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에 선수가 있다면 감독이 있다. 이번 결승에 오른 두 명의 감독은 모두 백전노장으로 유명한 최장수 감독들이다. 또한, 창단 첫 결승 진출이라는 '패러독스'를 지닌다. 그들의 긴 경력과 달리 이번에 창단 첫 결승 진출을 이제서야 성공한 것은 아무래도 늦은감이 있다. 그간 많은 고생이 있었을 것이고, 그 결실이 눈앞에서 열리려 한다.

이번 기사를 통해 두 감독의 내력을 짤막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그러면 그들이 지금까지 결승에 오르지 못하면서 겪었던 아픔이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절박함은 이번 결승에서 반드시 우승을 차지해야 하는 당위성으로 돌아온다. 두 감독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자.


이재균 감독 - 그는 운이 없다? 숱하게 고생한 것으로 유명한 파란만장 감독



덕장 이재균 감독이 빚어낸 수많은 스타급 선수들

이재균 감독은 특유의 온화한 인상과 잘 어울리는 성품을 가졌지만, 냉정한 판단이 필요할 때는 칼같이 냉정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e스포츠 시장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줄곧 함께한 최고참 감독 중 한 명이다. 2001년, 부산에서 함께 지내던 지인들과 서울로 상경해 창단한 팀이 바로 웅진 스타즈의 전신인 한빛 스타즈였다. 2001년 5월경의 일이었다.

한빛 스타즈 시절, 이재균 감독은 많은 선수를 배출했다. 강도경, 김동수, 박경락, 박정석, 박용욱, 변길섭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과거의 스타들이 이재균 감독의 가르침을 받았고, 이후에도 김준영, 윤용태, 김명운, 김민철 등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배출하며 선수들을 훈육하는데 특출난 역량을 발휘했다.


불운, 가난한 팀의 서러움을 잘 아는 이재균 감독. 드디어 보답의 때가 왔다

그러나 이재균 감독을 평가하는 주변의 많은 관계자는 그를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한빛 스타즈가 정점에 서던 2004년, 스카이 프로리그 1라운드와 그랜드 파이널을 석권하면서 이재균 감독은 명장의 반열에 올라서고 팀원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한빛 소프트는 경영난으로 인해 게임단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신인들이 '한빛 스타즈 같은 가난한 팀은 가기 싫다'고 했을 정도니, 이재균 감독의 마음고생이 제일 심할 시기였다.

이재균 감독과 선수들이 고군분투하며 이와 같은 어려운 암흑기를 3년, 거의 4년 가까이 보냈을 무렵, 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결국 최후 통첩을 받아들게 되었다. 한빛 소프트는 '더는 게임단을 운영할 수 없다'며 운영 포기를 선언했다. 이 무렵이 2008년 5월경의 일이다. 팀이 해체될 위기에 놓인 한빛 스타즈를 살리기 위해 이재균 감독을 비롯한 많은 관계자가 직접 발로 뛰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웅진 스타즈의 창단으로 이어졌고, 그해 9월 웅진이 한빛 스타즈를 인수하고 팀명도 그대로 '스타즈'를 이어나가기로 하면서 '웅진 스타즈'가 창단되었다.

정말 어려운 시기에 혜성같이 등장한 웅진 그룹은 팀에게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선수들이 내는 성적은 그렇지 못했다. 프로리그 10-11시즌에서는 공군 에이스에게 0:4로 참패를 당하기도 했고, 병행 시즌으로 진행된 11-12시즌에도 시즌1,2 모두 5위를 기록,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선수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는 웅진 그룹에게 이재균 감독은 내심 미안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생의 가치를 잘 아는 이재균 감독이기에 분명하다. 그랬던 웅진 스타즈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위기가 만들어 낸 마지막 기회, 반드시 그들이 우승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이번 시즌 웅진 스타즈는 달라졌다. 시즌 초반 7위로 시작했던 웅진이 순식간에 3위로 도약하더니 이후 2위와 1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상위권을 굳히기 시작한 것이다. 때때로 두각을 드러내던 김민철이 각성한 것은 그 후의 이야기이다. 군단의 심장이 적용된 4라운드에부터는 아예 1위를 굳혀놓고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다른 팀들은 '1위 탈환'을 노리기보다는 '안전한 2위'를 굳히것을 목표로 삼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그간 웅진 스타즈를 물심양면으로 아끼지 않던 모기업 웅진 그룹이 위기에 빠졌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왔다. 법정 관리를 신청한 웅진 그룹이 게임단 운영을 지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가장 고심에 빠진 사람은 역시 이재균 감독이었다. 그런 감독을 지켜본 선수들이 단결하고 합심한 결과가 이번 시즌의 압도적인 성적이다.

어려웠던 팀을 도와준 웅진에게 보답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번 시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것뿐이고,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 이번 결승전에서 그대로 나타날 것인지 주목된다. 웅진은 언제나 위기에서 강한 팀이었다.



김민기 감독 - 팀을 위해 회초리도 마다치 않았다. 드디어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인가?



e스포츠 최장기간 역임 김민기 감독, 이재균 감독과 함께하는 e스포츠의 산 증인

STX 소울의 김민기 감독은 본래 김은동 감독으로 기억하고 있는 팬들이 더욱 많다. 그가 개명한 것은 2012년 5월경의 일이었다. 이재균 감독과 마찬가지로 한 팀에서 오랜 기간 지휘봉을 잡으며 e스포츠의 역사를 함께한 산 증인이다. 그를 보자면 마치 물 흐르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도드라지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제 일을 하는 그런 감독이다. STX소울의 팀컬러가 없는 것이 팀컬러라고 불리는 것도 이러한 감독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STX소울의 전신인 소울팀은 2000년에 창단 되었다. 당시의 정식 명칭은 S.O.U.L이었으며, 'Starcraft Of Unbelievable Legend'의 축약어이다. 모든 팀이 모기업을 만나 하나 둘씩 창단을 맞이할 때도 소울은 그렇지 못하다가 가장 막바지에 STX와 손을 잡고 STX소울로 창단이 이루어졌다. 이 때의 일이 2007년이었다.


팀 색깔이 없던 STX 소울, 에이스의 부재… 단체전 리그에서의 부진한 성적

STX소울도 많은 선수를 배출시켰다. 김구현, 김동건, 박상익, 변은종, 조용호, 한승엽, 최연식, 김윤환, 조일장 등을 키워냈으나 팀 리그에서의 성적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2004년 스카이 프로리그에서 팬택&큐리텔 큐리어스(전 위메이드 폭스의 전신, 현재 해체)에 패해 준우승을 기록한 것이 지금까지의 최대 성적이었다. 개인리그에서는 때때로 선수들이 선전을 펼치기도 했지만,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며 팀의 에이스였던 테란 선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불의의 사건에 연루되어 갑자기 에이스를 잃은 STX소울은 예상보다 오랜 기간 방황했다. 김구현과 김윤환 콤비를 통해 사실상 팀을 이끌어갔지만, 이 둘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10-11시즌에서 새로운 피인 김도우와 신대근을 수혈받으며 재기를 노렸지만, 당시에는 적응이 덜 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7월 20일, 김민기 감독이 팀 전원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겠다는 초강수를 선언하며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김민기 감독은 이 발언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선수들의 처사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냐' 하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백전노장인 그가 이런 후폭풍을 모를 리가 없었다. 선수들에게는 충격 요법이 필요했고, 그 정도로 당시의 STX소울은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때부터 연습실 본좌로 불리던 이신형이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STX소울의 희망은 조금씩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드디어 각성한 이신형, 고진감래 끝에 결승에 오른 현재의 모습

11-12시즌에서는 김윤환의 부진과 김구현의 공군 입대로 인해 팀의 주력카드들이 모두 힘을 잃은 상황이 되었다. 이신형과 신대근을 꾸준히 내보내고 당시 신인이던 백동준, 김성현이 신인치고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면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2에서는 조성호가 갑자기 두각을 드러내며 팀의 승리를 견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으로는 포스트시즌 진출까지는 어려운 형국이었다.

이미 이 시기부터 모기업 STX가 어려움에 빠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주식은 1/10토막이 났고, 2013년 들어서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선 상황이 되었다. 결국, 김윤환이 플레잉 코치로 보직을 변경하며 팀의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래도 한동안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11-12시즌도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12-13시즌 초반부도 암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군단의 심장에 들어서 갑자기 이신형이 각성했다.

이신형의 급작스런 기량 향상은 '각성'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할 지경이다. 이승현, 신노열, 강동현과 같은 정상급 저그들을 연달아 물리친 데 이어 언제나 테란 최강자로 꼽히던 이영호까지 모조리 잡아내며 김민기 감독이 그토록 염원하는 '슈퍼에이스'를 드디어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팀의 주력 카드인 김도우, 변현제, 백동준이 모두 살아나면서 후반부에 급상승, 포스트 시즌 안착에 성공했다. 여기서 전통의 강호 SKT와 KT를 모두 연파하며 2004년 이후 다시 결승 무대에 오르게 된 것. 그간 이를 악물고 선수들의 훈육에 투자했던 김민기 감독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위기는 팀을 강하게 만든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된 '법정관리 더비'

'어렵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시기다. 최근 스타크래프트2의 인기가 예전만큼 높지 않은 시점에서 팬들이 보내는 냉소적 시선이 따갑다. 구단을 운영하는데도 비용이 적지 않게 소모된다. 웅진과 STX의 공통점은, 두 팀 모두 모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 구단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재균 감독과 김민기 감독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통적으로 강팀은 언제나 '통신사'팀의 몫이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웅진과 STX는 주연보다는 조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랬던 두 팀이 이제는 당당히 프로리그 결승전의 주연으로 최종 승부를 앞둔 상황이다. 팀이 처한 어려움은 현실적인 문제다. 막연히 '잘 될 거야'로 관철될 상황은 아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이 두 팀을 결승으로 이끌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이번 결승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승부가 된다. 지난 시즌에서는 '다음에 더 잘하면 돼.'라고 애써 넘길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다음을 섣불리 기약할 수가 없다. 설령, 다른 기업의 지원을 받아 계속 팀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해도 그간 팀을 도와주었던 모기업에 대해 '우승'으로 보답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이자, 도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승자가 두 명이 될 수는 없는 법. 두 감독의 명승부를 통해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프로리그 결승 특집 기사 모음
① [프로리그 결승특집(1)] '맵을 보면 결승전 엔트리가 보인다?' 웅진 대 STX전 엔트리 예측
② [프로리그] 한국e스포츠협회, 결승전 엔트리 공식 발표
③ [프로리그 미디어데이] 개인 타이틀 시상… 시즌 MVP는 김민철, 정윤종, 이영호
④ [프로리그 미디어데이] 10년 만에 결승에 올라온 두 팀! 우승컵은 어디로? 사전 입담 대결 엿보기
⑤ [프로리그 미디어데이] '에결만 두 달 준비했다' 위트 있지만 날카롭게! 감독-선수 결승전 출사표
⑥ [프로리그 결승특집(2)] 결전의 날이 다가온다! 수 싸움의 결과는? 결승 엔트리 심층 분석
⑦ [프로리그 결승특집(3)] 상대를 꺾기 위해선 알아내야만 한다! STX 소울-웅진 스타즈 강약진단
⑧ [프로리그 결승특집(4)]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마워요! 웅진, STX의 멘탈관리사
⑨ [프로리그 결승특집(5)] 얘들아, 나 믿지? 웅진-STX 양 팀의 중심에는 그들이 있다
⑩ [프로리그 결승특집(6)] STX 소울 잘하는 비결은? '우리 뒤엔 특급 에이스가 있다!'
⑪ [프로리그 결승특집(7)] 정규 시즌 우승의 저력, 결승전까지 이어간다. 웅진 스타즈!
⑫ [프로리그 결승특집(8)] 위기가 강한 팀을 만든다! 두 감독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
⑬ [프로리그 결승특집(9)] 영광의 우승컵을 다툴 최후의 두 팀… 어떻게 올라왔나? 정규 시즌 뒤돌아보기
⑭ [프로리그 결승특집(10)] 누가 이길 것 같나? 해설진과 감독들이 말하는 결승 예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