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는 게임사의 패치나 유저들의 연구에 따라 그때그때 바뀌는 유행 같은 것인데,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바뀌는' 이다. 게임에서 메타는 스스로 태동하고, 변화한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보통 바뀌지 않을 것을 메타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러나 LoL에서 절대 바뀌지 않고 이어져 온 '메타'가 있다. EU 메타다. 탑 라이너, 미드 라이너, 봇 듀오, 정글러로 구성되며 비슷한 운영법을 가진, 사실상 메타라고 불러선 안 될 EU메타는 이제 LoL 고유의 틀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또한 태생은 메타였다. 여러 가지의 흐름과 전략 중 하나였다는 뜻인데, 이게 고착화됐다.

EU의 고착화는 처음 만나는 유저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으로 동의된 고효율의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단점 또한 있었다. 게임이 조금씩 창의력을 잃어간다는 점이다.

EU의 존재가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너무 틀에만 박히는 건 지루하다. 언제부턴가 패치가 자주 이뤄져도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이 발휘될 공간이 없다. EU 메타가 스포츠의 포지션 같은 것으로 판단될 수 있지만, 오랜 역사를 두고 살펴보면 스포츠도 계속해서 포지션의 틀이 무너지고 새롭게 만들어졌으며, 경계가 허물어졌다.

요즘 EU 메타가 조금씩 흔들리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라이엇이 주도하기도, 유저가 주도하기도 했다.


라이엇 패치에 담겨 있던 의미? 봇 파괴 조합, 스크림에 빈번하다


솔로 랭크에 역할별 참가 시스템을 만들며 EU 메타를 지지했던 라이엇이지만, 조금 다른 전략도 사용해보라고 계속 이야기를 해왔다. 물론 지금까진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신 챔피언 설계나 기존 챔피언의 리메이크를 보면 분명히 정형화된 게임 스타일에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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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중심은 봇 라인이다. EU 메타에서 가장 필수적인 역할 군은 원거리 딜러와 서포터(탱커든 지원형이든)다. 암살자가 없는 게임, 탱커가 없는 게임, 브루저가 없는 게임은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원거리 딜러와 서포터가 없는 게임은 거의 보기 어렵다. 사실 라이엇의 패치가 있기 전까지는 대회에서 절대 볼 수 없었다.

변화의 시작은 모데카이저였다. 모데카이저는 리메이크를 통해 W 스킬에 특이한 패시브를 받았다. '미니언을 처치할 때 아군이 있다면 50%의 추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가 그 내용이다. 듀오로 라인을 서면 이득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모데카이저는 리메이크 직후 원거리 딜러를 대신 봇 라인에 주로 등장했었다.

그 후에는 직스였다. 원거리 딜러가 가지는 주요한 임무 중 하나가 타워 철거다. 다른 챔피언들은 수행하기 어려운 임무다. 그러나 직스는 W 스킬 변화로 순식간에 타워를 철거할 능력을 받아, 잠시 원거리 딜러가 약했던 타이밍에 그들을 대체하기도 했다.

타워 철거는 최근 패치에서도 주요하게 바뀐 사항이기도 하다. 8.9패치에서 AP 딜러의 공성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즉 원거리 딜러가 가진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었던 AD 대미지 부분만 보충된다면, 봇 라인에 원거리 딜러가 예전만큼 필수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정글러 역할 군에 원거리 딜러 챔피언인 킨드레드를 만들고, 그레이브즈를 리메이크로 추가했던 것도 변화의 밑거름이지 않았을까. 이 두 챔피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정글에 연약한 원거리 챔피언들이 올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에 최근 결정적인 챔피언이 하나 등장했다. 신 챔피언 파이크다. 파이크는 서포터로 설계된 챔피언인데, 역할 군이 암살자다. 암살자형 서포터. 언뜻 보기엔 말도 안 되지만, 정말 그런 챔피언이 만들어졌다.


파이크의 등장과 원거리 딜러의 초반 위력을 감소시킨 패치는 봇 파괴 조합 등장에 불을 지폈다. LCK 팀 관계자는 "여전히 원거리 딜러 위주의 봇 듀오 구성이 중심이기는 해도, 요새 다양한 봇 파괴 조합이 연구되고 있다. 최근 패치로 원거리 딜러의 초반 위력을 감소시킨 게 영향이 있기는 하다. 모데카이저가 원거리 딜러 대신 나오기도 하고, 야스오-알리스타 같이 아예 밀어붙이는 조합도 나오고 있다. 원거리 딜러 없는 봇 듀오 구성이 대회에 등장할 가능성이 큰 편"이라고 답했다.

다른 LCK 팀 관계자 몇 명도 이에 동의했다. 그중 한 관계자는 파이크의 위력을 강조했다. "최근 봇 파괴 조합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스크림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봇 파괴 조합의 중심은 파이크다. 너무 강해서 거의 밴이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프로들이 진지하게 마타(마스터 이-타릭) 조합을 연습했다


유저들이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마타 조합은 이미 LoL 유저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미드 라이너로 타릭을, 정글러로 마스터 이를 선택하는 이 조합은 단순한 참신함을 넘어섰다. 솔로 랭크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전략으로 인정받고 있다.

EU의 틀에서 벗어났다. 미드 라이너를 완벽한 조력자로, 정글러를 히어로물 주연급으로 만들었다. 타릭은 미드 라이너로 나선다. 하지만 무늬만 미드 라이너일 뿐, 실상은 마스터 이를 따라다니는 또 하나의 서포터다. 미드 라인 CS를 마스터 이에게 몰아주고, 마스터 이가 정글도 편하게 돌 수 있도록 옆에서 보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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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라인에 서포터형 챔피언이 나오지 않았던 건 결코 아니다. 대표적으로 룰루나 카르마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챔피언이 오건 라인 CS를 챙기며 성장을 도모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타 조합은 미드 라이너가 CS를 챙기지 않는다. 성장이 뒷전인 진짜 서포터가 됐다. 아예 EU의 운영법을 벗어난 것이다.

마타 조합은 EU의 틀을 깼다는 것과 동시에 프로 연습 경기에서도 나올 만큼의 진지함이 있다. 섬머 스플릿을 준비하는 다수의 LoL 게임단은 '마타' 조합을 분석하고 연습했다. 물론 마냥 긍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진에어 그린윙스의 한상용 감독은 "요새는 주춤하긴 한데, 전략적으로 준비를 잘하면 대회에서도 나올 수 있다. 대처하는 데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그런 점만 극복하고 마스터 이가 성장을 잘하면 말릴 수가 없다. EU 메타를 흔들 수 있을지는 실전에서 봐야 할 것 같다. 한 번만 폭발하면 또 하나의 메타로 떠오르고, 망하면 그대로 잠수를 탈 것 같다. 연습하는 팀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 상황과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마타 조합을 연습한 팀 중에는 상위권 팀도 몇 포함되어 있다. LCK 상위권 팀 관계자는 "우리가 연습하기도 했고, 대처법도 연구했다. 까다로워서 밴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며 충분히 의미 있는 조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팀 관계자에게도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다. "챌린저스 팀 위주로 활발하게 연구됐고, 많이 이겼다고도 들었다. LCK 팀들도 연습했다고 들었지만, 잠잠해진 것 같다. 아무래도 마스터 이-타릭의 동선이 잘 드러나고, 그들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서 운영에 단점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종합적으로 마타 조합이 EU 메타에 반기를 들 만큼의 파급력이 당장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분명한 건 마타 조합에 가능성은 열려있는 상태다.


게임은 살아있는 유기체일 때 가치 있다


EU 메타라는 든든한 골격이 여전히 중심을 잡고는 있다. EU 메타는 LoL을 이해하는 뿌리고 하나의 큰 줄기다.

그러나 바람에 끝없이 흔들릴 가지와 나뭇잎들, 떨어진 낙엽을 대체할 새로운 잎이 필요했다. 게임이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가 되려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EU 방식을 거부한 메타의 등장. 계속해서 새로운 전략이 연구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것 아닐까. 마타 조합처럼 변화가 유저의 상상력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늘어나는 봇 파괴 조합처럼 게임사와 유저의 상호작용으로 탄생하는 변화도 의미 있다. 이 또한 게임이 활발하게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인 듯하다.

섬머에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메타가 등장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아시안게임 때문에 더 애타게 기다린 섬머 스플릿. 새롭게 찾아올 변화로 또 한 번 대차게 숨을 몰아 쉬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