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유, 그가 누군가?

향년 56세의 일본인 게임 크리에이터. 1980~90년대 세가를 대표하는 아케이드 게임 흥행작을 낸 사나이. '버추어 파이터'의 아버지. 동양인으로서는 미야모토 시게루, 사카구치 히로노부에 이어 세 번째로 AIAS 명예의 전당에 오른 남자.

▲ 일본 게임업계의 전설, '스즈키 유'가 강단에 섰다.


하지만 90년 대 후반 70억 엔(한화 약 735억 원)이라는, 그당시로선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입한 ‘쉔무’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세가 및 그들의 콘솔 ‘드림캐스트’까지 휘청거리게 만들었던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작년 말이었던가, 올해 GDC에서 스즈키 유가 ‘쉔무’의 포스트모템 강연을 발표한다고 했을 때부터 올드 게이머를 비롯해서 현업 개발자들의 기대까지 모아졌는데.. 비록 흥행에는 참패했고 후속작, 즉 '쉔무3'의 개발이 불투명해지면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지만 스즈키 유가 '쉔무'를 통해 보여준 게임 디자인에 대한 도전정신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통찰을 주고 있다.

스즈키 유가 GDC 강연대에 올랐다. 그리고 전세계 수많은 국가에서 참석한 후배 개발자들을 바라보며 1984년 '챔피언 복싱'부터 1994년 '버추어 파이터2'까지 자신의 게임개발 경력을 간략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스즈키 유의 게임경력은 그리 두텁지 않았다. '미스테리 하우스', '위저드리', '울티마' 같은 1980년대 어드벤쳐 게임을 주로 즐겼다고 고백했다. 여기에 1990년 초 일본 RPG 정도가 게임 플레이 경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가볍게 한 것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즉각 반응하는 게임, 즉 F.R.E.E. (Full Reactive Eyes Entertainment)라는 장르의 창시자답다고 할까. "항상 게임을 테스트할 때도 벽에 캐릭터가 붙었을 경우 걷기 애니메이션이 계속 나오거나, NPC에 오직 한 방향으로만 접근해야 대화가 가능한 부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는 세가에서 차세대 RPG를 제작하라는 명을 받고 1995년 처음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게 된다. 세가새턴 전용으로 제작된 프로토타입의 이름은 “노인과 복숭아 나무”. 이 때부터 스즈키 유의 도전정신은 폭발했다. 그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나무, 길, 벽, 그림자부터 사람, 개, 고양이, 얼굴 애니메이션까지 렌더링해서 보여주는 걸 목표로 잡았다.

플레이어는 걷고 달리며 쭈그려 앉고 점프할 수 있었다. 또, 이야기하는 액션이 가능했고 NPC는 스크립트된 동작과 대사를 보여줬다. 장애물을 자동으로 피해 캐릭터를 따라가는 3인칭 카메라 시점도 적용했다. 스토리에는 195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쿵푸 마스터를 찾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 타로가 등장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스즈키 유는 프로토타입을 반영하고 버추어 파이터의 주인공 아키라를 메인으로 내세운 ‘버추어 파이터 RPG: 아키라의 일대기’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목표는 풀 3D로 구현된 방대한 규모의 RPG로, ‘풀 보이스’를 지원하는 점이 특징이다. 버추어 파이터 엔진으로 제작된 여러 명의 캐릭터들이 동시에 싸울 수 있는 ‘멀티 배틀’ 시스템도 목표 중 하나였다.

여기서 스즈키 유가 게임 제작을 위해 1993년 중국으로 여행갔던 일화가 소개된다. 중국으로 건너간 스즈키 유는 여러 무술 고수들을 찾아다녔고 팔극권 최고수 ‘우’ 선생을 만나 큰 영감을 얻는다. 중국 지역들의 특색, 여러가지 음식과 중국인들의 다채로운 삶들 역시 새로운 게임을 갈망하는 스즈키 유의 뇌리에 각인됐다.





스즈키 유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아키라 일대기의 전체 스토리를 구성했다. 기승전결을 기반으로 한 네 파트는 각자 '슬픔', '출발', '격투', '새로운 출발'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었다. 요약하면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이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고, 현지에서 만난 사부에게 무술을 배운 후 강력한 적 ‘랜디’를 무찌르고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설정이다.

어찌보면 간단한 설정. 여기에 스즈키 유는 아이디어를 증폭시키는데 역량을 쏟았다. 각 파트의 명장면에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도입하고, 더욱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작가, 영화 감독, 각본가를 고용해 그가 주장하는 ‘경계없는 게임 개발론’을 도입한다.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세계관과 드라마에 중점을 둔 소설화 작업까지 진행한 후, 각 소설의 총 11개 챕터를 대표하는 콘셉트 아트까지 제작한다.

그러던 중 세가는 세가 새턴의 차기 콘솔 출시를 준비하고, 아키라 일대기를 개발 중이던 스즈키 유 역시 플랫폼 변경을 결정하게 된다.

“장르는 RPG로 가고 플랫폼은 차세대 ‘새턴’이었습니다. 코드네임은 ‘구피’, 배경은 역시 중국이었죠. 아키라 일대기의 최초 스토리는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즈키 유의 표현에 의하면 64채널 풀 보이스와 실제 현실 수준의(Lifesize) 풀 3D 그래픽을 구현하기로 결정했다. 목표로 삼은 게임 플레이 타임은 총 45시간이었다. 리얼타임 CG 무비가 5시간, 한번에 여러 명과 전투하는 플레이가 4시간, 단서를 찾기 위해 방을 조사하는 것이 4시간, “자유모드”로 이동하고 대화하는 게 8시간, 무술을 연마하는 시간이 4시간, 던전 플레이가 4시간, 챕터 연결 부분(스토리, 여행)이 4시간, 나머지에 12시간을 배치했다.

1998년, 코드네임 ‘구피’, 즉 ‘버추어 파이터 RPG: 아키라 일대기’는 코드네임 ‘버클리’로 바뀌게 되는데, 여기에서 역사적인 ‘쉔무 챕터1: 요코스카’가 탄생한다.

스즈키 유는 '느긋한 (Leisurely)', '좋은(Gentle)', '완전한(Fully)'을 쉔무 개발의 세 가지 키워드로 삼은 뒤, 네 가지 메인 콘텐츠를 구상했다. 첫 번째는 '오픈 월드' -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진행되는 여러 형태의 플레이를 추구, 두 번째 '시네마틱' - 유저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네마틱, 세번째 'QTE' - 시네마틱과 실제 플레이 화면이 자연스럽게 상호 작용하는, 네번째 ‘프리배틀’(Free battle) - 방대한 지역에서 일대 다수의 전투다.



첫 번째 콘텐츠인 ‘오픈월드’를 구현하기 위해 스즈키 유는 엄청난 자원을 쏟아붓기로 결정했다. 한 게임 안에서 여러가지 플레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 거대한 도시는 방대한 양의 서브 스토리와 퀘스트, 미니 게임을 제공하고 엄청난 수의 NPC는 실제 사람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오랫동안 흥미로운 플레이 공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 스즈키 유가 본 최우선 과제였다.

시네마틱에서도 장인 정신은 그대로 이어진다. 유저들의 감정을 더욱 끌어내기 위해 게임 플레이와 시네마틱 무비 사이의 퀄리티 차이를 없애버렸다. 세번째 QTE(Quick Timer Event)도 마찬가지, 게임 플레이와 시네마틱 무비를 혼합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로써 실제로 플레이어의 개입이 가능하지만, 비주얼 퀄리티를 낮추지 않는 동시에 스토리에도 맞아 떨어지는 조작을 원했다. 다양한 수준의 유저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 난이도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시스템도 채택했다.

마지막 프리 배틀에서도 1대 다수를 비롯해서 시네마틱과 QTE, 마무리 애니메이션이 경계없이 흘러가도록 구성했고 카메라 추적을 개선해 생동감 있는 연출을 추구했다.




하지만 스즈키 유가 구상한 이 모든 콘텐츠를 집어 넣기는 어려웠다. 그 당시 기술력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 스크키 유의 말을 빌리면 그 당시 데이터 압축기술 그대로 쉔무가 출시됐다면 CD-ROM 50, 60장이 필요했다.

스즈키 유는 고심을 거듭하다 데이터 압축을 위한 몇 가지 트릭을 구상하기에 이른다. 이름하여 ‘씨앗 이론’ (Theory of Seeds). 하나의 DNA 표본만 있으면 복제품은 무한히 만들어 낼 수 있다.

“거대한 숲을 한번에 만들어 데이터로 전송하는 건 어렵지만 씨앗을 심어두는 건 매우 쉬운 일입니다. 2 평방 킬로미터의 숲은 엄청난 데이터 양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씨앗과 주변 환경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다음 프레임이 구성될 때에 맞춰 숲을 합성해낼 수 있게 됩니다.”

씨앗 이론은 숲 뿐 아니라 도시의 빌딩과 방에도 적용됐다. 덕분에 자동으로 현실 세계에서와 같은 거대한 도시를 생성할 수 있었다. 스즈키 유는 실내 장식 전문가를 고용해 실제 방의 레이아웃을 잡고 어떤 규칙을 분석해 낸 후 씨앗 이론을 도입, 자동으로 현실과 같은 모습의 방이 생성되도록 했다. 날씨 변화도 마찬가지. 시간이 지날 수록 자동으로 일출부터 일몰까지 날씨가 변하고 씨앗 이론 알고리즘을 통해 맑은 날씨, 구름 낀 날씨, 비와 눈 오는 날씨를 무작위하게, 그리고 그럴듯이 생성해냈다.





또 다른 트릭은 NPC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인공지능이 스크립트 데이터를 사용해서 NPC를 통제했다. NPC가 오전 6시에 기상해서 7시에는 버스를 타고 회사로 출근, 12시에는 회사 입구로 나와 옆 공원에서 점심을 먹는 등 하루 일과에 따른 스크립트를 구성한 뒤 자동으로 NPC들이 그 통제에 따르도록 했다.

“물론 심각한 버그도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게임 내 상업지구 NPC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했어요.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는데 엄청난 수의 NPC들이 아침을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이동했고 결국 편의점 내부에 서로 껴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갇혀버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자동문을 크게 하고 편의점의 수용 인원을 늘려서 해결하기는 했습니다만…” (웃음)

데이터 압축을 위해 스즈키 유는 ‘모션 공유’라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해골과 인간의 형태는 다르지만 걷는 모션은 똑같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같은 모션을 공유하기 때문에 데이터 양은 반으로 줄게 된다. 스즈키 유는 "이 방법으로 남자에게 여성의 걸음걸이를 적용했더니 마치 마릴린 먼로처럼 걸었고, 개와 고양이에 인간의 모션을 적용했더니 두발로 서서 걸었다"는 에피소드를 덧붙였다. 흥미로운 강연 주제에 웃음까지 더해진 것은 물론이다.

쉔무는 1999년에 이르러서야 전체 플레이를 점검하고 버그를 잡는 단계에 진입했는데, 2주 단위로 매일 300개의 개선을 이뤄냈다. 스즈키 유는 여기서 또 하나 재밌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쉔무는 기존 게임에는 없었던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코카콜라'와 '타이맥스' 같은 실제 브랜드를 게임에 도입하는 것이었다.




진행사항 점검을 요구하는 코카콜라사에 쉔무 개발팀은 개발버전 트레일러를 보냈고 코카콜라사는 제품 자동판매기가 길 바로 위에 있다며 제대로 된 장소에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쉔무 개발팀이 게임 속 세계에 있는 모든 코카콜라 자동판매기의 위치를 추적해서 다시 재배치한 것이 이 에피소드의 해피엔딩.

총 300명의 인원이 프로젝트 마무리 작업에 참가했고 프로젝트 매니징 툴로는 MS 오피스의 ‘엑셀’을 도입했다. 자그만치 1만 개 이상의 아이템이 DB에 기록돼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쉔무1이 출시되고 2000년에 쉔무2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또 하겠습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이렇게 게임계의 전설, 스즈키 유의 쉔무 포스트모템은 개발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그 첫번째 챕터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