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에 스포일러가 포함됐을 수도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전체적으로 좋은 작품이었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배경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공중도시 '콜럼비아'는 분명 게임사에 남을 만 하다고 봐요. 현실적인 천국 느낌이랄까요.

멀리서 보면 청명한 색감이 돋보이는 유토피아가 보이고, 가까이서 보면 길가의 가로등이나 휴지통까지도 세계관에 입각한 디자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깊이 있는 스토리가 더해졌고, 오롯이 높은 몰입감으로 승화되어 유저에게 전달되었죠. 멋진 게임입니다.

▲ 콜럼비아는 누구나 살아보고픈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내면을 알기 전까지는.


하지만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작의 산이 너무 높았어요. 콜럼비아가 정말 아름다운 건 맞죠. 헌데 '바이오쇼크1'은 게임사 전체를 통틀어도 첫 선에 꼽힐 충격적인 풍경을 보여줬습니다.

1편의 배경인 '랩쳐'는 망가진 심해도시 콘셉트를 완벽하게 재현했고, 비현실에서 오는 괴리감, 그리고 공포감까지 담았습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심도있게 풀어낸 스토리텔링, 뿌리깊은 철학의 지원 포격도 있었고요. 여러가지 부분에서 걸작이라고 부를만 한 작품이었습니다.

'랩처'의 매력에 심취한 이들에게 '콜럼비아'는 여러가지 방향으로 비춰지는데, 크게는 두 분류였어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면성을 지닌 '콜럼비아'를 바이오쇼크의 새로운 배경으로 받아주는 유저, 특유의 공포감이 사라졌다는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여 뒷목잡고 쓰러지는 유저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DLC(다운로드 콘텐츠)로 출시된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바다의 무덤'은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유저를 위한 선물입니다. 동시에 켄 레빈의 바이오쇼크 트릴로지를 깔끔하게 마무리했죠. 인피니트에서 평행우주라는 설정을 도입한 게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 덕분에 랩쳐와 콜럼비아는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바다의 무덤 에피소드1'은 랩쳐가 막장이 되기 직전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언리얼3 엔진으로 구현된 말짱한 랩쳐의 풍경은, 콜럼비아와는 또 다른 유토피아의 모습입니다.

▲ 콜럼비아 못지 않게 아름다웠던 랩쳐


그런데 스토리에서 구멍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안 그래도 해석 복잡한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의 스토리를 현기증이 날 만큼 어질러 놓았죠. 켄 레빈이야 '나중에 다 이어놓을 거임. 그냥 따라와'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헌데, 즐기는 유저 입장에서는 그게 말처럼 쉽게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말 그대로 바이오쇼크에 '미친' 팬 정도여야만 얼추 유추해볼 수 있는 수준으로 꼬아 놨어요.

해외 리뷰어들 역시 지나친 스토리 복선을 문제로 지적했고, '바다의 무덤 에피소드2'에서 이 부분을 완벽하게 메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시선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3월 26일, 바이오쇼크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출시되었습니다.

▲ 알면 재밌고 모르면... 남의 나라 이야깁니다.


흠, 예상과는 달랐달까요. 아니, 애초에 켄 레빈의 목적이 이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다의 무덤 에피소드2'는 훌륭했습니다. 놀랄 정도로.

우선 중구난방이었던 이야기 갈래들을 모두 묶음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이어 놓았습니다. 에피소드 1에서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라 생각되었던 부분 역시 하나하나 수거해 완벽하게 짜맞추었죠. 해외 매체의 평가 역시 비슷합니다. "켄 레빈의 바이오쇼크가 '바다의 무덤 에피소드 2'을 통해 비로소 완결을 맺었으며, 과정 역시 훌륭하다"고 말이죠.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은 지금까지 공개된 바이오쇼크의 이야기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할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겁니다. 전작 이야기 모르면 엔딩 보고도 이게 뭔소린가 싶을 거예요.

바다의 무덤 에피소드 1편은 가격 대비 지나치게 짧은 플레이타임으로 엄청나게 욕을 먹은 바 있습니다. 저도 90분은 솔직히 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에피소드 2편을 즐기고 돌이켜보면, 그 짧은 플레이타임이 이번 작품을 위해 아껴놓았기 때문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차근차근 스토리를 이해하며 게임을 즐길 시 약 5시간의 플레이타임이 필요한데, 이는 왠만한 슈팅액션 게임의 전체 캠페인 분량입니다. 즉, 이번 DLC는 넘치는 가성비를 보여줍니다.

▲ 엘리자베스의 능력은 공격보단 기능적인 부분이 많고, 게임플레이에 입체감을 더해줍니다.

▲ 세련된 퍼즐 연출,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듭니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한글화 때문에 참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공식 한글화 퀄리티가 너무 떨어졌거든요. 문장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기본이었고, 특히 오역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본래 상징적인 메시지의 단어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기에 조금 걱정은 되었습니다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조금 심한 편이었죠. 뭐, 다행히 패치를 통해 한결 나아진 모습을 보이긴 했습니다.

영어 까막눈인 제 입장에서 보면, '바다의 무덤 에피소드2' 역시 한글화된 것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퀄리티가 아주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만, 원작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나아졌습니다. 적어도 자막을 읽고 실소하는 모습은 더이상 없을 겁니다.

여담으로 '바다의 무덤 에피소드 2'에는 '1998 모드'가 담겨 있습니다. 원작의 '1999 모드'와 마찬가지로 정말 어렵습니다. 그냥 게임 난이도 자체도 높게 책정되었는데, 여기에서 적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클리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참고로 켄 레빈은 '씨프: 더 다크 프로젝트'의 디자이너 출신입니다. 후드를 뒤집어 쓰고 보우건을 들고 있는 엘리자베스의 모습, 그리고 날카로운 디자인의 폰트에서 씨프가 오버랩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거죠.

▲ 한글화는 그럭저럭 봐줄 만 합니다.

▲ 폰트만 봐도 알겠네요. 씨프입니다.


자, 이제 마무리를 지어 보죠. '바다의무덤 에피소드 2'는 전편에서 쌓인 분노를 대폭 식혀주는 데 성공했습니다. 캠페인 분량도 상당하며, 여기에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모드도 추가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자막 한글화입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무조건 사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시리즈의 스토리 모두를 이해한 유저라면 필수 구매리스트에 넣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인피니트와 함께 단품으로 산다면 솔직히 말리고 싶습니다. 그냥 게임의 재미만 느끼고 싶더라도 자제하세요. 바이오쇼크의 모든 요소는 스토리와 연관성을 가집니다. '바다의 무덤'은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의 DLC가 아닙니다. '바이오쇼크'의 DLC라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 바다의 무덤2 도입부입니다. 연출 클래스는 여전하네요.