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C24] 입에 폰 무는 열정! '에이펙스 레전드' 애니메이터의 일상
김규만 기자 (Frann@inven.co.kr)
현지시각 18일(월), 본격적인 행사의 시작을 알린 GDC 2024 현장에서는 '에이펙스 레전드'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애니메이터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서밋이 진행됐다.
'에이펙스 레전드' 애니메이션의 비하인드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세 애니메이터들은 각자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분야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유했다. 특히, 이날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1인칭 뷰 모델 전문 애니메이터 헤이든 쿠퍼가 레퍼런스용 영상을 찍는 과정이었다.
1인칭 애니메이션의 비결은 입에 문 핸드폰?
헤이든 쿠퍼 애니메이터는 1인칭 시점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과정을 소개했는데, '에이펙스 레전드'는 그 중에서도 레전드 별 이야기가 담겨있는 근접무기인 '영웅 무기'에 애니메이터의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다. 헤이든 쿠퍼는 이러한 영웅 무기와 기술에 따른 레전드의 뷰 모델(어깨부터 손가락, 무기, 카메라 등 1인칭 시점에 관여되는 요소들을 칭함)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먼저, 그는 리스폰 엔터테인먼트 내에서 애니메이터 팀이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기획 단계가 모두 확실해지면 애니메이터의 역할이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리스폰 엔터테인먼트는 부서별 협업이 활발하고, 위계질서에 따른 플로우 없이 언제든 원하는 부서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그는 가장 최근에 작업한 레전드 '퓨즈'의 영웅 무기인 레이저 엣지에 대해 소개했는데, 이러한 영웅 무기(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는 데도 수 많은 부서와의 협업이 이뤄진다. 어떤 종류의 사물이 레전드의 특징을 잘 나타낼지부터, 세계관에서 해당 레전드만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참조해야 하는 만큼 유관 부서와 미팅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타난 것이 기타 모형의 영웅 무기이며, 또 다른 레전드인 블러드하운드와의 유대 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블러드하운드가 선물로 주었다는 콘셉트의 기타 피크가 들어가게 됐다.
컨셉과 무기의 외형이 결정된 이후에는 애니메이션이 제작될 차례. 헤이든 쿠퍼는 레이저 엣지의 무기 검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던 당시 상황을 예로 들며 어떤 과정을 거쳐 애니메이션이 완성되는지 설명을 이어갔다. 이 또한 해당 레전드가 가진 배경이나 성격이 잘 녹아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떠오른 아이디어는 블러드하운드가 선물한 기타 피크를 튕겼다가 다시 잡으며 플레이어가 이를 잘 인식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동작이었다.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기기 전에, 실제 동영상을 찍어서 레퍼런스 비디오로 사용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한 그는 자신이 직접 레퍼런스 영상을 찍을 때 어떻게 하는지를 직접 보여줬다. 바로 핸드폰을 '입에 물고' 촬영하는 것이다.
1인칭 애니메이션, 거기에 양 손 모두를 사용해야 하는 특성 상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비싼 장비를 사기에는 가격이 부담스러운 편. 헤이든 쿠퍼는 값싼 폰 케이스에 그립톡을 붙이고, 이걸 입으로 물어 영상을 찍는 방법으로 레퍼런스 영상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꽤나 완성도가 높은 편이었다.
다음 사례는 2%대의 저조한 픽률로 플레이어에게 버림받았던 '레버넌트'가 리워크되던 때다. 완전한 리워크인 만큼 궁극기의 모습도 변화했는데, 새로운 궁극기의 모션은 레프트 4 데드의 '헌터'에서 여러 모로 영감을 얻었다. 헤이든 쿠퍼는 좀비 특유의 삐걱거리는 관절 애니메이션을 레버넌트에도 적용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또 핸드폰을 입에 물었다.
궁극기같은 경우는 사용하는 위치나 주변 상대, 그리고 추가 동작에 따라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필요한 과정이다. 레버넌트가 양 손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도중에도 달리거나, 슬라이딩을 하거나 앉을 때 모두 각각의 애니메이션이 필요하다. 헤이든 쿠퍼에 따르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은 수 없이 많은 반복 작업을 거쳐야 하며, 모든 디테일이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본 서버에 적용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애니메이션 하나 만드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지난 2023년은 '에이펙스 레전드' 내에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 해였다. 리스폰 내부에서는 2023을 '스토리의 해'라고 명명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스토리 관련 이벤트는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킬 코드' 시리즈와 이를 배경으로 한 인 게임 시네마틱, 그리고 레전드 '로바'를 중심으로 한 플레이어 이벤트를 들 수 있겠다. 마이너 가이탄 수석 애니메이터는 이처럼 풍족한 스토리로 한 해를 보내던 지난해를 회상하며, 리스폰 애니메이션 팀의 비하인드 더 씬(BTS)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하향식 의사결정을 지양한다고 하는 리스폰 엔터테인먼트는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서도 많은 인원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편이다. 특히 요 근래 애니메이션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모션 캡쳐 과정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나타난다.
모션 캡쳐는 사람이 직접 센서가 부착된 수트를 입고 촬영을 진행하는 만큼, 캐릭터를 맡는 배우와 전반적인 씬을 연출하는 감독 등이 현장에 모두 필요하다. 리스폰 애니메이터 팀은 이 안에서도 매우 밀도 높은 협업을 유지하며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전했다.
감독이 배우에게 역할을 지시하는 것은 전통적인 촬영 현장에서 당연시되는 것이지만, 리스폰 애니메이터 팀 내에서는 누구나 배우도, 또 감독도 될 수 있는 구조다. 이를 통해 센서 슈트를 착용한 배우의 경험을 엿볼 수 있고, 또 자신이 담당하는 장면을 집접 디렉팅하면서 주인의식도 더욱 향상되는 결과를 갖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타 부서와의 협업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애니메이터 내부에서 완수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말이다. 마이너 가이탄 애니메이터는 '로바'가 주인공을 등장하는 시네마틱 영상을 제작할 당시 팀 동료에게 받은 도움을 사례로 들며, "내 지저분한 낙서(?)를 제대로 그려준 덕분에,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큰 어려움 없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