임 안에서의 선택지에 따른 엔딩의 변화로 다회차를 그렸다. 동시에 각각의 시나리오에서의 플레이 타임을 늘릴 여러 장치와 숨겨진 요소가 보다 깊이 있는 플레이를 끌어낸다.
닌자 오보로마루를 주인공으로 한 막말편은 조용한 닌자가 될지, 아니면 살인귀가 될지에 따라 플레이 방식이 바뀐다. 이걸 0인 베기, 100인 베기로 일컫는데 0인 베기의 경우 추가적인 아이템이 주어지지만, 효용성은 높지 않다. 100인 베기도 전투가 많으니 레벨은 빨리 오르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혜택은 없다. 단순 이득만 생각한다면 딱히 플레이 이유가 없는 요소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지에 따라 게임 방식은 전혀 달라진다. 주변 풍경과 일체화돼 몸을 숨기는 은신술은 적과의 전투를 피하는 데 쓰이는데 0인 베기의 경우 이동과 이 은신이 활용돼 마치 액션 게임을 즐기듯 플레이하게 된다. 100인 베기는 모든 적과의 전투로 플레이 방식도 달라진다. 달성 핵심 요소도 맵 곳곳에 있는 적들을 만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으로 중심이 옮겨진다.
파고들기 요소로 혜택을 보는 경우도 있는데 원시 시대의 킹 맘모스가 대표적인 예다. 킹 맘모스는 게임 클리어의 적정 레벨로는 쉬이 잡을 수 없는 보스로 사실상 게임 내 가장 강력한 포스를 자랑한다. 그리고 긴 전투 끝에 확률적으로 얻는 콜라병은 규격 외의 공격력을 자랑, 최종편에서도 빛을 발한다.
이 외에도 일반적인 루트로는 얻을 수 없는 아이템을 얻거나 노사부가 권법 전수를 전에 하지 않았던 인물에게 하는 등 플레이어 자신만의 도전 거리로, 혹은 합당한 혜택을 제공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회차 플레이가 유도된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은 원작에서 크게 바뀌지 않은 부분이다. 그리고 고전 JPRG가 가진 단점마저 상당수 이어졌다. 최근 게임 플레이의 흐름은 단순히 플레이 하나를 염두에 두고 구성되지 않는다. 플레이 해결 방식에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퀘스트는 한 번에 여러 개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라이브 어 라이브는 그런 체계가 잡히기 전인 1990년대 게임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압축해낸 만큼 게임의 핵심 플레이 자체는 굉장히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다. 즉, 이미 정해진 답을 찾아 행동해야 한다는 건데 여러 이동 가능 공간이 존재함에도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아이템, 선택지를 찾아야 다음 이야기가 진행되는 식이다.
물론 고전적인 JRPG의 틀에서 벗어난 시나리오가 많은 만큼 그 틀도 뻔한 당대 게임들과는 다르게 다양한 루트를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게임 자체의 진행은 리메이크로 넘어와도 달라지지 않아, 특정 인물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는 구간도 눈에 띈다.
또 축소했다고는 했지만, 끝내 없애지 못한 레벨 그라인딩과 반복 전투도 여럿 남아 있다.
게임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핵심 스토리라인을 제외한 편의성 부분에서는 손이 많이 가긴 했다. 종이 8번 치기 전에 함정에 필요한 아이템을 찾아 설치해야 하는 서부편의 경우 현재 시각이 상단에 이미지로 표시된다. 아이템이 있는 공간은 밝게 빛나고 상시 붙어있는 레이더가 이동 지역을 안내하기도 한다. 세이브 포인트도 넉넉하고 클리어한 시나리오, 엔딩에 따라 별도로 표시도 돼 회차 플레이에 편의도 높였다.
전술력 최대로? 보스전만큼은 그런 체커 배틀
이야기 줄기와 함께 원작의 특징을 리메이크에서 효과적으로 옮겨낸 건 전투 방식이다. 체커 배틀로 불리는 라이브 어 라이브의 전투는 7x7의 그리드 안에서 이루어지는 SRPG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이동과 공격에 따른 행동력이 공격 순서를 결정지어 전술을 살린 방식의 전투를 그리도록 했다.
물론 단순히 공격 순서, 이동에 따른 기본적인 요소 외에도 다양한 버프, 디버프 활용과 아이템, 그리고 공격 형태에 따른 이점이 전투를 흥미롭게 만든다. 내 공격 범위에 적이 들어오도록 이동해 행동력을 쓰다 적에게 선제공격을 내줄 수도 있고, 제자리에서 적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도록 기다리다 원거리 공격에 먼저 턱을 내줄 때도 있다.
단순히 피해량을 늘리거나 명중률을 높이는 기본적인 버프류 외에도 지형 자체에 원소 공격을 가해 피해를 주는 구간을 설치하고 특정 형태의 공격을 방지하는 식의 플레이도 가능하다. 적도 몇몇 스킬에 발동 대기 시간이 생겼는데 이때 방향을 바꾸거나 밀쳐내는 스킬을 사용해 스킬 시전 자체를 어그러트릴 수도 있다.
그리드로 구분된 전략적 전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라이브 어 라이브는 전투를 각각 개별적인 것으로 구분해뒀다. 별도의 마나 개념도 없고, 전투가 끝나면 체력은 모두 최고치로 회복된다. 즉, 소모 아이템 정도를 제외하면 전투 하나하나에 전력을 다해 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언제든 클리어에 중심을 둔 전술이 가능하기에 보다 공격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도 좋다.
이러한 전투 구성은 플레이어의 역량에 따라 그 경험을 다르게 펼친다. 공격 성공률 같은 확률적 요소에 변수가 워낙 많아 똑같은 전투라도 약간의 초반 전술 차이로 너무나 쉽게 전멸당하거나, 혹은 간단하게 클리어된다. 그런 변수 요소를 상대에 대한 파악과 내 파티의 능력을 조합해서 풀어나가는 식이다.
최종편에서 모이는 각 시나리오의 주인공들은 시대도, 전투 방식도 너무나도 달라 스킬 구성이나 전투 장단점도 제각각이다. 이걸 적의 특성과 묶어 풀어내야 하니 당연히 다회차에서 더 유리하고 또 그러도록 구현됐다.
요약하면 다양한 방어구를 입은 적과 그걸 파훼하는 무기를 다양하게 쥐여주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는지 매 전투 펼쳐 보일 수 있는 게 라이브 어 라이브의 전투다. 물론 반대로 보면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하는 전투마저도 길고, 버겁게 만든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전체적인 난이도 문제도 있어 전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부분이 많지 않다.
현대와 과거를 잇는 HD-2D와 명불허전 사운드
옥토패스 트레블러, 트라이앵글 스트래티지에 이어 또다시 사용된 HD-2D 기법은 이제 완벽히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고전 JRPG 느낌을 한껏 살린 고해상도 픽셀 캐릭터와 3D, 광원 효과를 강조한 해당 기법은 고전 감성과 현대 그래픽 눈높이, 이 둘을 만족할 수 있는 최적의 기술로 꼽힌다.
다만, 기본적으로 높은 해상도를 기반으로 다양한 그래픽 효과가 더해지다 보니 구세대 RPG와 달리 요구 사양도 덩달아 높아졌다. 특히 PC로도 출시된 바 있는 옥토패스 트레블러는 물론 트라이앵글 스트래티지까지 화려한 연출과 함께 급락하는 스위치의 프레임을 더러 볼 수 있었다. 닌텐도 스위치만으로 서비스되는 라이브 어 라이브는 이 부분에서 타협을 이뤘다.
화면을 뿌옇게 덮는 안개, 구름 효과나 곧게 내리쬐는 햇살, 어두운 공간에서의 광원 효과 등은 부족하지 않게 표현됐다. 대신 과도한 파티클은 줄이고 게임 내 거리상 먼 곳에 있는 배경 디테일은 보다 낮췄다. 화려함은 낮춘 대신 픽셀아트 부분과의 조화도도 높아지고 프레임이 떨어지는 구간도 상당히 줄였다.
전투 부분에서의 시점 변화도 눈에 띈다. 원작의 완벽한 탑다운뷰는 시점을 아래로 낮춰 주변 부분까지 넓게 볼 수 있도록 바뀌었는데 그저 사각 링바닥만 보여주던 전투 필드에 링포스트, 나아가 주위의 관객까지 잡아낼 수 있게 됐다.
텍스트만으로 귀에 들리는 음악 요소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건 쉽지 않다. 그렇기에 대개 작곡가나 편곡자, 혹은 사운드 디렉터의 이력을 앞세워 그 대단함을 짐작도록 돕는다. 그런 부분에 있어 라이브 어 라이브는 최적의 인물이 음악을 맡았는데 그가 바로 시모무라 요코다.
스트리트 파이터2를 시작으로 성검전설 레전드 오브 마나, 킹덤하츠 등 게임 음악에 있어 가장 유명한 작곡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가 바로 라이브 어 라이브니 말이다. 시모무라 요코는 어레인지된 이번 리메이크 개발에도 참여했다.
특히 첫 엔딩 이후 사운드 룸을 통해 게임의 음악을 다시 들을 수도 있는데 메갈로마니아(Megalomania) 역시 포함되어 있다. 언더테일의 샌즈 전투 테마로 유명한 메갈로바니아(Megalovania)는 토비 폭스가 라이브 어 라이브의 메갈로마니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새롭게 음성 더빙이 추가되며 소리로 캐릭터들의 대사를 확인할 수 있는데 배우들의 면면이 정말 화려하다.
아카바네 켄지, 우에다 레이나, 오오조라 나오미처럼 게임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인물들부터 열혈왕 세키 토모카즈에 메탈기어 스네이크 역의 오오츠카 아키오. 우치하 이타치 역의 이시카와 히데오. 드래곤볼의 셀, 베지터, 프리저로 유명한 와카모토 노리오, 호리카와 료, 나카오 류세이. 원조 마징가의 카부토 코우지 이시마루 히로야. 원피스 에이스와 피콜로로 유명한 후루카와 토시오 등 중견 배우들이 한데 모였다. 에반게리온 신지의 오가타 메구미는 정확한 대사 없이 원시인의 소리를 내는 포고 역을 맡기도 했다.
게임을 완전히 재조립하는 대신 눈에 보이는 외형적 개선, 편의 요소 추가 정도만으로 원작보다 나은 평가를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라이브 어 라이브는 28년이 지난 지금도 충분한 매력을 보여준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최종편으로 나아가는 전개와 다양한 엔딩, 시나리오 구조 등은 오히려 어설프게 고전 JRPG를 흉내낸 오늘날 여러 게임 개발진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당시에는 워낙 쟁쟁한 RPG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던 라이브 어 라이브. HD-2D라는 옷을 입고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지금, 클래식이라는 과거는 오늘이 되고 미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