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가 제갈공명을 얻은지 얼마지나지 않아서다.


천하삼분지계의 초석이 될 형주를 종씨간의 의리를 들며 끝내 손사레를 친 유비는 유표의 죽음 뒤 형주로 몰려온 조조의 백만대군에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원군을 청하러 관우가 떠나고, 제갈량마저 구원병을 청하러 강하로 떠나 유비 곁에는 조운과 장비 뿐.


꽁지에 불이나게 도망가면서 뿔뿔이 흩어진 유비의 식솔을 찾겠다고 조운은 말을 돌려 조조의 대군 사이로 헌 창을 휘둘렀다. 아두를 부탁한다며 우물에 몸을 던진 미부인의 모습에 크게 통곡을 하며 '아기씨를 보호하지 못하면 나는 오늘 귀신이 되겠다'고 다짐, 닥치고 돌진하며 분노를 남발하는데


그의 창과 칼에 조조의 군사가 얼마나 낙엽처럼 쓰러졌던지 멀리서 전황을 살피던 조조의 눈에도 보일 정도라, 상산의 조운 자룡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수하로 삼고 싶다며 활을 쏘지 말고 생포하라 명했다고 한다.


삼국지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사람마다 백이면 백 다를 것이고 한 사람이 입을 열어도 삼일 밤낮을 새겠지만, 홀홀단신으로 그것도 가슴에 아이를 안은 상태에서 닥치는 대로 베고 찌르며 주군의 혈육을 지켜낸 이 날 조운의 활약은 장판교에서 혼자 조조군을 물리친 호통의 달인 장비, 자룡을 잃을 뻔 했다며 아두를 던져버린 비정한 아버지 유비의 행동과 시너지를 일으켜 기자가 손꼽는 삼국지 명장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조운이 하후은을 물리치고 청홍검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득템 추카추카 -_-)



[ 웹툰 츄리닝 中 ]



십만이 밀려오면 백만을 벨 것이며 태산이 막는다면 천하를 부수겠다!


조운이 조조 군사 백만명 사이를 헤집으며 아두를 구했던 바로 그 모습과 바로 그 기세에 이렇게 들어맞는 표현도 없지 않을까 싶다. 이 카피를 누가 생각해냈는지 모르겠지만 멋지다. 남자의 피를 끓게 하는 뭔가가 있다. 나도 조자룡 처럼 백만명 사이를 돌진하고 싶다. '17대 1'은 영원한 남자의 로망이 아닌가.


그러나 광고와는 달리 막상 게임을 해보면 17대 1은 커녕 2대 1도 힘들다는 현실과 마주치게 된다. 사실 사는 게 다 그런게 아닌가. 아무리 조운이라도 태어날 때부터 역발산기개세 하지는 않았을 것. 레벨도 좀 올라가고 청홍검도 들어주고 해야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거 아닌가. 그렇다. 인생이 그렇듯 창천은 MMORPG였다.


몰려오는 적을 100殺, 200殺 하며 삼국지 역사의 전장을 체험한다는 '액션 게임' 진삼국무쌍의 온라인판이 아닌가 하는 시선을 벗어던지고자 이번 3차 클로즈베타에서 창천은 스스로를 'MMO'로 정의하는 강수를 둔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국경전을 통해서 구체화되어 빛을 발했다.



[ 창천의 핵심 컨텐츠, 국경에서 벌어지는 국가전 ]



요약하자면 일반적인 MMORPG 의 필드와 같은 개념의 '채널전장'에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지역을 배경으로 경험치와 아이템을 획득하며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이렇게 성장한 캐릭터로 '국경전장'에서 다를 나라에 소속된 캐릭터와 영토점령을 놓고 전투를 하는 것이 창천 플레이의 골자인데


이 국경전장이라는 게 꽤 재밌다.


국경전장에서 밀려 패배하게 되면 차츰차츰 영토가 줄어들게 되어 각 영토에 부속된 채널전장과 부가능력치를 뺏기게 되는 건 뒷전이고 일단 자신이 소속된 국가가 밀린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레벨업을 하다가도 동원령을 받은 예비군마냥 국경전이 열리는 성으로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테스트가 끝나고 나면 공식홈페이지 게시판에 각자가 속한 국가가 그 날 어떻게 성을 점령했는지 어쩌다가 밀리게 되었는지 토론이 이루어질 정도로 국가채팅창에 올라오는 '하비성 위험'이라는 유저들의 부름은 게임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신나게 다른 국가의 유저들과 싸우다 보면, 자신보다 레벨이 더 높아 잘 죽지 않는 유저도 만나고 더 장비가 좋은 유저도 만나고 더 컨트롤이 좋은 유저도 만나고 하면서 '아, 레벨업을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식으로 채널전장과 국경전장이 자연스럽게 선순환된다.



[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들을 직접 지휘하는 재미도 있다. 여포가 짱. ]



액션이 강조된 MMO냐 MMO가 강조된 액션이냐


MMO를 강조했다지만 액션도 지난 클로즈베타보다 강화되었다. 조합키가 생겨서 단거리, 중거리 무기의 패턴이 늘어난 근접무기 뿐 아니라 조준해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활, 리듬게임처럼 박자를 맞춰 키를 누르면 체력이 회복되는 악기 연주 등 다양한 컨셉의 전투도 흥미롭다.


그러나 여전히 조작법을 익히기가 쉽지 않고 생각만큼 맞는다는 느낌을 잘 주지 못했다. 타겟을 따로 잡을 수 없고 8방향의 공격만 가능하기에 약간만 공격방향이 어긋나도 빗나간 것으로 처리되었는데 거리감이 확연하지 않아 조작에 대한 스스로의 탓을 하기보다 '왜 이리 안 맞냐'며 게임탓을 하곤 했다. 적군이 맞았는지 안맞았는지도 잘 알 수 없었고 언제 뒤로 날아가는지도 감을 잡기 어려운 등 타격감이나 액션감이 좋다고 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50대 50, 70대 70으로 동시에 수많은 캐릭터가 한 장소에서 부딪히는 국경전에서는 이런 세세한 컨트롤이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다굴에 장사없다고 아무리 컨트롤이 뛰어난 유저도 두 명, 세 명과는 맞대결을 펼치기 어려웠고 관우, 전위, 태사자 같은 영웅급 NPC들이 전장에 투입되고 나면 한 두 대에 나가떨어지니 유리한 위치에서 싸우고자 동료들과 함께 싸우거나 아니면 멀리서 활이나 쏘고 있었던 것이다. 안그래도 아쉬운 액션이 국경전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물건이 된 셈이다.



[ 활 쏘기나 악기 연주가 단조로운 근접전투를 보완한다 ]




[ 감녕 곁에서 포인트를 줏어먹어보려던 기자의 모습 -_- ]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천이 걷고 있는 길은 옳은 길로 보인다. 기획이 어떻고 그래픽이 어떻고 완성도가 어떻고 거기에 따라 게임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게이머가 재미를 느끼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면 말이다. 첫 날 하나의 채널을 제외하고 별로 하는 사람이 없었던 이번 테스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접속자 수가 늘어 마지막에는 모든 채널에 사람들이 북적댔다.


압도적인 병력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때 여러 개의 성을 차지하기도 했던 오나라는 테스트 마지막 날 수도인 건업을 제외한 모든 영토를 촉나라와 위나라에게 뺏겼다. 7일만에 오나라는 망한 셈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몸소 체험한 한 나라의 흥망성쇠. 거기에는 이미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삼국지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호흡하고 써내려가는 새로운 창천의 역사가 있었다.


Inven Niimo - 이동원 기자
(Nii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