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대학교에서 신설된 부전공 하나가 화제에 올랐다. '소프트웨어 부전공'이라고 명명된 이곳에서 게임개발 관련 교육도 시행한다고 알려졌기 때문. 게다가 문과에 속한 '언론정보학과'가 창설했다고 알려져 더욱 큰 궁금증을 불렀다.

인벤과 통화에서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윤석민 학과장은 "발상의 전환으로 봐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약간은 공식적인 답변이었고, 이 속에 더 많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윤석민 학과장은 "더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으면 이준환 교수한테 연락해 보는게 어떤가. 이 교수가 일선에서 추진했다"고 말했고, 이튿날 바로 이준환 교수의 인터뷰를 잡았다.

대학교 졸업 후 오랜만에 방문한 교정이라 그런지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의미있는 내용이 많았다. 그가 원하는 인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현재 대학교 교육의 비전이 어디에 있는지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도 곰곰이 되새겨 볼만 했다.

네오위즈 창립 멤버였으나 공부에 대한 욕심 덕에 미국 유학을 결심한 사람. 교육 과정을 마치고 네오위즈에 복귀해 여러가지 성과를 낸 뒤 지금은 교수의 자리에서 후배 양성에 힘쓰는 사람. 이준환 교수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이준환 교수





언론정보학과에서 소프트웨어 부전공을 만든 이유부터 묻고 싶다.

서울대는 이런 융합 프로그램을 10여 년 전부터 운영해 왔다. 소프트웨어 부전공은 언론정보학과에서 운영 중인 정보문화학에서 조금 더 강화하는 개념이다. 갑자기 시작하는게 아니라, 조금 더 IT 분야 교육을 심화시켜보자는 취지로 봐 주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배우던 것과 소프트웨어 부전공에서 배우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예전에 하던 수업은 IT 트랙과 콘텐츠 트랙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콘텐츠를 가르치는 수업이 메인이었고, IT 관련 기술은 서브로 가르쳤다. 게임, 영상 등이 다 콘텐츠 아닌가. 그리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한 거고. 그런 것을 서포트하는 개념으로 기술을 가르쳤는데, 소프트웨어 부전공에서는 기술 부분을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한 마디로 잘하던 것을 더 잘해보자는 취지다. 이미 알겠지만, 소프트웨어 부전공이 게임학과는 아니다. 그렇지만 게임 관련 수업은 분명히 있다. 모바일 게임기업 '엑스몬 게임즈'나 소프트웨어 업체 '이음'의 핵심 인력들이 예전에 서울대에서 관련수업을 들은 학생들이다.

▲ 서울대 학생들이 창업한 회사 '엑스몬 게임즈'


소프트웨어 부전공 내 게임 수업의 비중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가?

앞서 말한 대로 이쪽은 콘텐츠 관련 수업이 들어가 있지 않다. 기술과 방법론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리고 사실 게임 비중이 조금 많기는 하다. 한 30% 정도 될까.

그런데 이 말이 곧 게임 관련 수업을 중심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공하는 수업이 '게임의 이해',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링' 같은 것인데,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링'은 게임 뿐만 아니라 영상, CF, 전자책 등 다른 분야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게임 관련 수업은 맞지만 그 결과물이 꼭 게임이 될 필요는 없다는 거다.

또 '시리어스 게임'이라는 수업도 있고, '가상현실 입문'이라는 수업도 있다. 수업을 담당하시는 선생님의 관심도에 따라 수업 방향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가상현실 관련 수업은 현재 매우 폭넓게 가르치고 있다.


소프트웨어 부전공 창설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전공이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다. 미국 카네기멜론공대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를 공부했다. 거기에서 수업 들으면서 느낀 게, 해외는 문과 이과 구별이 전혀 없는데 반해 한국은 과별로 가르치는 게 철저히 구분된다는 사실이었다.

컴퓨터 분야가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공대는 기술 위주로 접근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기술이라는 게 결국 사람이 쓰는 것 아닌가. 외국은 기술을 가르치더라도 사람에 대한 이해에 먼저 초점을 맞춘 뒤 수업을 진행한다. 실제 내가 다녔던 학과의 교수님들도 굉장히 다양한 분야를 전공하셨다. 어떤 교수님은 소셜 사이언스, 또 어떤 분은 디자인, 심지어 음악을 전공하신 분도 계셨다.

아무튼 대학교 졸업 후에 서울대로 부임을 왔다. 서울대는 전반적인 리소스가 무척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분야에서 의미있는 연구 성과도 올리는 중이었고. 하지만 각자 플레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융합이라고 해도 자료 조사를 목적으로 잠깐 모이는 게 전부였다.

그렇기에 학부적으로 융합해보면 어떨까하는 고민이 계속 들었다. 인문 쪽을 전공한 학생들에게 IT 프로그래밍 교육을 몇 년간 시도해 봤는데, 그때마다 창의적인 발상이 꽤 많이 나왔기에 가능성도 높다고 봤다.


주로 어떤 형태의 발상이 나왔나.

당시 가르쳤던 게 완전한 기술 쪽은 아니었다. 주로 자신의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위주로 가르쳤다.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어쨌든 최종과제를 내준 뒤 결과물을 보니 미디어 아트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게임을 만들어 온 학생도 굉장히 많았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기간을 딱 3주 줬는데 결과물 퀄리티가 상당히 좋았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다듬으면 상업화해도 될 것 같은 작품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래밍 스킬이 아니다. 각 개체들이 미려하게 움직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참신한 아이디어가 중요한 것이다.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갖춘 학생들은 폭넓은 사회 이해도를 갖고 있다. 이런 학생들이 기술적인 장벽을 넘어선다면 정말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 이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는 연합전공을 통해 기술관련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문과 학생들은 기초부터 배우지 않나. 그래서 부전공 수업 만으로 IT 업계에 입사할 정도의 실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했다. 물론 그들의 의견처럼, 바로 개발자로 나서서 게임회사 취직하고 서버 프로그래밍 이런 것 만들기에는 아마 많이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인재는 기술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그 기술을 활용하는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연합전공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 일부가 프로그래밍 기술에 굉장히 흥미를 느끼는 것을 봤다. 그래서 스스로 프로그래밍 공부하고 관련 동아리도 가입하더라. 또 방학 동안에는 소프트웨어 개발하거나 그런 목적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친구들이 많다.

부전공으로써 제대로 된 토대가 마련된다면, 아마 이런 학생들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꼭 이렇게 되지 않더라도, 기술을 이해하고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일 줄 아는 그런 기획자가 배출된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프트웨어 부전공이 신설된다고 알려진 뒤, 재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지금은 방학 시즌이라 날 찾아와서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하는 학생은 없다. 하지만 교내 커뮤니티를 보면 그래도 관심은 많이 갖고 있는 듯 하다.

딱 게임에 포커스 맞추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목적이 게임회사 취직하는 인력을 만드는 게 아니다. 폭 넓게 접근하는 거다. IT 쪽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꿈을 펼치겠다는 학생들이 많이 찾아온다.


부전공 신설 과정에서 네오위즈와 손을 잡았다고 들었다.

사실 내가 네오위즈의 창업 멤버 중 하나다. 아주 초기에 같이 시작했다가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미국으로 유학을 간 거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네오위즈에서 몇 년간 더 일하다가 서울대학교로 왔다. 네오위즈와는 지금도 좋은 관계로 지내는 중이고, 그 덕분에 이번 프로젝트도 함께하게 됐다.

사실 기업에서 나섰다기보다는 우리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고, 네오위즈가 응해준 것이다. 네오위즈는 '네오플라이'라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므로 서로 시너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최근 젊은 학생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 하나가 있다. 워낙 경쟁 심하고 직장 구하기 어렵고 하니, 대부분 대기업을 목표로 인생을 건다. 이런 시대가 지속되다보니 도전과 창업을 두려워하는 친구들도 많아졌다. 나도 어렸을 때 친구들과 모여서 창업해 본 기억을 떠올려보면,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보다는 '이걸 너무 하고 싶어!'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거다. 젊은이들이 이런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네오위즈 측에서 도와주었으면 한다. 높은 분들이 와서 기업가 마인드를 키워주는 강의를 해주신다면 더 바랄게 없고.(웃음)

▲ 네오위즈에서 운영 중인 창업지원 프로그램 '네오플라이센터'


게임은 국내 IT업계에서 비중이 매우 큰 편이지만, 중독 등에 얽히면서 사회적 수많은 사회적 이슈를 낳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뭐랄까... 일단, 게임을 안좋은 쪽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게 비단 게임 뿐만 아니라 문화콘텐츠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에는 너무 지나친 지원도 독이며, 규제도 당연히 독이다. 자연스럽게 발생하여 공유되는 시스템이 가장 좋다. 나도 학부모기에 그들이 중독 문제를 우려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의 부정적인 모습만 무조건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게임 중독이라는 표현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독의 원인이 게임인지 인터넷 혹은 소셜인지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깊이있는 연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나는 게임보다는 인터넷 중독이 훨씬 심각한 것 같고, 특히 소셜 네트워크 중독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에 머무르지 말고 공정한 잣대를 토대로 한 연구 결과가 필요한 시점이다.


학생들이 소프트웨어 부전공을 이수한 뒤 어떤 분야로 진출할 것이라 예상하나.

일차적으로 바라는 건 IT 서비스 기획자다. 사실 이 표현을 쓰는데 약간 망설였는데, 우리나라 IT 업체 대부분은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이렇게 딱 체계가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기획자가 하는 일이 굉장히 한정적이다.

미국의 IT 서비스를 보면, 기획자의 역량과 활동 범위가 굉장히 넓다. 스스로 개발하고 기획해서 다른 부서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한다. 우리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이러한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세운 계획의 종착역에 대해 듣고 싶다.

'졸업한 학생이 회사를 몇 개 만들어야 한다'와 같은 정량 목표는 없다. 나는 융합형 인재를 키우는 게 꿈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을 한 걸음 뒤에서 보니 걱정이 하나 들더라. 이미 사회에 나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기업 환경과 사회의 변화 속도는 정말 빠르다. 하지만 대학 교육은 이러한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회 나와서 바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인재가 드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대를 따라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융합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융합은 자신이 가진 토대 위에 새로운 능력을 조합해 완성된 창의적인 인재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우리 랩의 학생 한 명이 굉장히 유명했었다. 그 친구는 닌텐도 '위'의 리모트 컨트롤러를 해킹하는 과정을 촬영한 다음, 그것을 유튜브에 올려 굉장한 화제를 모았다. 지도 교수도 그 과정을 보고 재미있다고 하면서 별도로 연구비도 지원해 주더라. 그 학생은 졸업하고나서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한 뒤, '키넥트'를 만들었다. 게임 분야에서 새로운 혁신을 도입한 것이다.

창조 경제라는 게 바로 이런게 아닐까 생각한다. 없는 것을 만들어내고, 거기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거다. 만약 그 학생이 구속받는 환경에 있었다면, 그러니까 교수가 "왜 수업시간에 게임기 가지고 장난쳐?"라고 몰아붙였다면 아마 키넥트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단단한 토대를 기반으로 여러가지 가능성을 보유한 융합 인재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마크 주커버크같은 인물이 안 나오리라는 법은 없다. 최소한 그런 가능성이 트인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