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할 당시의 정신력은 매우 바람직한 상태였다.(아마 다른 기자들도 그랬으리라 믿는다) 게다가 2012년 지스타에서 선보인 이후로 '블레스'가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생각하며 '기대감'과 '의욕' 버프까지 받은 상태.

CBT에서 예정된 컨텐츠를 만나볼 기회였지만,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기에 세세하게 뭘 해보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최소한 기본 시스템과 파티 플레이까지만 맛 보자'는 것이 목표. MMORPG에서 시스템과 파티 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응당 그래야 했다.

마침 체험을 위해 나선 기자도 세 명. 물론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팀을 꾸린 것은 아니었지만 탱커, 딜러, 힐러 하나씩 하면 딱 맞다. 세 명이 공략하기는 다소 힘들 수도 있을 거라고, 네오위즈 측 관계자가 조언을 해주긴 했지만 그리 심각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다들 MMORPG 해본 경험이 얼마인데 그 정도 쯤이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우리 모두는 처음과 달리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밸런스가 완벽하게 맞춰지지 않은 버전이라 그렇다며 위안을 삼기도 하고, 사이 좋게 바닥에 누운 채로 한숨 섞인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게임이라는 것을 접해온 이래로, 이 날의 파티 플레이만큼 자괴감 느껴지는 경험을 다시 찾기도 힘들 것이다.

* 본 체험기에서 플레이한 빌드는 내부 테스트 업무에 사용되던 버전으로, 다가올 CBT에서 제공될 빌드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번 CBT에서 공개되는 우니온 진영 측 월드맵.
시렌과 이블리스 종족을 제외한 세 종족을 만나게 된다.





일단은 시스템이나 인터페이스, 전체적인 분위기 등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 파티 플레이를 하기 전에 각자 하고 싶은 종족과 클래스를 선택해 1레벨부터 플레이 해보기로 했다.

블레스의 캐릭터를 이야기하자면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KGC2013을 통해 이른바 '3세대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이 공개되면서, '블레스'의 캐릭터 세팅은 상당한 화젯거리가 된 바 있다. 크기나 길이 등 외형 변경 부분은 물론 부분적인 메이크업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구현했다는 점 때문.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공간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캐릭터들만 잔뜩 뛰어다닌다면 시작부터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커스터마이징은 디테일하면 할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물론, 외형 꾸미기에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디폴트나 랜덤 설정도 필요하겠지만.

아쉽게도 이번 CBT에서는 자신의 캐릭터를 직접 꾸며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으로 세팅되어 있는 캐릭터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향후 커스터마이징이 적용되고 나면 얼마나 개성있는 캐릭터가 등장할지를 기대해보기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기본 세팅된 캐릭터 생김새도 마음에 든다.
커스터마이징이 적용되면 온갖 신기한 생김새를 만나볼 수 있겠지...




RPG는 '역할 수행 게임'이라는 의미다. 즉,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과는 다른 존재로서의 삶을 경험하는 것에 본질을 두고 있다. 몇몇 온라인 RPG에서의 퀘스트가 이 부분을 가벼이 여겼던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바로 근처에 있는 누군가에게 물건 하나를 전달한다거나, 개인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모아달라는 것. 말이 좋아 퀘스트지, 따지고 보면 유저에게 잔심부름을 시키는 셈이다.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 RPG의 본질이라고 하면, 적어도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무언가를 게임 속에서 하기를 원한다고 보는 편이 바람직하다. 현실에도 심부름 다닐 일은 수두룩한데, 굳이 게임에 접속해서까지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겠나.

초반 스토리를 잠시 진행해보니 이런 심부름꾼 스타일 퀘스트가 많이 줄었다. 사실 퀘스트 내용을 잘 읽지 않는 편이라면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고, 개인 편차에 따라 퀘스트 스타일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됐건 이러한 시도 자체는 매우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이번에 체험한 구간이 지극히 일부인 만큼 게임 전반에 걸쳐 확신을 내리기엔 아직 이르다. 앞으로 공개될 컨텐츠 전체에서 '당신은 굉장히 의미 있는 존재'라는 암시를 끊임없이 던질 수 있길 바란다.

(잔심부름 안 시킬 테니) 이리와서 나 좀 도와주겠나


자고로 아빠엄마도 못 알아보면 그저 매가 약이다.
심지어 이름도 '페페'... 글자가 좀 다른 것 같지만 일단 맘껏 패주마


네? 심부름꾼이요? 잘 못 들었습니다?


심부름인 줄 알고 왔는데 퀘스트명이 '연방군 입대'.
군대 가는 것도 서러운데 입대하려면 왕거미를 잡아 오라네요.




전투 시스템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논타겟팅 클래스의 구현 방식이다. 이번 CBT에 공개될 예정인 4개 클래스 중 가디언, 레인저, 팔라딘은 타겟팅 클래스, 버서커는 논타겟팅 클래스인데, '블레스' 자체가 기본적으로 타겟팅 방식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논타겟팅 클래스인 버서커가 어떻게 구현됐는지는 주목을 받을 만한 부분이다.

결과를 말하자면, 몬스터 역시 플레이어를 타겟팅하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운 액션을 맛볼 수는 없다. 고유의 회피기나 방어기 등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컨트롤 액션은 가능하다. 버서커 자체가 다수의 적을 한꺼번에 상대하는데 특화된 클래스고, 한 번의 동작으로 다수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해 논타겟팅 공격 방식을 채택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간 몇 차례에 걸쳐 핵심으로 내세웠던 전술(Skill Deck) 시스템에 대한 감상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최종 컨텐츠 체험을 위해 마련된 20레벨대 캐릭터에는 이미 상당 수의 스킬이 습득된 상태.

이를 바탕으로 파티 플레이를 위한 전술을 구성해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스킬 퀵 슬롯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 23레벨을 기준으로 개방된 스킬 슬롯 수는 핵심 기술(Key Skill)을 제외하고 8개다. 여기에 패시브 스킬도 장착해야 하니, 실질적으로 유저가 직접 선택해 운용할 수 있는 스킬은 5개인 셈이다.

한정적인 슬롯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것은 괜찮은 컨텐츠가 될 수도 있다. 유저들 사이에 커뮤니티가 형성되다 보면 소위 말하는 '국민트리'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한재갑 총괄 PD의 말에 따르면 스킬 밸런스를 지속적으로 조절하는 과정에서 국민트리도 함께 변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전술 덱의 다양성은 어느 정도 보장될 것이라고.

버서커는 클릭만 해도 멀티 히트가 되는 참 좋은 클래스.
근데 왜 케첩 비슷한 게 머리 위에서 터지는 거죠.


인게임에서 지역지도를 펼치면 주변 지형까지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캐릭터 상태정보창. 실루엣으로 비어있는 부분은 어떻게 구현될까.


이 시스템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앞으로의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전술 시스템은 MMO 장르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고 해도 기존에 아예 없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스템 자체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효율적인 전술을 구성하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개인 호불호의 문제다.

이와는 별개로, 실제 던전 플레이를 진행하는 동안 평타의 공격력이 너무 낮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은 계속 따라다녔다. 물론 캐릭터의 레벨, 장비, 전술 세팅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그간의 MMORPG 장르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이번 CBT 빌드에서 준비된 던전에서 평타 효율이 지극히 낮은 편이다.

게다가 버서커를 제외한 타겟팅 클래스는 마우스 클릭으로 기본 공격을 할 수 없다. 스킬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자원 소모 문제도 있지만 쿨타임 문제도 있기 때문에 기본 공격을 퀵 슬롯 하나에 배정하는 것은 필수다. 그런데 이 평타의 효율성이 낮다는 것은 난이도를 비롯한 레벨 디자인이나 전체 밸런스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문제다.

후반부에 스킬 슬롯이 늘어나고 자원 수급을 위한 수단이 생기면 사정이 좀 나아질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중성을 지향한 MMORPG라면 약간의 조정은 불가피하지 않을까 싶다.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지극히 건강했던 멘탈


화려하게 잘 싸우는 듯 보이지만 내가 두 배 이상 더 아픈 게 현실


저 진짜 열심히 때렸거든요? 근데 얘가 자꾸 힐 쓰면서 안 죽음.


악! 입구부터 전멸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요...




체험을 위해 할애된 시간이 끝나갈 무렵까지, 우리는 결국 던전을 공략하지 못했다. 아니, 냉정히 말하면 그건 공략을 운운할 수 있는 단계도 아니었다. 네임드 몬스터는 고사하고 진입 후 두 번째 무리까지밖에 나아가지 못했으니 허탈한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한 일.

아쉬움이 가득 남은 체험이었다지만, 게임 자체의 느낌은 전체적으로 좋았다. 이제 첫 테스트에 임하려는 시점이다. 아직 컨텐츠가 완성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밸런스적인 아쉬움을 거론하기에는 적합한 시점이 아니라고 본다.

대작 가뭄이라 부를 만한 요즘, '블레스'가 잘 차려 입은 신사의 모습으로 성큼성큼 다가와주길 바란다. 깔끔한 옷 매무새 안에 누구나 쉽게 친해질 수 있는 털털함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블레스 개발팀이 바라 마지않는 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