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경력을 쌓아가면서 흔들릴 수도 있고, 슬럼프가 찾아와 좌절할 때도 있으며, 여기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을 인생 중에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소한 것에서 흔들릴 수도 있고, 정말 중요한 부분에서 크게 미끄러질 수도 있다. 이처럼 꾸준함은 모두가 추구하는 목표지만, 그걸 실제로 이루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트릭' 김강윤은 꾸준한 정글러다. 그는 EU LCS로 넘어가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유럽 최고의 정글러' 자리를 빼앗겨본 적이 없다. 가끔 흔들리긴 했지만, 그때마다 남다른 노력으로 경기력을 회복해 지켜보는 이를 놀라게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트릭'은 2017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하 MSI) 초반에 다소 흔들렸지만, 곧장 폼을 회복해 자신이 세계 정상급 정글러라는 사실을 LoL 팬들에게 입증했다.

그럼에도 인터뷰를 통해 만난 '트릭'은 꾸준한 정글러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0에서 100 사이를 헤매는 사람보다 80에서 90을 유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말로는 쉽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목표점. 하지만 '트릭'은 정말 이를 해낼 것 같은 느낌을 줬다. 그의 자신감 넘치고 확고한 눈빛과 말투가 그 근거였다.

※ 이 인터뷰는 섬머 스플릿이 개막하기 전에 진행됐다.


Q. 유럽에 간 지 2년 차가 됐다. 오랜 유럽 생활에 만족 중인지?

숙소는 개인방을 써서 엄청 좋다. 나머지는 한국 팀 숙소 분위기와 비슷하다. 내가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기도 한데, 한국 식당도 주위에 많고 시켜 먹을 수도 있어서 좋다. 유럽에서는 게임을 할 때 연장자들에게 존댓말을 안 써도 된다. 어린 친구들도 나에게 반말을 쓴다. 이런 점 덕분에 서로 친해지기 더 좋다고 생각한다. 축구나 농구 같은 걸 할때 형 동생 할 거 없이 경기 중에는 반말을 하면서 콜 플레이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만족 중이다.


Q. 한국 팀과 유럽 팀 생활을 모두 경험했다. 어떤 차이점이 있나?

유럽 팀은 다른 팀 소속이라도 선수들끼리 대부분 다 친하다. 한국 선수들은 유럽 선수들 보다 연습을 훨씬 열심히 한다.


Q. 유니콘스 오브 러브의 '호맨' 매니저 말로는 유럽 선수들의 자존심이 워낙 강해서 피드백을 하기 쉽진 않다고 하던데, G2는 어떤가?

비슷한 것 같다. 우리 팀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유럽 팀에서 선수들보다 코치의 힘이 떨어지는 편이다. 우리 팀 같은 경우는 피드백의 큰 틀을 코치가 맡아서 진행하고, 세세한 부분은 선수들끼리 한다. 서포터인 '미티'가 한국 팀 선수들 이상으로 게임 보는 눈이 좋다. 그 친구가 피드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Q. G2는 오랫동안 EU LCS 패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떤 이유가 있을까?

팀원들의 경험이 점점 풍부해지고 있다. 그리고 팀원들 모두 나이가 어리다. 특히, 딜러진이고 나이가 어린 '퍽즈'와 '즈벤'이 정말 잘해주고 있다. 거기에 '익스펙트' 기대한과 나, '미티'의 경험이 풍부해서 전반적인 시너지가 좋다.


Q. 하지만 G2가 국제무대에서는 사실 많이 아쉬웠는데?

변명일 수도 있는데, 작년에는 팀 창단 이후 3개월 만에 MSI에 진출했다. 지난 롤드컵 전에는 팀원 세 명이 떠나고 새로운 선수들이 왔다. 그래서 팀 전체적으로 경험이 없는 편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1년 동안 같은 멤버 구성으로 모두 함께 노력하고 발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이 좋았던 것 같다.


Q. EU LCS 우승으로 다시 한 번 MSI 출전 기회를 다시 잡았을 때 각오가 남달랐을 것 같다.

나는 작년에 못했던 만큼, 이번에야말로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봇 듀오 '즈벤'과 '미티'는 MSI에 간 적이 없었다. '미티'는 롤드컵만 세 번 갔었는데 MSI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꼭 진출하게 되길 바랐다. 나와 '미티'뿐만 아니라 팀원들 모두 동기부여가 철저했다.


▲ '트릭' 김강윤(좌), '퍽즈'(우)


Q.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기대보다 아쉬웠던 '퍽즈'는 어떤 각오를 보였나?

그 친구가 작년 롤드컵이 끝나고 나서 정말 많이 바뀌었다. 원래 자신감으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인데, 그 이후로는 완전 팀 플레이를 중시하는 선수가 됐다. '퍽즈'가 워낙 더 잘해져서 이번 MSI에 대한 걱정은 없는 상태였다. 그 친구도 나처럼 '작년에 망했으니 이번에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자'는 각오를 보였다.


Q. 그룹 스테이지 초반까지는 G2가 여전히 흔들렸는데?

그룹 스테이지 때 내가 정말 못했다. 남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내가 단판제 때는 여유가 없어서 긴장을 너무 많이 했다. 그래서 예전과 같은 경기력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다. 다행히 다른 팀원들은 큰 무대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크게 긴장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Q. 원거리 딜러인 '즈벤' 하드캐리 조합으로 많은 승수를 챙겼다.

사실 우리는 EU LCS 포스트시즌에서도 그런 조합을 자주 꺼냈다. MSI에서 다른 조합도 많이 했는데 다들 잘 모르시더라(웃음). '즈벤' 하드캐리 조합은 코치가 열심히 준비한 결과물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TSM전 이후로 리 신에 대한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그걸 알고 있던 코치가 '즈벤' 중심의 조합을 짰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코치에게 '리 신 하기 무섭다, 하기 싫다'는 식으로 어필을 했다(웃음).


Q. 이번 MSI에서 G2의 에이스를 꼽자면 단연 '퍽즈'와 '즈벤'이었다. 실제로 MSI 진행 중에 어떤 발전을 보였나?

'즈벤'은 2015년에 팀의 롤드컵 4강을 이끌었던 주역이었다. 충분히 잘하는 선수라고 항상 생각했다. '퍽즈'는 예전에는 '나 혼자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최근에는 팀원들을 전적으로 믿고 플레이를 한다. 지난 롤드컵에서 ANX와 대결을 벌였을 때 지고 나서 완전 슬퍼했다. 그 경기 뒤로 아예 다른 친구가 됐다. 충격을 받은 후에 각성한 케이스라고 할까.


Q. MSI에서 누누를 꺼냈다. 아이번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어서 뽑은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던데?

그건 누누 픽 원인의 20% 정도 밖에 안되는 이야기다. '서세이'가 아이번을 정말 잘 쓰는데, 그 친구에게 아이번 카운터를 물어봤더니 누누를 추천하더라. 누누가 11레벨까지 Q스킬과 '강타'를 쓰면 '데이지'가 바로 사라진다. 후반가도 반반 이상으로 누누가 좋다. 연습 때도 누누만 꺼내면 우리가 25분 내에 모두 승리했다. 그래서 난 누누로 대회에 들어가서 연습 때랑 똑같이 썼는데, 경기가 그렇게 길어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웃음).



Q. MSI를 2위로 마무리했다. 대회 전에 이런 성적을 예상했는지?

우리가 최우선 목표로 잡았던 게 그룹 스테이지 탈출이었다. 다른 팀들 모두 각 지역 리그에서 우승을 한 팀들 아닌가. 그런데 막상 4강에 올라가고 연습 경기를 계속 하다 보니 자신감이 더 붙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결승 진출을 목표로 잡게 됐다.


Q. 다전제에 강하던 SKT T1을 결승 무대에서 만났다. 실제로 다전제에서 상대해보니 어땠나?

정말 강력한 팀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SKT T1은 정말 스크림 때와 대회 경기 때 아예 다른 팀이 된다. 경기력이 한층 더 무서워지는 느낌이다. SKT T1 선수들 모두 챔피언 폭이 엄청 넓어서 전략의 폭이 장난 아니다. 이것이 다전제에서 SKT T1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Q. 결승전에서 1:3 패배를 겪었다. 사실 G2는 세트 스코어 3:1 징크스를 가진 팀인데?

작년부터 시작된 징크스다. 포스트 시즌만 가면 3:1이었다. 정말 신기한 것 같다. 그래서 다전제 무대에서 만약 한 세트를 져도 '아, 이번에도 3:1로 이기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됐다(웃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진짜 징크스인 것 같다.


Q. 이번 MSI는 G2와 본인 모두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사했다. MSI를 총평하자면?

MSI 시작 전에 브라질 부트캠프에서 1주일 가량 연습을 했었는데, 그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시차 적응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플래쉬 울브즈가 이번 MSI 내내 우리를 도와줬다. 우리가 3위를 차지했던 것도 플래쉬 울브즈 덕분이었다. 그리고 스크림도 정말 많이 도와줬다. 이 자리를 통해 플래쉬 울브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번 MSI에서 정말 발전을 많이 한 느낌이고, 목표치 이상의 성적을 거둔 만큼 뿌듯한 대회였다.

사실 이번에 내가 너무 못했다. 일부 팬들은 내 경기력에 실망한 나머지 페이스북 메시지로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오히려 내 멘탈을 다잡게 해준 것 같다. 내가 원래 욕을 먹으면 각성하는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내 경기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진 않았으면 한다(웃음). 다행히 4강을 앞두고 경기력을 많이 회복해서 좋았다. 올해를 맞이하면서 개인적으로 MSI 결승 진출이라는 목표를 잡았는데, 그걸 달성해서 정말 뿌듯했다.


Q. 이제 섬머 스플릿이다. 더욱 발전한 G2가 어떤 행보를 보일까?

다른 팀들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또 우리가 우승하지 않을까. 세트 스코어 3:1로 말이다(웃음). 지난 스프링 스플릿 우승으로 포인트를 많이 벌어놨기 때문에 롤드컵에 대한 걱정은 많지 않아서 마음 편하다. 그래서 더욱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Q. 유럽 정글러들 중에 눈여겨 보고 있거나 라이벌로 여기는 선수가 있나?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얀코스'가 라이벌이다. 이번 MSI에도 '얀코스' 등 친한 유럽 선수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다. 유니콘스 오브 러브의 '서세이'도 정말 잘한다. 그 친구의 유일한 단점이 챔피언 폭인데 그건 경험이 쌓이면서 저절로 해결될 문제인 것 같다. 이 두 선수는 한국 정글러들과 만나도 비빌 수 있는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Q. 7.10 버전에서는 어떤 경기 양상이 이어질까?

협곡의 전령 패치로 미드 1차 타워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 미드 라인에 오리아나나 신드라처럼 버티기 좋은 챔피언을 꺼냈는데, 상대가 협곡의 전령을 소환해서 미드 1차 타워를 쉽게 파괴하면 성장 기반을 잃고 경기가 힘들어질 것 같다. 그래서 암살자 위주로 나오지 않을까. 양 팀 모두 협곡의 전령에 대해 의식하고 있어서 사냥할 타이밍을 쉽게 잡긴 힘들 것 같지만, 워낙 운영에 좋으니 이를 둘러싼 신경전을 펼칠 것 같다. 초반 영향력만 따지면 화염의 드래곤보다 훨씬 좋다.

협곡의 전령의 중요성 때문에 탑 라인전에 강력한 딜러 챔피언 위주을 꺼내고 이를 위주로 조합을 꾸리게 될 것 같다. MSI 때도 갈리오와 그라가스 말고는 대부분 딜러 챔피언이 탑에 등장했다.

정글에서는 자크가 '필밴' 아니면 무조건 가져가는 추세가 나올 것 같다. 자크가 지금 정말 좋은 픽이다. 초식 챔피언들은 숙달하기 쉬워서 몇 판 연습해보면 어느 정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듣기로는 자크를 제외하면 정글에서는 크게 바뀐 점이 없다더라. 상대가 자크를 가져가면, 그 상대 팀 미드 라이너는 거의 1:2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Q. 정글 메타에는 큰 변화가 없어서 연습할 때 재미없지 않나?

내가 챔피언 폭이 넓은 편이라서 하던 것만 하게 되면 재미가 없더라. 라이엇게임즈가 다른 챔피언도 충분히 쓸만한 픽으로 만들어줬으면 한다. 세주아니도 리워크되더니 갑자기 탑이랑 서포터로 가게 됐다. 정글로는 많이 안 좋은 것 같다.


Q. 7.10 패치에서 예상되는 빠른 속도의 운영이 G2에게 어떻게 작용할까?

그룹 스테이지에서는 소위 '드러눕는' 운영을 많이 했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런 조합을 많이 하지 않았다. 나도 대회 초반에 폼이 그리 좋지 않아서 지켜주는 챔피언 위주로 했었지만, 이제는 많이 회복한 만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 작년 EU LCS 동안 우리의 평균 경기 시간이 가장 짧았다. 팀원들 모두 속도전으로 가는 걸 좋아한다.

사실 MSI 기간 중에 단판제에서 드러눕기 운영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변수 차단이었다. 어차피 후반까지 가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어느 팀이라도 초반 조합을 짜면 실수 한 번으로 역전을 내주기 쉽다. 우리도 후반 집중력이나 한타 파괴력에서는 밀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무난하게 초반을 보낼 수 있는 조합을 자주 꺼냈다. 팀원들을 믿을 수 있고 서로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후반 중심 조합과 운영을 꺼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 어떤 정글러로 기억되고 싶나?

내가 기복 없는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스코어' 고동빈처럼 꾸준히 제 몫을 다하는 정글러로 기억되고 싶다. 경기력을 수치로 따졌을 때 0에서100을 왔다갔다 하는 것보다 80에서 90을 유지하는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EU LCS에서 활동하는 동안 계속 우승하고 싶고, 시즌 MVP도 한 번 더 받고 싶다.


Q. 한국 팬들과 유럽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유럽 팬들에게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번 MSI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이면 헤엄쳐서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었다. 그룹 스테이지에서 탈락했으면 정말 헤엄쳐서 오려고 했다. 아쉽게도 결승까지 가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웃음). 실망시켜 드린 부분이 있다면 정말 미안하다. 섬머 스플릿 내내 더욱 열심히 해서 또 우승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 그리고 한국 팬들도 예상치 못했던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다. 정말 감사하다. 꾸준히 응원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